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새로움 白

김문숙展 / KIMMOONSOOK / 金文淑 / painting   2019_0611 ▶︎ 2019_0616

김문숙_오래된 새로움 白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5×38cm_2019

초대일시 / 2019_0611_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화요일_04:00pm~07:00pm / 일요일_10:00am~04:00pm

봉산문화회관 BONGSAN CULTURAL CENTER 대구시 중구 봉산문화길 77 3전시실 Tel. +82.(0)53.661.3500 www.bongsanart.org

점진적인 백(白)색의 층간으로 원(圓)이 부유한다. 모두 견고한 원이다. 원이 유기적으로 나열된 화면에는 정제된 기운이 충만하다. 결연한 그 기운이 단단하면서도 자유롭다. 잔잔한 긴장감이 감도는 이 화면을 구축한 화가는 김문숙 작가이다. 2013년 6월 이후 6년 만이다. 긴 틈을 두고 풀어놓는 근작에는 여유와 숙성의 여정이 담보됐다.

김문숙_오래된 새로움 白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91cm_2019
김문숙_오래된 새로움 白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91cm_2019

김문숙의 회화는 비대상미술(非對象美術)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아득한 우주에 비견되는 불가시적(不可視的)인 아우라가 번져온다. 불가시의 세계는 질료(質料)와 공간, 운동감 등, 측정 가능한 세계를 초월한다. 화면 가까이 가서 보면 이지적(理知的)인 공간임을 알게 된다. 서양미술사에서 이지적인 공간은 차가운 추상으로 분류된다. 그렇다고 김문숙의 회화를 뜨거운 추상의 반대편에 배치하기에는 마뜩지 않은 감이 있다. 애초부터 특정한 사조나 양식에 편승하지 않았던 김문숙의 회화는 추상화나 단색화 등의 범주에 포함시키기보다 정신이 잉태한 회화로 봄이 옳다. 김문숙에게 그림은 마음의 귀의처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번잡한 사물(사건(事件)+물건(物件))을 정제시킨 듯한 김문숙의 회화는 수양(또는 수행)의 결정체라 할만하다. 간결한 색과 단순한 형태의 총합인 그것이 담백하다. (중략)

김문숙_오래된 새로움 白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0×40cm_2019
김문숙_오래된 새로움 白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5×38cm_2019

하라 켄야(はらけんや 原研哉)는 그의 저서 『白』에서 백(白)은 감수성이기에 하얗다고 느끼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또 "문화 속에 깃들어 있는 백은 때 묻기 쉬워서 깨끗한 상태를 지속하기 어렵고 그 순수함을 지키려는 애달픈 심정 때문에 더 강한 아름다움으로 인상에 남는다"고 하였다. 소설가 한강은 소설 『흰』에서 "강보, 배내옷, 소금, 눈, 얼음, 달, 쌀, 파도, 백목련, 흰 새, 하얗게 웃다, 백지, 흰 개, 백발, 수의"로 흰색과 관련된 목록들을 제시한바 있다. 뉴턴 이래로 미술에서의 색채는 과학에서의 색채와는 엄연하게 구분되어왔다. 이 점을 감안한다면 김문숙이 운용하는 백(白)색에 대한 이해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감각을 수치화할 수 없듯이 과학적인 논리로 감각을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문숙 작가에게 색의 축적 행위 또는 변화에 대한 시도는 감각이나 감정에 국한하지 않은 수양의 방편으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김문숙에게 백(白)색은 사고의 개입 이전이며 본성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근원적인 내밀함에 밀착되어 있는 백(白)색은 불완전함 속에서 완전함을 찾고, 하찮은 것 가운데 성스러움을 보게 하는 투시경 같은 속성이다. 수양으로 높은 영적 단계에 도달한 김문숙의 정신이 그 단초이다. (하락) (2019년 6월) ■ 서영옥

Vol.20190611a | 김문숙展 / KIMMOONSOOK / 金文淑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