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전 Exposition Inhabitable

김요인展 / KIMYEOJIN / 金余珍 / installation   2019_0711 ▶︎ 2019_0817 / 월,공휴일 휴관

김요인_biscuit_아크릴판에 아크릴채색, 석고_20×20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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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인 홈페이지_www.yeojin-kim.com

초대일시 / 2019_0711_목요일_05:00pm

작가와의 대화 / 2019_0711_목요일_04:00pm

제8회 복합문화공간에무 공모선정작展

기획 / 복합문화공간 에무 기획위원회 진행 / 임수미(큐레이터)_황무늬(어시스턴트 큐레이터) 후원 / 한국메세나협회_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사계절출판사_AGI society 지원 / 바다출판사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공휴일 휴관

복합문화공간 에무 Art Space EMU 서울 종로구 경희궁1가길 7 B2 Tel. +82.(0)2.730.5514 www.emuartspace.com

제8회 복합문화공간에무 전시(작가, 기획) 공모에 선정된 김요인 작가의 『무인전』을 2019년 7월 11일부터 8월 17일까지 복합문화공간에무 갤러리에서 개최한다. ● 일몰과 일출의 아련한 기운이 바토(Antoine Watteau)의 그림 전반에 조심스레 자리잡아 가면같은 웃음을 곧 지워버릴 듯하다. ● 『무인전』은 꽤나 오랜 시간동안 회화 작업에 대한 개인적 반감에서 벗어나 물감으로써의 빛, 빛에 의한 형태를 탐구한다. 2018년 '리빙 인사이드' 전에서 일상적 사물, 특히 일회성 재료들의 파기(투기)나 재활용되는 과정으로 소진되는 현대인을 비유하고자 했던 시도들은 흥미롭게도 샤르댕(Jean Siméon Chardain)의 거의 휴면상태의 사물(사람)에게 매료되게 된 계기가 되었다. ● 샤르댕이 포박한 모든 기능과 활동을 잠들게 했던, 혹은 잠재적으로 활동하게 했던 빛은 현재의 사물(사람)에게 어떻게 다르게 작용하며 취급될 수 있을까.

김요인_craqcraq_램프에 사진 필름_100×100cm_2019

빛에 의한 사물(사람)의 휴면상태가 무수한 가능성을 머금은 것에 반해 『무인전』에서 다루고자 하는 빛은 스크린과 LED 등으로 사물(사람)을 활성화시키는 대신 작용과 반작용의 행위를 반복하는 자동화 상태로 만들어 버린다. ● 가령 자연의 풍만한 에너지가 작지만 유일무이한 석류의 온몸에 닿아 그를 여물게 하고 그의 껍질을 터지게 함으로써 발레리를 유혹했다면 편의점에 진열된 과자들은 그것과는 관계없는 문구와 이미지에 밀봉되어 일시적으로 우리의 미각을 자극하고, 그런 유린 때문에 언제든지 우리는 그 같은 복제품을 선택하도록 불려나간다. 또 발화자가 사라진 말과 사건들은 어떤 이의 감정에는 닿을 듯 말 듯 하게 투과되어 이상한 간지러움에 중독되게 하고, 또 어떤 이에게는 그대로 맺혀 혐오와 반감으로 사로잡아 버리는데, 그렇게 몇 음절의 인토네이션이 발현하는 형형색깔의 순간에 우리는 포박되어 거리를 펄럭인다. ● 『무인전』은 아직 고유함이 남아있는 이들을 선명하고 명료한 투명한 이미지 뒤의 까만 덩어리로, 자연의 기운이 미세하게 남아있는 흔적을 쫓아 사방으로 퍼지는 의식, 그리고 만성적 피곤함과 우둔한 근육으로 뭉쳐진 그림자들의 대립관계로써 묘사한다. ■ 김요인

김요인_éclipse de pomme_사과_가변설치_2019

, 그리고 이미지의 음표들 ● 욕망과 소외를 다루는 김요인 전시는 3악장으로 구성된 환상곡(fantasia) 같다. 욕망은 본디 타자의 욕망이고(라캉), 그(타자의 욕망)에 대한 환상이다. 소외는 타자의 욕망을 내 욕망으로 믿고 쫓을 때 동반되는 현상이다. 타자의 것이 자신의 욕망과 불일치가 일어나면서 불안, 결핍감으로 '나라는 존재'는 소멸한다. 전시 제목 '무인'(사람의 존재 없음)은 이런 현상에 대한 발언이다. ● 필자와 마찬가지로 작가는 환상(망상과 다른)을 애용하는 듯하다. 환상이 없으면 삶을 지속할 수 없다. 욕망 덩어리인 인생을 살아갈 때 우리는 어디에서 나를 찾을 수 있을까? 뭔가 멋진 것을 꿈꾸지 않는다면 죽음 앞에 내놓은 결산서에 무엇이 남을까? 나는 존재하지 않았네,일 것이다. 그럼 누가 있었나? 나 대신에. ● 이미지만 작동하고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현실세계가 관람객 앞에 펼쳐진다. 이것은 한 치의 착오 없는 우리의 일상세계다. 경쾌하게 반짝이면서 상징을 빚어내는 형상/작품들은 마치 악보 상의 음표처럼 다양한 소리를 낸다. 다성음악(polyphony)의 아름다움을 빚어낸다. 물론 이 음들은 의미를 만들어내지만 그 의미는 실재를 지시하지 않고 상징에 머물 뿐이다. 그래서 가상의 세계이다. 작가는 가상 속에서 실재의 흔적을 남겨놓고서 '무인: 의미론이 아닌 존재론으로써의 인간 없음'의 스모킹 건을 암시한다. ● 그 흔적을 추적하는 당신.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여기서 플라톤의 동굴 비유를 떠올려본다. 당신이 '그 동굴' 속 노예와 자신을 일치시킨다면 그래서 동굴을 벗어나, 모형들의 그림자가 아닌 실재를 보려한다면 역설적으로 당신은 도착된(자유로워졌다고 착각한) 노예로 거듭난 것이다. 나의 욕망을 대타자-이데아-의 욕망에 종속시켜 '나'라는 존재를 소멸시켜버렸기 때문이다. 플라톤 동굴의 비유는 소비사회의 물신숭배를 정당화시키는 도착된 그러나 인습화된 도덕이고 선악과이다.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자본주의 정신인 것처럼.

김요인_la moindre chose_라이트박스에 채색_120×230cm_2019

당신은 타인의 욕망이 빚어낸 이미지의 홍수 안에 있다. ● 작가 김요인은 거기서 그 흔적을 추적하는 당신은 전시된 작품 안에서 무위자연을 꿈꾼다. 무위하므로 인간이 빠진 자연들의 작용-반작용의 작동상태, 그 자연의 기계가 그 자체로 인공의 빛을 통해서 투영된다. 마치 자연의 정물이 빛을 받아 다양한 색을 발하듯, 무인좌대, 사과의 일식, 비스킷, 아뜰리에, 떨어지는 사과 들이 제각각의 음표로 소리 낸다. 그것은 의미와 환상과 존재의 다성음을 발화한다. ●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무인전』은 아직 고유함이 남아있는 이들을 선명하고 투명한 이미지 뒤의 까만 덩어리(다시 발견한, 나의 욕망의 덩어리일 수 있다 · 필자)로, 자연의 기운이 미세하게 남아있는 흔적을 쫒아 사방으로 퍼지는 의식(의미를 버리고 존재에로 지향 · 필자), 그리고 만성적 피곤함과 우둔한 근육으로 뭉쳐진 그림자들의 대립관계(나른한 휴면상태로 나의 욕망을 창조한다 · 필자)로써 묘사한다." ● 김요인이 현실세계 밖의 초월적 위치에서 그림자/이미지를 다루고 있지 않는 점에서 『무인전』의 '무인'이 갖는 본질론적(플라톤적) 오해가 해소되는 것을 읽는다. 책들로 쌓아올린 다섯 기둥은 도그마(독단적인 신념 등)에 대해, 그리고 어릿광대의 옷을 해체해 만든 것 같은 깃발들은 물신(物神)의 성채를 향해 바보축제('노트르담의 꼽추'에 나오는)를 벌이는 명랑한 설치물로 보인다. ■ 김영종

김요인_pomme tombée_인조 사과, 캔버스에 목탄_가변설치_2019

언어 사용의 오래된 습관은 표현은 못 미치더라도 몇 음절의 인토네이션으로 감정을 웅얼거릴 수 있게 하는 반면, 단어들은 쓸데없이 고고하여 유리관에 갇혀 기억 속에 침잠한다. ● 진중함, 호전성, 방향성. 물질과 현상에 빗대어 성질을 파악하려 했던 이러한 시도 중, 형태의 유무를 빛의 상태로 묘사한 "선명함" 혹은 "명료함" 등과 같은 단어들은 과거와 달리 물질을 그저 까만 덩어리로 취급한다. 그래서 빛에 의해 선명해지는 것은 투명하고 투과되는 비물질들로 자유롭게 떠다니면서 사방으로 퍼지는 대신 만성적 피곤함과 우둔한 근육들로 뭉쳐진 그림자들을 짊어진다. 그런데 이런 활동들이 생명력을 잃었다고 할 수 있을까? 오히려 연상의 시발점들은 이제 상징이라는 오래된 약속으로부터 해방되어 어떤 문맥도 따르지 않은 채 활동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신성한 축복의 영생인가 참담한 불로불사의 삶일까. ■ 김요인

Vol.20190711i | 김요인展 / KIMYEOJIN / 金余珍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