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너머 Beyond the scenery

김건일_이만나_이종민展   2019_0607 ▶︎ 2019_0710 / 일요일,6월 29일 휴관

초대일시 / 2019_0615_토요일_05:00pm

후원 / (주)아트레온 주최 / 아트레온 문화예술부 기획 / 아트레온 갤러리 충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6월 29일 휴관 6월 29일(토)은 콘서트 관계로 관람이 불가합니다.

아트레온 갤러리 Artreon Gallery 서울 서대문구 신촌로 129(창천동 20-25번지) 아트레온 B1,2 갤러리 충 Tel. +82.(0)2.364.8900 www.artreon.co.kr

이번 전시는 김건일, 이만나, 이종민 세 작가의 '풍경 너머(Beyond the scenery)'입니다. 칸트는 현상계 너머의 영역을 '물자체(物自體)'라고 하였습니다.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물(物)은 감각과 인식으로 나타나는 현상(現象) 너머에 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눈에 비친 작가의 풍경, 그 시점 너머에서 우리는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반추하게 됩니다.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세 작가의 작품세계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 아트레온

김건일_Career of Emotion_캔버스에 유채_194×390cm_2015
김건일_Leaf and Bamboo_캔버스에 유채_61×73cm_2015
김건일_Only the mind that is shaking_캔버스에 유채_97×145.5cm_2015
김건일_Vague Forest_캔버스에 유채_90×145.5cm_2015
김건일_감사의 편지_캔버스에 유채_31×31cm_2018
김건일_유감스런 풍경_캔버스에 유채_65×91_2018

겉에서 관찰한 과거의 기억은 바깥에서 본 숲의 선명한 풍경처럼 우리가 구성한 내러티브의 형식을 갖춘 이야기로 인식된다. 이렇게 익숙한 방식으로 구성된 이야기는 대번에 알 수 있다. 그런데 기억의 속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기억은 일관된 방식으로 매끄럽게 짜인 게 아니다. 기억하고 싶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조각들은 누락되기도 한다. 잊고 싶지만 계속 떠오르는 기억들은 여전히 남아있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은 원형 그대로 남아있지 않고 조금씩 변질된다. 즉, 기억을 그럴듯한 이야기로 만든 것은 기억 그 자체에는 없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과거란 서로 다른 조각들이 꿰매져서 하나의 이불이 되는 '퀼트'처럼 조각나고 상이한 기억의 파편들이 인위적으로 누벼진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내 그림에서 숲과 기억은 이런 식의 상관관계를 통해 얽혀 있다. ● 나는 '자연적 매개물'을 통해 기억과 욕망의 세계를 표현하고 싶었다. 따라서 작품 소재로 등장하는 구체적인 자연물들은 궁극적인 재현 대상으로서의 지위를 갖지 않는다. 단지 내가 드러내려는 기억이나 욕망과 '유비적 관계'에 놓여 있을 뿐이다. 초록의 자연물들은 기억과 욕망 속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나에게 숲은 실존하지 않는 풍경이며 기억과 욕망을 한 번 더 반추하게 하려고 만든 '상상적'이거나 '몽환적' 풍경이다. ■ 김건일

이만나_눈 성_캔버스에 유채_162×393cm_2013
이만나_입체동_캔버스에 유채_97×130.3cm_2014
이만나_달밤 I_캔버스에 유채_97×130cm_2014
이만나_코트_캔버스에 유채_97×130.3cm_2017

나의 작업은 늘 예기치 않은 대상과의 '우연한 맞닥뜨림'으로부터 시작한다. 분명'이미 거기에 있어왔던' 지극히 평범한 대상들이지만, 나에게는 처음 보는듯한 생소함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마치 이 비일상의 공간이 일상 곳곳에 숨겨져서 나와의 대면을 기다리고 있는 듯, 우연히 불쑥 마주치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형언할 수 없는 울림 같은 무언가가 나에게로 전해지고, 나를 사로잡는다. 그 특별한 대면의 순간, 그 공간은 '더이상 거기에 없는' 곳이 되어버리고, 실재하는 장소의 맥락에서 벗어나버린다. 그 다음 과정은 집착의 연속이다. 사진에는 나와있지 않은, 그러나 분명 거기에 있었던 그것을 담아내려고 무던히 애쓴다. 결국 세계의 외피를 닮은 결과물에 과연 그것이 담겼을지 반신반의하며, 다른 이들에게도 그 너머의 무언가가 전해져 그들을 사로잡기를 고대한다. ■ 이만나

이만나_밤 창_종이에 아크릴채색, 수채_21×29.5cm_2005
이만나_그림자_종이에 아크릴채색_29.5×21cm_2006
이만나_모퉁이_종이에 아크릴채색, 수채_14×21cm_2009

포스트모던 예술의 다음을 위한 단초: 비가시성을 위한 융합적이고 치유적인 인지 ● 이만나의 회화가 그리는 것은 특별한 시·공간이 아니다.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 갈라진 벽이나 오래된 목재문짝, 별날 것 없는 가로수길, 볼품없는 정원수가 고작이다. 몽환의 비현실이나 탈현실과 무관하며, 상징이나 초월계와는 더욱 거리가 멀다. 오히려 과하다 할 만한 친숙함이 이 세계의 표지로 적합하다. 숲으로 둘러싸인 초지와 침엽수로 꾸며진 가로수 길 어디에 우리가 모르는 차원이 존재하는가. 경험의 범주를 벗어난 낯선 것들, 감시와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할 불안의 인자들은 취급되지 않는다. 이만나의 세계는 우리의 경계심을 완화하는, 느슨하고 소박한 것들의 곁에서 결코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 ● 중요한 것은 이만나의 관찰이 시각주의의 그것으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의 사실 재현은 전통적인 회화적 재현미학의 정의에 갇히지 않는다. 그의 관찰은 보이지 않는 차원을 배제하지 않는 관찰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의 재현은 탈재현이라는 오해에까지 기꺼이 다가서는 재현이다. 이러한 관찰과 재현은 전통적인 시각주의와 재현미학을 넘어서는 통합적인 인지, 즉 시각만으로는 배제될 수밖에 없는 비가시성의 차원을 시각적 차원 위에 혼융하는 융합적 인지의 결과인 것이다. ● 이 융합적 인지로 인해 이만나의 회화는 가시적 충실성과 재현의 엄밀성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비가시적 차원과 비재현적 대상을 자신의 회화 안으로 초대해 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일테면 '시선 너머에 있는' 것들을 시선의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어떤 장소에 있었던 정체모를 기운'을 포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영훈이 이만나의 회화를 '예기치 않은 무엇인가가 스며 나올 것 같은 화면' 이라 했던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었을 것이다. 이만나 자신의 표현에 의하면, 자신의 회화에 자리하는 또 하나의 차원은 대상과 마주하는 순간 전해오는 어떤 '형언할 수 없는 울림' 이다. ● 이만나의 융합적 인지, '이만나의 일상으로부터의 탈구'가 의미를 지니는 점은 일상은 최종적으로 부인되는 것이 아니라 긍정된다는 사실이다. 일상의 탈맥락화를 성찰하는 장소는 여전히 일상이어야 한다는 사유와 선언이 그 내부에 배어 있는 것이다. 지금 여기서 현실로부터의 탈주가 꿈꾸어지고, 구체화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은 허용됨으로써 오히려 현실을 보완하고 보강한다. 꿈꾸는 자는 지금 여기는 사는 사람이고, 지금 여기를 사는 사람만이 꿈꿀 수 있는 것이다. ● 이만나의 회화가 유난히 포용력과 따듯함의 진폭을 잃지 않고 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서는 아무 것도 삭감되거나 부정되지 않는다. 다만 더 해지고 긍정될 뿐이다. 이것은 버려지고 무너진 일상을 바라보고 품는 치유의 시각이며, 이만나 회화의 특성이자 고유성이다. (발췌) ■ 심상용

이종민_모퉁이-가재우물_석회에 채색_80.5×78cm_2017
이종민_모퉁이-고모네_석회에 채색_80.5×78cm_2017
이종민_모퉁이-이중섭가옥_석회에 채색_81×77cm_2017
이종민_모퉁이-전나무_석회에 채색_50×115cm_2017

1. 자작나무 화판위에 세모칼로 45도 각도의 빗살무늬로 줄지어 파내고 황토에 미디엄을 섞어서 흙손으로 올린 후에 그늘에서 건조시키면 항파단성에 의한 갈라짐이 형성된다. 그 위에 2회 정도 황토를 얇게 올리면 갈라짐이 미세한 화면이 만들어진다. 탈수 후에 갈라짐을 방지하기 위해 내화벽돌가루와 다양한 크기의 돌입자를 미디엄과 수년간 수간한 석회(灰)를 반죽하여 화면의 다양한 재질감을 살려가면서 표현한다. 전통건축에서 대나무로 엮은 구조위에 좌우로 맞벽을 쳐서 건조한 후 다시 2회 올려주면 서로 다른 crack층에 의해 지진과 같은 탈락을 방지하는 것을 응용한 건식프레스코(secco fresco)의 기법이다. 자연광에 탈수처리 된 다양한 흙벽의 crack은 하늘이 만들어낸 천일염같이 나와 하늘의 합작품인 것이다. 마치 진부령 황태덕장에서 한밤중에 명태 몸속에 있던 물이 영하10도 이하로 꽁꽁얼면 부피가 커지면서 명태살의 조직을 벌어지게 했다가 낮에는 다시 물로 변하면서 갈라진 조직사이로 물이 스며드는 과정이 4~5개월 반복되면서 명태살은 점점 잘게 쪼개지고 늘어나 포슬포슬해지는 것과 같은 까다로운 환경조건의 시간을 요한다. 황태 건조 시 바람이 너무 불면 "찐태", 너무 추우면 꽁꽁 얼어붙은 "백태", 너무 따뜻하면 검게 변한 "먹태"가 되어 버린다. 그야말로 천인합(天人合)인 것이다. 불변색을 위해 백토에 안료를 섞어서 건조한 후 초벌구이한 후 볼밀에 갈아서 만든 다양한 색의 안료를 수비한 분채를 여러 겹 쌓아서 바른다. 텁텁하고 거칠면서 포근한 흙과 무색·무광택의 석회를 다양한 칼날을 이용하여 깎고 얹고 갈아내고 파거나 긁어내고 덧대는 등 끊임없이 반복되는 과정을 통해서 있는 듯 없는 듯, 사라질 듯 보일 듯, 부서질 듯 존재할 듯, 극도의 감각이 파열하는 촉각적 공간이 자연스러운 시간의 주름과 풍부한 깊이를 표현한다. 채색의 선명한 발색과 토성안료의 희미한 발색이 서로 어우러져 다양한 계절의 폭넓은 표현을, 무광택의 깊은 맛을 내는 석회는 함박, 싸락, 진눈깨비 등 다양한 雪의 표현에 최적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이종민_봉천가는길(The tropping up the sky) 무악재-영덕_ 석회에 천연석채, 분채_57×41cm_2017
이종민_봉천가는길(The tropping up the sky) 무악재-홍천_ 석회에 천연석채, 분채_57×41cm_2017
이종민_울릉가는길(도동-여수, 사동-구례, 저동-밀양, 현포-당진)_ 석회에 천연석채, 분채_60×40cm×4_2018
이종민_독도_석회에 천연석채, 분채_160×130cm_2018

2. 간절기- 연조미와 서슬기 ● 시간은 공간의 다른 표현이다. 시간과 공간이 합쳐져서 시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은 공간의 휘어짐이고 공간은 시간의 주름이다. 시공간의 리듬이 곧 차서(次序)다. 우주의 모든 운행에는 차서가 있다. 매년 어김없이 이 차서를 밟는다. 하지만 동일한 반복은 돌아오되 늘 다르게 돌아온다. 차이속의 반복이~ ● 나의 작업에는 이런 계절이 다 포함되어 시간의 차서가 중첩되어. 즉 간절기(間切己)에 깃든 틈, 사이, 모퉁이를 통해 연관과 변화를 주고자 함이다. 해묵은 잎사귀가 포개져서 있는 상태로 켜켜이 겹쳐진 잎사귀 들이 벗겨지듯이 겨울의 묵은 산이면서 비워낸 이미지의 깊은 시간성의 중첩을 연조미(連條美)로 담아내고 서슬이 시퍼런 칼날의 입김을 불어넣어 소슬하고 청명하며 차디찬 겨울의 공기와 바람을 서슬기로 모든 만물의 감촉, 섬세한 주름까지도 잡아내어 형상화 한다. ■ 이종민

Vol.20190607c | 풍경 너머 Beyond the scenery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