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인생, 여기 Art, Life, Here

등작展 / DUNGZAK Cestlavie / 燈酌 / painting   2019_0715 ▶︎ 2019_1130

등작_from universe_종이에 수채연필_1090×78.8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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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작 플리커_flickr.com/photos/dungzak

초대일시 / 2019_0831_토요일_06:00pm

관람시간 / 03:00pm~09:00pm

해양 에너지 정원 OCEAN ENERGY GARDEN 서울 용산구 우사단로10길 99(한남동 758-36번지)

BLUE COSMOS(파랑 우주)에서 불어오는 블랙 홀(BLACK HOLE)의 푸른 빛과 검정 암흑은 어김없이 이 예술가의 뇌에 닿아 시지각으로 감각되어서 '인간으로서의 인생'이라는 여과장치로 걸러져서 기본적으로 예술로 표현된다. 한 예술가의 모든 의미에서의 과정(Process)이 단순하게 무엇으로 이루어졌다며 결론을 도출하기는 어렵지만 한 작품이 피어올리는 아우라(AURA)를 느끼다 보면 감상자의 입장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고 싶거나 아니면 두세 발걸음을 얼른 빼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예술은 인간의 시각으로 과학적인 결론의 연구물은 될지라도 우주(지구상에서도)의 모든 존재가 향유하며 쉼을 얻는다는 건 실로 어려우리라 다만, 짐작한다.

등작_walk on the water_종이에 아크릴채색_78.8×1090cm_2019
등작_closer_하드보드에 유채, 먹, 연필_54.5×39.4cm_2019
등작_forest on the street_하드보드에 아크릴채색_1090×78.8cm_2019
등작_belong to you_초_9×6×4cm_2019

그렇다면 현대의 시대에서 예를 들어 인간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왔고 변화를 이루었는지를 알고 있다고 해도 어떤 인간은 과거에서 과거인으로 살고 어떤 인간은 현재에서 현재인으로 살며 어떤 또 다른 인간은 미래에서 미래인으로 생활하며 살아가기에, '시간'은 동시성도 불멸성도 항상성도 없이 각각의 개인에게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느껴지고 살아가며 살아간다는 생각을 한다면 이 생각을 OCEAN ENERGY GARDEN에서 첫 전시를 하는 등작 Dungzak Cestlavie의 짤막한 에피소드로 빗대어, 그가 2016년 04월 19일에 폴란드 바르샤바 법정에서 판사앞에서 선서를 하고 공식적으로 EU에서 해양 에너지 사업가(Ocean Energy Businessman)로 공인된 후에 다시 한반도 서울에 돌아와서 알 수 없는 휴면기를 거치고 현재 1년간(1994년에 그는 한국에서 화가로 데뷔했었다) 이룬 예술 작품들로 전시를 하는 걸 보면서 이 예술가의 지병이던 극심했던 조증의 치료가 관해 상태로 돌아서면서 오히려 더욱 활발하게 예술로 이루는 작업들의 양이 늘어나가니 비평가로서 그의 작품을 면밀하게 관찰하며 도출한 것은 그의 그림에서의 색채가 이전과는 확연하게 구분되게 바뀌었으며 조각의 영역과 설치미술(Installation art)의 생활화가 이루어져 감에 오히려 그가 올해 몇 권만 출간한 '그것이 인생이다 C'est La Vie Such Is Life'란 제목의 책에서의 글들을 읽으면서 왜 변화될 수밖에 없는지를 세밀하고도 세심하게 예술가 본인이 말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등작_Ocean Energy Garden_종이에 아크릴채색_54.5×78.8cm_2019
등작_light colour on human beingz_종이에 아크릴채색_54.5×78.8cm_2019

참고로 이젠 절판된 등작 Dungzak Cestlavie의 2012년 출판의 전자책 '예술 그 안에 들어가다'에서는 과연 그가 예술 자체를 앞으로 심심해하지 않을까? 란 의뭉이 나에게 솟았으나, 불구하고 앞으로의 예술가로서 그가 사라지든 숨겨지든지 상관없이 현재까지 대략 3만여 점의 작품들을 이루었음에, 전 세계(지구상)에 흩어진 작품들이 하나씩 발견될 때마다 흥미로움을 간직하게 해줌에 나로서는 연구자로서의 예술 비평이 다른 예술가(특히 미술가)들에게 이어질 때마다 이 예술가의 의미에서의 '빛과 그림자'가 따라다닐 것 같다.  ■ 김인범

등작_lesson 6_종이에 아크릴채색_78.8×1090cm_2019
등작_pray for the repose of the dead_수채연필_78.8×1090cm_2019
등작_into heart_종이에 아크릴채색, 오일파스텔_78.8×54.5cm_2019

그림을 그리는 것은 그림으로 말하고 철학 할 이유가 있어서이고, 조각하는 것은 조각으로 이루어야 하는 형상으로서의 깊이감을 이루기 위해서이며, 설치미술을 하는 건 기본적인 기초로서 '사진' 작업으로 비롯되어 영상(영화 시나리오들을 쓰고 단편 영화들을 찍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으로 나아가면서 공간의 확장과 축소와 밀도감과 생략(여백의 의미도 포함한)을 미술의 장르에 굳이 넣으면서까지 스스로가, 스스로부터 느끼며 감정을 이해하며 공부하며 연구하는 여러 분야(뇌 과학, 추상 물리학, 해양 에너지등의)를 사유하는 캔버스화 시켜서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시대를 표현하기 위함이다. 아니 표현되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예술 작품으로 먼저 상대에게 다가서는 전시가 되기를 바라며, 한 단락이 아닌 책장의 마지막 페이지를 무겁게. 가볍게. 평온하게. 슬프게. 경쾌하게...! ■ 등작

Vol.20190714d | 등작展 / DUNGZAK Cestlavie / 燈酌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