신물지 神物紙

Sacred Paper展   2019_0605 ▶︎ 2019_0725 / 일요일 휴관

초대일시/ 2019_0605_수요일_06:00pm

참여작가 김범_이슬기_이유지아(협력_서순실 심방+정해남 법사) 이이난_이진경_김영철 심방_이재선 법사_정용재 장인

주최 / 우란문화재단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우란문화재단 우란1경 WOORAN FOUNDATION ART SCAPE 1 서울 성동구 연무장7길 11 1층 Tel. +82.(0)2.465.1418 www.wooranfdn.org www.facebook.com/wooranfdn

'신물지(神物紙)'는 '신성한 물건, 한지'라는 의미를 담은 조어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근대화 과정에서 지워진 전통적 세계관 즉, 민간신앙의 흔적을 충청남도 지역의 '설위설경'(이재선 법사), 한지로 만든 꽃 '지화'(정용재 장인), 제주 민간신앙에서 쓰이는 '기메'(김영철 심방) 같은 종이 무구(巫具)와 이를 해석하고 반응한 김범, 이슬기, 이유지아, 이이난, 이진경 작가의 회화, 설치, 영상작품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신물지展_우란문화재단 우란1경_2019
신물지展_우란문화재단 우란1경_2019

사람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관혼상제를 비롯한 삶의 중요한 순간에 한지로 금줄, 사주지, 지방을 쓰며 그 의미를 기려왔다. 하지만 동시대 디지털 미디어의 확산은 종이의 중요성과 역할을 점차 퇴조시켰다. 그런 면에서, 오늘날 종이의 가치를 언급하는 것은 한편으로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다. ● 이처럼 한지의 실용적 용도만 생각한다면 물질적 가치는 언제든 대체 가능한 것이 된다. 하지만 이것을 정신적 가치를 담아내는 예술품∙공예품으로 볼 때 그 의미는 시대를 넘어서는 의미를 획득하게 되고, 오늘날 한지를 전통으로 보존해야 하는 이유를 보다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다.

신물지展_우란문화재단 우란1경_2019

종이의 물성적 특징뿐만 아니라 신물적 특징에 집중하여 볼 때 전통과 공예 혹은, 공예를 답보한 전통의 담론을 이어가는 데에 있어 '종이'가 박재(博載)되어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가치를 논하면서 미래의 가능성까지도 이어나가는 주제가 될 수 있다. 이로써 종이는 저장 매체 이상의 역할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며 한 시대와 시대를 잇는 1) 것으로, 동서고금을 막론한 전통 담론으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 ● 이런 논의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그 중요성에 관한 인식이 무색할 정도로 한지 제작은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전통을 그나마 근근이 이어가고 있다. 게다가 손에 꼽을 만큼 몇 안 되는 한지 장인들은 후계자 없이 타계하는 등 그 명맥을 잇고 지키는 행위 자체가 점차 위태로운 것이 현실이다. 이와 같은 한지의 현장을 목도하고자 전통 한지 공방을 답사하고 이를 지켜가는 한지 장인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신물지』 전시 리서치가 시작되었다.

신물지展_우란문화재단 우란1경_2019

매체의 영역에서 보면 종이는 한없이 평면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리서치 현장에서 접한 바에 따르면, 닥나무를 자르고, 찌고, 뜯고, 고르는 등 일련의 한지 제작 과정은 쉽게 찢어지고 다뤄지는 종이의 습성과는 다르게 다양한 담론이 가능한 입체적 속성을 띠었다. 이는 오늘날 한지가 생산∙존재하는 방식(보존되어야 할 전통이지만 소수에 의해 겨우 생산이 이어져 오고 있는 것)과 함께 '종이'의 쓰임과 속성 그것의 동시대적 가치를 더욱더 확장된 시각으로 인식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 그 용례를 살펴볼 때, 쉽게 접고 구부리고 자르고 또 쓰일 수 있는 종이는 기본적으로 '인쇄물'의 토대로 쓰일 뿐만 아니라 당대 생활상과 세계관을 온전히 표상할 수 있는 다루기 쉬운 매체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형상화의 요구가 짙었던 신앙의 영역에서 종이는 다양한 역할과 의미를 수행하며 무구이자 종이 공예로서 기능해왔다.

신물지展_우란문화재단 우란1경_2019

종이 무구는 다양한 형태의 민간신앙 현장에서 제차도구이자 장엄(莊嚴), 신상(神像) 등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종이 무구의 사상적 배경이 되는 전통 신앙은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점차 오늘날 삶과는 이질적인 것으로 제외되거나 잊어야 할 관습, 혹은 버려야 할 어떤 것으로 치부되어 왔다. 또한, 일제 강점기를 지나 산업발전의 기계 대량생산 과정에서 전통 한지는 A4 종이에 밀려 명맥을 잃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하거나 이미 사라진 현장을 목도하게 된다. 한지가 처한 상황에서 한지 자체에 덧씌운 '전통'과 그것이 표상했던 '전통'을 살펴볼 때, 우리는 한지를 지렛대 삼아 전통에 관한 논의를 이어갈 수 있겠다. ● 그럼 무엇이 전통인가? '전통'이란 말은 '근대에 생성된 용어 2) 이다. 즉, 전통을 전통이라 인식하게 된 것은 근대화라는 변화와 전환의 세기를 맞아, 그간 존재했으나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들에 대한 기록이자 보존의 요구와 닿아 있다. 무엇을 기억하고 기록할 것인가? 이 물음 자체는 근대적 사고방식과 유사한데, 기록을 기반으로 한 역사가 취사선택 혹은 목록화를 통한 분류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신물지展_우란문화재단 우란1경_2019

그렇다면 오늘날 '전통'으로 남아온 것은 무엇을 탈락시키고 왜곡하여 형성된 것인가. 아마도 이 과정에서 종이 무구가 그려내던 전통 신앙이 부정적 시선을 담은 표현인 '미신' 3) 으로 치부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전통 신앙은 '근대화'라는 시대적 프레임에 의해 반근대적인 것, 비과학적인 것, 낡고 오래된 것, 버려야 할 것으로 제외됐을 테고 종이 무구 역시 무속의 한 요소로 즉, 상스러운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 하지만 전통에서 배제되었다 하더라도, 그 기억이 온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도교, 불교, 유교의 이데올로기 아래에서도 무속이라 불리는 민간신앙은 민중들의 생활과 삶, 관습 속에 그 흔적을 뿌리깊게 4) 남겼다. 이와 같은 신앙의 의례는 인간의 본원적인 공포이자 미지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죽음'의 세계와 닿아있기 때문이다. 죽음 이후의 세계와 존재에 관한 인간의 상상력은 현실 바깥에 존재하는 인식 영역 밖의 직관적 경험에 기인한 것으로 논리와 합리로 재단할 수 있는 것과는 다르다. 사람들은 현실 '너머' 세상에 관한 관념을 '이야기' 즉, 설화, 신화, 무가(巫歌) 안에 그려냄으로써,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 반이성적이라 여겨지는 삶과 죽음의 영속된 세계관을 역사와 다른 방식으로 기억하고자 했다.

이재선 법사_설위설경_팔문금쇄진

이를 의식화(儀式化), 의례화(儀禮化)하는 다양한 의례와 형식들을 전통 신앙의 모습으로 발전시켰는데, 특히 한지 공예를 활용한 조형적 특징을 충청남도, 동해안 지역 그리고 제주도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지는 일상생활에서 오랜 시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질긴 특성을 보인다. 또한, 쉽게 찢거나 오릴 수 있는 가벼운 소재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이처럼 다소 다루기 쉬운 소재인 '종이'로 초월적 존재나 근본적 두려움에 맞서는 형식을 구현해왔던 것이다. 그 존재가 물리적인 형태를 갖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기인한 상념임을 인지하고, 이로써 한지에 새겨진 문양과 글귀 그리고 형태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시각을 자극하여 직관적 감각을 꾀하고자 했다.

이재선 법사_설위설경_수문철망

충청남도 '설위설경'은 설위와 설경의 합성어이며, 법사 5) 가 도교, 불교에 기인한 경문을 구송하는 전통신앙의 의례로 흔히 '앉은굿'이라고 일컫는다. 설위설경은 장소를 전환하여 집안의 안위를 기원하거나 환자를 치료하고 죽은 이의 넋을 기리는 행위가 가능하게 했다. 현실 범위 밖의 초월적인 대상과 이를 향한 믿음을 기저로 하여 현실의 고민을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설위는 신의 이름을 적은 위목(位目)을 포함하여 신이 머무를(가둘) 수 있도록 제단을 세우고 종이로 철망 형태와 각종 상징물을 오려 성소를 꾸미거나 장엄하게 설치하는 것을 말한다. 설위 만드는 과정을 종이가수기(까수기)라 부르기도 하는데 접어 오려서 반복된 형상을 구현하거나 섬세한 칼질을 요구하는 등 공예적 특징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김영철 심방_기메_성주꽃
김영철 심방_기메_수레멜망악심꽃

이와 같은 형태는 제주의 전통 신앙 의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심방에 의해 행해지는 제주 지역의 굿에서는 '기메'가 필요한데 이 역시 신을 불러모으거나 머무를 수 있도록 특정 장소에 신성한 의미를 부여한다. 기메로 장식된 제청은 신을 위한 궁전이자 하늘(신)과 땅(인간)을 잇는 가교 역할을 담당한다. 동시에 전통사회에서 굿이 행하는 볼거리 즉, 일종의 마을 축제 같은 현장을 알리는 이정표 역할 또한 겸했다. 제주 기메는 신화를 기반으로 한 굿의 등장인물들을 의인화하여 재현하거나 해양문화권의 특수성이 반영된 신(용왕신)을 나타내 제주 신화가 담고 있는 상상력을 조형적으로 표현해낸다. 이는 역사로 기록하지 못한 것, 혹은 탈락시킨 공동체 기억의 흔적이면서 동시에 아득한 시간을 거슬러 현실의 시간(역사)을 넘어서는 서사를 구현한다. 그러므로 기메는 압축된 근대화 과정을 거치며 오늘의 이데올로기에 갇혀 지워지거나 망각된 역사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는 지표라고도 할 수 있다.

정용재 장인_지화_살잽이꽃
정용재 장인_지화

한편 '지화'는 일찍부터 불교미술 중 하나인 감로탱 6) 에 등장한 것을 미루어 보아 불교 의례에 쓰여왔으며, 더욱 광범위하게 민가나 궁중에서도 그 용례를 찾을 수 있다. 또한, 동해안 지역 전통신앙(동해안별신굿)에서 주로 전승되어 왔으며 이승과 저승 사이 같은 비현실적인 장소에서 볼 수 있는 상상의 꽃을 구현해내기도 한다. 이는 죽어서 다다를 수 있는 극락이나 서역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서천꽃밭을 연상시킨다. 꽃은 그 자체로 신의 형상이 되므로 인간에게 생명과 에너지의 원천이자 그 원형적 구조로 말미암아 스스로 창조된 신의 세계라 볼 수 있다. 7) 나아가 지화 즉, 꽃이 '생명'으로 상징되는 여성의 원형적 전통이자 더불어 고대 모계사회와 이를 반영한 모신(母神) 신화의 흔적을 되새겨 볼 수 있겠다.

김영철 심방_기메_육고비

이처럼 설위설경, 기메, 지화는 죽음 이후의 극락을 상징하거나 현실의 장소를 신성한 장소로 전환하고, 영매가 활동할 수 있는 중간 영역을 구현하여 인간과 신이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장소성을 의미하는 장치가 된다. 종이 무구들은 각 시대와 지역에 따라 저마다의 조형적 특징을 띠며 서로서로 참조하기도 하고 변용되어 전승된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또한, 원초적 상징과 가치를 공유하면서 동일한 문화권 아래에서 공동의 기억과 믿음의 속성을 연상시킨다. ● 이와 같은 종이 무구들이 상징하는 전통의 세계관과 믿음의 속성을 이번 전시에서는 영상, 설치, 회화, 그리고 전시공간 디자인 같은 작가들의 현대적 조형 언어와 한데 구성하여 종이 무구의 동시대적 가치와 시선을 확보하고자 시도했다.

이유지아_와해경(瓦解經)-떠다니는 그림자_4채널 영상설치_00:08:13_2019

이를 위해, 동시대 풍경의 면면을 영상으로 재현, 기록, 콜라주하여 현실 이면의 구조와 체계를 드러내는 작업을 해온 이유지아 작가는 태안 설위설경 정해남 법사와 제주 서순실 심방의 평범한 일상을 전통신앙 의례의 모습과 병치하는 영상 작업 「와해경(瓦解經)-떠다니는 그림자」를 선보인다. 작가는 이들이 사용하는 무구가 현실의 장소를 신성 장소로 전환하는 역할을 하는 것에 집중한다. 이로써 특수한 '장소'에 깃든 정신적 가치를 시사하는 제단 형상의 움막 같은 구조물 내∙외부에 사운드, 텍스트가 포함된 4채널 영상 설치를 구성한다. 이렇게 작가는 현실 이면의 정신적 세계관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이이난_Beyond Cognition_종이무구를 위한 스크립트, 종이무구 오브제(설위설경 [서리화, 지화], 기메[달래지]), 종이무구 아카이브 텍스트, 아크릴육각형무대, 스마트폰 영상, 수정_가변크기_2019

이이난 작가는 종이 무구와 이것이 사용되는 전통신앙 의례의 특성을 '극'의 형태로 전환하여, 전통 세계관이 가진 비선형적 이미지와 아카이브 자료들을 (작가의 음성으로 구현된) 발화의 방식으로 표현한다. 설치 작업 「종이 무구를 위한 스크립트」에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시간대를 예견, 지연하는 일종의 무대장치와 전통신앙 아카이브 자료에서 발췌한 스크립트, 그리고 각각의 종이 무구를 등장시킨다. 이로써 작가는 전통 신앙이 그리고 있는 죽음에 대한 인식과 그것이 담긴 세계관을 시각적 상상력으로 구현해냈다.

이진경_떡다식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콜라주_53×46cm_2010

이번 전시에서 5점의 회화 작업을 선보인 이진경 작가는 일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전통의 모습들을 드로잉, 설치, 서체 등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드로잉으로 그리고 쓰인 익숙한 간판 글씨는 일찍이 현대미술이 주창해온, 삶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친숙하고 익숙한 것들의 감각을 새롭게 취하는 면모를 보인다. 작가는 제주도 신화 이야기를 써 내려간 「천지왕본풀이」와 제주도 굿당과 신을 그리고 묘사한 「당굿, 큰굿」에서 신화와 설화에 대한 관심을 경쾌하고 단순화한 형태로 표현하였다. 삶과 죽음이 영속하는 전통 신앙의 세계관은 작가의 그림 속에서 제주 굿당의 돌무더기만큼이나 친근하게 느껴진다. 역사 이면의 기억과 이야기가 이렇게 회화 작업으로 등장하여 현실과 합리, 이성으로 담기지 않는 감각의 기억을 이어가고 있다.

김범_피어남과 시듦(기본형-흑색)_한지_68×51cm_2014 김범_무작위 인생(흑색)_패널에 도자 타일_71×71cm_2013

설위설경이나 기메를 전통 종이공예의 측면에서 보면 그 조형적 특징이 현대미술의 작업과도 닿아있다. 종이를 접어 오리거나 잘라서 구현하는 공예적 방법론은 김범 작가의 「피어남과 시듦 (기본형 - 흑색)」 종이 작업과도 유사하다. 작가는 종이를 접어 오려서 만든 반복된 형상이 개별 또는 집단으로 부분이자 전체를 만들어내는 생경한 감각을 자극한다. 특히 「무작위 인생 (흑색)」은 도자 타일을 이용한 드로잉 작업으로, 사람의 형상이 반복을 통해 동물의 머리 혹은 팔다리 형태로 변하여 다양한 가능성의 조합으로 결합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도상은 마치 설위설경에 새겨진 팔보살이 구천의 혼을 달래는 것으로 여겨지듯이, 익숙한 것이 낯설어지고 두려운 것이 해학적인 것으로 전환되는 현대미술의 의미로도 확장된다.

이슬기(협업_김영철 심방)_CHUM_황동에 도색_125×60×25cm_2019

파리를 근거지로 하여 전통 공예와 장인에 관심을 두고 활동하는 이슬기 작가는 제주도 김영철 심방과의 협업을 통해 「CHUM」 작업을 선보였다. 이 작업 제목은 말 그대로, '춤'을 의미하기도 하고 동시에 캐나다 프랑스어로는 '매우 가까운 친구'를 뜻한다. 역동적 움직임을 담아낸 이슬기 작가의 기하학적인 설치 구조물에 김영철 심방은 심방을 상징하는 기메인 '청너울'을 씌워 그 의미를 더했다. 인간과 신을 잇는 영매는 전통신앙이 현존하게 하는 주체자이면서 전통신앙 의례의 행위자라 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존재와 대면하고 두 세계를 관통하는 영매의 움직임은 그럴싸한 현대적 제의공간으로 분한 전시장에 역동적 움직임을 불어넣는다. ● 전시장에 구성된 설위설경, 기메, 지화 같은 종이 무구들은 사실 전통신앙 의례의 현장에서 그 역할과 의미를 극대화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전시로 소개하는 것은 무구로서의 의미와 맥락을 온전히 담지 않고 '작품'으로 분하여 또 다른 오해와 오독을 낳을 수도 있다. 하지만 종이 무구와 더불어 구성된 시각예술 작가들의 설치, 영상, 회화 작업은 종이 무구가 그려온 전통 신앙의 세계관에 관해 잊힌 기억을 상기시킨다. 이렇게 각 요소는 터부시되고 단절된 기억을 복원하면서 전시공간을 상상의 현대적 제의공간으로 재구성한다. 이 안에서 종이 무구는 작품으로, 혹은 작품은 현대적 무구로 기능하게 되고 이로써 전통이 그 자체로 보존, 고립된 것이 아니라 시대적 변화에 따라 굴절, 변형하는 과정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런 시도로 말미암아 동시에 전통이란 명명 아래 기록되지 못한 것 그리고 기억하지 못한 것을 떠올려보고자 한다.

신물지展_우란문화재단 우란1경_2019

다시 '한지'로 돌아가 보자. 물성의 효용만으로는 경제와 산업에 따라 변화하는 시대상을 이겨낼 수 없다. 이것의 쓰임을 가능케 했던 '전통적 가치관'의 공감과 이해가 선행되어야 물질사회의 효용이란 잣대에서 비켜서 과거, 현재에 이어 미래까지 그것의 가치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전통은 한지, 종이 무구 그 자체가 아니라 각각의 쓰임이 가능하게 했던 세계관임을 인식할 때, 이와 같은 전통은 박물관 유물만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그 쓰임을 지속적으로 모색하면서 다음 세대로 이어져갈 수 있을 것이다. ■ 장윤주

* 각주 1) 로타어 뮐러(Lothar Muller) 지음, 박병화 옮김, 『종이』, 알마, 2016, 8쪽. 2) 일본 메이지 시대에 영어 'Tradition'을 번역한 것으로, '근대'로 접어들면서 생겨난 말이다. 이영욱∙박찬경, 「앉는 법: 전통 그리고 미술(1)」 참고. 3) 미신(superstition)은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우리의 사유와 믿음을 의미하는 용어이다. 해방운동 이후에 이승만 정권시기 기독교에 의해 왜곡되어 다신교를 지칭하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하순애 교수님 자문회의(2019. 05. 01) 참고. 4) 전통을 수사하는 '뿌리'를 '과거의 징후로서 무수한 폐물들이 마치 뿌리줄기(리좀)처럼 망을 구성하여 옆으로 무한히 퍼져 나가는 결집체의 모습'이라고 해석한다. 김홍중, 『마음의 사회학』, 문학동네, 2009 참고. 5) 불교에서 차용한 말로 과거 설위설경과 같은 앉은굿을 행하는 이를 '경쟁이'라 불렀다. 이는 경 읽는 사람을 다소 비하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최근 스스로 높혀서 '법사'라 칭하고 있으며 충청남도 지역에서는 보편적으로 쓰인다. 6) 감로탱은 수륙재나 사십구재 등 중생의 영가천도를 위해 그려진 의식용 불화로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형식의 그림이다. 망자를 극락으로 인도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삼단으로 나누어진 구도로 천상계와 인간계 그리고 지옥계의 수직적 위계질서를 전달한다. 우리나라에서 감로탱이 그려지기 시작한 것은 16세기로, 17~18세기에 가장 유행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화콘텐츠닷컴(www.culturecontent.com) 참고. 7) 김명희, 「한국 지화에 나타난 상징체계 비교연구」, 박사학위논문, 한양대학교 대학원, 2013 참고.

Vol.20190606h | 신물지 神物紙 Sacred Paper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