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김종언展 / KIMJONGEON / 金鐘彦 / painting   2019_0701 ▶︎ 2019_0831 / 일요일 휴관

김종언_밤새... 목포_캔버스에 유채_116.7×80.3cm_2018

초대일시 / 2019_0705_금요일_07: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수_02:00pm~07:00pm / 토_11:00am~06:0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더키움 Gallery The Keum 대구시 서구 서대구로 74 3층, 5층 Tel. +82.(0)53.561.7571 www.thekeums.com

눈 내리는 밤의 마법사 김종언 작가 초대전 ● 눈이 내리는 밤이면 나타나는 팅커벨을 보신 적이 있나요? 겨울 밤, 하얀 눈이 소복소복 내리는 밤이면 모두가 잠든 골목길 이 곳 저 곳을 날아다니며 손에 요술봉을 들고 마법의 주문으로 여기 저기 가로등을 켜는 마법의 팅커벨. ● 마치 팅커벨처럼 그는 화폭 곳곳에 등불을 켠다. 도시의 골목길. 언젠가는 거기도 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나무가 숲을 이루었던 곳이리라. 저녁이면 구름이 내려앉고, 아침이면 안개가 피어오르던 그 곳. 그 자리에 어느 날 하나 둘 작은 집이 생기고, 큰 길이 나고, 골목길이 생기고, 곧 마을을 이루었으렸다. ● 전원에서 태어나 자란 그가 풍경을 그리는 것은 퍽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기찻길을 따라 여행을 하며 역 주변에 남아 있는 풀숲 사이로 아스라히 피어오르는 안개와 바람을 담아 고풍스러운 풍경을 화폭에 담아냈다. 때로는 눈 내리는 풍경도 그렸다. 한 동안 그렇게 도인처럼 자연과 대화를 나누다가 도시로 변신한 자연을 생각하며 도시로 눈길을 돌렸다. 숲과 언덕은 이제 집과 골목으로 바뀌었지만 그곳에는 여전히 바람이 불고, 안개가 피어오르며 눈이 내렸다. 천지의 창조와 생명의 탄생에 대한 비밀을 바람으로 안겨주고 안개로 보여주던 자연의 이야기는 이제 그 언덕에 둥지를 튼 사람들의 이야기로 옮겨갔다. 분주한 일상을 보내고 달콤한 잠을 자며 맞이하는 평온한 밤이 되면 이 도시를 사는 우리의 진솔한 이야기가 들려올 터이다. ● 눈이 내리는 밤이 되면 김종언 작가는 길을 나선다. 큰길과 골목길, 지붕과 장독대, 그리고 나목의 가지와 빈 둥지에도 빠짐없이 하얗게 눈이 내리면, 가로등 불빛 아래로 불 켜진 창이 나타나고, 그 안에서 새어 나오는 너와 나의 이야기가 궁금해서다. 도란도란 속삭이는 그 숨결이 그리운 것이다. 그의 발걸음은 어느 새 화폭 안의 골목길에 들어서고, 그는 팅커벨이 되어 골목마다 마법의 등불을 켠다. ● 눈이 내리는 밤에 그가 이 골목 저 골목에 등불을 밝히면서 우리의 눈길을 이끌 때, 어느 새 우리도 작가를 따라 예의 그 창가에 귀를 기울이고, 이웃의 이야기, 우리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듣게 된다. 하늘에서는 소담스럽게 눈이 내리고, 우리의 이야기는 그렇게 계속되는 것이다. 밤새...... ■ 금주섭

김종언_밤새... 목포_캔버스에 유채_97×194cm_2018

자연의 생명감에 젖은, 격조 높은 화경(畫境) ● 필자는 일찍이 김종언 예술이 현대라는 시대상황에서의 특별함에 주목하여 학문적으로 접근, 연구 분석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이번 개인전을 통해 감히 그의 예술의 역사적 가치에 대해 가늠해보고자 한다. ● 중국 항주의 서호(西湖) 주변에는 고래(古來)로부터 수많은 문인묵객(文人墨客)들의 집거지로 이름 나 있다. 그곳 자연풍광에 취해 살아가는 한 시인이 어느 날 새벽, 촉촉이 젖은 밤안개에 홀로 시상(詩想)을 떠올리기도 하고, 낮은 소리로 읊조리면서 안개 머금은 그 밤공기에 감싸여 있다가 새벽녘에 이르러 그 밤안개가 걷히자, 그만 엉엉 대성통곡하고 있었다는 실화가 있다. 그가 바로 명대 오파(吳派) 문인화가의 수장 심주(沈周, 1427 ~ 1509)이다. 산골 봉화 출신의 자연화가 김종언을 생각하면 나는 항상 자연과 호흡하며 살아가는 중국의 그 격조 높은 시인이자 화가를 머리에 떠 올리곤 한다. ● 접해보는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듯이 화가 김종언의 심성은 마치 목화 솜털같이 보드랍고 희다. 그런 흰 바탕의 심성위에 이루어진 그의 예술 또한 자연의 체취를 진하게 녹여내는 고차원적 세계를 보여준다. 백색 심성에서만 얻을 수 있는 자연주의 예술의 극치이고, 논어에서 말하는 '회사후소(繪事後素)'의 극대화된 화경(畫境)이다.

김종언_밤새... 목포 청호로_캔버스에 유채_65.2×91cm_2019

김종언 예술의 격조 ● 화가 김종언이 일관되게 매몰되어 있는 소재는 일반의 자연물과는 격조가 다른, 고차원의 감성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자연에 접근하는 심도(深度)에서 일반의 자연주의 작가와는 차원이 다르다. 자연주의 화풍이라고 하면 흔히 밝은 태양광 아래 명암을 선명히 드리운 꽃, 나무, 산, 들녘과 같은 '자연물'의 화사한 얼굴을 그리는 경우가 일반적이지 않나. 그런데, 김종언 그림에는 일단 밝은 태양광도 없고, 화풍 또한 산뜻하지도 않다. 보편적인 자연미에는 아예 관심조차 없다. 그가 담고 있는 소재들은 하나같이 '자연물'이 아니라 고난도의 자연속의 '현상적인 것'이다. 그가 화업(畫業)에 들어선 이래 일관되게 다루어 온 주제들은 연기, 안개, 비, 눈 등 자연이 품어내는 현재 진행형의 유동체(流動體)뿐이다. 자연이 자아내는 그 '살아 움직이는 생명적 현상 자체'를 보여주는 화풍이다. 90년대에는 안개 낀 스산한 들판에 물이 껑껑 얼어붙은 밭고랑의 들녘, 종이에 잉크물이 번지듯 농촌 들판에 번져가는 굴뚝연기, 2000년대에 들어서는, 날씨 흐린 잔잔한 강물 위에 주룩주룩 떨어지고 있는 빗방울, 뿌연 날씨의 농촌 마을에 흩날리고 있는 눈발, 최근에는 희뿌옇게 가로등이 켜진 컴컴한 밤하늘이 몰래 마을을 덮고 있는 눈 손님, 이런 유동체의 움직임들. ● 화가 김종언이 빠져든 안개, 공기, 비, 눈, 이런 자연의 생동적 현상은, 동양에서는 살아 숨 쉬는 자연의 「숨결」로 보고 있다.(북송말 郭熙의 화론 『林泉高致』) 숲을 자연의 피부로, 흐르는 물을 혈맥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산수자연을 거대한 생명의 본원체로 보는 동양철학의 핵심적 사고이다. 모든 동양사상은 천인합일(天人合一) 지향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천(天)의 세계는 최고의 맑은 순정상태로서 모든 생명체를 탄생시키고 운동 변화시키는 생명의 본원체로 간주한다. 그 살아 생동하는 거대한 생명체의 심장에서 내품는 숨결이 바로 유동적인 안개, 공기, 하설(下雪)과 같은 현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산수그림에서는 그 생명적 숨결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김종언이야말로 그 숨결만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일반의 화가라면, 그런 표출은 감히 꿈꾸기도 어려운 고난도의 고차원적 경지에 속한다. 그것을 감지하여 예술화시키려면 남다른 조건이 구비되어야만 가능하다. ● 우선 그러한 자연의 숨결 속으로 깊이 빨려들어 갈 백색 심성의 소유자라야 가능하다. 눈의 맑음보다 마음의 맑음이 중요한 것이다. 그런 심성이라면 명나라 심주처럼 대개 온몸으로 젖어들어 갈 부드럽기 그지없는 시심(詩心)으로 채워져 있다. 그래서 김종언의 화풍은 어느 것이나 자연시(自然詩)이다. 자연의 체취에 녹아들어 그 오묘한 심리적 융합의 세계에 도달해야만 가능하다. 작가는 그런 감성의 소유자이자 심안(心眼)의 경지 속에 있다. ● 다음으로 묘사 기술적인 면에서 어떠한 표현도 가능한 특출한 표현력이 요구된다. 그림에다 바람이나, 안개, 설원과 같은 시정성(詩情性)을 담으려면 일단 고도의 묘사력의 소유자라야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런 자연의 숨결은 고정된 대상을 정확히 묘사할 수준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미세한 심리적 움직임도 포착, 형상화시킬 수 있는 발군의 사생력이 겸비되어야 한다. 김종언은 미술대학 재학시절부터 주변 학생들의 우상이었다. 우선 작화기법에서 범접하기 어려울 만큼 탁월했다. 그러한 자유자재의 표현력 구사의 주인공이 바로 김종언이다.

김종언_밤새... 홍제동_캔버스에 유채_65.2×50cm_2019

역사적 관점에서 김종언 예술을 바라보다 ● 그렇다면 김종언 예술이 이 시대에 남긴 가치가 무엇일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 그 하나는, 자연이라는 신체의 바깥이 아니라, 자연의 신체속 생명적 현상을 얻고 있다. ● 자연은 인간이 살아갈 영원한 모태(母胎)이자 미적인 발원처이기에, 고도의 현대문명 사회라 하지만 그 권태적인 삶에서 생기를 얻을 수 있는 길은 자연 속뿐이지 않은가. 그러므로 자연주의 예술이 인류와 함께 지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는 눈으로 자연의 피부를 보기보다는 가슴으로 그 생명력을 느끼려는 화가이다. 거기에는 그가 자연에 대한 근원적인 애정에서 비롯된다. 마치 어린아이가 눈이 아니라 피부로 엄마 심장의 고동을 느끼고 그 깊은 체취의 온기를 통해 모성애에 감싸여진 것과 비견된다. 자연의 저 깊은 심장의 고동과 체취를 온몸으로 느끼는 신묘한 경지, 그것을 담아낸 것이 바로 김종언 특유의 예술세계이다. 그 동적 생명감은 일종의 전율처럼 강렬하다. 곧 그의 예술은 화폭에다 자연의 체취를 품어놓은 것과 같다. 자연의 속살로 파고들어가 그 체취와의 융합에서 얻어진 진정한 의미의 자연합일 경지에 이르고 있다. ● 그 둘은, 인간의 신체 표면의 감각이 아니라, 몸속 영혼으로 느끼는 심성의 예술이다. ● 현대의 예술은 어느 것이나 눈이 시리도록 자극적인 현란으로 치달아가는 표피적인 감각 풍조에 들떠 있다. 그래서 정신의 빈곤이 현대회화의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하지만 인간 가치의 원점은 얄팍한 기술이 아니라 따뜻한 가슴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있지 않은가. 아무리 4차 산업시대의 기술적 범람 속에 살아간들 결국 따뜻한 심장의 영혼이 주인자리를 차지한다. 김종언 예술은 바로 그러한 표피적 감각에 매몰된 예술에 강한 경종을 울려준다. 자연의 저 깊은 체취를 우리들 영혼에 깊숙이 파고들게 하는 심도가 있다. 비록 서걱거리는 풀잎에다 칙칙한 회갈색조로 덥힌 화풍으로 일관되어 있지만 기이하게도 작품 하나하나가 따뜻한 온기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 이유가 바로 자연의 생명감을 가슴으로 어루만지고 있기 때문이다. 말이 쉽지 그런 격조의 예술이 우리주변에서 찾기 쉬운가. 김종언 예술의 진수는 바로 그 점에 비범함이 있다. 이상을 요약해보건대, 그의 예술은 「자연의 몸속 생명감 + 인간의 몸속 영혼」의 융합이라는 고차원적 경지의 화경(畫境)이다. 김종언 예술이 현란한 현대시대에서도 진가를 발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욱 크게 보면 서양 화풍에다 온통 동양적인 체질과 사고로 덮어씌우고 있다. 그래서 '심금을 울리는 농도 짙은 서정성의 현대판 시화일률(詩畫一律) 화풍'을 농밀하게 자아낸다. 필자는 여태껏 이렇게 인간적인, 농밀한 정감의 예술을 달리 본적이 없다. (2017. 11.) ■ 이중희

김종언_밤새... 홍제동_캔버스에 유채_65.2×91cm_2019
김종언_밤새... 상인동_캔버스에 유채_97×162cm_2017

눈 내리는 하얀 밤 얼기설기 얽힌 골목길 동 트기 전 신문을 배달하는 소년의 바쁜 걸음처럼 나는 정신없이 골목길 모퉁이를 돌고 돌아 발자국을 남긴다. 언제 그칠지 모를 눈과 이내 꺼져버릴 가로등 불빛이 아쉬워 쉴 새 없이 움직여 보지만 그 새벽은 짧기만 하다. 눈이 오는 밤은 춥지만 환하여서 좋고 그 추위는 따뜻함을 생각하게 하여서 좋다 이 곳 저 곳 구석구석을 기웃거리고 담을 타기도 지붕 위를 오르기도 한다. 몰래 옥상에 올라 발자국도 남기고 장독 뚜껑에 손도장도 찍어본다. 성에가 낀 창을 타고 흐르는 tv소리는 시린 몸을 녹여주기에 충분하고 뾰족한 유리 조각이 촘촘히 박힌 눈 덮인 담장에선 순박한 도둑이 연상될 정도의 친근감마저 느껴진다. 가끔 개짓는 소리에 놀라 급히 자리를 뜨기도 하고 인기척 소리에 카메라를 숨긴 채 선걸음으로 모퉁이를 돌아간다. 이상 한 듯 바라보는 시선이 불편하기도 하지만 긴 삶의 흔적들을 너무 쉽게 바라보고 포장 하려는 내 미안함에서 나오는 어색함이기도 하다. 가파른 골목길 중턱에서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하는 차를 쳐다보며 밤을 새기도, 주차된 차를 찾지 못하여 긴 시간을 헤매기도 하지만 많은 생각과 기억을 만들어주는 그러한 시간들이 참 좋다. 훗날 그곳의 눈처럼 나의 그림에도 많은 이야기가 쌓여지면 좋겠다...(2018 12 지난겨울) ■ 김종언

Vol.20190705j | 김종언展 / KIMJONGEON / 金鐘彦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