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seen Land

박형렬展 / BAKHYONGRYOL / 朴亨烈 / photography   2019_0703 ▶︎ 2019_0820 / 월,공휴일 휴관

박형렬_The stones of the 37°11'34.2"N 126°39'37.3"E_피그먼트 프린트_46×55cm_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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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렬 홈페이지_www.bakhr.com

초대일시 / 2019_0703_수요일_05:00pm

제10회 일우사진상 수상작가展

후원 / 한진그룹 일우재단

관람시간 화~금_10:00am~06:30pm / 토_01:00pm~06:30pm 일_01:30pm~06:30pm / 월,공휴일 휴관

일우 스페이스 ILWOO SPACE 서울 중구 서소문로 117 대한항공빌딩 1층 Tel. +82.(0)2.753.6502 www.ilwoo.org

땅과 사진 ● 1960~70년대 서구의 대지미술(land art)이 사진과 함께 미술관으로 진입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대지미술은 당시 미술관의 높은 벽을 스스로 허물며 밖으로 나간 수많은 시도들 중 단연 선두에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혁신적인 미술 경향이자 동시대미술의 주요 흐름으로 인정받으면서 다시 미술관 안으로 들어와야 했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사진이었다. 대지미술은 미국이라는 특수한 지리적 요건과 관련된 바가 크다. 그것은 전후 세계 미술 지형에서 패권을 쥐게 된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반발로 등장한 미술 경향 중 하나였고, 일군의 예술가들이 미술관 밖으로 나와 접한 것은 다름 아닌 거대한 미국의 '대자연'이었다. 그들은 대자연의 열린 공간으로 예술을 내보냈을 뿐 아니라 이전까지 일종의 경관으로만 묘사되어 온 자연을 자신들의 작품의 일부분으로 끌어들였다. 그러나 거대한 규모의 작업 전체를 일별하거나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감상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사진이나 영상과 같은 기록 매체를 통해 다시 전시장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이는 대지미술뿐 아니라 1960-70년대 새롭게 등장한 퍼포먼스나 개념미술과 같은 여타의 현대미술 역시 유사한 입장으로 일회적으로 끝나버리거나 현장에 참석한 소수로 관객이 한정된다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 사진 역시 이를 계기로 현대미술의 맥락으로 편입될 수 있었다. 이렇듯 대지미술은 미국의 자연 환경과 미술 지형에서 비롯된 고유한 장르로서 그 전개 과정에서 사진과 특수 관계를 갖고 있는 셈이다.

박형렬_Figure Project_Earth#75-1(From the Cracks of the stones of the 37°11'34.2"N 126°39'37.3"E)_피그먼트 프린트_180×144cm_2018

자연에서 형상을 연구하다 ● 박형렬은 대한민국이라는 특정한 지리적 요건 아래에서 '땅'과 '사진'으로 작업하는 시각예술가다. 정확히 말해, 그의 작업은 땅을 비롯한 자연에 개입하여 일시적으로 변형을 가하고 그것을 사진으로 촬영해 최종 결과물로 제시하는 방식을 취한다. 표면상 그것은 사진을 통해 제시되는 대지미술의 외양을 띠지만, 작가의 방점은 자연에 대한 개입이 아닌 일시적인 변형을 포착한 사진 이미지이며, 그가 다루는 자연은 결코 넓고 큰 대자연이 아닌 도시 풍경화 직전의 거칠고 척박한 크지 않은 땅이다. 작가는 충주의 남한강 일대에서 시작해 전국의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다 최근 서울과 멀지 않은 경기 서남부 지역에 위치한 개발 이전의 땅에 다다랐다. 예컨대 그 장소는 영종도, 대부도, 전곡항, 화성시 고포리 등 이미 예전에 간척되었으나 다시 다른 용도로 개발되기 전 방치된 퇴적층의 땅들이다. 작가는 이와 같이 개발 전과 후 '사이의 공간'에 들어가 크고 작은 개입과 변형을 가하고 그러한 행위가 남긴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다. 자연에 대한 예술적 개입의 측면에서뿐 아니라, 머지않은 미래에 다른 모습이 될 자연 상태의 측면에서도 임시적인 성격을 지니기에 사진이 관여할 당위성이 생기는 셈이다. 그러나 그의 사진은 결코 기록의 목적이 아니며, 오히려 원하는 사진의 이미지를 얻기 위해 일련의 행위이자 과정이 선행되는 편에 가깝다. ● 이러한 박형렬의 사진에서 색감과 질감의 세부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특히 2013년부터 지속하고 있는 「형상 연구(Figure Project)」 이 글에 기재된 작품의 한글 제목은 영문으로 된 원 제목을 기준으로 필자가 임의로 작성한 것이다. ● 연작은 화면에서 작가의 개입을 최소한으로 드러내고 땅의 표면이 지닌 조형성을 극대화하는 작업으로 그러한 특징이 잘 나타난다. 언뜻 색면화처럼 보이는 단색조의 사진은 가까이서 보면 한 화면 안에서도 전혀 다른 질감을 지닌 무수히 많은 시각적 세부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한 점에서 대형 카메라로 촬영한 큰 규모의 프린트를 플랙시글라스에 압착하는 방식은 세부를 최대한 살리기 위한 작가의 적절한 선택으로 보인다. 작가는 동일한 땅이 계절과 날씨에 따라 전혀 다른 색감과 질감을 지니게 되는 점에 주목하였고 그러한 특징을 카메라에 더욱 부각시켜 담아내었다. 수심 깊은 바다의 매서움이 느껴지는 겨울철 검푸른 땅은 여름이 오면 메말라 사방으로 쩍쩍 갈라져 벌집 모양이 되고, 비가 오면 금세 지면이 촉촉해져 물결에 따라 부드러운 곡선을 그려낸다. 그런 한편 같은 계절과 날씨에도 흙의 재질에 따라 땅 표면의 양태가 달라지는 것을 눈여겨본 작가는 자갈, 돌, 진흙, 모래 등 각기 다른 토양의 땅을 사진으로 담아내었다. 예를 들어 산업단지 인근에 위치한 땅에서 발견한 누적된 인공 먼지 층을 찍은 사진은 같은 여름철 갈라진 지면이라 하더라도 자연토양과 달리 폭신한 지층을 이루어 마치 높은 곳에서 숲의 임관(林冠)을 내려다 본 것과 같은 전혀 다른 이미지가 된다. 이렇듯 주어진 조건에서 작가는 땅의 상태에 따라 크고 작은 변형을 가한다. 「형상 연구」 중 다수는 기하학적 형태로 땅의 표면을 걷어내어 그 속살을 드러내는 방식을 취한다. 수직으로 하나의 선을 긋거나 선과 선이 만나 각을 이루기도 하고 매번 그 깊이나 높이를 달리 하여 땅의 표면을 파내거나 파낸 흙을 지면 위로 올리는 등 작가의 물리적 개입은 토양의 상태에 따른 질감의 차이와 맞물려, 화면에 드러나는 비교적 단순한 형상에도 불구하고 매 사진마다 전혀 다른 느낌을 불러온다.

박형렬_Figure Project_Earth#21_피그먼트 프린트_144×180cm_2013

인간에게 '붙들린' 자연 ● 화면의 단순함과 달리 작업의 공정은 지난하다.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 계절과 날씨에 따라 달라지는 토양의 상태를 살피고, 적절한 도구를 사용해 원하는 형태로 땅에 변형을 가한 뒤 의도하는 프레임 안에 그 모습이 들어오도록 배치하고 부감하여 촬영한다. 규모에 따라 때로는 20~30미터 높이의 고공 크레인 위에서 카메라 셔터를 눌러야 하고, 의도하는 화면을 완성하기까지 몇 번이고 시행착오를 겪기도 한다. 컴퓨터에서의 후보정이나 현상 및 인화의 단계를 제외하고라도 이처럼 지난한 과정 끝에 하나의 사진작품으로 완성되는 박형렬의 작업은 '행위의 흔적'이라는 현대사진의 주요 범주를 잘 보여준다. 작업 과정에서 특히 흥미로운 것은 변형이 가해진 자연을 촬영 후 손실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는 지점이다. 이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개입이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회복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지를 아는 작가의 신념에 따른 행위일 것이다. 작가는 거대한 중장비가 땅을 파헤치는 개발 장면에 착안해 땅의 표면을 일시적으로 변형시키고 그 모습을 조형미가 부각되도록 사진으로 담아내지만 그 역시 인간의 필요에 따른 자연에의 관여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렇듯 박형렬의 사진에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거듭된 질문이 존재한다. 과연 인간이 자연을 소유할 수 있을까. ● 자연에 개입하는 인간의 존재에 대한 의문이 보다 직접적으로 제시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특정한 형상을 만드는 데 있어 천이나 실을 이용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화면을 가로지르거나 실제 사람이 형상의 일부분으로 편입되는 사진들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진에서 역시 작가의 관심은 인간이 자연에 대적하거나 그것을 통제할 수 없는 미미한 존재임을 보여주는 데 있다. 촬영 후 바로 걷어낼 수 있는 천이나 실과 같은 인공물을 사용하고, 화면 안의 사람은 얼굴과 몸을 모두 가려 철저히 익명의 존재로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게다가 그러한 사진들에서 사람의 모습은 대체로 인공물의 일부분으로 가려져 있다가 의도치 않은 지점에서 노출되어 실소를 자아내는 식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전작인 「포획된 자연(Captured Nature)」(2010~2012) 연작에서부터 이어져왔다. 「포획된 자연」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사람을 포함해 인공적인 것들로 '포획된' 자연을 내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들은 커다란 바위를 투명 비닐로 여러 번 감싸거나 작은 눈덩이들을 하나하나 노끈으로 묶고, 대형 현수막 천으로 땅을 뒤덮는 것과 같이 불가능하고 무용한 일들이다.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산업재료를 사용하여 행하는 이러한 엉뚱하고 과장된 행위를 통해 작가는 인간에게 '붙들린' 자연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주변 환경에 대한 고려 없이 인간의 욕심으로 벌이는 과도한 개발에 대한 은유이자, 사진 역시 실제를 일정 정도 왜곡하여 '포착하는(capturing)' 인위적 매체임을 드러내는 중의적 표현인 것이다.

박형렬_Figure Project_Earth#76_ 피그먼트 프린트_180×144cm_2019

매체의 본성을 통한 미학적 유희 ● 일련의 과정으로 보건대 박형렬의 작업은 대지미술뿐 아니라 특정한 환경에서 벌이는 행위가 강조된 '퍼포먼스(performance)'나 자연과 인간의 조우를 탐구한 '모노하(もの派)'를 떠올리게 한다. 퍼포먼스는 앨런 카프로(Allan Kaprow)의 '해프닝'을 위시해 1950~60년대 회화와 미술관을 벗어나 예술가가 실행하는 행위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서구의 미술적 경향을 지칭하고, 모노하는 자연재료와 산업재료를 이용해 변형을 최소화하면서 '사물'이 주변 공간과 맺는 관계를 탐구하는 1960~70년대 일본에서 활동하던 일군의 예술가 집단의 움직임을 말한다. ● 또 많은 작업에서 구체적인 미술작품을 참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경우 대부분 미술사의 주요 작품들을 차용해 맥락을 바꾸는 방식을 취하고, 재료나 결과물의 조악함에 비해 지나치게 진지한 태도를 보이는 데서 오는 유머가 핵심이 된다. 예컨대 넓은 들판에 기둥들을 박아놓은 사진은 누가 봐도 월터 드 마리아(Walter de Maria)의 「번개 치는 들판(The Lightning Field)」(1971)을 떠올리게 하지만 그 재료는 아크릴 파이프로 원기둥의 지름 크기를 달리해 원근법을 교란시키는 것에 강조점이 있다거나, 언뜻 크리스토(Christo)와 잔 클로드(Jeanne-Claude)의 포장된 자연을 연상케 하는 사진은 자세히 보면 크지 않은 식물 주변으로 구멍을 뚫어 모양에 맞게 무늬를 인쇄한 천을 덮었다든지 하는 식이다. ● 이러한 사례들에서도 알 수 있듯, 원근법으로 인해 실제가 왜곡된다는 사실을 일깨우거나 동일한 규격의 이미지들 안에서 실제 대상의 규모를 달리해 일종의 유희를 꾀하는 것은 오직 사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카메라를 통해 바라 본 세계는 우리의 육안으로 보는 세계와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작가는 사진의 매체적 본성에 대한 오랜 숙고와 연구를 통해 카메라의 단안을 통한 원근법 구도나 대상과의 거리 및 화각의 조절로 인한 '규모의 미학'을 자유롭게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손과 눈을 거치면 불과 20~30cm 크기의 아크릴판에 유화물감으로 칠한 나선형 오브제가 지나간 자리는 어느새 로버트 스미스슨(Robert Smithson)의 「나선형 방파제(Spiral Jetty)」(1970)가 되고 경기도 인근의 흔한 간척지는 마크 로스코(Mark Rothko)나 바넷 뉴먼(Barnett Newman)의 색면 추상이 된다. ● 작가는 계속해서 별다를 것 없는 주변의 자연으로부터 지루하지 않은 미학적 변주를 해나가고 있다. 그 시도는 대체로 스트레이트 사진의 형식적 본성에 충실한 것들이지만, 사진이라는 매체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사진이 되기까지의 행위나 개입의 과정으로 영상을 제작하고 영상작품의 시각적 요소를 화면 너머 전시장 공간으로 확장하거나 사진작업에 사용된 오브제들을 전시장에 설치하는 등 관객에게 시각적 감상만이 아닌 몸을 동원한 경험을 유도하는 다양한 현대미술의 시도들을 병행하고 있다. 그 중 대부분이 단순히 여러 매체를 시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작업 세계를 보다 더 잘 드러내기 위한 선택의 당위를 지닌다. 예를 들어, 종이 한 장을 두 사람이 양쪽에서 힘껏 잡아당겨 매번 다른 형태로 찢어지도록 하는 행위를 반복하는 「종이 찢기」(2016)는 찢어진 종이의 모양대로 땅의 표면을 파내고 사진으로 찍은 「형상 연구_땅 58번_종이 찢기」(2016)의 선행 작업이자 독립된 비디오 작품이 된다. 최근작 「형상 연구_땅 75-2번_갈라진 돌」(2018) 작품의 전체 제목은 「형상 연구_땅 75-2번(북위 37°11'34.2, 동경 126°39'37.3의 갈라진 돌)」이고, 위도와 경도를 통해 작가가 돌을 발견해 사진을 찍은 위치는 화성의 전곡항 주변 간척지임을 알 수 있다. ● 역시 외견상 달라 보이는 두 작품이 선후 관계를 이루고 있다. 작가는 특정 지역의 땅에서 간척사업에 사용된 돌들이 중장비의 압력에 의해 각기 다른 형태로 갈라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각각의 돌을 마치 초상사진처럼 촬영하였고, 이 사진 이미지를 토대로 검은색과 흰색 옷을 입은 사람들(performers)에게 명암을 강조해 돌의 '틈(crack)' 형상을 재현하게 한 뒤 다시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로부터 우리는 작가의 일관된 관심이 여러 양상으로 발현되는 중에 자연스럽게 서로 간섭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박형렬_Figure Project_Earth#74_피그먼트 프린트_180×144cm_2017

진지하고 아름답게 ● 이렇듯 작가 박형렬은 현대미술의 보편적인 조형 언어와 문법을 따르면서도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며 오랜 시간 고민해 온 특수한 상황을 본인만의 고유한 미적 감각으로 재해석해 제시하고 있다. 부동산 및 개발의 논리에 따라 무작위로 파헤쳐지고 훼손되는 이 땅의 자연을 인간에게 '노획된' 것으로 바라보는 작가는 본인의 일시적인 개입을 통해 일부 변형하여 사진을 비롯한 기술매체로 남기고 다시 제자리로 되돌려놓음으로써 상징적으로나마 그러한 억압의 상태에서 벗어나게 한다. 이를 위해 그가 행하는 일련의 과정은 매우 진지하고 경건하다. 대지미술이 미국의 특수한 자연 환경과 미술 흐름으로부터 등장해 미술장 안으로 사진을 들이는데 기여했다면 박형렬의 작업은 좁은 땅에서 성찰 없이 자연을 점유하려는 우리의 상황을 이미 동시대 미술장 안에 자리 잡은 사진 매체를 통해 보다 세련된 방식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그렇게 그는 한국에서 땅과 사진으로 할 수 있는 독보적인 시각예술 영역을 넓혀나가는 중이다. ■ 신혜영

Vol.20190703b | 박형렬展 / BAKHYONGRYOL / 朴亨烈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