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향기

매향리 스튜디오 한국화 기획展 2019_0704 ▶︎ 2019_0818 / 월,화요일 휴관

바람의 향기展_매향리 스튜디오_2019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 김선두_유근택_이재훈_임태규

후원 / 경기도_화성시_경기문화재단경기만 에코뮤지엄_매향리 평화마을 추진위원회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화요일 휴관

매향리 스튜디오Maehyangri Studio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매향웃말길 15(매향리 315-4번지) 구 매향교회Tel. +82.(0)31.853.9322

전쟁이 남긴 상처를 보듬는 전시 ● 2005년 개봉한 『웰컴 투 동막골』이란 영화가 있다. 시대 배경은 한국전쟁이고 사건이 벌어진 무대는 강원도 첩첩 산중 작은 산골마을이다. 외부세계와 동떨어져 살던 동막골 사람들은 전쟁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미군 전투기와 조종사가 불시착하고, 이를 계기로 남북 군인들이 마을에 들이 닥치고서야 비로소 전쟁이 발발한 것을 알았다. 아무리 영화적 상상력에 의한 설정이지만, 그곳이 두메산골 외딴 오지 라는 점에서 현실성이 전혀 없는 얘기 만도 아니었다. 그런데 정작 서울 도심에서 1시간 반 거리, 광화문에서 겨우 75Km 밖에 떨어지지 않은 가까운 곳에 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상황이 벌어진 마을이 있다. 매향리가 그곳이다. 현실 속 매향리 사람들은 영화 속 동막골 사람들과는 정반대 세상을 살았다. 매향리 사람들은 오랫동안 전쟁이 끝난 줄 모르고 살았다. 그들은 휴전 이후에도 여전히 전쟁의 한복판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가 허풍처럼 들리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매향리 상공에선 1년 365일 가운데 250일, 하루 24시간 중 평균 11시간 동안 미군 폭격기가 날아 다녔다. 주한미군 공군만 아니라 오키나와와 멀리 필리핀, 괌 미군기지에서도 전투기가 날아와 폭격훈련을 하고 돌아갔다. 가까운 곳에 민가가 있어 실전 같은 훈련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란다. 상상해보라. 김포공항 소음보다도 더 큰 150 데시벨의 굉음을 내며 쏜살같이 비행하는 폭격기가 매일 마을 상공을 선회하며 15~30분 간격으로 600여 회의 사격 훈련을 하는 광경을. 개관적인 수치가 대변하는 이 비현실적 광경은 영화 속 장면이 아니었다. 1951년부터 시작된 농섬 폭격훈련장이 2005년 폐쇄될 때까지 무려 54년 동안 매향리 주민이 실제로 겪은 끔찍한 현실이었다. ● 한편, 지금 이 글을 쓸 때 즈음, 이 땅에서 전쟁이 완전히 끝나지 않았음을 새삼 상기시켜준 또 다른 역사적 사건을 목격했다. 전쟁과 분단의 당사자이자 피해자이기도 한 남북한 민초의 최고 지도자와 얄궃은 관계로 얽히고 설킨 제3국 노랑머리 대통령이 웃으며 손을 맞잡고 휴전선을 넘나드는 장면 말이다. 실로 비현실적인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새로운 세상이 곧 열릴 것만 같은 흥분된 징후!

바람의 향기展_매향리 스튜디오_2019
바람의 향기展_매향리 스튜디오_2019
바람의 향기展_매향리 스튜디오_2019

다시, 현실의 매향리와 농섬, 그리고 매향리 스튜디오로 돌아오자.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 매향리. 여느 서해안 해변 마을처럼 낙조가 아름다운 곳이다. 거짓말할 줄 모르는 밀 썰물이 하루도 어김없이 밀려가고 밀려오며 만들어 놓은 드넓은 갯벌이 펼쳐진 동네다. 한때는 정말 그 이름 마냥 은은한 '매화 향기'로 가득했을 게다. ● 농섬은 매향리가 품고 있는 작은 무인도다. 빼곡히 자란 나무가 우거져서 진한 숲을 이뤘다고 해서 '농섬'이라고 불렀다. 바닷물이 빠지면 걸어서 갈수도 있다. 매향리에서 1.5km 가량 떨어진 갯벌 위에 봉긋 솟은 세 개의 봉우리가 원래 농섬이었다. 그런데 지금 눈에 보이는 농섬은 두개 뿐. 가운데 있던 섬은 오랜 기간 집중적으로 폭격을 받아 파헤쳐지고 부서져서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이처럼 매향리와 농섬은 서정 시인이 읊는 싯구에나 어울릴 만큼 애잔하고 낭만적인 이름이지만, 실상은 그에 걸맞지 않는 아픈 과거와 상처를 지니고 있다.

바람의 향기展_매향리 스튜디오_2019
바람의 향기展_매향리 스튜디오_2019
바람의 향기展_매향리 스튜디오_2019

그리고 이번 전시 『바람의 향기』가 열리는 매향리스튜디오는 원래 교회였다. 미군과 주민이 함께 벽돌로 직접 지은 (구)매향교회 예배당을 2016년 복합문화공간으로 새로 만든 것이다. 입구 오른쪽 벽엔 '1968년 4월 18일'이라고 새겨진 머릿돌이 아직도 박혀있다. 이처럼 1968년 처음 생긴 매향교회는 1984년 새 예배당을 건립했고 원래 교회는 30년 넘게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왔다. 이 건물을 2016년 '경기만 에코뮤지엄 프로젝트' 일환으로 원형의 흔적을 살리면서 개조, 재생시켜 지금의 매향리스튜디오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이런 기적 같은 일을 가능하게 한 장본인이 바로 작가 이기일이다. 허물어질 듯 망가진 건물을 손수 고치고 수리한 이기일은 매향리스튜디오 개관을 기념해 직접 전시를 열기도 했다. 조각가이자 설치미술가인 이기일은 매향리와 농섬, 특히 (구 매향교회) 매향리스튜디오 공간에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다. 그는 전쟁에서 비롯된 우리 근 현대사의 아픈 역사와 매향리스튜디오라는 장소의 특수성을 한국화 작가의 감수성을 빌어 해석하고자 했다. 이런 취지에서 한국화가 네 명, 김선두 유근택 이재훈 임태규에게 전시를 제안했다. 그들은 직접 매향리 일대를 답사했고, 이를 바탕으로 신작을 선보이게 된 것이다.

바람의 향기展_매향리 스튜디오_2019
바람의 향기展_매향리 스튜디오_2019
바람의 향기展_매향리 스튜디오_2019

참여작가 가운데 가장 연장자인 김선두 작가는 익히 알려졌듯이 전라남도 장흥이 고향이다. 한반도 정남진(正南津) 장흥은 매향리처럼 바닷가 마을. 왕관 모양으로 뾰족하게 솟은 천관산을 마주하고 올록볼록 크고 작은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다도해 풍경은 김선두 그림의 원천이기도 하다. 더불어 장흥은 소설가 故이청준 선생을 비롯해 많은 예인을 배출한 대표적 예향이다. 이런 배경에서 김선두는 그동안 남도의 붉은 흙과 옥빛 바다를 주요 소재로 삼아왔고, 특유의 조형 어법을 확립함으로써 현대적 한국화의 전형을 제시해 왔다. 평화로운 고장 장흥 출신 김선두에게 매향리의 쓰라린 역사는 남다른 감흥을 가져다 주었을 것이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신작 「다시, 봄」은 따뜻한 어느 봄날 방문했던 매향리의 정경과 느낌을 형상화한 그림이다. 작가가 느꼈을 심란함과 복잡한 심정이 그림을 보는 이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해안가에 녹슨 채 뒤엉켜 방치된 가시철조망과 철책 울타리, 시커먼 포탄 덩어리는 작가 특유의 감각적인 선묘(線描)로 표현됐다. 평면 위에서 몸부림 치듯 뒤틀린 선들은 화면의 여백과 조응하며 시공간을 가로지르며 매향리의 아픈 기억을 환기시킨다. 특히 그 속에 살포시 핀 한줄기 매화는 작가의 마음을 대변한다. 김선두는 「다시 봄」이란 제목처럼 매서운 추위를 뚫고 봄을 알리는 춘신(春信), 매화를 그려 넣음으로써 매향리에 진정한 봄이 오길 기원한다.

바람의 향기展_매향리 스튜디오_2019
바람의 향기展_매향리 스튜디오_2019
바람의 향기展_매향리 스튜디오_2019

김선두 그림 오른쪽 옆, 세로로 길게 뚫린 창문을 사이에 두고 임태규의 「흐린 풍경」 연작이 결려 있다. 역시 세로로 긴 그림은 창문 밖으로 멀리 보이는 농섬과 바닷가 풍경과 겹쳐 보인다. 우리 전통 정원의 독특함과 뛰어남을 거론할 때 얘기되는 '차경(借景)'이 바로 이런 것 아닐까 싶다. 임태규가 그린 화면구성은 내륙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시선과 일치한다. 그림 아래쪽엔 매향리 마을 풍경과 갯벌 위에 떠있는 작은 배가 있고 화면 위쪽엔 농섬과 구름, 하늘이 그려져 있다. 그림 중간지점을 차지하는 수평선과 하늘의 경계는 불분명하다. 그래서인지 농섬이 마치 하늘에 붕 떠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위아래로 긴 화면에 여러 시점이 반영된 것은 과거와 현재의 기억이 공존하는 매향리의 오늘에 대한 반추인 듯하다. 임태규는 작가노트에서 이렇게 말한다. "어린 시절 추억이나 과거 일상을 회상하며 떠올리는 기억이 가물가물할 때, 우리는 흐릿하다고 말한다. 얼마 전에 책에서 읽었던 내용이 오락가락 할 때도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게 흐려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 땅에는 우리의 기억에서 흐려지지 말아야 할 우리 삶의 흔적도 있다. 매향리는 그런 우리의 역사 현장이다"라고. 이처럼 임태규의 그림 겉모습은 얼핏 보기엔 부드럽고 서정적인 '흐린 풍경'이지만, 그 속엔 강직하고 선명한 의식과 서사를 품고 있다.

유근택_매향리의 밀물_한지에 수묵채색_205×325cm_2019
이재훈_지워진 소리_벽화 기법(장지에 석회, 먹, 목탄, 아교, 수간채색)_200×280cm_2019

이어서 유근택의 대형 작품 「매향리의 밀물」은 매향리스튜디오 정 중앙, 그러니까 매향교회였을 당시 예배당의 제단 위치에 걸려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벽면에 걸려있는 게 아니라 허공에 매달려 있다. 그래서 아주 미세하게 흔들린다. 이 흔들림은 작지만 큰 울림으로 작동한다. 잠들어 있던 온 몸의 감각을 흔들어 깨운다. 바닷가에 서 있을 때, 온 몸의 피부로 받아들이는 바람의 결, 귓가를 스치는 아주 작은 소리까지 포착하게 하는 감각의 촉수를 자극한다. 매향리 앞바다에 황토색 밀물이 밀려오는 장면을 그린 이 그림의 첫 인상은 형언할 수 없는 장엄함과 숭고함이다. 마치 교회 바깥쪽 바닷가로부터 예배당 안쪽 제단으로까지 밀물이 밀려들어오는 듯하다. 그림 앞에 서서 움직이지 않고 한참을 들여다본다. 바람의 환영, 소리의 환청이 느껴진다. 그것은 자연의 것이 아니다. 전투기가 불러일으킨 미친 바람, 평온한 대기를 날카롭게 파열시키며 내뿜는 광기(狂氣)의 폭풍이다. 고막을 찢는 듯한 폭격기의 굉음, 무지막지하게 퍼붓듯 쏟아낸 포탄이 터지며 내는 절규의 소리다. 이 모든 것이 지금은 멈추었다. 하지만 매향리 주민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한지 위에 두텁고 거칠게 표현된 마티에르는 그동안 매향리가 겪은 고초와 질곡의 흔적, 생채기처럼 보인다. 유근택의 그림은 치유와 용서를 구하는 예술의 헌화(獻花)다.

임태규_흐린 풍경-1.5km_한지에 백토, 수묵 담채_160×80cm_2019
임태규_흐린 풍경-15,000cm_한지에 백토, 수묵 담채_160×80cm_2019
김선두_다시 봄_장지에 먹, 분채_215×152cm_2019

마지막으로 이재훈은 자신의 작품을 일컬어 '읽을 수 없는 편지'라고 말한다. 이재훈은 매향리역사기념관에 전시된 수많은 편지글을 봤고, 자신도 마을 주민에게 말로는 다 전할 수 없는 편지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한 글자 한 글자 편지를 쓰듯 줄 맞춰 그린 검은 형상은 컨테이너 박스에 뚫린 구멍 자국 모양이다. 이 컨테이너 박스는 실제 폭격의 표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지금도 매향리역사기념관 앞에 전시되고 있다. 이재훈이 옮겨 그린 이 총알 자국은 뜻을 알 수 없는 상형문자처럼 보인다. 다만 군데군데 해독 가능한 텍스트, 즉 숫자가 몇 개 적혀있다. 작가는 이 숫자를 통해 매향리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기록하고 기억하고자 했다. 예컨대 작품 왼쪽 위 제목처럼 크게 표기된 숫자 '1951 - 2005'는 농섬에 폭격 훈련이 시작된 해 1951년과 폭격장이 폐쇄된 해 2005를 가리킨다. 그리고 15는 중상 및 부상당한 주민 수, 54는 미군부대가 주둔한 기간, 713은 피해 가구 수, 12는 주민 사망자 수, 600은 1일 사격 횟수를 뜻한다. 이재훈이 이 작품의 제목을 「지워진 소리」라고 정한 이유는 현재 매향리는 과거의 소리만 유일하게 사라졌을 뿐 주민의 고통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았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매향리의 아픔은 현재진행형이다. 『바람의 향기』는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된 역사의 상처와 굴곡(屈曲)을 동시대 예술가의 시선과 실천 행위로 보듬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하게 하는 전시다. ■ 이준희

Vol.20190704d | 바람의 향기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