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균된 슬픔

장성훈展 / JANGSUNGHUN / 張星勳 / sculpture.installation   2019_0627 ▶︎ 2019_0703

장성훈_치킨의 죽음은 사소한 사건으로 물러난다_ 병아리 박제, 풍성끈, 레진에 우레탄페인트_100×25×25cm_2019_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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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9_0627_목요일_06:00pm

후원 / 광주광역시_광주문화재단

관람시간 / 10:00am~05:00pm

나인갤러리 NINE GALLERY 광주광역시 동구 예술로 20-6 Tel. +82.(0)62.232.2328 www.ninegallery.co.kr www.nineartmall.com

예술과 미의 관계에 관한 정석定石 논란은 참으로 해묵은 것이다. 미추美醜에 대한 관점 역시 다르지 않다. 이들의 도식을 정비례로 설정하는 것은 케케묵은 과거에 속한다. 부정不定을 산파로 둔 논쟁은 모더니즘을 통과하면서 "미는 더 이상 미이지 않고 추는 더 이상 추이지 않다"로 수렴되었다. 마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와 같은 선문답의 경지와 같았다. 바야흐로 포스트모던의 시대였다.

장성훈_치킨의 죽음은 사소한 사건으로 물러난다_ 병아리 박제, 풍성끈, 레진에 우레탄페인트_100×25×25cm_2019

사실 예술이 서훈처럼 간직해왔던 미의 전통성은 중요한 고비마다 등을 돌려 세웠다. 근세기 들어 가장 주목할 만한 배반은 앙드레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에서 이뤄졌다. 아름다움에 관한 오래된, 보편적 시각에 핵폭탄을 던진 초현실주의자들의 작품은 이른바 '절대적 권위'로부터의 '진정한 탈출'을 감행했다. 돌이켜 보면 그동안 완숙한 자연은 신의 작품이었고 예술은 그 범주 안에서 별들의 유영처럼 맴돌았다. 그러나 관습과 권위, 현존의 틀을 깨뜨리고 나온 20세기 브르통 이후 저항가들은 기꺼이 다른 차원의 우주로 서둘러 떠나갔다. 고정 관념은 산산히 부서졌고 예술가들은 절대적 자유를 찾아 기꺼이 방랑하는 삶을 택했다.

장성훈_날 것과 무식한 자비_흙, 인조잔디, 돼지털, 인조풀, 붓털, 인조안구, 레진에 유채_60×120×80cm_2016
장성훈_날 것과 무식한 자비_흙, 인조잔디, 돼지털, 인조풀, 붓털, 인조안구, 레진에 유채_60×120×80cm_2016_부분

장성훈이 건너 왔던 예술의 다리는 그 지점으로부터 이어져 있을까. 그는 여전히 강세이자 주류인 미의 세계를 떠나와 추의 이미지 속으로 성큼 걸어 들어갔다. 그의 발걸음은 에둘러 가지도 않고 비유의 무대 뒤로 살며시 숨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가 선택한 추의 이미지는 극사실적 표현에 의해 펄떡이듯이 살아 있다. 이른바 하이퍼리얼리즘과의 조우다. 로젠크란츠가 역설한 '추의 미학'이 생생하게 전달된다. 로젠크란츠에 따르면 예술의 표현에는 긍정과 부정이 동시에 담겨야 하는데, 특히 추의 결여가 없어야 한다고 했다.

장성훈_충혈 된 눈을 가지고 똬리를 틀고 있는 개_ 인조털, 인조안구, 레진에 유채_20×40×40cm_2015

장성훈이 선택한 소재는 인간과 동물이다. 그의 조각은 실재實在보다 더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언뜻 보면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보이는 섬뜩함이 있다. 장 보드리야르가 설파한 시뮬라시옹(Simulation) 이론을 수용한 느낌이다. 이미지의 범람에 의해 진짜와 가짜가 혼돈되는 현대 사회를 분석한 보드리야르의 지적은 전도된 현실에 관한 문제 제기다. 물론 사회학자의 시선에 의해 포착되었기 때문에 현실의 모습이 비현실적인 이미지로 바뀌지는 않는다. 그에 비해 조각가 장성훈의 이미지는 실제처럼 보이지만, 내재된 가짜와 왜곡을 들춰내듯 폐부를 찌르는 고발의식을 담아내고 있다. 그의 섬뜩함은 때문에 중의적이다.

장성훈_고기로 태어나서_붓털, 인모, 인조속눈썹, 레진에 유채_40×100×60cm_2015

그가 제작한 인체는 실제 형태를 가져와 재조립한 것이다. 머리 부분은 자신의 것에 바람을 주입해 풍선처럼 팽창시켰으며 몸통과 다리는 여러 사람으로부터 가져온 것이다. 피부에 자란 털은 인모 혹은 인조털이나 붓의 털을 사용하여 재현했다. 안구는 작가 자신이 직접 인조안구를 만들어 부착했으며 동물 형상은 죽은 동물을 박제해 조합한 것이다. 완벽한 사실적 이미지로의 재현이다. ● 그러나 실재의 이미지를 본떴음에도 그의 작품들을 뭔가 어색하고 부조화스럽다.

장성훈_닭의 목을 비트는 아티스트_붓털, 인모, 닭털, 인조안구, 인조속눈썹, 뉴발란스 운동화, 여성용 가터벨트, 레진에 유채_130×100×50cm_2015_부분
장성훈_닭의 목을 비트는 아티스트_붓털, 인모, 닭털, 인조안구, 인조속눈썹, 뉴발란스 운동화, 여성용 가터벨트, 레진에 유채_130×100×50cm_2015

장성훈은 작가노트에서 욕망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내면에 끊임없는 욕망을 품고 살아가는 '인간적' 비애 때문에 등장인물들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왜곡되고 비틀어졌다는 설명이다. ● 인간의 내면에는 선과 악이 동시에 존재한다. 인간은 또한 자유 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선악을 조종할 수 있는 힘이 있다, 혹은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때로는 자주, 나아가 매순간 의심스럽고 불안하다. 선택은 각자의 몫임에 분명하나 결과는 갈등하고 혼란스러워하며 고통스러워 한다. 철학하는 인간은 삶의 명제를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 두고 고뇌한다. 이들은 선과 악이 우리의 영혼 속에 존재한다 라고 믿으며,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선택의 여부는 각자의 권한에 떠맡긴다.

장성훈_자비를 베푸소서_인조털, 붓털, 인모, 인조안구, 인조속눈썹, 레진에 유채_150×100×100cm_2016

장성훈의 예술은 삶과 죽음, 선과 악의 이원론적 철학에 관한 직설이다. 그 방법론으로 그는 미학사의 뒤편에 비켜서 있는 아름다움에 관한 묵은 논쟁을 전면에 내세워 진실을 캐내고 있다. 그것은 죽음(추․악)에 저항하는 지독한 삶의 의지(미․선)를 말함이며, 따라서 자유의지를 가진 생명체의 치열한 투쟁에 관한 이야기다. 생명의 의지 내면에는 피할 수 없는 추악한 부패가 동반해 있는 법이다. 장성훈의 실험은 긴 노정에 들어있다. ■ 정금희

장성훈_DESIRE_운동화끈, 레진에 우레탄페인트_50×70×50cm×2_2019

나의 작품은 너무도 불편하여 오늘의 우리를 어제와 같은 존재로 남겨두지 않는다. ■ 장성훈

Vol.20190627a | 장성훈展 / JANGSUNGHUN / 張星勳 / sculpture.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