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디에도 있으나, 사실은 어디에도 없다

유율금展 / YOOYOULGUHM / painting   2019_0619 ▶︎ 2019_0624

유율금_무제_캔버스에 유채_45.5×53cm_2017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기획 / 허유림

관람시간 / 10:30am~06:00pm

갤러리밈 GALLERY MEME 서울 종로구 인사동5길 3 Tel. +82.(0)2.733.8877 www.gallerymeme.com

나는 어디에도 있으나, 사실은 어디에도 없다: 한국 근-현대 문자추상 전개과정과 탈구조주의 사회 속 유율금 문자조형 - 예술가의 행위와 작업은 어떻게 작품성을 부여받는가. ● 작가는 많지만 미술(fine Art)은 보이지 않는다. 추상미술은 범람하지만 키치추상에 머문다. 이것이 한국미술 의 문제이다. 필자는 유율금 작가의 작업을 통해 이 문제의 원인을 살펴보고, 미술에서 추상성이 무엇인지 명확 하게 드러내보려고 한다. 추상화의 본질부터 밝힌 후, 과연 유작가의 미술행위가 미술이 될 수 있는 추상화인지, 만약 그렇다면 오늘날 미술(fine art)로 규정된 가치성을 확보하고 있는지, 그것이 어떻게 그림이 되고, 미술(fine art)이 되기 위한 추상화과정을 이루고 있는지, 감상적 시각이나 인상비평을 넘어 미술이론과 추상미술사로 추적해 보기로 한다. ● 추상화를 그리는 작가에게 무엇을 그렸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마음 이나 정서를 쉽게 읽어낼 수 있는 형상이 보이지 않아 보는 이를 당황하게 한다. 도대체 추상화란 무엇인가? 과연 누구나 가능한 자기 마음을 표현한 미술행위가 미술(fine art)이 되는 것인지? 일단 작가의 감정이나 정서를 배설 하거나 표현한 추상적 미술행위가 오직 그림이 될 수 있는 조건은 미적가치를 형성한 조형성(造形性 plasticity) 뿐이다. 즉 무언가 나름대로 아름다움이나 미적 질서나 조화성(調和性)이 드러나, 보는 이를 만족시킬 때 만 가 능하다. 그러나 이 때도 그 미술이 오늘날 의미인 미술(fine art)이 된다고 보장되는 것은 아니고 더욱 그것이 미술 작품(作品)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미술적 작업행위 결과가 작품이 되는 것은 조형성을 갖춘 후에도 여러 복잡한 과정과 절차를 거친다. 첫째, 변 화로 거듭된 미술사에 비추어 본 시대적 조형성이 요구된다. 둘째, 사회에서 평가하는 조형성이 요구된다. 셋째, 개인의 감성을 자극하여 공감과 감동을 주는 조형성 여부를 따진다. 이 밖에도 다른 작가의 작업과 상대적 비교 평가, 미술 이론, 기교와 방법 등 수많은 절차를 거쳐 작품성을 논의하고 평가한다. ● 적지 않은 작가들의 작업이 그림은 되나 작품이 되지 못하는 것은 가시적 결과에만 매달리기 때문이다. 시각만 만족시키는 아름다움이 오늘날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일상에서 아름다움이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요소가 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가에겐 더이상 단순한 조형적 아름다움을 기대할 필요가 없게 됐다. ● 조형적 아름다움에만 의존하는 것이 작품성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이유는 또 있다. 첫째, 가시적 아름다움은 항상 그 시대 다수의 미감을 중심으로 한 유행으로 나타난다. 둘째, 유행에 따라 주목을 받은 미술 작품은 한시적으 로만 인정받고, 시간이 지나면 그 가치를 상실한다. ● 이러한 현상은 작가가 고유의 미술 이론이나 미학적 논리를 전혀 갖추지 못했을 때 일어난다. 오늘날 단순한 시 각적 효과만을 극대화해 장식적 기능만을 갖고 있는 미술은 저속한 키치 추상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왜 어떤 작 가들은 여전히 조형성에만 의존하는 것일까? 이는 미술이 감정을 표현하고 배설하는 것이라는 작가의 생각과 이 에 동조한 대중들이 만들어낸 잘못된 인식에서 출발한다. ● 원시미술부터 출발한 시원적 미술도 감정과 정서를 배설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황과 처지를 바탕으로 한 인 식(깨달음)의 기록으로 시작되었다. 미술사에서 개인의 감정의 배설에 대한 가치가 높게 평가된 시기는 모더니 즘 전환기인 1848년을 전후로 싹이 트기 시작했다. 이때 억압된 개인의 자유와 감정이 소중하게 받아들이던 자 아에 대한 인식이 미술에 나타나고 한 세기 정도 지속되었을 뿐이다. 인류 수 만년 미술사에서 개인적 감정과 정 서를 배설하거나 표현했던 미술이 나타난 것은 오직 인상파 이후 모더니즘 전환기로 표현주의와 상징주의 시대 전후로 약 반세기란 짧은 기간이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 그 이후 감정의 배설이나 정서를 표현하는 미술은 예술가가 아닌 개인의 취미 활동이 됐다. 교육 기관에서 아동과 청소년, 성인들을 위한 정서 교육으로 미술을 활용하면서, 더 이상 현대미술은 작가의 감정의 배설, 예쁘고 조화롭게 표현하는 미술 행위를 용납하지 않는다. 원시 시대 개인적 삶이나 본능, 인식의 기록으로 시작한 미술 은 사회가 발전하고 종교가 시스템화 되면서 본질을 잃어버리고 도구적 목적성을 띄게 된다. ● 필자는 당연 유율금의 작업을 두고, 그것이 '감정의 배설이나 느낌을 조형화 한 이미지인가?'라는 질문을 가장 먼저 했다. 색을 절제한 단순한 평면은 촘촘하게 짜여진, 마치 밀집된 그물망 같은 형상이 엉켜 있다. 그 그물망 은 작가가 일상에서 발견한 자아와 사회의 충돌로 짐작된다. 크고 작은 만남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사색의 편린 이 군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 마치 촘촘하게 짜여진 섬유의 올처럼 표현된 미미한 나(自我)로 드러나는 조형 이미지는 그녀의 분신이다. 겨 우 알아볼 수 있는 유(兪)는 '나'는 어디에도 있으나 사실은 어디에도 없다는 무기력한 현대인의 표상을 보여주 고 있다. 항상 전체 혹은 다수, 집단사회의 전통과 규율 속에 갇혀 있어야하는 개인의 미미한 존재성을 역설적으로 고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이 같은 까닭이다. ● 문자로 대변된 유(兪)는 자아 뿐 만 아니라, 오늘날 무기력한 시대 군상의 이미지로 확장된다. 작가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내가 일하는 곳은 공장지대로 아주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하다 사고를 당한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입니다. 특 히 손이 잘린 노동자 손님들이 많았어요. 나나 그들이나 모두 선택에서 배제되어,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수동적 인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죠. 그들이 내 생활을 영위해주는 수입원이고 그들을 늘 보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슬프고 답답한 일이었죠. 그러나 결국은 그것이 내 삶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 유작가는 관념적 이미지를 조형화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업의 현장에서 느끼고 경험한 것을 그대로 진 술한다. 마치 검붉은 색으로 변한 죽은 피빛 같은 색에 다시 짙게 드리워진 검은 색조의 그림은 손이 잘린 노동자 의 삶을 조형화 한 작업이다. 이름없는 작은 삶을 살고 있는 수많은 장삼이사는 그림 속에 작은 원으로 표현되고 중앙에 검은 색으로 돌돌 말려 있는 기둥은 마치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블랙홀 같은 암담한 그들의 서 민들의 참담한 현실을 증언하는듯 보인다.(그림 3) 그러나 우측의 작업에선 견고하게 중앙에 버티고 있는 블랙홀 같은 것이 흐트러지고 퍼진 상태로 나타나고 있다.(그림 4) ● 작가의 암담한 절망과 좌절에 대한 조형이미지는 무의식적 사색의 과정으로 풀어헤쳐지고 인간 관계의 굳은 결속 매듭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림 5) 더욱 흥미로운 것은 단단하게 말려 있던 밀집된 원형이 흐트러져 있다는 사실이다.(그림 5, 부분) ● 결국 작가가 평생 생업을 유지했던 공간은 아픈 사람들만 찾아오는 작은 고통의 상자다. 부지불식 간에 이들 과 나누었던 것은 그 아픔들일 수밖에 없다. 고통과 무기력으로 맺어진 이 같은 관계의 경험은, 밀집되어 표현된 작은 유(兪)의 군집으로 나타난다. 차갑게 가라앉은 색을 선택한 것도 이 같은 현장을 진술하고 있는 듯 보인다. ● 그러나 그것들은 마치 인드라 망에 그득 찬 나와 타아를 비추이고 있는 그물코 같이 단단하게 엉켜 있다. 이렇게 유작가의 조형성은 단순한 감정이나 느낌에서 벗어나 나와 타인, 사회에 대한 관계인식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유율금_무제_캔버스에 유채_116.8×91cm_2017

모호하고 애매한 추상성이 구체적 개념을 드러내는 과정 ● 정해진 의미나 규칙이 없는 추상 미술은 논리나 이성을 거치지 않은 감정의 배설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게 되었 다. 세계 미술계에서 이러한 상황은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더욱 견고하게 굳어졌다. 작업이 나오기까지 어떤 과 정으로 진행됐고 그 의미는 무엇인지가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되었다.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해 '과정 미술'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한편 미니멀리즘은 기존 미술이 보여주려 했던 결과의 의미를 제거해버린다. 오히려 관객이 의미를 새롭게 형성하는 방향으로 전개됐다. 이처럼 기존의 의미나 개념에서 벗어난 작가의 작업은 시대적, 사 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반드시 드러내야만 한다. 작가는 미술 이론과 미학을 가져야만 작품성을 인정받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 현실의 오브제나 사물의 형상으로 구체화가 되지 않은 비정형적 미술에서 논리나 과정이 왜 중요한 것일까? 추 상적 미술 행위는 원초성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추상 미술은 모든 생명이 생존적 본능에서 하는, 누구나 자연 스럽게 할 수 있는 미술 행위이다. 모호하고 애매한 추상성이 구체적 개념을 드러내고 관객에게 호소력을 갖는 것은 항상 시대적 미의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 만약 누군가 잭슨 폴록처럼 뿌리는 미술 행위를 한다면, 아무리 조형성이 뛰어나도 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그 이유는 첫째 미술 행위는 시대적 규정에 의해 미술(fine art)로 전환될 수 있으며, 둘째 독자성, 창의성이 기본 으로 요구되기 때문이다. ● 이러한 추상적 미술행위의 원초성 때문에 추상화에는 가장 먼저 '무엇을 그렸는가'를 질문해야 한다. 마음이나 정서가 시대적 미술 논리나 미학을 고려한 이성적 판단을 거치지 않았다면 더 이상 추상미술로 인정받을 수 없다. 1910~30년대 영국에서도 바네사 벨(Vanessa Bell)이나 던컨 그랜트(Duncan Grant), 위니프레드 니콜슨(Wini- fred Nicholson) 등 많은 작가들이 모더니즘 추상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들 역시 논리의 빈약함으로 세계미술사 에서 전혀 인정받지 못했다. 그들이 그린 이미지가 나온 과정이 모호해 기존 추상의 모방이나 짜깁기, 감정의 배 설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 이들이 뛰어난 조형성을 갖추고 있음에도 세계 미술사에 편입되지 못한 데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10~20 년 뒤떨어진 조형감각, 둘째,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못한 작업, 셋째 미학과 미술 이론의 부재다. 유감스럽게도 김환기, 유영국 등에 의해 시작된 한국의 모더니즘 추상도 똑같은 문제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10년이 아니라 3~40년 뒤진 감각적 조형으로 유영국 작가는 거의 반세기 이상 동일한 타성적 작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문제 는 많은 중견작가들이 이들의 뒤를 쫓아 알맹이가 없는 추상조형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유율금_무제_캔버스에 유채_65.1×53cm_2017

추상적 작업일수록 작가의 뚜렷한 미적 논리가 따라야 하는 까닭 ● 미술의 가장 기본적은 의미는 시대마다 다르다. 또 그 언어를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달라지고 있 다. 추상화의 정체성과 개념이 많은 변화를 거듭한 것은 의심할 수 없다. 당연 시대적 개념이 없이 조형성만으로 아름다운 형상에 머물고 있는 추상적 그림이 미술(fine Art)로도 인정을 받지 못하는 시대가 됐다. 미술행위는 원 시시대부터 누구나 하는 본능적 행우라는 것을 깨달았고, 이것이 20세기 이후엔 교육으로 일반화되었기 때문이 기도 하다. ● 유율금 작가의 작업도 원론적 입장으로 접근해보자. 과연 단순한 미술행위를 넘어 미술(fine Art)이 되고 있는 가? 만약 감정의 배설이나 느낌의 남발이라면 100년 전엔 좋은 미술 작품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모더니즘 시대 는 물론 탈구조주의 시대에선 미술(fine Art)로도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유작가의 작업에서 탈구조주의 시대 추상화의 인식을 바탕으로 한 작업과정이 일단은 드러나 있다. ● 유율금작가 작업에서 발견되는 조형언어는 원초적 자의식의 기호다. 애매하고 모호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불 안과 모색으로 시작되는 듯 나타나고 있다. 반복된 이미지로 차용하고 있는 문자는 작가의 본성(本性)인 유(兪) 다.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인 집단의 의미인 가족을 상징하고 개개인이 나온 그 뿌리를 상징하는 성씨, 자신의 성씨를 기본적인 조형언어의 발현으로 시작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자아를 모색하며 출발하는 이 시대의 자연스런 미술행위다. ● 이처럼 단순한 형상으로 구성된 이미지들이 어떻게 난해한 탈구조주의 이미지가 될 수 있는 것인가? 답을 찾 기 위해 탈구조주의 추상성의 의미를 살펴봐야 한다. 단순히 그림만 되는 추상화와 오늘날 미술(fine Art)이 되는 추상화의 차이는 무엇인가. 탈구조주의시대인 오늘날 추상의 의미는 초기 추상이나 모더니즘 추상과 다르다. 또 포스트모던시대 추상과 모더니즘 추상의 차별점은 이 시대의 작가뿐 아니라 미술을 즐기는 일반인도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기본적 지식이다. ● 미술사의 변화에서 새롭게 대두된 탈구조주의 시대(1968년)이후 추상성은 어떻게 변모되었는가? 또 이러한 단 초를 유율금 작가 작업에서 엿볼 수 있는 근거는 과연 무엇인가? 이를 살펴보는 것은 작가 당사자뿐 아니라 한국 추상 미술사에도 의미가 있는 일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국내 미술계는 그동안 추상의 개념에 대한 시대적 인 식을 전혀 못했고 문제조차 제기하지 못한 채 포장에만 급급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평론글이 인상비평적 감상에 머무르는 수준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 국내 미술비평계의 현실이었다.

유율금_무제_캔버스에 유채_65.1×53cm_2017

그림이 되는 추상화와 미술이 되기 위한 추상화과정 ● 추상적 그림이 누구나 하는 미술행위를 넘어서 오늘날 미술(fine Art)로 규정되는 과정은 험난하다. 모든 생명 은 생존을 위해, 자신을 꾸며 주목받고 선택 받으려는 본능에 의해 미술행위를 한다. 이 행위들은 자신의 정체성 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대부분 애매모호하고 부분적으로는 강한 추상성을 갖는다. ● 인간의 미술행위는 동식물과 달리 자신의 몸에서 나온 조형의지를 외부의 사물에 표현하고 감상하는 능력을 갖 는다. 뿐만 아니라 타인의 예술행위나 자연물을 감상하는 정서적 행위를 한다. 또 생존적 도구성을 넘어서 아름 다움에 대한 각기 다른 취미와 기호를 갖고, 그 가치에 대한 이성적 비교 판단이 가능하다. ● 추상적 그림은 자연스런 본능적 미술행위로 유아기부터 시작된다. 아동이 그린 그림, 심지어는 돼지나 코끼리 가 그린 형태가 애매한 추상적 그림이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이런 그림들이 비싸게 팔린 사례를 간혹 매스미디 어에서 볼 수 있다. 이같이 누구나 하는, 혹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구체화되지 않은 추상적 미술행위가 미술이 되는 것은 간단하다. 그냥 시각적 만족을 주는 일정한 미적 질서와 조형성만 갖추고 있으면 된다. ● 그러나 단순한 미적조화나 시각적 만족 만을 주는 것을 오늘날은 미술(fine Art)로 규정하지 않는다. 문제는 개 념이 급속도로 해체된 탈구조주의 시대에서 미술의 본질을 논한다는 것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시대 적 규정이나 개념을 벗어난 작품들은 항상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았고 때로는 마르셀 뒤샹의 <샘>처럼 버려지고 파기되거나 묻혀졌다. 사실 추상성이란 애매모호한 개념을 명확하게 규정할 판단가치란 존재할 수 없다. ● 거액으로 팔리고 있는 유명작가 추상화 그림이 때로는 아이들 그림과 아마추어 작가의 추상적 그림과 외형상 으로 비슷해 겪는 판단가치 혼란은 누구나 한번쯤 경험하고, 사실상 대부분 일반인들은 평생동안 이 판단가치 혼 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나도 할 수 있는데' 혹은 '우리 아이도 그릴 수 있는 데' 왜 그렇게 비싸게 파느냐고 항 변한다. ● 돼지가 입으로 그린 그림이든, 유아가 장난스럽게, 혹은 코끼리가 코로 그린 그림이든 일단 조형성만 갖추면 그 림은 된다. 그러나 미술(Art)이란 개념은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 그림이 사회적으로 미술이 될 수 있느냐의 문제는 복잡한 화두다. 일반적 미술(Art)의 개념이 보편성을 갖게 되면서, 누구나 할수 있는 보편적 미술과 구분하기 위해 순수미술(fine Art)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이 용어는 위와 같은 혼란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 더욱 모더니즘에서 나타난 단순한 그림들은 외견상 비슷해도 가치는 각자 다르게 매겨진다,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이나 몬드리안의 단순한 도형과 선과 영국의 벤 니콜슨(Ben Nicholson), 데 스틸(De Stijl)의 그림의 가치 는 천차만별이다. 이러한 가치 판단의 문제는 일반인뿐 아니라 미술작가도 혼란을 겪는다. 왜 말레비치(Kazimir Malevich)의 단 하나뿐인 검은 사각형이 여러 사각형에 아름다운 선으로 장식된 몬드리안 그림보다 수 배 이상 이나 비싼가. 또 데스틸 작가나 영국작가의 조형성을 갖춘 사각형은 전자에 비해 몇 십 배 이하 혹은 단 1%의 가 치로만 평가되는가? 이는 단순한 조형성 만의 관점으로는 가늠할 수 없다. ● 조형적으로만 보고 판단한다면 말레비치 단색화, 이브 클라인 단색화, 미니멀리즘 등과 그 밖의 많은 세계 작 가들이 그린 단색화와 한국의 단색화가 어떻게 다른가? 모두 조형적 시각에선 같을 뿐인데, 이 다르다는 기준은 무엇인가? 이 모든 우문과 답들은 결국 추상화가 무엇인가? 미술사에서 드러난 본질적인 추구과정과 변화에서 만 그 답을 찾아 낼 수 있다. ● 한국 추상화의 문제는 더욱 혼란스럽다. 우선 한국 추상화의 도입과 전개과정이 명확하지 않다. 대부분의 추상 작가들이 서구에서 이미 100년 전에 보여준 추상성을 찾아가고 있음에도, 이론적 추구나 고민, 갈등이 전혀 보이 지 않는다. 오히려 단순한 형상만을 복사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작업이 시작되고 있다. ● 이러한 까닭에 대부분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개인적 경험과 일상을 바탕으로 형성된 마음의 그림이라고 한다. 평론가들은 이런 작가의 진술을 바탕으로 현대미학이론을 적당히 포장해 설명한다. 유율금 작가의 그림을 논하 면서 원론적 화두로 시작하는 것은 인상비평이나 감성적 논리에서 벗어나 한국 추상화의 시작과 함께 근본적 문 제로 대두된 추상화의 개념과 작품성에 대한 본질을 명징(明澄)하게 드러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 유율금 작가 작업에서 드러난 이미지는 어디서 가져온 것이고 그것이 어떤 추상적 성격을 드러내고 있는가? 또 그 조형성의 조합은 과연 미술작품으로써 의미를 갖는가? 이 같은 의문을 밝히는 글쓰기는 꼭 필요한 일이다. 추 상 미술의 본질을 드러낼 수 있으며, 100년 넘게 거듭되어 온 추상 이미지의 변화를 다시 확인해 볼 수 있다. 또 유율금 작가가 두 발을 딛고 있는 한국 추상미술의 전개 과정을 세계미술사에 대입 함으로서 한국추상미술사의 암담한 현실과 희망을 동시에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유율금_무제_캔버스에 유채_65.1×53cm_2019

미술이 된 추상화가 미술작품으로 전환되는 과정 ● 미술행위로 시작된 작가의 그림은 어떻게 미술(fine Art)이 되고, 사회적 규정에 의해 미술작품으로 전환되는 가? 대상이 명확한 조형 이미지를 갖고 있는 구상작품은 외형상 어렵지 않게 평가가 가능하고 객관적인 기준을 정할 수 있다. 그러나 추상미술은 작가의 미학과 시대성, 미술이론이 중심 기준이다. 이 같은 미학이론이나 시대 적 미술이론을 갖춘 작가의 미술행위가 일정한 격(格)과 작품성(作品性)을 갖게 된다. ● 그 기준은 첫째, 그 시대 미술(fine Art)의 개념, 둘째, 작가가 두 발을 딛고 있는 공동체, 사회적 예술평가로 볼 수 있다. 전자는 예를 들어 누군가 지금 칸딘스키나 몬드리안 보다 더 조형성을 갖춘 추상화를 그려도 온전한 평 가를 받을 수 없다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반드시 시대적 조형기준을 충족시켜야만 한다. 후자는 사회가 일정한 품 격(品格)을 부여한 후, 경제적 가치로 전환되어 현실적 거래가 되는 것을 말한다. 현실적 거래가 된다는 것은 예 술적 가치와 함께 보존할 만한 객관적 가치가 인정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 구상 미술과 달리 조형 이미지가 모호한 추상 회화는 다양한 의미로 전달된다. 따라서 작가의 미학, 시대적 예 술 이론, 추상 미술에 관한 시대적 개념에 그 기초를 둘 수 밖에 없다. 애매모호한 추상 이미지가 조형 언어로 환 기되는 것은 관객의 관념에 의존한다. 그러므로 추상미술이 단순한 조형적 아름다움을 추구하거나, 작가의 느낌 을 배설할 경우 미적 유희에 그칠 수밖에 없다. 즉 미술작품이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조형언어의 활성화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미니멀리즘의 시대적 조형언어는 미술의 의미가 작가가 제시하는 고정된 이미지나 관념이 아니라 관객에게서도 일어나는 쌍방향의 것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 미술행위가 아름다운 조형성을 갖추었다고 모두 미술(fine Art)이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19세기 이후 디자 인의 발달과 함께 미감(美感)은 순수미술을 넘어 일상생활에서도 보이는 감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까닭에 '추 상미술은 무엇인가'라는 화두는 현대미술사의 변화와 작가들이 고민하며 추구한 이론으로 시대마다 다르게 규정 되어 왔다. 더욱 19세기 이전까지 미술의 강한 특성이자 목적인 아름다움이라는 큰 키워드가 모든 영역, 일상의 전반에 생활도구로 확산되면서 미술(fine Art)은 깊은 의식과 또 다른 영역의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 ● 특히 추상미술은 명료한 대상을 배제하면서 인류의 내면 성장과 함께 많은 변화를 겪었다. 초기 칸딘스키의 추 상과 몬드리안, 데스틸의 추상이 다르고, 다시 이어 나타난 말레비치의 절대주의와 구축주의 추상이 또 다르게 나타난다. 이후 본격적인 모더니즘 시기에 나타난 세인트 아이브스 파와 앙포르멜, 추상표현주의는 물론 포스 트 모던시대의 미니멀리즘, 아르테 포베라, 모노하가 등장하면서 고유의 미술이론과 작가 미학에 의지할 수 밖 에 없게 된다. ● 초기 칸딘스키나 몬드리안도 추상으로 옮아 가기 위해 인상파부터 표현주의적 이미지로 수년마다 작업을 변화 시켰다. 이 과정에서 신지학, 심리학 발전과 함께 작가의 내면의식을 고찰하며 다른 이미지를 보여줬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근대 한국 작가들은 일본에 유입된 추상화를 모방한 후, 반세기 동안 별 차별화를 이루지 못했다. 이미지에 기교와 미감만을 더해 껍데기만 남은 빈약한 작업을 하는 작가가 대부분이었다. 50년대 이후 포스트모 던시대에 등장한 한국 추상작가들은 아무런 미학적 고민도 없이 프랑스의 앙포르멜 이름까지 차용하여 외형적 이미지만 그대로 모방하거나 짜깁기해 자기화 하는데 급급했다. ● 더욱 비극적인 것은 박서보 작가도 고백했듯이 미술수첩 등 잡지에 난 흑백사진을 변형 모방하는 작가들이 한 국의 대표적 추상화가로 미술계를 이끌어 왔다는 사실이다. 한국 모더니즘의 주류 미술계는 유럽의 미술을 카 피를 한 일본작가의 그림을 다시 모방하며 시작됐다. 이들이 한국현대미술사의 중심에 버티고 있다는 것은 정말 수치스러운 일이다. ● 조선시대 화가들이 개자원을 복사하듯 추상미술은 미술수첩을 배끼고, 구상미술은 90년대 미술까지도 인상파 아 류에 머물렀다. 게다가 빈약한 미술이론으로 마치 피난민 수용소 판자집처럼 얼기설기 조악스럽게 급조한 단색 회가 한국을 대표하는 추상화로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미술계의 참담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 그러나 한국 근현대사의 대표적 작가들, 잘못된 주류미술계의 이러한 조악하고 방만한 미술행위 속에서도 한국 추상미술사를 세계 미술사 속에 당당하게 편입시킬 수 있는 개성적 조형언어가 살아서 전개되고 있다. 인상파와 표현주의를 모방한 일본을 다시 들여와 100년이 넘게 모방한 구상미술계. 미술수첩과 앙포르멜, 미니멀리즘 등 50년 전 미술을 모방하다 대자본을 가진 상업화랑과 결탁해 키치추상으로 빠진 절망적인 한국 추상미술계에 희망을 던져주고 있는 독자인 작업이 반 세기이상 계승되어 왔다. 그것은 한국 고유의 전통 뿐 아니라 동양의 시원 문화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그것은 문자추상이다.

유율금_무제_캔버스에 유채_65.1×53cm_2019

한국 전통을 바탕으로 형성된 문자추상화의 전개과정과 유율금의 조형언어 ● 그림 속의 문자는 한문의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지만 전통 서화에선 그림의 한 부분이었고 때론 그림의 시작이 자 마무리를 하는 중요한 몫을 했다. 19세기 이전까진 미술이 전통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로 사용되었고 문자는 그것을 명료화하고 구체화시키는 중요한 기능을 했다. 그러나 미술이 도구성에서 벗어나면서 전통적 한 국화도 작가의 사인이나 낙관만으로 마감되고 중요한 몫을 하던 화제(畵題)나 그 밖에 제찬(題贊), 화찬(畵贊), 화시(畵詩), 제시(題詩), 화기(畵記), 제기(題記) 등 서체는 사라지는 듯했다. ● 그러나 반대로 서구에서 유입된 양화의 표현 속에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전환기에 문자는 추상적 이미지 로 이응로, 남관, 김영주 등 작가의 작업에 표현되며 중요한 한국적 추상의 새로운 길을 열어 주었다. 한국 모더 니즘과 포스트 모던 전환기에 나타난 문자 추상은 몇 가지 다소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 직 세계미술사에서 한국에서만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으로 독자성을 확보하고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 나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첫번째 문제는 미술작업에선 작가가 사용하는 화법이나 색, 선, 면 등을 이용해 조형언 어를 생산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그 복잡하고 난해한 과정을 생략하기 위한 문자의 차용이다. 즉 단순한 문자의 조형적 이미지만을 끌어와 화면구성이나 심미적 효과 장식성으로 사용한 것으로 남관, 김영주 등에 보이는 경향 이다. 서구미술계에서도 단순히 심미감을 증폭시키기 위한 의미없는 문자 추상의 차용은 사이 톰볼리 등 몇몇 작 가에게 시도된 일이 있다 ● 둘째는 조형적요소와 함께 문자의 의미를 차용해 단순한 심미감을 넘어 작가의 사유와 관조를 드러내는 작업경 향으로 이용되었다. 주로 이응로 작업에서 많이 드러나고 서세옥의 일부 작품에서도 드러난다. 그 외 서예작가나 전각작가들의 작업에서도 이 같은 경향이 보인다. 이러한 두 갈래의 문자추상이 한국현대미술의 강한 고유성을 확보하고 그 후 많은 작가들에게 여러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심지어는 키치추상으로 의심되지만 전광영 작업 에서도 단순한 디자인적 요소와 조형적 효과를 증폭시키기 위한 도구로 문자는 이용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작 가에게 문자가 조형적 도구로 사용되는 것은 한국의 역사적 전통 위에서 집단적 고유성과 함께 개인적 개성도 아 주 손쉽게 드러낼 수 있는 효과적 방법이기 때문이다. ● 그러나 포스트모던 시대를 넘고 탈구조주의시대도 이미 지나 또 다른 성격의 새로운 시대로 들어선 것으로 추 정되고 있는 이 시대에 과연 장식성과 문자의 파생적 의미를 차용하거나, 혹은 그것에 기대서 펼치는 작업이 아 직도 유효한지는 의문스럽다. 80년대 이후 네오 팝, 개념미술 작가에게 문자는 직설적 조형 이미지를 파생시키 는 도구로 사용됐다 이러한 경향은 바스키아의 그림이나 바바라 크루거의 작품에서 엿보인다. 이들은 문자를 조 형적 이미지를 증폭시키는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 한편 네오 팝 작가인 제니 홀저(Jenny Holzer)는 기존 조형적 이미지를 통하여 의미를 파생시키고 관객들에게 문자로 의미화되는 과정을 역으로 문자를 이용하여 다시 조형이미지를 관객에게 생성시키고 있다. 네오팝 작가 인 제니 홀저는 조형적 이미지가 관객의 머릿 속에서 문자로 의미화되는 과정을 거꾸로 이용한다. 즉 문자를 이 용해 관객이 조형 이미지를 상상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 ● 서구미술계의 다양한 시도와 달리 대부분 한국 현대 평면회화에서 보이는 문자는 조형공간에서 문자 자체가 지 닌 본래 의미를 제거하고, 이미지를 보조하거나 이미지를 위한 이미지화로 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유율금 작가의 지극히 단순한 조형미를 보이고 있는 문자사용은, 보이는 것과 달리 자아에 대한 무의식적인 확인으로 반 복되고 점검으로 재생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세상 혹은 사회, 작가가 처한 공간에 마치 스스로를 대변하는 통칭성인 성씨(姓氏)의 되새김, 마치 질기도록 씹고 있는 것 같은 반복된 그 연속은 삶의 궤적과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한 탐구와 추적의 과정처럼 보인다. ● 모든 작가에게 예술작품은 자신을 대변하는 또 하나의 복제된 세계일 수밖에 없다. 특히 평면은 세상에 드러난 작가의 세계를 대변한다. 그러나 한국 모더니즘 이후의 미술은 이 같은 과정이 아주 드물다. 대부분 작가들은 자아나 현실세계가 아닌 피안의 관념적 세계나 미술 속에서 미술을 찾으려고 하면서 시행착오를 겪는다. 미술수첩 을 모방한 미술작업, 앙뎅팡당이 무엇인지, 그 이론적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 이름만 차용한 후, 모방한 것은 아니라고 변명하는 미술작가들에게 자아와 연관된 작업은 물론 독자적 조형이미지조차 기대할 수 없는 것은 너무 나 당연하다. ● 앞에서 이미 거론한 것과 같이, 그 결과가 단순한 예술행위인 작(作)을 넘어서 일정한 요건을 충족시킨 후, 품( 品)을 얻고, 예술작품(作品)이 되는 것은 작가세계가 타인(관객, 그 시대 시각, 조형적 가치판단)의 관점에서 타 당했거나 최소한 감정적, 이성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했다는 의미다. 루시안 프로이드의 즉물적이고 고깃덩어리 같은 몸, 야요이 쿠사마의 무방비, 무절제로 나타난 성욕의 분출이 보여준 예술적 성과와 사회적 가치의 인정은 그동안 예술이 얼마나 비정직성, 관념적으로 흐르며 인간의 본질성을 외면했는가에 대한 이율배반적이고 직접 적인 의사의 반영이자 미술사적 모반이기도 하다. ● 유율금작가의 작업행위는 지극히 원론적인 탈구조주의 미술(fine Art) 모색과정 속에서 출발한다. 내가 누구인 지, 나로부터 시작하는 미술작업은 어떻게 드러나야 하는 것인지를 묻고 있다. 이는 한국적 상황을 그대로 노출 시키고 있다. 1950년대 말에 태어나 6,70년대 성장기를 거친 한국 기성세대 들이 어쩔 수 없이 갇힐 수밖에 없었 던 가족이란 울타리 그 속에서 찾아야만 했던 자아. 그러나 자신을 찾지 못한 채 가정을 꾸리며 강한 책임감으로 새로운 감옥을 만든 상황에서 나라는 본질은 없었다. 결국은 찾을 수 없는 나를 장삼이사 속에서 수많은 아주 흔 적만으로 겨우 엿본다. 이는 분열된 나, 알아볼 수 없는 '유'로 드러나고 있다. ● 이 같은 조형 이미지는 페르소나의 가면조차 쓸 수 없는 경직된 한국사회를 직간접으로 노출시킨다. 결국 유 작 가의 작업은 탈구조주의시대에서 한국적 상황에 갇힌 자아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낸다. 동시에 한국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고정된 여성성의 사회적 한계와 본질을 드러낸다. 유작가의 작업이 작의 품을 얻고 있는 것은 이같이 사회적, 시대적가치로 환기된 조형성에 기인한다. ● 그러나 마크 로스코의 두텁고 어두운 비정형적인 사각의 선들은 결국 작가 자신의 감옥이었다. 자아라는 감옥 에 갇힌 작가들에게, 자아는 작가 자신의 목을 맬 수도 있는 두텁고 견고한 기둥이 되었다는 비정한 사실을 환기 시키고 싶다. 자아를 인식하는 궁극적 목적은 자아를 타아와 끈을 맺은 후, 그 관계 속에서 새로운 자아를 모색하 는 것이다. 유율금 작가의 다음 작업에서 기대하는 것도 이것이다. ● 유작가는 모든 상처와 아픔을 1차적으로 치유하는 약들이 쌓여 있는 상자 같은 공간 속에서, 보고 경험한 무기 력한 오늘을 사는 소시민들을 조형언어로 증언하고 기록하고 있다. 유작가의 단순하고 절제된 작업 속에 엉켜 있는 군상의 이미지 속에 '나'는 어디에도 있으나 어디에도 없는 나는 결국 그들이다. 이것은 존재 속에 부재와 부 재 속의 존재로 나타나는 현대인의 모습이다. ● 2019년 이후의 작업에선 밀집된 조형언어는 편하고 풀어진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그림 10)에서 보이 는 것 같 이 말려 있던 군집성에서 벗어나 마치 정보사회의 매트릭스의 숫자가 풀어진 듯한 사선의 결집으로 표현되고 있 다. 작가의 내면의식의 중요한 변화이기도 하지만, 긍정적인 모색을 엿볼 수 있다. 예술 작업이란 결국 자기 자신 과의 싸움일 수밖에 없고, 그 내면의 싸움은 사회와 타인 과의 만남과 충돌로 야기된 정서작용일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이미지가 타인에 비추인 자아인식으로 끊임없이 반복되어 조형이미지로 나타나고 있다. ● 유작가의 소중한 확인과정이 이젠 밖으로 나가 세계와 직접 연결된 조형세계를 기대해 본다. 이 시대 개개인 의 몸이 중심인 이미지는 이렇게 드러난다. 첫째는 나에게 비추인 자아와 타아가 사회적 충돌 속에서 만난 현장 적 조형언어, 둘째는 그들(타인 혹은 집단사회) 속에 비추어진 나의 모습을 찾아가는 그 과정이 드러난 증언과 진술, 셋째는 탈구조주의 사회의 개인이 중심이 된 적극적 조형이미지다. 이것이 신자연주의 미학의 몸에서 나 온 미술이기도 하다. ■ 전하현

Vol.20190619b | 유율금展 / YOOYOULGUHM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