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창레지던시

2019년도 수창청춘맨숀 제1회 레지던시 프로그램   2019_0702 ▶︎ 2019_0929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김상우_박슬기_박정은 윤보경_정윤수_형세린

주최 / 대구현대미술가협회 주관 / 수창청춘맨숀 후원 / 대구광역시

수창청춘맨숀 대구 중구 달성로22길 27 Tel. +82.(0)53.252.2566~70

수창청춘맨숀에서 처음 선보이는 2019년도 '수창레지던시' 사업은 청년예술가들의 창작활동 의지 고취와 역량 강화를 위해 다채롭고 실속있는 프로그램들로 진행되었다. ● 수창레지던시의 청년작가 지원 프로그램은 '1:1 평론가 매칭 멘토링 프로그램', '교류네트워크 프로그램', '지역문화투어', '시민과 함께하는 프로그램', '오픈스튜디오' 등으로 청년작가들에게 인적 인프라 확대의 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창작활동 기반 조성을 위한 다채로운 형태의 지원체계를 갖추고 있다. ● 여섯 명의 2019년도 수창레지던시 제1기 입주작가들은 대구를 비롯하여 서울, 경기, 경상북도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청년작가들로 구성되었으며, 평면, 입체, 설치, 미디어, 사진, 디자인 등 시각예술의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청년예술가들이다. ● 이들은 이번 레지던시를 통해 '수창청춘맨숀'이라는 공간이 주는 영감을 바탕으로 장소가 지닌 특별함을 '색'으로 나타내거나 자신의 해석을 반영시킨 '풍경'으로 그려내기도 하였다. 더불어,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현상들을 자신들의 예술작품에 녹여내기도 하는 등 다양하고 실험적인 창작활동에 어느 때보다 진지한 태도로 임하였다. ● 주부라면 누구나 생각해봤을 노곤한 여성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퍼포먼스와 조형 작품으로 구현하는 박슬기 작가의 작품세계와 데이트 폭력을 경험한 여자들 혹은 여자를 상품으로 구매해 본 경험이 있는 남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하는 등,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를 수면으로 끌어올려 조형적으로 구현해내는 윤보경 작가의 작업, 그리고 버려진 장소를 찾아내 자신만의 공간으로 연출하는 김상우 작가의 사진 작품은 단순한 듯 묘한 연출을 통해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어떤 곳인지 묻게 하는데, 이들 세 작가는 예술가로서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 이어, 시각적으로 색채에 민감한 형세린 작가는 여행을 통해 특정 장소가 지닌 특별함을 색으로 나타내는데 자신의 해석이 반영된 새로운 풍경화로 묘사한다. 또 다른 풍경을 그리고 있는 정윤수 작가는 표현주의적이면서 후기 인상주의 화풍이 느껴진다. 대상은 주로 바다 풍경이지만 자연의 신비로움이 느껴지는 풍경으로 만들어내고자 열심히 그리는 작가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박정은 작가의 작품은 현대사회에서 미디어의 역할과 현상에 관한 이야기로, 작가의 진중함을 엿볼 수 있다. ● 지역에서 청년작가 발굴과 지원에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수창청춘맨숀'은 레지던시 사업을 통해 기존 창작스튜디오의 의미를 넘어서 다각적 공유 네트워크와 함께 프로모션까지 지원할 수 있는 레지던시 사업으로 나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 수창청춘맨숀

김상우_자갈마당_빔 프로젝터, 미러볼_가변설치_2019
김상우_자갈마당_빔 프로젝터, 미러볼_가변설치_2019

김상우 ● Nostalgia : 1. 타향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 2. 지나간 시대를 그리워하는 것 ● 사람이 현재에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과거의 특정 시기 또는 공간적으로 떨어진 장소를 상상하고 특정 시간과 공간을 대상으로 "그립다"라는 감정에 가치 짓는 것을 말한다. ● "어떤 공간이던 모두 사람들의 기억 속에 여러 형태의 향수가 남아있다."라는 생각에서 작업이 시작되었다. ● 이 작업은 비어있는 공간을 대상으로 한 작업이다. 비어있는 공간은 무언가로 사용되던 공간인데 기능을 상실하고 사용되지 않는 공간이면서, 향수를 가지고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 본인이 생각하는 공간의 향수는 그 공간의 가장 화려했던 기억이다. 가상의 공간을 설정하고, 비어있는 공간이 가진 향수와 본인의 판타지적 요소를 접목시켜 공간을 꾸며 나가고 있다. ■ 김상우

반짝이는 세상 ● 살아가면서 바람이 있다. 개인적으로 잘 먹고, 잘 사는 것 말고, 조금은 이상적으로 이랬으면 좋겠고, 이래야 좋은 세상이란 생각이 드는 사회 말이다. 이러한 형태의 세상을 우리는 흔히, 유토피아라고 한다. 그런데 요즈음 누구도 유토피아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건 세상이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으로 변하여 자신의 이익 혹은 국익만을 주장하기 때문인데,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일본의 무역 보복 등을 떠올릴 수 있겠다. 세상의 흐름은 지나치게 빠르게 돌아가고, 항상 자신이 우선하는 개인주의와 능력만 있으면 성공하는 자본주의는 타인은 고려하지 않고, 윤리의 의식은 배제된 채 부의 구조를 지나치게 양극화시켰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만약, 누군가가 이러한 시기에 유토피아를 이루자고 주장한다면 많은 이들이 비웃을 거다. 순진하거나 세상 물정 모른다고. 그런데 필자가 김상우의 작품을 마주했을 때, 그는 나름의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 있었다. 한때 추억이 담긴 소중한 장소였음을 상기시키는 듯 버려진 공간에 꿈을 불어넣고 있었다. 순간일 수밖에 없는 기록적 사진이지만 LED조명과 미러볼, 폭죽 등을 사용해 공간을 생기있게 꾸며보려고 한 젊은이의 소박한 꿈을 보았다. 야외공간에 자신의 물건을 채워 넣는다는 것이 자칫 덜 멋스러울 수 있는데, 버려진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고자 한 작가의 시도가 묘하게도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예술가는 신이 아니기에, 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소품을 이용해 공간을 변화시키는 것일지 모른다. 공간이란 본래 장소의 특징을 드러내며 추억의 배경이 되는데, 이미 폐허가 되어버린 장소는 추억하기에는 힘든 곳이 되어버렸다. 그래서일까! 작가는 그곳을 추억의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영매를 불러일으키듯, 영혼이 깃들 수 있게 하고픈 마음으로 연출한다. 이러한 그의 주술적 행위 다시 말해 공간연출은 귀엽고, 애틋하게 다가온다. ● 작가는 수창청춘맨숀에 입주하면서 철거되어가는 자갈마당을 사진으로 기록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이 사진들은 세월이 흐르면 이 시대의 한 부분이며, 아픈 역사의 잔상으로 남겨질 것이다. 김상우는 2017년부터 최근까지 버려진 장소, 잊혀진 장소를 찾아 그곳을 새롭게 연출해 카메라로 찍었다. 사진을 전공했지만, 기록적이지만은 않다. 대상이나 공간을 기록함에 자기 자신을 개입시키기 때문이다. 바로 심리적 요소의 반영이다. 자신이 직접 사진 속에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공간을 해석하고 자기식으로 변화시키고자 LED조명과 미러볼 등을 사용해 밝고, 화사하게 꾸민다. 이 외에도 자갈마당의 풍경이 담긴 사진 속에는 굴착기로 철거되는 과정이 펼쳐지고 뒤편으로 신축 완공되어 창에서 새어 나오는 빛으로 반짝이는 고층아파트, 산부인과 간판 그리고 교회의 붉은 십자가도 보인다. 산부인과와 교회는 계속 그 자리에 있게 될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자갈마당, 사진작가의 눈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자갈마당은 철거되고 있지만, 사진은 현재 자갈마당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 김상우의 작품 속에는 '메이킹 포토(Making Photo)' 기법이 보이는데, 작품 속 분위기나 표현 방법은 다르지만, 프랑스 사진작가 베르나르 포콩(Bernard Faucon)의 느낌이 있다. 장면을 연출해서 찍는 연출 사진으로서 유사하다고 하겠고, 장소를 매개로 추억하게끔 하는 점이 그렇다. 다만, 포콩은 마네킹을 이용해 자신의 옛 추억을 회상하거나 어떤 기억을 연상할 수 있는 사진이라면, 김상우의 사진은 수없이 많은 기억과 역사를 간직했던 버려진 공간에 자신을 개입시킨다는 점이 다르다. 이점은 예술가로서의 사회적 역할을 의미하고, 발언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김상우는 또한 청춘을 기록하는 사진작가 라이언 맥긴리(Ryan McGinley)를 좋아한다고 했다. 삶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 인간적 교감과 애정이 깃든 젊은이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다. 이는 작품의 주제적 측면보다는 맥긴리의 작품을 통해 표출되는 인간적 감성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짐작된다. ● 작가가 자갈마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촬영하게 된 것은 수창청춘맨숀에 입주하면서 자연스럽게 접하게 된 것이지만 2017년 이후의 작품들 속 폐교와 동네 인근에 버려진 집들은 사진작품의 주요 장소였다. 이러한 장소들은 그의 낭만주의적 감성으로 선택되었을 거다. 그리고 사진 속에 담긴 소품들의 반짝임은 그만의 열정으로 꾸며진 세상을 향한 바람이 담겨있다. 김상우는 가능성이 많은 젊은 작가다. 작가가 유토피아를 꿈꾸고, 그가 의도해서 사회적 발언을 한 것이든 아니든 간에, 그의 기본적인 마음은 순수하게 느껴진다. 다시 말해 아쉽게 버려진 곳을 가꾸고픈 마음이 전해지기에… 애틋하게 마음이 간다. 이렇듯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태도와 열정을 간직한 채 꾸준히 마음이 전해지는 작품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강효연

박슬기_바람난 사람_모뉴먼트_2000마리 종이학, 유리_35×30×30cm_2019
박슬기_바람난 사람_모뉴먼트_종이, 트래싱지_가변크기_2019_부분

박슬기 ● 1. 2019년 1월부터 오늘까지, 하루 평균 15개의 다양한 여성대상 범죄에 관한 기사들을 수집해서, 해체했다. 2. 온라인에서 익명의 불특정 다수들이 여성대상 범죄의 피해자에게 건네는 위로의 메시지들을 수집해서, 얇은 종이에 프린트했다. 3. 1과 2의 결과물을 겹쳐서 2천 마리의 학을 접었다.

지워지고 주어지는, 사라지고 살아진 너에게 ● 여성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나의 고군분투와 자존에 대해 말하고 싶다. 내 목소리는 너무 쉽게 지워지고, 이름은 내 허락도 없이 그저 주어진다. 나는 끊임없이 지워지고 주어지는 것들과 씨름하지만 끝끝내 좌절한다. 그럼에도, 내가(네가) 경험해 온 반복적인 실패들을 단지 비극으로 끝나게 하지 않기 위해 말하고 위무할 것이다. 소외된 목소리를, 사소하지 않은 언어를, 결코 평화로울 수 없는 일상을. ■ 박슬기

바람난 사람 ● 여성미술인 스스로가 여성의 문제를 드러내며 페미니스트란 이름으로 활동하기를 거북해하는 미술계에서 수창청춘맨숀 레지던시에서 박슬기 작가를 만났다. 박슬기는 당당히 여성 자신을 내세우며 최신의 페미니즘 담론을 다양한 매체실험으로 생성하는 젊은 여성작가이다. ● 그녀는 여성문제, 젠더이슈, 소수자 인권문제와 폭력 등을 주제로 페인팅. 퍼포먼스. 설치 등 다양한 매체실험을 해 왔다. 본인이 작가의 작품을 처음으로 본 매체는 유화(페인팅)이었는데 여성문제의 키워드가 되는 오브제들을 정물화로 그린 그림이었다. 세련된 색채와 전통 회화가 가지는 정물화의 구도를 차용한 작품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특히 작가 자신이 사회적으로 느끼는 사적경험을 작품의 소재로 쓰기도 했으며, 안산시 이주여성노동자들과의 인터뷰를 시각화하기도 하였다.(「나는(너는)언제나(한 번도)날 홀로(나인 적)남겨둔다(없었구나)」, 2018년), 그리고 청소년성매매의 온상인 랜덤채팅 어플을 체험하고 그 실태를 언어로 수집하여 작업(「러브레터」. 2019)으로 발표하기도 하였다. ● 박슬기 작가를 특히 주목하는 이유는 최근 여성문제, 소수자 문제 등의 폭력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사회현상에 리서치를 기반으로 적극 개입하며, 작업으로는 전복을 꾀하는 반어적 방법을 자유롭게 쓰기 때문이다. ● 이번 전시에서 발표되는 새 작업들의 주제는 '바 람 난 사 람'으로 대표된다. 여기에서 '바람'이라는 단어는 일탈을 의미하기도 하고 바램을 나타내기도 한다. 작품 「바 람 난 사 람_모뉴먼트」는 2000마리의 종이학이 유리병에 모아져 하나의 기념물이 되었다. 희망을 상징하는 종이학 안에는 작가가 올해부터 매일 수집한 수많은 여성문제 사건사고가 담겨 있다. 그 내용들은 여성문제 기사 헤드라인과 그와 관련한 위로의 댓글, 쪽지 등의 소통내용들이다. 작가는 "대항할 수 없는 폭력에 맞서기에는 연약할지라도, 의미 없어 보이는 익명의 소리들일지라도, 깨지기 쉬운 일시적인 응원과 연대일지라도 약자에 희한 기념비를 만들고 싶었다"고 하였다. ● 다음 작품 「러브레터」, 이 또한 예전 쉬폰 원단에 자수로 제작한 작업과 연결된다. 영상과 함께 남자의 유혹하는 말소리들이 흘러나온다. 말의 내용들은 작가 자신이 14-19세의 '소녀' 라는 이름으로 세 달간 랜텀채팅 어플에 접속하여 성 구매자들에게 받은 텍스트를 수집한 것들이다. 수집된 말들이 이전 작업에서는 성매매를 연상하거나 음란한 단어들을 하트라는 기호로 변환되어 자수로 만들어졌다면 이 영상작업에서는 '사랑' 이라는 달콤한 단어로 치환되어 남성의 목소리로 흘러나온다. 그리고 화면에서는 사랑의 기호를 상징하는 손동작에 반복적인 매듭이 씌워지고 있다. 마술을 부리듯 유혹하는 듯 손동작의 결과물은 하나의 작은 핑크색 덩어리로 남게 된다. 작가가 인지하는 현실은 사이버상의 상업적 성 착취 현장들이고 착취 대상이 되는 청소년들은 구조적 성폭력의 희생자들이다. 그러나 작가는 구조적으로 하위에 놓은 피해자들, 욕망의 대상이나 수단이 되는 약자의 잔인한 현실을 낭만적인 행위와 달콤한 단어로 꼬집고 있다. ● 이번 전시는 이전과는 변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는 우리 사회의 여성문제를 비롯한 여러 구조적인 폭력들, 그리고 작은 소리들의 촘촘한 연대, 약자들에 대한 위로의 바램들과 고발을 직설적 화법으로 이야기하기를 뒤로 하고 달콤한 유혹(작품)으로 사람들을 자극시키는 동시에 다시 어두운 현실사회를 직면하게 하여 놀라게 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바는 박슬기 작가가 새로운 전략에 대한 요구가 언급되는 페미니즘 미술계에서 주목할 만한 이유가 된다. ■ 박진희

박정은_Bedroom_6개의 매트리스, 비닐, 조명_가변설치_2019
박정은_Bedroom_video_단채널 영상, 검은색과 흰색_00:05:09_2019

박정은 ● 박정은의 작업은 주로 대상의 정보와 성질을 파악하고 분해하여 존재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에서 시작한다. 「BEDROOM」은 침실이라는 공간에 대한 장소성과 다중적인 사회의 소음을 말한다. 침실의 공간은 누구나 사용하는 휴식의 공간이지만 주변의 소음으로 인해 공간을 침해받기도 한다. 또한 침실의 장소를 띄는 곳 중 하나인 윤락가는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장소이자 누군가에게는 하나의 사회적 소음을 도래하는 공간이라 여겨진다. 윤락가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는 주변에서 없어졌으면 하는 불편한 장소의 소음이고 윤락가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장소가 사람들의 시선, 감시 등의 사회적인 소음이다. 하지만 장소에 대한 사회의 소음은 「BEDROOM」이 상징적으로 말하는 것 외에도 일반적이거나, 누군가에게는 다른 의미의 장소가 있다. 작업의 매체로 사용된 매트리스, 공사장 소음의 상징은 이러하다. 매트리스와 작가로 인해 만들어진 인위적인 매트리스 구성의 형태는 침실의 다중적 상징의 의미이고 공사장 소리는 장소의 건설, 철거 소음이자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형상을 의미한다. 박정은

공간의 폭력성에 대한 탐구 ● 70년대 지어져 폐허가 된 아파트 건물을 리모델링한 공간, 거기서 100여 미터 남짓 떨어진 곳에서 육중한 소음과 함께 철거되고 있는 사창가... 이러한 환경은 수창레지던시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성격과 연결됨은 물론, 때에 따라 그곳에서 창작 활동을 영위하는 젊은 작가들에게 예술적 영감의 원천을 제공할 수 있다. ● 작가 박정은은 수창레지던시 입주 기간 제작한 「BEDROOM」이라는 설치작품을 통해 지금까지 탐구해 왔던 '공공영역'과 '사적영역'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사창가는 존재하지 말아야 하는 장소의 존재이며, 사회 속에 감추어진 또 다른 사회이다. 이러한 현대 사회의 콤플렉스는 작가의 작품에서 공간-소음으로 해석되며, 이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물리적 소음과 병치 현상을 보인다. 공사 현장에서 밤낮으로 들려오는 중장비의 기계 소리는 작가에게 사창가라는 특정 장소에 대한 인식을 강요하는 폭력과 같다. 이는 작가의 복잡한 심리상태를 시각화하는 비디오 작품, 공사장의 혼란스러운 현장을 보여주는 여러 컷의 사진, 그리고 작가가 직접 폐허 속에서 수집한 비닐에 쌓인 침대 매트리스를 통해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먼저, 비디오 작품은 작가가 소음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상황을 흑백 싱크로나이징 기법을 통해 몽롱한 이미지를 연출한다. 그리고 마치 불면증과 함께 악몽을 꾸듯 심한 균열을 보이는 흉측한 콘크리트 바닥을 불안한 발걸음으로 이동한다. 투명 필름지에 인화된 사진 시리즈「Crushed load」는 비디오 속 작가가 걷고 있는 파괴된 바닥 이미지와 연결된다. 모노톤에 데칼코마니 형식을 차용한 여러 사진은 콘크리트 균열 이미지를 조형적 패턴으로 해석하여 위험하고 불안한 공사 현장을 각인시킨다. 만약, 작가에게 있어 공사 현장이 '공적장소'를 의미한다면, 침대 매트리스는 '사적영역'일 수 있다. 특히, 사창가에서 사용된 오브제를 과거 아파트 폐건물이었던 레지던시 공간으로 이동 시켜, 두 공간 사이의 혼란을 유도한다. 다시 말해 매트리스 설치를 통해 관람객은 과거 사창가/Room의 사적 공간으로 이동되는 다소 불쾌한 시공간적 착각을 경험하게 된다. ● 왜 작가는 공간에 대한 문제에 집착하는가? 아마도 그 단서는 2017년에 발표한 「Channel X」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총 3분 57초짜리 영상으로 구성된 이 작품에서 작가는 감시 카메라에 포착된 여러 사물을 픽셀 단위로 환원하고, 이를 비디오 영상이나 인쇄물로 재구성하여 패턴과 색채로 왜곡되는 현실 세계를 표현하였다. 이처럼 작가의 관심은 자신을 둘러싼 공간이 가지고 있는 불편하고 부적절한 경험이다.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불특정 다수를 촬영하는 감시 카메라 그리고 특정 공간의 소음을 통해 윤락가의 불편함을 피동적으로 수용해야만 하는 상황은 모두, 작가가 존재하는 '공간'이라는 물리적 특성을 통해 발생한다. 결국, 작가에게 있어 공간이라는 주제는 자신의 존재와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작품 감상자는 작품을 통해 작가가 현대사회에서 느끼는 불쾌함, 불안함, 부적절함에 대한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 따라서 공간은 작가에게 있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인 동시에 관람객을 자신의 경험으로 끌어들이는 통로가 될 수 있다. ■ 연규석

윤보경_그 곳_비계파이프, 현수막, 빔프로젝터_가변설치_2019
윤보경_그 곳_비계파이프, 현수막, 빔프로젝터_가변설치_2019

윤보경 ● 자갈마당 철거 후 그곳엔 버려진 잔해들만이 남겨져 있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세상에 숨겨도 드러나는 것은 마치 불편한 진실에 마주하는 내 표정처럼 감추려 해도 세상의 진실 대부분은 속살을 드러낸다. 수창청춘맨숀은 대구에서 손꼽히는 성매매업소 중 하나인 자갈마당 인근에 위치해 있다. 자갈마당이라는 장소에는 성의 폭력성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성을 돈으로 사고 파는, 알고는 있지만 회피하고 싶어 하는 이 불편한 이야기를 수창청춘맨숀에서 하고 싶었다. 이제는 숨길 수 없이 벗겨진 자갈마당에서 남겨진 고철과 TV는 마치 그곳에서 일어난 인간성의 상실에 대한 실체를 낱낱이 보여주는 듯하다. ■ 윤보경

몸, 부재(不在)의 환영 ● 수창청춘맨숀은 '자갈마당'과 함께 해온 대구의 오랜 역사를 수면 밖으로 드러내는 기념비적 건물이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묻어버리지 않고 역사적 기록물로 기념하는 수창청춘맨숀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상처를 치유하는 공적 활동의 문화플랫폼이라 할 수 있다. ● 이러한 장소적 특성을 토대로 작업하는 윤보경은 생물학적으로나 사회•문화적으로 남성과 근본적으로 다른 여성의 몸을 수창청춘맨숀 스튜디오로 소환한다. 이는 분명 몸을 통해 여성을, 아니 인간 존재를 이해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나아가 이성적 인식과 결별하는 몸이 아니라 몸이 인식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감각 작용의 원천임을 공언하는 행위이다. 그동안 작가는 대상화되고 규격화된 타자로서의 여성의 몸을 영상, 설치, 사진 작업 등을 통해 폭로하면서 여성에게 요구하는 그릇된 사회적 규범과 통념을 고발해왔다. 특히 이전 작업에서 자주 나타나는 여성의 몸을 둘러싼 꽃들은 여성에게 허위적 주체성을 조장하는 사회・문화적 기호를 들춰내는 조형언어로, 껍데기와 겉치레, 허영, 위선, 거짓이 팽배한 오늘날 사회의 단면을 꼬집었다. 작가는 도대체 몸을 둘러싼 껍데기의 빛깔은 왜 이렇게 화려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 떼어내려야 뗄 수 없는 껍데기의 속성은 왜 점점 견고하고 고착화되어가는 것인지 반문한다. ● 이번 전시에서 윤보경은 이전 작업과 달리 여성의 몸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아니 여성의 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지금 여기에 시각적으로 엄연히 부재한다. TV 브라운관의 영상 화면에서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즉 여성의 몸을 연상할만한 그 어떤 직접적인 매개도 존재하지 않는다. 보이는 것은 산적한 침대 매트들과 와해된 시멘트 조각들, 그리고 찌그러진 철판들을 촬영한 사진과 영상 이미지들이다. 유일하게 실재하는 것은 복주머니가 그려진 "어서오십시오 51"이라는 간판뿐이다. 그러니까 지금은 허물어진 '자갈마당' 폐업소 건축물의 잔재들만 보인다. . .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들이 창문을 가린 붉은 천과 비계(지지대), 그리고 '노이즈' 영상과 시각적으로 겹쳐지는 순간 스튜디오에 부재하는, 역사 속에 사라진 자갈마당의 '그녀들의' 몸이 더욱 강렬하게 부상한다. 침대 매트의 퇴적층 사이로. 건축폐기물 더미 속에, 형상이 없는 노이즈 영상 속에, 물화된 '그녀들의' 고된 현실과 아픔이 부재의 환영으로 살아나 숨 쉬고 있는 것이다. ● 그렇다. 작가가 주목한 것은 '그녀들의' 몸이 아니라 몸을 둘러싼 사회정치문화적 환경이며, 나아가 현존하지 않는다고 해서 부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는 힘. 부재를 현존하게 하는 힘. 그것은 폐업한 '자갈마당' 업소를 수차례 방문해 간판과 TV 브라운관 등 잔존물을 직접 주어오고 건물의 와해과정을 촬영하여 프린팅한 현수막을 비계로 고정시켜 전시하는 작가의 태도와 열정으로부터 생성된다. 이것이 유일무이한 자갈마당의 '장소적 특성'을 작품에 부여하고,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역사 속에 사라진 자갈마당의 흔적을, 더욱 생생하게 우리 앞에 현존하게 한다. 부재의 환영을 통해 사라진 역사를 소환해내고, 지금도 여전히 더 많은 '그녀들이' 정치적 이념에 의해, 권력 관계에 의해, 사회적 조건에 의해, 문화적 관습에 의해 길들여지고 물화되고 대상화되고 있지 않은지 사라진 과거의 환영이 오늘의 삶에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 허정선

정윤수_푸른 숲 하얀 파도_캔버스에 아크릴 과슈_20×40cm_2019 정윤수_푸른 숲 하얀 사슴_캔버스에 아크릴 과슈_20×40cm_2019 정윤수_Life of Pi_캔버스에 아크릴 과슈_72.2×60.6cm_2019 정윤수_struggle_캔버스에 아크릴 과슈_90.9×60.6cm_2019 정윤수_푸른 숲 붉은 사슴_캔버스에 아크릴 과슈_72.7×60.6cm_2019 정윤수_Mer forte_장지에 연필_97×162cm_2019 정윤수_Mer nocturne_장지에 혼합재료_97×162cm_2019 정윤수_gravity_장지에 혼합재료_90.9×60.6cm_2019 정윤수_island universe_장지에 혼합재료_90.9×60.6cm_2019 정윤수_blue flower 6_장지에 혼합재료_100×100cm_2019
정윤수_2019

정윤수 ● 수창청춘맨숀에서 작업을 하게 되었을 때, 어린 시절 갔었던 달성공원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와 달성공원에 갔었다고 어머니께서 말씀해주셨다. 안개가 자욱한 영상처럼 어슴푸레한 기억이지만, 신나게 달리기를 했고, 풍선을 샀고, 동물 구경도 실컷 했고 아주 행복했던 기분이 기억이 난다. 그곳에서 동물들을 보고 있으니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따뜻해지고, 행복해지고 우울했던 마음은 어느새 사라진 채 어린 시절처럼 들뜨고 즐거워졌다. 모처럼만에 느낀 평온함이라 나는 그곳이 참 좋아졌다. ● 나는 내 마음 속의 우울과 소용돌이치는 격한 감정들을 표현한 파도 대신 동물들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면 볼수록 동물은 인간과 아주 닮아있었다. 그래서 동물이라는 소재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작업을 이어나가게 되었다. 리서치를 하며 내가 살아가면서 던졌던 '도대체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걸까.'라는 질문의 답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우리 역시 동물이고 동물들에겐 살아가는 것이 그저 본능이며 죽기 직전까지 계속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산다는 것에 무슨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 순간순간들을 최선을 다해, 도태되지 않으려 발버둥을 치며 살아갈 뿐이라는 것을. ● 어른이 된 나는 어린 시절처럼 마음 편히 즐거워하는 법을 잊어버렸던 것 같다. 살면서 여러 일도 많았고 워낙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이라 내 기분에 휩쓸려 파도처럼 요동치며 살았다. 하지만 이제는 나 역시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 속에서 해답을 찾는 작업을 하고 싶다. ■ 정윤수

동시대의 다채로운 시각문화 안에서 회화는 재현과 표현의 영역이 자유로운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회화 한 점에 담아낼 수 있는 색감이나 물성, 촉감, 그 분위기로 인해 많은 작가들은 여전히 회화를 주매체로 다루고 있다. 정윤수 작가 또한 바다/파도를 모티브로 작업한 「파랑Mer Forte」 연작과 지구라는 행성의 작용과 자신에 대한 존재론적 성찰을 시각화한 「행성 시리즈Planet Drawings」 등의 이를테면, 자연의 보이지 않는 순환 작용이나 초월적인 존재감과 이에 따른 자아 성찰 과정을 회화로 전환하고 있다. 작가는 다양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동시대 사회구조 안에서 얽히고설킨 인간관계에서 마음의 상처를 받기도 했었는데, 그러한 기억들은 여행을 하면서 마주했던 바다, 파도, 즉 거대한 존재 흐름인 자연을 통해 위로받았으며 그 경험을 계기로 현대적인 동양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에 가만히 서 있을 때 우리에게 그 바다는 그 자체로 초월적인 존재로 다가오기도 하며, 우리는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숭고함으로 현실의 복잡한 일들을 잠시 망각하게 되기도 한다. 때로는 자연이 보여주는 위협적이고 강력한 힘의 작용들로 인해서 우리는 자연의 단편적인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며,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생명주기를 따르는 미미한 존재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지점에서 2015년부터 진행된 「파랑」 연작을 살펴보면, 장지나 비단 위에 채색되어 있는 역동적인 형태들은 거대한 바람의 작용으로 물결치는 파도를 형상화한 것이며, 단순한 클로즈업 구성과 물성의 표현 기법은 작가가 추구하는 회화적 방법론과 조형성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파랑」 연작들에서 살펴볼 수 있는 작가 특유의 색감과 생동감 넘치는 섬세한 파도의 레이어들은 시각적인 효과를 넘어 촉각적인 느낌 또한 전달하고 있으며, 작가는 반복적으로 동일한 대상을 그려나가면서 그 의미를 드러내기도 감추기도 한다. 작가가 2017년부터 시작한 「행성 시리즈」나 앞으로 작업할 「섬 우주 Island Universe」 연작들 또한 파도에서 더 확장된 개념으로 행성, 우주라는 거대한 자연의 순환과 존재론적 성찰을 담아내기 위한 작업으로 볼 수 있다. 더불어 이러한 작품들은 구체적인 상황이나 어떤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며 특정한 내러티브를 담고 있지 않다. 다만 작가에게 마음을 정화시키는 자연이라는 소재가 하나의 화면에 작가만의 방법론으로 제작되었고, 누군가가 작품 속에서 살아 숨 쉬며 작용하는 그 자연의 존재와 회화적 발언을 알아본다면 그것만으로 유의미하다. 작가는 이렇듯 나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대상들에 대하여 사유하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또 세계는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들을 작업으로 보여주고 있다. '무언가 존재한다'는 말은 'Es gibt das Sein'이라는 표현에 대응한다. 말 그대로 '그것이 존재를 준다'라는 의미로, 우리에게 존재를 준 무엇, 나를 존재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 무엇, 그리고 그 무엇이 수많은 존재와 사건들을 착종시킨다. 작가가 대자연에서 받은 초월적 존재감은 바로 우리가 스스로 느끼는 감각에서부터 사람과의 관계, 끝없이 연결되는 생각의 고리들, 일상의 편린으로부터 시작된 것들이다. 우리는 「파랑」 연작을 회화의 구상적 카테고리에서 벗어나 물성적 카테고리로 심화시킨 점에서 작가의 예술적 의도를 짐작해 볼 수 있으며, 그리고 저 멀리 외재하는 행성에 다가가고 싶은 심층적 심리에서 작가의 예술세계와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 유은경

형세린_Pipe 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8×44cm_2019 형세린_Pipe 4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8×44cm_2019
형세린_Pipe 1_나무패널에 아크릴채색_138×34cm_2019 형세린_Pipe 2_나무패널에 아크릴채색_138×34cm_2019 형세린_Mansion study 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9×145cm_2019 형세린_Color Palette documentation on cement tablet_시멘트, 아크릴채색_가변크기_2019

형세린 ● 오늘날 현대 디지털 시대는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 쏟아지는 정보와 이미지로 넘쳐나고 있으며, 이런 현상들은 더 가속화되고 있다. 나의 작업은 디지털 시대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의'소외감 혹은 공허감'의 감정을 중심으로 시각화하여 회화와 사진 등 다양한 시각언어로 풀어내고 있다. ● 나는 경험한 외부세계와 색채를 여러 방면으로 조합하여 기존 대상(OBJECT)들의 문맥을 깨면서 화면에 재구성한다. 단색 또는 그라데이션 효과를 넣은 텅 빈 공간은 일반적으로 그림의 배경을 형성하며, 불필요한 시각정보를 필터링하기 위한 모티프로 사용한다. 동시에 이러한 테크닉은 형광, 파스텔색과 함께 대비되는 어두운 색조는 소외와 공허 혹은 모호함을 표현한다. ■ 형세린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까지, 천 년이 끝나고 시작되는 전환기에 태어나 디지털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누리고 지배한 최초의 글로벌 세대이자 디지털 세대를 일컬어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s)라 한다. 과거에 비해 문화적으로 보다 다양해진 삶을 사는 이들이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사회에 진출하면서 역사상 처음으로 부모세대보다 나빠진 여건에서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는, 미래가 불확실한 세대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오는 심리적 불안은 도피처로서 과거의 것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 과거를 돌아보기를 원하는 밀레니얼 세대들에게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 사이에 대중적으로 유행한 음악과 이미지를 가지고 하는 일종의 인터넷 놀이이자 하위문화인 베이퍼웨이브(Vaporwave)는 훌륭한 방식으로 통한다. 초창기 그래픽 디자인, 파스텔과 네온 혹은 메탈 의 단순한 컬러 조합 등 소위 B급 정서의 이미지들을 시각적 특징으로 하는 베이퍼웨이브는 기존의 미학적 관점에 반하는 동시에 현대 산업사회에서 대량으로 생산되어 소비되고 사라진 이미지들을 가지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속성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특성을 바탕으로 최근 재미에서 시작된 인터넷 하위문화를 넘어 철학적, 미학적 움직임으로 회화, 디자인, 사진, 영상과 같은 다양한 예술의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 1990년에 태어난 작가 형세린의 작업은 이러한 베이퍼웨이브의 정서적 배경과 미학적 특징들을 반영한다. 작가는 주로 특정한 색의 구성표를 따른 듯한(사실은 작가가 다양한 시도를 통해 도출한 자신만의 컬러 팔레트에 따른) 단순한 색감과 이를 단계적으로 변화시키는 그라데이션 기법 같은 그래픽적 요소들을 사용해 그림을 그린다. 이러한 방식은 작품의 주된 소재인 담배, 립스틱, 바세린과 같은 현대 산업 사회에서 대량 생산 체제가 만들어낸 일상적 소비재와 주위의 풍경들을 생경하고 낯선 대상이자 비현실적인 이미지로 탈바꿈시키는데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이미지는 무한한 상상력과 감정을 불러일으키는데, 특히 비시간적이고 비공간적인 풍경 이미지는 사람들에게 판타지 혹은 노스텔지어적 감성을 자극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으로서 유토피아를 소환하기도 한다. 즉, 현대인들의 허구적 향수를 드러내며, 동시에 작가 자신이 속한 세대를 포함하여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불안한 존재들에게 자신만의 도피처이자 위로의 공간을 제시하고 있다. ● 현재 수창청춘맨숀 1기 레지던시 작가로 참여하고 있는 형세린은 오픈스튜디오를 통해 최근 새롭게 제작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한정된 기간 동안 특정한 장소에 머물러야 하는 현실적 조건에서 작가는 수창청춘맨숀의 벽면, 옥상 등 자신이 머무르는 공간을 소재로 삼았다. 언뜻 보아 다양한 것을 대상화하였지만 특유의 색감과 기법을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들은 이전 작업과 비교하여 큰 변화는 없어 보인다. 이는 영국, 노르웨이, 중국에 이어 네 번째로 레지던시에 참여하며 상황에 따라 대상이 달라졌을 뿐 동일한 맥락에서 작업이 이어져오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형식적인 변화를 위해 무수히 고민을 하고 또 그것을 꼼꼼하게 기록하는 작가가 보여줄 수 있는 섬세한 변화들을 담아내기에 레지던시가 짧은 기간임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 한편, 그래픽적 요소들의 사용으로 인해 디지털적 이미지가 전면적으로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형세린의 작품을 실제로 보면 전체적인 분위기가 역설적이게도 회화적이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이는 회화성을 강조하기 위해 작가가 의도적으로 행하는 물감의 흘림이나 번짐 등의 제스처들 때문이다. 이러한 면을 고수하는 작가의 태도는 자본주의에 과잉 순응하는 듯 하지만 사실은 오히려 그것을 일방적으로 수용하기보다는 의미를 반영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그 논리를 뒤집는 비판적 속성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지난 작업들에 비추어 시간이 지나면서 심화되는 측면이 있는데, 이는 새롭지만 일시적일 수 있는 미술계 흐름이나 특정 사조에 표피적으로 함몰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작가만의 방향성으로 제시할 수 있는 부분인 듯 하다. 형세린은 회화 작업 외에도 예전부터 해왔던 음악 작업을 발전시켜 미래에는 복합적인 형태의 작업을 해 볼 생각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하는 작가가 보여주는 새로운 미적 경향과 다양한 시도들은 의미 있는 변화들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이에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과 작가의 점진적인 성취를 응원하며 이를 통해 동시대 미술의 지평이 보다 폭넓게 확장되어가기를 함께 기대해 본다. ■ 변수정

Vol.20190708f | 수창레지던시-2019년도 수창청춘맨숀 제1회 레지던시 프로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