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tal Recall

이화백展 / LEEHWABAEK / 李畵伯 / painting   2019_0615 ▶︎ 2019_0627

이화백_St James Gate_캔버스에 유채_80×160cm_2012_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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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9_0615_토요일_05:00pm

관람료 / 성인 2,000원 / 학생 1,000원 미취학 아동 및 65세 이상 무료관람

관람시간 / 10:00am~06:00pm

다도화랑 DADO ART GALLERY 서울 강남구 논현로159길 24 Tel. +82.(0)2.542.0755 www.dadoart.com

동시대 사회적 아이콘으로서의 인물화 ● 아마 이화백 만큼 변화무쌍한 화풍을 구사하는 작가도 드물 것이다. 하나의 스타일이 정해지면 거의 평생을 우려먹는 안 좋은 전통을 지닌 우리네 화단에서 전시회를 열 때 마다 화풍의 변화를 꾀하는 일이 쉽지 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어려운 일을 이화백은 용케 해낸다. 20여 년에 걸친 그의 작업 전체를 조망하면 완만한 변화를 추구하며 오늘에 이른 것 같으나 거기에는 주기적으로 변곡점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화백_St James Gate_캔버스에 유채_80×160cm_2012

밀레의 「만종」을 비롯하여 마티스의 「생의 기쁨」,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과 같은 서양의 고전 명화를 자신이 창안해 낸 현대 남녀의 인물화와 함께 하나의 화면에 집어넣은 작품들을 필두로 다양한 화풍의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동서양의 고전 명화를 자신의 화면 속에 집어넣는 이 인용(appropriation)의 전략은 특히 8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이 낳은 일종의 창작 방법론이다. 낭만주의 이래 고전적인 걸작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동시대의 문화적 분위기를 이러한 인용의 전략이 대변해 준다. 예컨대 현대의 화가들은 신고전주의 시기의 다비드나 앵그르처럼 거대한 화면에 장중한 분위기의 그림을 그릴 필요도 없을뿐더러, 또한 시대가 그러한 스타일의 그림을 요구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에는 사진과 영화가 더욱 박진감 있고 실감나게 기록화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화백_liberty_캔버스에 유채_60×120cm_2015

그 다음 이화백이 추구한 것은 팝적인 분위기의 화풍이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예컨대 앤디 워홀하면 마릴린 먼로가 연상될 만큼 시대의 대표적인 아이콘을 내세운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만나는 평범한 젊은 남녀를 화면에 등장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결혼식 후의 뒤풀이 장면을 그린 일련의 작품들을 비롯하여 카페에 앉아 있거나 벽에 기대서 있는 한 무리의 남녀들을 그린 그림들에서 등장인물의 시선들은 서로 어긋나 있다. 뭔가 공허하며 쓸쓸한 분위기가 한적해 보이는 카페 안에 감돌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광경이 촉발한 풍경을 가리켜 나는 이미 오래 전에 그의 개인전 서문에서 사회학자 데이빗 리스먼(David Riesman)의 잘 알려진 책의 제목인 『군중 속의 고독』을 빗대 평한 바 있다.

이화백_m-15_캔버스에 유채_40×80cm_2014

단순하면서도 뇌리에 쏙 박힐 듯한 팝적인 아이콘을 고안하는 대신, 이화백은 고집스럽게도 약간 단순화된 화려한 모습의 인물상들을 화면에 배치함으로써, 자신만의 고유한 팝의 화풍을 견지해 나간다. 이번 출품작들에서도 이런 기조는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전에 그린 일련의 인물화들과는 달리, 화려한 모습의 실내 풍경을 그린 작품이 이채를 띤다. 소파에 앉아있는 여성의 왼쪽에는 그녀의 컬렉션일 듯 싶은 다양한 모양의 종, 도자기, 향수병, 술병, 인형 등등이 진열장 속에 가득 차 있다. 이화벽이 구사하는 색채가 늘 그렇듯이 화려한 색채는 방안을 가득 채운 듯 싶은 진한 향수의 내음을 전달해 주는 것 같다.

이화백_bigger ringing_캔버스에 유채_80×160cm_2013

그러나 이화백 작품의 요체는 인물화에 있다. 그는 단순하지만 대상의 특징을 비범하게 잡아내는 작가이다. 따라서 이미 강남의 청춘남녀들을 그린 '팝'풍의 인물화에서 인물 묘사에 대한 그의 탁월한 기량을 살펴본 바 있듯이, 화가로서 이화백의 정체성은 인물화를 떠나서는 논할 수 없다. 왜냐하면 등장인물의 서로 비껴난 시선들이 상징하는 것처럼 그는 현대의 도시에 안개처럼 떠도는 비정하면서도 비인간적인 세태를 그러한 등장인물들을 통해 발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점이 바로 이화백의 작품이 단순화된 이콘을 통해 단순히 소비적인 사회를 풍자하는 여타의 팝 아트 작품들과 다른 점이다. 즉, 이화백은 사회학적인 차원의 분석의 메스를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이화백_artist_s studio_캔버스에 유채_100×100cm_1998

이번 전시에는 이화백이 러시아 유학시절에 그린 90년대 후반의 작품들이 출품된다. 실내풍경 속의 인물들을 설정한 점은 최근의 인물화들과 별반 차이가 없으나 색채는 무겁고 진지하다. 러시아인들로 짐작되는 등장인물들은 악기를 연주하거나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이지만 분위기는 가라앉아 보인다. 이처럼 묵시록적인 분위기는 주로 색채에서 비롯되는데 화실 풍경을 그린 작품 역시 정적인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다. 옛날에 그린 작품들과 근작을 섞어 보여주는 이번 전시는 이화백의 작품의 변천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 윤진섭

이화백_bar# 3_캔버스에 유채_100×110cm_1998

2 Decades of live Aggression / 10th Official Solo Shows / 150 Compositions / And This is THE END ■ LEEHWABAEK

Vol.20190615a | 이화백展 / LEEHWABAEK / 李畵伯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