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울산국제목판화비엔날레

2019_0717 ▶︎ 2019_0722

개막식 / 2019_0719_금요일_05:00pm

참여작가 Australia / Daniel O'shane_David Frazer_Dianne Fogwell Ellie Weckert_Heather Shimmen Bangladesh / Anisuzzaman_Mohammed Fakhrul Islam Mazumder Mohammad Nazir Hossain Khan_Roosevelt Benjamin D' Rozario_Ruhul Amin Tarek England / Ade Adesina_Fernando Feijoo_Gerry Baptist_Laura  Boswell_Wuon-Gean Ho Finland / Anniina Vainionpaa_Annu Vertanen_Heli Kurunsaari_Teija Lehto_Tuukka Peltonen France / Anne Paulus_Dominique Aliadiere_Jean Lodge_Kim Myoungnam_Wang Suo Yuan Korea / Kang Haengbok_Kim Dongki_Kim Mihyang_Kim Sangku_Kim Jeimin Kim Taehyuk_Min Kyeongah_Park Younggeun_Bae Namkyung_Son Kihwan Shin Jangsik_Yook Kyoungran_Lee Yunyop_Lee Eunhee_Yim Youngkil Jung Wonchul_Chung Hyejin_Chun Jinkyoo_Han Jimin_Hong Seonwung Poland / Karol Pomykała_Tomasz M. Kukawski_Tomek Barczyk Wiesław Haładaj_Wojciech Tylbor-Kubrakiewicz Romania / Ciprian Chirileanu_Ciprian Ciuclea_Mihai Zgondoiu_Suzana Fantanariu_Valeriu Schiau Sweden / Denis Steen_Fredrik Lindqvist_Ingela Svensson_Modhir Ahmed_Olof Sandahl  Taiwan / Chen Hua-Chun_Lai Cheng-Hui_Liu Yu-Fang_Lo Ping-Ho_Wu Song-Ming Thailand / Chayasit Orisoon_Praween Piangchoompu_Srijai Kuntawang Thongchai Yukantapornpong_Warisara Apisampinwong Section of the committee / Kim Dongin_kim Eunyoung_Kim Heejin_Park Hyunsoo Lee Hana_Lim Uibog_Joo Hankyung_Han Hyojeong

참여국가 호주_방글라데시_영국_핀란드_프랑스 한국_폴란드_루마니아_스웨덴_대만_태국

주최 / 울산제일일보 주관 / 울산국제목판화비엔날레 운영위원회 후원 / 울산광역시_울산예총_울산판화협회

관람시간 / 10:00am~07:00pm

울산문화예술회관 ULSAN CULTURE ART CENTER 울산시 남구 번영로 200 (달동 413-13번지) 제1,2,3,4전시장 Tel. +82.(0)52.275.9623~8 ucac.ulsan.go.kr

목판화의 새로운 장을 열다 : 국내 최초 '목판화비엔날레'의 의미와 가치 1. 한국 현대판화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게 된 것은 1950년대 이후 국내 일부 작가들과 해외파들이 속속 신기술을 접하고 소개하면서부터이다. 즉, 광복 이후를 그 시발점으로 하는 한국 현대미술의 궤적과 동일한 선상에 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창작판화 110주년을 넘어선 일본이나 17세기부터 판화황금시대를 구축해온 중국에 비해 출발이 훨씬 더뎠던 초창기 한국의 판화는 다양한 판종(版種)과 기법으로 무장된 현재와는 달리 일본과 중국의 영향을 받아 우끼요에(니시키에(錦絵))로 대표되는 일본의 목판화1)와 중국의 수인화(水印畵)가 일부 식자들에 의해 수용되었다. 그러나 내용면에서 이질감이 없지 않았고, 판화에 관한 사회적, 예술적 인식 역시 매우 낙후되어 있었다.2) 독자적인 미술 장르로서 인정하기보다는 회화의 아류나 인쇄물에 삽입되는 보조수단정도로 치부됐다. 따라서 판화를 전문적으로 작업하는 작가들도 소수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작가들의 대부분은 판화를 전문적으로 하는, 소위 전문 '판화가'는 아니었다. 역사적 관점에서 판화를 이끈 부류는 '회화' 중심의 작가들이었다. 이는 서양의 경우에도 유사했는데, 멀리는 9세기에서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본래의 직업은 '화가'였던 이들이 목판화나 석판화를 통해 종래 판화가 안고 있던 인식, 다시 말해 삽화적 성격과 회화의 습작이라는 오랜 관념을 서서히 타파시켰다.3) 우리나라 역시 상황은 비슷했다. 국내 처음으로 판화과가 대학에 설치되기 이전까진 회화를 전공한 작가들이 판화계를 선도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내외적 빈곤에도 불구하고 한국 현대판화의 선각자들은 외국의 기술과 기법을 신속히 받아들이면서 발전시켜 나갔다. 한국의 화가이자 판화가로써 서양의 추상미술 형식에 한국 전통문화를 담아낸 이항성을 비롯한 정규, 최영림, 배륭, 김정자 등이 석판화와 목판화로 잇달아 개인전을 치르고 해외에서 선전하는가하면, 당시 제도권 최고의 등용문이었던 국전 입상 등이 이뤄짐으로서 판화에 대한 인식의 변화에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결과들은 집단적 움직임으로 나아가는 발판을 제공했다. 점차 많은 작가들이 판화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자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한국판화협회』가 1958년 조직되었고, 1968년엔 강환섭, 김민자, 김상유, 김정자, 김종학, 김훈, 배륭, 서승원, 유강렬, 윤명로, 이상욱, 전성우, 최영림 등 13인이 발기한 『한국현대판화가 협회』가 창설되면서 판화의 현대화는 가속 페달을 밟게 되었다.4) 70년대와 80년대에 접어들면서 판화는 명실상부한 독자성을 획득한다. 롤러나 잉크, 프레스기 조차 변변치 않은, 여전히 제작 환경은 열악성을 면치 못했지만 70년대부터 점차 판화 그룹들이 생겨나면서 서서히 전성기를 구가하기 시작하여, 민중미술이 들불처럼 번지던 80년대에는 『서울프린트』, 『프린트 미디어』, 『나무』, 『창작판화가회』, 『현대목판화회』, 『PRESS』, 『프린트 아카데미』 등이 활발한 활동을 펼치며 판화 보급운동에 앞장섰다. 내용적으로 사회와의 접점을 찾게 된 것도 이 시기다. 당시 괄목할만한 현상은, 판화의 보급이 폭넓게 이뤄지면서 전문적인 전시의 유치와 판화인구의 확산, 제도권 내로의 안착이 가시화되었다는 점이다. 1986년 처음으로 『대한민국 미술대전』에 판화부문이 새롭게 신설되었으며, 지금은 사라진 『공간국제판화비엔날레』5)나 『한국현대판화가협회 공모전』, 『판화미술제』 등을 통해 신진작가들이 다수 배출됐다. 1993년 『한국현대판화 40년 전』6)과 1998년 열렸던 『한국현대판화 30년 전』7) 등 굵직한 전시회가 연이어 개최되면서 국제화로의 교두보까지 마련하게 된다.8) 또 하나 주목해야할 부분은 교육과정의 확립이다. 80~90년대 판화부흥은 학계의 움직임과 맞물려 돌아갔다. 1988년 추계예술대학교와 홍익대학교에 국내 최초로 판화과가 신설되었으며 성신여대 대학원9), 서울대, 이화여자 대학원에도 학과가 만들어져 체계적인 배움의 터전을 굳건히 함과 동시에 판화가 하나의 특정, 고유 예술장르로 편입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 중에서도 추계예대와 홍익대 판화과는 국내 최초 전문학과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으며, 실기력을 지닌 학생들이 입학하는 주요 등용문으로 기능했다. 이후 판화는 한국 현대미술에 있어 의미 있는 위치를 차지했다. 관련학과 설치와 동시에 판화인구의 저변확대에 따른 대중성이 힘을 얻자 400여개에 달하는 판화공방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각종 전시와 보급이 이뤄지는 가운데 어떤 예술장르도 성공하지 못한 '대중화'가 눈앞에 도래하는 듯 했다. 판화계는 그야말로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하게 된 셈이다.10)

2. 한데, 안타깝게도 판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불과 10~20년 만에 버블은 걷혔고 원로작가 윤명로가 2005년 초 한 국제세미나에서 "누가 판화를 죽였는가"라는 비장한 발언을 토해낼 정도로 여기저기서 위기라는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1990년대에 이르러 판화계는 여러 가지 직·간접적 악재에 시달려야 했다. 판화란 원래 회화의 취약점인 일회성을 극복하고 다량 생산을 통해 예술의 우수성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서 시작된 분야이지만, 백남준이나 운보 김기창의 판화작품들이 수백 장씩 돌아다니게 되면서 판화에 대한 대중들은 싸구려 포스터 정도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시장은 오리지널과 복제의 개념이 혼재된 채 갈지자를 그렸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96년 『한국현대판화가협회』에서 오리지널에 대한 규정을 밝혔지만 간접성, 고유성, 복수성, 대중성이라는 판화의 4대 특수성이 되레 치명적인 단점으로 부상되었다. 희소성을 중시해온 대중은 판화에 새겨지는 '에디션 넘버'에조차 민감한 반응을 보였으며, 상대적으로 저렴한 판화는 예술을 '부의차별화'의 도구로 여기는 이들에게도 적합한 것이 아니었다. 이들 중엔 판화의 멀티플의 개념을 복제(reproduction)로까지 오판했다. 이처럼 소위 잘나가던 판화가 갑자기 위기 운운할 정도가 된 배경에는 세계 경제 불황의 여파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내부 원인을 지적하는 목소리에 더욱 힘이 실렸다. 즉, 무차별적으로 상업판화를 양산한 소수의 화랑들과 공방, 그리고 이들과 결탁한 일부 작가들, 아트페어(Art fair) 등을 통한 덤핑판매는 판화의 전반적인 질적 저하는 물론 그 이미지에 상당한 부정적 영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수십 년간 이어오며 간신히 곧추세운 한국 현대판화의 위상마저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특히 창의성과 테크니컬이라는 판화교육의 이분화 실패, 늘어난 판화인구에 대한 수용방안의 미비, 일부 무크지를 제외한 판화매체의 부재, 유통구조의 한계, 가격형성의 객관성 결여 등 제도적 난점들도 판화의 비전을 어둡게 한 주요 이유로 거론되었다.11) 물론 시간이 흘렀어도 판화의 위상은 예전 같지 않다. 공교롭게도 판화과를 설치한 각 대학에서조차 전문 판화가의 발굴‧육성을 고집하지 않으며12), 다원성을 중시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이르면서 '판화가'라는 직업별 분류 역시 무의미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럼에도 판화는 그것만의 독자성과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일정한 틀 위에서 뚜렷한 자기 목소리를 지닌 판화는 조형영역과 표현영역에서 역시 확연한 색깔을 놓치지 않았다는 것인데, 일례로 직접적인 표현이 가능한 목판화는 시대성을 보다 강렬하게 투사하는 언어로써 제 기능을 다해왔고, 석판화나 동판화처럼 재료특유의 성질과 접목된 화학반응은 예상하지 못한 우연성을 생성할 수 있었다. 또한 섬세함이 요구되는 인그레이빙(Engraving)이나 메조틴트(Mezzotint) 등은 다른 유채나 수채화 등에서는 볼 수 없는 분위기와 표상체계를 생성했다. 특히 드라이포인트(dry point), 모노타이프(monotype)와 같이 복수성을 배척한 판법에선 내적 즉흥성과 판화의 지평을 넓히는 외적효과에도 유효했다. 표현영역에서도 판화는 여타 미술 분야와 결이 달랐다. 비록 과거 유채작가들이 초창기 판화시대를 개척했으나 판화만을 전문으로 한 작가들이 기법‧표현영역에서 훨씬 자유로운 측면이 존재했다. 사실 유채작가들은 판화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난이도를 체감하며 작품의 연속성을 확인한다면, 과학과 기술, 장인정신과 예술성의 결합인 판화에 능숙한 판화가는 회화영역의 폭을 마음껏 확장시킬 수도 있다. 판화는 방법적 복잡함이 존재하지만, 오히려 그 지난한 프로세스가 차별 있는 작업의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다행히 판화는 다채로운 동시대미술의 흐름을 저버리지 않으면서 판화만의 특성을 존속시킴으로써 독창적인 조형세계를 설계해 올 수 있었다. 아직은 과거의 인기와 몸값을 유지하고 있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판화의 가치까지 희석된 건 아니다. 일단의 작가들은 되레 현재를 판화가 도약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분수령이라 여기고 있다. 왜냐하면 버블현상이 가라앉자 많은 판화가들은 비로소 판화의 맛과 정체성에 대해 몰입할 수 있는 환경에 놓였기 때문이다.13) 이에 시장도 현 시점에 맞게끔 불황타개의 돌파구를 찾아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외적으로도 나타난다. 많은 수의 공방들이 문을 닫았고 '가현판화공방'과 같은 몇몇 후발주자들과 살아남은 공방들은 본의의 자세로 돌아갔으며 『아트에디션』(2010)14)과 같이 판화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무대의 기능도 군계일학처럼 두드러졌다. 이는 순수 창작판화의 표현 가능성과 실험적 모색에 있어서 일정한 성과를 거둔 『내일의 판화전』15)을 포함해, 1995년 『한국판화미술진흥회』가 설립되면서 만들어진 국내 유일의 판화전문 페어인 『판화미술제』의 뒤를 잇는 것으로, 동시대미술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고민하는 등 다시 새로운 '희망'을 찾아 전진하고 있다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 '희망'을 저버리지 않은 채 꾸준히 항해하고 있는 국제행사가 있으니, 그게 바로 오는 7월 17일 울산에서 개막하는 '2019 울산국제목판화비엔날레'이다.

3. 국내 최초로 펼쳐지는 '2019 울산국제목판화비엔날레'는 국내 20여개 넘는 비엔날레 홍수 속에서 전문 영역의 목판화를 헤드라인으로 채택함으로써 독자적 위치를 조기 점거하고 판화자체를 제도권 내로 끌어 올려 시들해진 당대 분위기를 깨뜨리려는 전략이 작동하고 있다. 한편으론 개념을 극대화한 첨단미디어 작업과 전통적인 작업방식의 고수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판화의 정체성에 대한 자문이 배어 있다. 예술의 외연 확장이 외면되지 않는 현실을 고려할 때 판화의 의미를 되묻고 목판화의 가치를 새롭게 정립하기 위해 마련되었다는 점도 눈여겨볼 부분에 속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2019 울산국제목판화비엔날레'의 경우 '판화의 몰락'이라는 주장까지 심심찮게 들리는 동시대미술계에서 목판화만을 고집하며 건설적인 미학과 특유의 방법론을 펼치고 있다는 점이다. 울산시와 울산제일일보의 지원 아래 확고한 자기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는 유일무이한 목판화 전문 비엔날레라는 데 그 의미가 있다는 사실이다.16) 실제로 지난 2012년 시작해 지난해까지 총 7회에 걸쳐 열렸던 '울산국제목판화페스티벌'을 보다 진취적인 국제 행사로 발전시키기 위해 비엔날레로 명칭을 변경하며 오늘에 이른 '2019 울산국제목판화비엔날레'는 이하나 총감독의 말처럼 "전 세계 판화인들의 축제이면서 각국의 판화를 서로 비교해볼 수 있는 현대판화의 무대이다." 세계 판화의 현주소를 고백하면서도 비전을 가늠할 수 있는 장이기도 하다. 인상적인 건 판화의 종류가 다양함에도 '2019 울산국제목판화비엔날레'는 명칭에서 확인 가능하듯 목판화17)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아마도 울산의 문화재인 반구대 암각화18)와 선사시대 암각화뿐만 아니라 신라시대 행렬모습과 돛을 단 배, 말과 용 그림 등 날카로운 도구로 새겨진 세선화와 신라시대 명문 등이 덧새겨져 있는 천전리 각석 등 문화유적의 유구한 정신성을 15세기 초엽 이후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판화인 목판화를 통해 계승하고, 나무를 판재로 볼록판의 형식을 취하는 목판화로 판화의 본질이란 무엇인지 헤아리려는 의지의 결과로 해석된다. 목판화를 고집하는 또 다른 이유는 다원적 경향의 동시대미술 흐름 내에서 조형의 완성도를 위한 여러 알고리즘 중 하나로 수용되고 있는 목판화자체에 관한 진지한 탐구에 있다. 즉, 특별히 판화작가임을 내세우는 일부 작가들을 제외하곤 분야의 고정성이나 작가적 분류 면에서 그 구분이 모호한 동시대미술19)에서 되레 목판화의 가능성을 점치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주어진 문제에 대한 임의의 한 해답이 그 문제에서 가정하고 있는 여러 가지 제약 조건을 만족하는지의 여부를 스스로 타진해온 주최 측의 의지는 '깊이'가 되어 변별력을 높이는 배경이 되고 있다. 그래서일까, 해를 거듭하며 오늘에 이른 '2019 울산국제목판화비엔날레'에는 그만큼 시선을 사로잡는 작품도 여럿 출품됐다. 과거와 달리 아시아를 넘어 유럽, 미주 등으로 국외 참여 작가의 범주를 대폭 확대20)하여 인프라가 탄탄해진 것도 이유겠지만, 추천공모라는 형식의 접목도 좋은 작품을 선정하는데 있어 적절한 기준이 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 중 눈에 띄는 작가를 꼽으라면 한국의 김상구, 김동기, 이윤엽, 임영길, 손기환, 신장식, 천진규, 한지민, 홍선웅 등이다. 정원철 등 여타 작가들의 비중도 낮지 않다. 이들은 추·구상의 자연에서부터 일상, 우주, 사회적 의제까지 다루고 있기에 주제와 내용은 각자 다르지만 오랜 시간 한국 목판화의 명맥을 이어온 채 자신만의 시각을 투영해온 작가 작품이라는 특징이 있다. 세대 간 차이가 존재함에도 대체로 자신의 삶을 목판화라는 시각예술에 의탁하여 한국 근현대 시대상을 담아왔다는 공통점도 발견된다. 국외 작가 중엔 호주의 엘리 베커트(Ellie Weckert), 방글라데시의 모하메드 나지르 호세인 칸(Mohammed Nazir Hossain Khan)과 루훌 아민 타렉(Ruhul Amin Tarek), 영국의 아데 아데시나(Ade Adesina), 핀란드의 투우카 펠토넨(Tuukka Peltonen), 프랑스의 안 파울루스(Anne Paulus)와 김명남(프랑스 국적으로 출품되었다), 왕 수오 위안(Wang Suo Yuan) 등이 주목도를 높인다.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 Ponty)의 주장처럼 예술은 세상의 일부임을 증명하는 다양한 색깔의 작업들이다. 이밖에도 폴란드의 토멕 바르지크(Tomek Barczyk), 스웨덴의 모데르 아흐메드(Modhir Ahmed), 대만의 첸 후아 춘(Chen Hua-Chun), 태국의 차야싯 오리순(Chayasit Orisoon)과 프라윈 피앙촘푸(Praween Piangchoompu) 등의 작업도 인상적이다. 아주 섬세하거나 투박하고, 거칠지만 부드러운 작품들이다. 채화가 곁들여진 작품들과 수성목판에 이르기까지 목판화로 보여줄 수 있는 측면은 모두 읽을 수 있다.

4. 판화는 공정의 전 과정을 수작업에 의존하는 순수 판화를 포함해 홀로그램(hologram)과 랜티큘러(lenticular)에 이르기까지 개념적 외연이 확장되는 형국에 있다. 수제종이로 떠낸 페이퍼 캐스팅(paper casting)과 모노타입(Monotype) 등이 일정 부분 정통 판화 내에 머물러 왔다면, 입체판화(설치판화), 디지털 프린트(Digital print), 멀티플 조각(multiple sculpture) 그리고 사진과 동영상 등은 간접성과 복수성이라는 특질을 이용해 판화의 영역에 새롭게 침투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만 놓고 보자면 판화는 동시대미술의 탈장르, 탈경계적, 탈형식적 측면을 적극적으로 소화하고 있는 '관계형 미디어'라고 해도 무리는 없다. 하지만 이와 같은 흐름에도 목판화처럼 판화의 장르 개념 대신 판법의 형식개념을 강조하는 작업들은 존립의 당위성을 스스로 완성하며 이어져 오고 있다. 따라서 이번 '2019 울산국제목판화비엔날레'는 판화의 범주화를 강조하는 것이 장르적 특수성을 인정받기 위한 행위라면, 판법에 무게를 두는 태도는 그 장르의 벽을 넘나들면서 허물게 해준다는 것을 일깨우며, 목판화에 대한 채널의 개방은 일체의 유·무형의 이미지나, 물질적이고 비물질적인 이미지를 전사하고 전송하는 모든 미디어와 구조를 아우를 수 있게 해주는 밑동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2019 울산국제목판화비엔날레'는 출품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여러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데 이는 대략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사실과 추상 형식의 드러냄으로, 목판화로 다가갈 수 있는 다양한 조형을 관찰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작품 내용의 면면이다. 자연, 풍경, 인간 삶까지 개성 강한 작가들의 예술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작품들은 그것자체로 동시대인들과 무관하지 않다. 세 번째는 이하나 총감독의 발언처럼 세계 목판화의 흐름을 관조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번 비엔날레는 넓은 관점에서 판화의 전통성을 이어가고 오늘날 한국현대판화에 있어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정체성을 다시금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어찌 보면 세계 유수의 작가들을 한 장소에 모아 놓은 행태에 불과할 수도 있고, 더 솔직히 말하자면 기술된 본 내용처럼 거창한 의미를 담고 있지는 않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판화의 위기를 논하는 시점에서 '2019 울산국제목판화비엔날레'를 무대로 한 국내외 작가들의 집단적 퍼포먼스는 시사 하는바가 작지 않다. 다만 단순한 지역 축제가 아닌 국제행사인 비엔날레는 이전과 다른 역동적 파괴를 본질로 하며, 그만큼 해당 비엔날레에 대한 기대도 커진 만큼 가장 투박하면서도 예민한 표현형식을 지닌 목판화로 어떻게 동시대 인류가 처한 다양한 문제를 번역하고 공론화하며 새로운 방향을 제시할지는 두고 봐야 할 과제로 남는다. 미술언어를 통해 우리 사회의 모더니티를 적시하며, 이를 거처삼아 거시적 혹은 미시적 담론을 창출하는 것이 비엔날레의 기능과 역할이라고 할 때, '2019 울산국제목판화비엔날레'가 어느 정도 그것에 충실한 결과를 낼 수 있는지 또한 지켜봐야할 숙제라고 할 수 있다. 미술담화의 생성과 미적이고 사회적인 공론의 성취를 중시하는 비엔날레의 특성 혹은 기대감을 논하기에 앞서 아쉬운 지점도 있다. 바로 전시기간이 지나치게 짧다는 사실이다. 통상의 비엔날레들이 최소 2개월에서 반 년 가까이 진행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약 일주일 남짓한 기간은 비엔날레라는 성격과 규모에 걸맞지 않다. 향유자의 입장에서도 개선될 필요가 있다. ■ 홍경한

* 각주 1) 니시키에는 일본 에도 시대에 확립한 우키요에 판화의 최종 형태이다. 메이지 30년대 무렵까지 많이 그려졌다. 우끼요에는 중국의 채색수묵화의 복제를 위하여 개발된 다색판법에서 전래된 것으로 보이며, 한국을 통해 일본에 전해지며 우끼요에의 판법으로 발전되었다. 일본 전통 목판화인 우끼요에는 1867년 파리만국박람회에 전시되어 인상파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2) 물론 지금도 판화를 폄훼하는, 이유 없고 불필요한 잔재가 남아 있기는 하나 당시의 판화도 마찬가지였다. 3) 사진이 발명되는 19세기 이전까지 판화는 작품을 직접 볼 수 없는 사람들의 욕구를 채워주는 역할을 했다. 문맹률이 높았던 과거엔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도상이었고, 유명한 예술작품의 복제 수단 또는 책의 삽화로도 활용됐다. 4) 1958년 『한국현대판화가 협회』의 창설은 비로소 한국현대판화 역사의 기틀을 다져졌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5) 아쉽게도 30여년의 역사를 뒤로한 채 현재는 운영을 중단한 상태이다. 6) 국립현대미술관, 현대미술 도입기인 50년대 기준. 7) 서울시립미술관, 68년 한국현대판화가협회 창설년도 기준. 8) 한국 현대판화의 역사에서 90년대는 전성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9) 현재까지도 학부과정에는 판화과가 없으나 1983년부터 대학원에 판화과를 신설 및 운영 중이다. 10) 이 당시부터 역량과 가능성을 겸비한 판화 전문 작가들이 다수 배출되면서 90년대 판화전성기를 새롭게 구축했다. 이에 발맞춰 각종 판화공방이 설치되고 공모전이 열렸으며 의미 있는 전시도 대폭 늘었다. 11) 70-80년대 정치적, 장르적 경향에서 탈피해 대중화를 노렸던 판화에 대한 관심은 이내 시들해졌다. 작가주의적 관점에서의 판화는 유효했으나 대중에게 근접할 수 있는 전략은 희미했다. 싸구려 옵셋을 마구잡이로 찍어내면서 판화수준의 하향과 인식저하만을 불러왔다. 이는 국민적 반응을 오래 지속시키지 못한 원인 중 하나였다. 12) 동시대 다양한 예술의 정의에 의해 전문성까지 외면 받고 있는 셈이다. 13) 거품이 넘쳤던 당시에 비해 이젠 가려질 것은 가려지고 도태될 것은 도태되어 소위 '알짜'만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14) 멀티플 조각과 사진을 포함한 『서울국제판화사진아트페어(SIPA)』에서 다시 명칭이 변경됐다. 15) 1995년부터 1997년까지 세 차례의 전시 이후 막을 내렸다. 16) 울산시와 언론이 힘을 합쳐 진행해온 해당 행사는 판화 작가들에 대한 현실적 지원을 고민하고 판화 활성화를 위한 전시를 조직하는 등의 실천적 양태 면에서 눈에 띈다. 17) 목판화는 볼록판[凸版]으로 조각하여 인쇄하는 판화로 판재에 따라 세로로 켠 면을 쓰는 판목목판(版木木版: Wood cut)과, 나무를 가로로 잘라 나이테가 드러난 면을 쓰는 목구목판(木口木版: Wood engraving) 등의 종류가 있다. 벚나무·박달나무·배나무·단풍나무 및 합판 등, 나무의 성질에 따라 다양한 효과를 낼 수 있다. 18) 반구대암각화는 인류 최초의 포경유적으로써, 북태평양 연안지역의 선사시대 해양어로 문화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19) 사진이나 판화는 복수제작이 가능하고, 간접매체를 활용한다. 작금의 미술계에서 판화라는 예술적 방식을 '차용'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복수성이 약한 모노프린트, 간접성이 낮은 디지털매체의 판화는 물론, 일정한 거푸집을 토대로 한 조각 역시 같은 범주로 묶을 수 있다. '선택'과 '제시'를 통해 의미와 기능을 전환시키는 레디메이드(Ready-made) 또한 '판화-적'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20) 한국을 비롯한 11개국에서 70명의 작가가 120점의 작품을 출품했다. 해마다 5개국이 참가했으나 이번에는 참가국가가 두 배가량 늘어났다. 태국, 대만, 방글라데시를 비롯한 아시아권뿐만 아니라 영국, 핀란드, 프랑스, 폴란드, 루마니아 등 유럽권 국가에서도 다수의 작가들이 참여한다.

Preface for the 2019 ULSAN International Woodcut Print Biennale Opening a New Chapter in woodcut : The Meaning and Value of the First Woodcut Print Biennale in Korea1. Contemporary woodcut printing Contemporary printing art went into the rails only after the introduction of new and modern printing techniques by a few Korea-based artists and artists based overseas in the 50s. In other words, it could be placed on the same line as the contemporary art of Korea, initiated right after the liberation of Korea. Unlike Japan, with the history of creative printing of more than 110 years, and China, having the golden age of printing art since the 17th century, printing art of Korea was started so much later and at the beginning, it was highly influenced by printing art of China and Japan1), represented by Yukiyoye (Nisikiye (錦絵)) and Water Painting (水印畵), respectively and accepted by intelligent people. However, their contents were somewhat unfamiliar, and since there were very low social and artistic perceptions about printing,2) printing was considered as an auxiliary means for printing or epigone of printing rather than a distinctive art genre. Therefore, there were only a handful of artists specialized in printing. Still, since their contents were somewhat unfamiliar and there were very low social and artistic perceptions about printing, printing was considered as an auxiliary means for printing or epigone of printing rather than a distinctive art genre. Therefore, there were only a handful of artists specialized in printing. In fact, from the historical point of view, artists who had led printing in Korea were painters, not specialized in printing. It was similar in the West as well. From the 8th century to the 21st century, 'painters' had gradually erased the existing perception of printing, considering it merely as illustration or practice of painting3)、 it is hard to deny that painters had led the field of printing till printing became a major in the university for the first time in Korea. Despite such external and internal penury over printing in Korea, pioneers of contemporary printing of Korea have developed it by promptly accepting advanced techniques and methods from other nations. Along with Lee Hyang-Sung, a painter and printing artist who reflects traditional culture of Korea in the format of abstract art of the West, Jung Gyu, Choi Young-Rim, Bae Ryul, Kim Jung-Ja and many others successfully held private exhibitions for lithograph and woodcut printing and won awards in the national art exhibition, which was the gateway for artists at the time, in turn changing the perception about printing in Korea. These results became the opportunity to have collective actions. As more artists became interested in printing, 『Korea Prints Association』 became organized by young artists in 1958, and in 1968, 『Korean Contemporary Printmakers Association』 was established with 13 initiators, including Kang Hwan-Sup, Kim Min-Ja, Kim Sang-Yu, Kim Jong-Hak, Kim Hun, Bae Ryul, Seo Seung-Won, Yoo Gang-Yeoul, Yun Myeong-Ro, Lee Sang-Wook, Jun Sung-Woo, and Choi Young-Rim, accelerating the modernization of printing in Korea.4) In the 70s and 80s, printing achieved its independent position in the world of art in Korea. Even though the materials, such as roller, ink, and pressing devices, and environment were still inadequate, woodcut printing artists started to form groups and gradually gained popularity. In the 80s when Peoples Art became popular, 『Seoul Print』, 『Print Media』, 『Namu』, 『Association of Creative Printing Artists 』, 『Contemporary Woodcut Printing Association』, 『PRESS』, and 『Print Academy』 were actively promoting woodcut printing, and at that time, contents of prints found a contacting point with the society. The phenomenon at the time to be noticed was that printing became possible to be the subject for exhibition, more people started to enjoy woodcut printing, and woodcut printing became acknowledged as an independent field of art. In 1986, the division of woodcut printing was established for 『National Art Exhibition of Korea』 and new printing artists were introduced through 『Gonggan International Printing Biennale』5), 『Exhibition of the Korean Contemporary Printmakers Association』, and 『Printing Art Exhibition』. In addition, major exhibitions including 『40 Years of Contemporary Printing in Korea』 in 1993 6) and 『30 Years of Contemporary Printing in Korea』 7) were hosted so printing artists were given with opportunities to be introduced in the world.8) In addition, woodcut printing became included in the curriculum. The Renaissance of woodcut printing in the 80s and 90s intertwined with the academia. In 1988, Chugye University for the Arts and Hongik University started the department of printmaking for the first time in Korea, followed by the graduate school of Sungshin University9), and of Leehwa University, and Seoul National University. Such movement became the foundation for systematic education of printmaking and also for the incorporation of printmaking as an independent art genre. Especially, Chugye University and Hongik University received a lot of attention since they offered the major program of printmaking for the first time in Korea and many students with excellent art skills enrolled. Since then, printmaking took a significant position in the contemporary art of Korea. More than 400 printmaking studios were opened due to the increased in the no. of printmaking artists as well as its incorporation in the education. While various exhibitions on printmaking were held and fine art prints were highly supplied, it seemed that popularization of printmaking would be about to start, which was never succeeded by any art genre. Printmaking was enjoying its renaissance.10) ● 2. However, unfortunately, the public's interest in printmaking did not last long. In just 10~20 years, bubbles were lifted, and Yoon Myeong-Ro, a senior artist, made a grim statement, "Who did kill printing?" at one international seminar in 2005, and there were groans about a crisis of printing. In the 1990s, the printing scene was suffering from various direct/indirect unfavorable conditions. Printing was started as a means to overcome the onceness of painting, a weakness of painting, and to spread the excellent art through mass production. However, as the prints by Paik Nam-Jun and Unbo Kim Gi-Chang were circulated in hundreds, the public started perceive printing as a cheap poster. The concept of originality was mixed with of copy even in the market. To rectify this situation, the 『Korean Contemporary Printmakers Association』 published the rules of original printing in 1996, but four special aspects of printing, indirectness, uniqueness, pluralism, and popularity rather became its critical weaknesses. In the case of people prioritizing the scarcity of art, they became too sensitive even about 'Edition Number' given to prints, and relatively low-priced prints were not even suitable for those who regarded art as a tool for differentiation of wealth. Some of them even misjudged the concept of multiple as reproduction. For the sudden crisis of painting, there were various causes including the aftermath of the world economic recession. However, the voice pointing at internal causes gained power. Few galleries and art centers which mass-produced commercial prints indiscriminately, as well as some artists worked with them, and dumping sales through art fairs not only detracted the overall quality of printing, but also exerted a negative influence over its image and even brought down the status of contemporary printing of Korea. Especially, the failure of differentiation of creativity and technique in the education of painting, inadequacy of acceptance of an increased population of printing artists, absence of printing media, limitation of a distribution structure, and lack of objectivity in pricing were mentioned as the major causes for shrinking of printing in Korea.11) Of course, even now, the status of printing is not the same as before. Even universities having the department of printing do not insist on finding and fostering professional printing artists12), and now in the age of post modernism in which pluralism is highly valued, an occupational category of 'Printing Artist' has become also meaningless. Still, printing has maintained its uniqueness and identity. The distinctive feature of printing has been maintained in the domains of formation and expression. For example, woodcut printing with which direct expressions are allowed has been used as a strong language to intensively project the time, and sometimes its chemical reactions with material-specific properties have brought unexpected contingencies. Moreover, engraving and mezzotint have created unique atmospheres and representative systems that cannot be found in oil painting or water painting. Especially, singular printing such as dry point and monotype without plurality has effective external effects to widen the scope of printing and to promote internal improvisation. Even in the domain of expression, printing has a unique property. Although oil painters pioneered the era of printing at an early stage, printing artists are much more liberal about techniques and expressions. In fact, while oil painters verify the continuity of works while experiencing a difficulty of printing, printing artists who are accustomed to printing, which is a combination of science, technology, craftsmanship, and artistry, can freely expand the scope of painting. Printing has methodical complexity, but it rather becomes a factor to differentiate printing from others. Just like this, fortunately printing has maintained its unique world of formation by maintaining its unique properties and still not neglecting the diverse flows of contemporary art. Even though it still has not fully recovered its popularity and position, it does not mean that the value of printing has became also diluted. Some artists rather consider this period of time as another opportunity for printing to leap forward. That's because that only when the bubbles had subsided, many printing artists became immersed in the true value and identity of printing13). The market is also actively looking for a breakthrough to cope with the current situation. Such phenomenon also occurs externally. Many galleries were closed and several newcomers and survivors such as 'Gahyeon Printing Gallery' went back to serve their original intention. In addition, the stage specialized in printing such as 『Art Edition』(2010)14) became distinctive. It is a successor of 『Exhibition of Prints for Tomorrow』15), which achieved a certain accomplishment regarding the possibilities of expression and experiments in fine art printing, and 『Printing Art Festival』, the only printing art fair in Korea, established upon the foundation of 『Korea Printing Art Promotion Association』. They all share one common factor that they are searching for a new hope for printing. And there is an international event that has been consistently sailing without giving up such hope, and that is the '2019 Ulsan International Woodcut Print Biennale' which will be held in Ulsan on July 17th. ● 3. '2019 Ulsan International Woodcut Print Biennale' is the first biennanle for woodcut printing in Korea. By having woodcut printing for its headline in the flow of more than 20 biennales in Korea, it aims at taking its advantage position and having printing into the school system, in turn promoting printing furthermore. On the other hand, there has been an advice on the identity of printing, concerning between choosing advanced media processes and traditional processes. Considering the reality that the external expansion of art is not neglected, it might be necessary to re-define the value of woodcut printing. However, what is the most important is that in the case of '2019 Ulsan International Woodcut Print Biennale', it has consistently pursued the constructive aesthetics and unique methodology of woodcut printing despite the concerns of the art world over printing and even there are claims the fall of printing. Its importance lies in the fact that it is the one and only woodcut printing biennale in Korea and it has pursued and created its unique world under the supports of Ulsan and Ulsan Jeil Daily Report.16) In fact, to develop 'Ulsan International Woodcut Print Art Festival', which was held 7 times since 2012, it changed its name to 'Ulsan International Woodcut Print Biennale'. As Lee Hah-Na, a director of '2019 Ulsan International woodcut printing Festival', said, "It would be an international festival for printing artists and a stage to appreciate and experience printing art of other nations." It is very impressive that despite a diversity of printing, '2019 Ulsan International Woodcut Print Biennale' solely focuses on woodcut printing.17)It might a result of determination to succeed the eternal spiritualty of cultural assets of Ulsan, including the rock carving of the Bangudae18) and of the prehistoric age, fine line paintings of parade, sailboat, horse, and dragon, and a square stone of the Cheonjunri with inscription from the Shilla period though the tradition of woodcut printing, which has the longest history, detected from the early 15th century, among other printing methods, and to understand the essence of printing by investigation woodcut printing. Another reason to insist on woodcut printing lies in a serious inquiry into woodcut printing itself, which has been accepted as one of several algorithms for the completeness of formative within the pluralistic tendency of contemporary art. In other words, except for a few printing artists particularly insisting on their identities as s printing artist, others are more positive about the possibility of woodcut printing in this contemporary age of art19) in which the categorization of art and artists have become irrelevant. Therefore, this determination of the host which has examined whether its solution to a given problem satisfies the various constraints assumed in the problem becomes 'depth', in turn becoming the background to enhance its uniqueness. That might be why a number of interesting works have been submitted for '2019 Ulsan International Woodcut Print Biennale'. It might be due to the fact that the scope of artists has been widened to include Europe and the Americas, beyond Asia, but a new attempt of 'recommendation-based contest' also seems to become a proper standard for selection of high-quality artworks. Among them, Kim Sang-Gu, Kim Dong-Ki, Lee Yoon-Yeop, Lim Young-Gil, Son Gi-Hwan, Shin Jang-Sik, Cheon Jin-Gyu, Han Ji-min and Hong Sang-Woong from Korea are noticeable. Other artists including Jeong Won-Cheol are also significant. Those artists are sharing one common feature that they have been projecting their own perspectives for a long time while adhering to the history of woodcut printing of Korea, although the themes and contents are different, covering everything from the nature of autumn to the day, space, and social agenda. In the case from overseas artists, Ellie Weckert from Australia, Mohammed Nazir Hossain Khan and Ruhul Amin Tarek from Bangladesh, Ade Adesina from England, Tuuka Peltonen from Finland, Paulus Anne from France, Kim Myung-Nam from France, and Wang Suo Yuan are very interesting artists. As claimed by Maurice Merleau Ponty, art is a work in colors to prove it to be part of the world. Besides them, Tomek Barczyk from Poland, Modhir Ahmed from Sweden, Chen Hua-Chun from Taiwan, and Chayasit Orisoon and Praween Piangchompu from Thailand are also impressive. Their works are very delicate, but rustic, and rough, but soft. From printing with painting to waterbased painting, this would be a perfect chance to explore every aspect of painting. ● 4. Printing is now in a process in which its conceptual extension is being made to include not only its original printing, which relies solely on handwork, but also hologram and lenticular. While paper casting and monotype are still within the scope of traditional printing, installation printing, digital printing, multiple sculpture, photography and videos have newly penetrated the domain of printing using its unique characteristics, of indirectness and plurality. If only this phenomenon is examined, it might be reasonable to say that printing is a 'Relational Media' which actively adopts the destruction of genre, boundary, and form, a recent trend in contemporary art. However, despite such flow, there have been consistent efforts to emphasize the formality of printing, and they have continued to prove the necessity of their existence. Therefore, if the emphasis on the categorization of printing in '2019 Ulsan International Woodcut Print Biennale' is an action to have the genre specificity of printing accepted and approved, this attitude emphasizing the printing emphasizing the formality of printing allows us to know that it is possible to go beyond the boundary of genre. In addition, the opening up of a channel for woodcut printing shows that it could be used as a basis for unifying all kinds of images, both tangible and intangible, and all media and structures that transfer and transmit material and immaterial images. '2019 Ulsan International Woodcut Print Biennale' delivers several messages through diverse artworks and they could be roughly divided in into four. The first is to reveal the various abstract forms and factual forms, showing a variety of forms available for woodcut printing. The second is to focus on the contents of printing. The artworks that reveal the artistry of each artist are highly relevant with people of the time. The third is that it would be an opportunity to explore the global flow of woodcut printing, as mentioned by Lee Hah-Na, a director of the biennale. For the last, it provides an opportunity to reconsider the identity of printing that is desperately needed in contemporary printing of Korea, and to succeed the tradition of printing from a broader perspective. Somehow, it might be just a collection of artworks of renowned artists and to be more honest, it might not have a tremendous meaning as described above. Still, at this time of age when printing stands on the brink of precipice, this collective performance of artists from Korea and abroad on this stage of '2019 Ulsan International Woodcut Print Biennale' could be significant. Since this biennale, an international event, not a local festival, focuses on the dynamic destruction, not shown in the past, there is a growing interest in the biennale. Therefore, it would be necessary to come up with a proper suggestion on how to use woodcut printing, which has the most rustic, but very delicate expression, to translate and reflect the various issues of today. Considering that the function and role of a biennale are to translate and reflect the modernity of our society through the use of art language and to create a macroscopic or microscopic discourse upon it, we should carefully monitor how much '2019 Ulsan International Woodcut Print Biennale' could fulfill such function and role. However, considering that a significant role of a biennale is to create a social discourse in the society, the exhibition period of this biennale is too short. In general, ordinary biennales are held for at least 2 months to almost a half year, and this exhibition period, of about a week, is not proper for the nature and scale of a biennale. It should be corrected from the perspective of viewers as well. ■ Hong Kyoung-Han

* footnote 1) Nisikiye is the final form of Yukiyoye established in the Edo period of Japan. It was popular till the 30s of the Meiji era. Yukiyoye appears to be originated from the polychromatic printing technique, develoed for the reproduction of ink painting of China and then, it was transmitted to Japan through Korea and then, developed further. Yukiyoye was exhibited at the 1867 World Exposition in Paris, influencing impressionists at the time. 2) Of course, there still remains unreasonable derogation about printing and it was also the same at that time. 3) Until the introduction of photography in the 19th century, printing fulfilled the desire of people who could not directly experience artworks. It was used as the means to deliver information and knowledge in the past in which illiteracy was high, and to copy famous artworks and as illustration for books. 4) The establishment of the 『Korean Contemporary Printmakers Association』 is meaningful in that it founded the foundation for the history of contemporary printing in Korea. 5) Unfortunately, after 30 years of its history, they are not in operation anymore. 6)Natio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based on the 50s, the introduction of contemporary art. 7) Seoul Museum of Art, based on the year of foundation of the Korean Contemporary Printmakers Association, of 1968. 8) In the history of contemporary printing of Korea, the 90s was its prime period. 9) Till now, there is no department of printing in the undergraduate course, but the department of printing has been offered in the graduate course since 1983. 10) From that time on, many professional printing artists were introduced and established the prime period of printing in the 90s. In line with this, various printing art galleries were opened and contests and exhibitions were offered. 11) The interest in printing, which had tried to gain popularity by breaking from the political and generic tendencies in the 70~80s, got fainted soon. Although printing from the perspective of auteurisme was still valid, not its popularization strategies. Indiscriminate over-reproduction of cheap offset prints only deteriorated the quality of printing as well as the perception about printing. That's one of reasons which the public's interest in printing did not last long. 12) Due to various definitions of art of today, expertise of printing has been also neglected. 13) Comparing to the time when bubbles were overflowed, only so-called 'essences' have survived. 14) It once again changed its name from 『Seoul International Printed Art Fair (SIPA)』, including multiple sculptures and photographs. 15) The exhibition was closed after three exhibitions from 1995 till 1997. 16) This event, created in collaboration between Ulsan and the media, is remarkable in terms of that it has thought about practical supports for printing artists and organized exhibitions for promoting of printing art. 17) Woodcut printing can be classified into woodcut printing in which an artist carves an image into the surface of a longitudinal wood plate, and wood engraving in which a horizontal wood plate is used. Various effects can be produced depending on the nature of tree, such as cherry trees, birch trees, pear trees, maple trees, and plywood. 18) The rock engraving of the Bangudae is the earliest whale hunting relic and it is considered to be an important relic to understand the prehistoric culture through a marine language of the North Pacific coastal area. 19) Photography and printing could be produced in multiple and by using indirect media. There are numerous examples of borrowing the artistic method of printing in art of today. Mono print with a low degree of plurality and digital-medium printing with a low degree of indirectness, and sculptures made with specific molds could be grouped together. Ready-made for transforming its meaning and function through 'selection' and 'suggestion' could be also considered as 'printing.'

□ 세미나 : 2019. 7.19. (금) 오후 2시 : 주제 / 발제자 -현대미술에서의 판화가 직면한 과제와 대안 / 영국 Richard Noyce (미술평론가) -판화가 탄생하는 예술적 리더의 작업실 / 스웨덴 Modhir Ahmed (팔룬 프린트워크샵 디렉터) -한국현대목판화의 개괄적 흐름과 이해 / 한국 고충환 (미술평론가)

□ 목판화체험프로그램 : 목판화시연 및 제작체험 : 울산문화예술회관 제2전시장 앞 : 7.19.(금)~21(일) 11시~18시

Vol.20190709b | 2019 울산국제목판화비엔날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