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 영원한 공존 Maitreya; Coeternity

유혜숙展 / YUHAESOOK / 劉惠淑 / photography   2019_0808 ▶︎ 2019_0821 / 월,화요일 휴관

유혜숙_지당리9 Jidangli9_잉크젯 프린트_50×70cm_2017

초대일시 / 2019_0808_목요일_06:00pm

후원 / 심산장학문화재단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화요일 휴관

전주아트갤러리 ART GALLERY JEONJU 전주시 완산구 서학로 9 1,2층 Tel. +82.(0)10.5338.7071

유혜숙- 미륵불이 살아 있는 공간 ● 우리 민족은 선사시대부터 뿌리 깊은 바위 신앙을 토대로 돌을 사랑했고, 돌의 원형태에 걸맞게 자신들의 심성과 어울리는 이미지를 새겼다. 특히나 미륵신앙에 의해 조형된 미륵상은 이 땅에서 살았던 선인들의 얼굴처럼 가식이나 형식미를 배격하고 자연주의적 신성을 최대한 살려 소박한 심성이나 내면의 세계를 표현한 것으로 평가된다. 생각해보면 미륵불을 만든 고려시대 지방의 무명 장인들은 대부분 당시 정통 불상 조각의 제작 기술과 이론 밖에 놓여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이 봉착한 제작상의 문제를 스스로 극복해나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회적으로 규정된 어떤 원칙이나 법칙을 따르기보다 스스로 해결책을 찾았으며 그것을 제작한 이들의 취향이나 자유의지, 타고난 솜씨나 눈썰미가 작품을 결정적으로 좌우했을 것이다. 기존의 규범이나 정해진 틀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그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의 타고난 성품과 솜씨에 기인한 자취가 백제문화권과 고려시대 지방호족의 영향력 아래 자리한 미륵불의 미감이다. 그 지방에서 채석되는 돌이 지닌 석질에 조화, 순응하면서 세부적 묘사의 대담한 생략과 집약된 선의 부조로 이루어진 미륵불은 오늘날 돌아보았을 때 경이로운 힘과 조형미를 지닌 뛰어난 예술작품에 해당하기도 한다. ● 미륵불은 석가모니 다음에 올 부처님으로 흔히 메시아로 통한다. 현재 도솔천에 머물면서 56억 7천 만 년 뒤 이 세상에 나타나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하고 세 번의 설법으로 모든 중생을 남김없이 구제한다는 미래불이 미륵불이다. 미륵불이 지닌 이른바 미륵 하생신앙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미완의 꿈, 그러나 그 꿈이 기어이 완성되리라는 희망과 믿음 및 새로운 세계의 도래를 갈망하는 다분히 혁명적인 사유가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각박한 세상살이에 시달릴 때면 옛사람들은 도처에 돌미륵을 세우고 기적을 염원했다. 현재 잔존하는 오래된 미륵불은 대부분 경기 충청 호남, 즉 국토의 서쪽, 옛 백제 문화권에 집중되어 있다. 화려한 사찰에 모셔진 미륵불도 있지만 이름 없는 당집과 전각, 노천에 방치되어 있는 불상도 적지 않다. 오랜 세월 살아남아 지금에 이른 험난했던 경로를 밝히는 동시에 사람들의 삶의 터전 가까이에 공존하면서 당시 사람들의 생과 간절하고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음을 힘껏 방증하고 있다.

유혜숙_호기리57 Hogili57_잉크젯 프린트_120×153cm_2019

유혜숙은 자신의 삶의 주변에서 접한 미륵불을 다시 보여준다. 김제 모악산에 자리한 미륵 신앙의 성지이자 백제의 사찰인 금산사에서 접한 미륵불이 계기가 되어 이를 중심으로 이후 익산, 정읍, 고창, 부안, 임실 오수, 남원, 전주 등지에 흩어져 있는 돌미륵을 촬영했다고 한다. 문수사, 미륵사지, 천고사, 용담사, 송화사, 금강 관음사, 부안 용화사, 단암사, 진북사를 비롯해 운선암, 덕음암, 도동암 그리고 신계리, 건동리, 지당리, 학정리, 호기리, 봉암리와 전주의 서서학동, 인후동 등에 놓인 여러 미륵불이 그 대상이다. 사찰과 암자, 여러 마을이 뒤섞여 있다. 미륵불을 찾아 나서고 이를 사진으로 촬영하는 일은 특정 지역에서 살았던 선인들이 그곳에서 미륵과 함께 삶을 꾸려나갔던 길, 꿈을 꾸고 무엇인가를 강렬하게 희구했던 모종의 자취를 기억하거나 애도하는 여정이자 그 모든 것을 복기하는 자리와도 같다. ● 그러니까 작가는 천 년 혹은 수백 년 전에 조성된 미륵불이 현재 잔존해 있는 공간을 탐사하고 이를 기록했는데 이는 결국 "미륵이 살아 있는 공간"에 대한 사진작업이자 "인간과 신 사이의 대화가 머물고 있는 공간에 새겨진 미륵의 역사"를 탐색하는 일에 해당한다. 이는 단지 미륵불 자체의 사진적 재현이 아니라 어쩌면 그것이 놓인 특정한 자리, 그곳에서 미륵불이 뿜어내는 기운을 포착하고자 하는 시도이며 미륵불에 대한 신앙과 문화, 그 기억과 기원, 정신세계를 더듬는 일에 가까워보인다. 흑백의 사진 속에 들어온 미륵불은 온전히 제 모습을 드러내기 보다는 부분적으로, 안타깝게 주변 환경 속에서 겨우 자리하고 있다. 오랜 세월 버티고 살아온 돌미륵은 제 스스로의 이력을 마모된 피부와 돌 꽃, 여러 상처 등을 통해 드러낸다. 대부분 선명한 형상은 지워지고 다시 돌로 돌아가려는 관성의 힘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것들이다. 작가는 그 상황을 근접해서 보여주기도 한다. 돌이자 미륵불의 형상이고 유이자 무이며 생이자 죽음이 그렇게 한 몸 안에서 공존한다. 본래의 모습에서 무척이나 변형된 지금의 저 미륵불은 돌 위에서 아득한 세월과 시간, 죽음 그리고 사라진 헛된 희망을 동시에 미륵불에 투사했던 그토록 간절했던 누군가의 생의 욕망을 안타깝게 호명한다.

유혜숙_신계리82 Singyeli82_잉크젯 프린트_110×165cm_2019

시간과 세월의 힘에 눌려 부식해가는 미륵불은 돌이자 종교적 대상물이고 동시에 지금 우리가 미술품이라고 부르는 것들이기도 하다. 당시 그것을 만들었던 이들이 지닌 극진한 불심, 도래할 미륵에 대해 조금의 의심도 없이 저 미륵불에 기원한 생의 투기와 내세에의 열망과 극락과 도래할 궁극의 유토피아에 대한 염원을 지닌 턱이 없는 이들에게 저 돌로 된 물질의 세계는 다분히 불가사의하고 초현실적일 것이다. 추상화된 역사의 잔해가 그로테스크하기 만한 물질 속에 깃들어 있는 미륵불에서 미를 느끼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그것에서 모종의 마력을 느끼는 이유는 또한 무엇일까? 종교적 힘을 공유하는 이들에게 미륵불이란 대상은 전혀 이질적이거나 미적 대상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여전히 그 믿음의 한 자락을 공유하고 있는 이들도 있기 마련이어서 지금 사찰이나 조그마한 암자에 놓인 저 미륵에 갖다 기대어 제 생애를 온전히 투기하는 이들이 있다. ● 반면 그 믿음을 공유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모종의 '고독'이 따르고 다만 심리적이고 감상적인 면이 대신한다. 미학이나 논리의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신앙이 있고 그와는 반대로 물질 자체와 주변의 분위기 자체만으로 미적인 것, 온전히 감각적인 것을 수습하려는 이가 있다는 얘기다. 불교와 미륵사상에 대한 역사성이나 교리에 대한 이해가 전무한 이들에게 미륵불은, 돌로 이루어진 조형물의 흔적은 그럼에도 모종의 아름다움을 거느린다. 동시에 본래 종교적 경험을, 신앙을 향해 나가기 위한 매개였던 미륵불이 이제 그 자체로 모종의 기운과 영기를 뿜어내면서 작가에게 다가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작가는 바로 그 느낌을, 정서적인 반응을, 적절히 표현하거나 지시하지 못하는 그 무엇인가를 사진으로 포착하려 하는 것 같다.

유혜숙_천고사76 Cheongosa76_잉크젯 프린트_50×67cm_2019

유혜숙은 미륵불을 새겼던 인간의 마음을 찾는다고 말한다. 그것은 특정 종교의 문제, 신앙의 문제에 머물지 않는다. 이미 한국인인 이상 작가의 핏속에는, 심상의 기억 속에는 산 속과 사찰, 미륵불이나 오래된 돌과 이끼, 녹아내린 촛농 등 온갖 신앙심의 발로들이 이룬 여러 흔적들이 충분히 마음을 흔들어놓았을 것이다. 그 애매한 동요와 충격, 이끌림이 카메라를 견인하는 동인이었으리라. 따라서 이 사진은 미륵불이나 사찰에 대한 다큐멘터리나 정보적 사진은 아니다. 오로지 그런 목적으로 찍는 사진을 논외로 한다면 결국 모든 사진은 그 대상에서 촉발된 자기 내면의 정신으로 겨냥된다. ● 유혜숙은 당혹스럽게 마주친 것, 미륵불을 사진 찍음으로서, 사진적 대상으로 설정함으로서 비로소 자기가 무엇 때문에 그것에 경도되었는가를 질문하고 이후 조금씩 알아가고자 한 것 같다. 사진은 그렇게 자기를 아는 과정이다. 그것은 지식이나 사상에 앞서는 일이다. 그것을 작품에서 형태화하는 그 과정을 통해서만 자기가 어떤 생각으로 그 대상에 근접해서 촬영하고자 했는지를 조금씩 알아가는 것이다. 비로소 한 장의 사진이 완성되어 나온 후에, 가시적 존재로 출현한 후에 비로소 자기에게 어떤 감정과 사상이 있었기에 그것을 찍고자 했는지를 비교적 선명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나 '선명하게'라고는 했지만 이 미륵불의 경우, 사찰의 경내나 그 주변 풍경이나 사물들의 편린은 선명할 수 없는 것으로 다분히 무의식적이고 어딘지 애매하고 모호한 구석들이 안개처럼, 거미줄처럼, 빛바랜 흔적처럼 깔려있는 것들이다. 비의적인 분위기로 충만하다. 그것은 우리의 무의식의 지층 너머 너무 깊숙이 자리한 것들을 건드리는 심상적 기억에 해당하는 것이라 모종의 문화적 원형이고 사라지고 흩어진 기미이자 자취다. 다만 기억과 기억, 피와 핏속에서 전해지는 것들이다. 나라고 여긴, 자기의 배부를 뚫고 들어가 있는 이른바 전통이라는 것이자 문화와 역사에 맞닿아있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그것을 사진적 대상으로 삼고자 한다는 것, 아니 그 기미를 알아채고 이를 촬영하고자 하는 욕구가 일었다는 것은 결국 자기(주체)를 알고자 하는 것이요 또한 이미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고자 하는 알 수 없는 욕망에의 이끌림은 아닐까? 여기에는 또한 근대에의 초극과 한국문화와 정신의 원형과 맞물린 여러 문제들 역시 가늘고 촘촘히 퍼져있어 보인다. 그 중심에 타문화와는 분명 다를 수밖에 없는, 사진을 이해하는 나름의 정신도 설핏 자리하고 있다. ■ 박영택

유혜숙_미륵사77 Mireuksa77_잉크젯 프린트_120×160cm_2019

Yu Haesook - A Space Where Maitreya Buddha is Living ● Korean people have had affection for stone based on deep-rooted folk belief on rock since the prehistoric era and have carved images in line with their nature like the round shape of stone. In particular, Maitreya statues built according to Maitreya belief are regarded that they have expressed a modest nature or inner world by rejecting pretense and formality and instead by highlighting the naturalistic sacred nature, just like the faces of ancestors who lived in this land. Come to think of it, unknown local master artisans in the Goryeo period may have not been aware of techniques and theory of producing orthodox Buddha statues of the time. So my guess is that they had to figure out how to overcome problems arising from the creation of the statues by themselves. They probably identified solutions on their own rather than conforming to principles or rules of society, and thus their own taste, free will, inherent skills or sense must have decidedly influenced the making of statues. The vestige derived from such inherent character and skills outside the box by breaking the mold and conventional rules is the beauty of Maitreya Buddha statues under the influence of Baekje and Goryeo's local powers. The Maitreya statues, made of rocks in the area, feature the harmonious properties of stones, bold omission of specific depictions and relief of integrated lines. They are considered excellent works of art today by embracing marvelous energy and formal beauty. ● Maitreya Buddha is regarded a bodhisattva (or messiah) who will be a successor to the present Buddha, Gautama Buddha - i.e. a future Buddha who currently resides in Tusita and will come to the world 5.67 billion years later, achieve complete enlightenment under the Dragon Flower Tree and save all human beings by preaching three dharmas. A dream seems impossible to realize under the belief that Maitreya Buddha comes to this world. However, there is a good, revolutionary reason for hopes and belief that the dream will end up coming true and yearnings for the advent of a new world. Maybe that is why our ancestors wished for a miracle by erecting the Maitreya stone statues when times were tough. Most of the existing Maitreya Buddha statues are located in the western part of the country, or the ancient Baekje areas of Gyeonggi, Chungcheong and Jeolla. Some can be found in magnificent temples, while many others are left neglected in unknown shrines and residences and in places outside. This indicates that they have long shed light on rough paths and closely connected to the lives of people of the time while coexisting near their homes. ● Yu also presents Maitreya Buddha statues that she encountered in her surroundings. Following her encounter with the Maitreya statue in Geumsan Temple - a sacred place of Maitreya belief and an old temple of Baekje on Mt. Moak in Gimje, she took pictures of Maitreya stone statues scattered all over in Iksan, Jeongeub, Gochang, Buan, Imsil, Osu, Namwon and Jeonju. They range from Munsu Temple, Mireuksa Temple, Cheongo Temple, Yongdam Temple, Songhwa Temple, Geumgang Gwaneum Temple, Buan Yonghwa Temple, Danam Temple, Jinbuk Temple, Unseonam, Deokeumam and Dodongam, to Singyeri, Geondongri, Jidangri, Hakjeongri, Hogiri, Bongamri, and Seoseohakdong and Inhudong of Jeonju. Locations encompass big and small Buddhist temples and various villages. Visiting and photographing Maitreya Buddha statues is like a journey to not only remember and commemorate the traces of memory that ancestors lived their life with Maitreya and dreamed and yearned for something, but also revisit everything. ● The artist explored and photographed spaces where the Maitreya Buddha statues still exist, which were erected a thousand or hundreds of years ago. This has resulted in a photographic work on "A Space Where Maitreya Buddha is Living" and also the exploration of "history of Maitreya carved in a space where dialogue between people and God takes place." This may be a trial to capture the specific location of Maitreya Buddha and its energy and to explore its belief, culture, memories, origin and spiritual world, rather than just a photographic representation of Maitreya. The Maitreya Buddha in a black and white photograph is situated pitifully as part of the surrounding environment rather than revealing itself completely. The stone statue shows its long hard-knock history through worn-out skin and scars and flowers on it. Most of its clear shape has gone, driven by the law of inertia that intends to go back to its original state of stone. The artist also gives us a closer look at such a situation. It is a rock and Maitreya Buddha at the same time, and in such a way, existence and nonexistence, and life and death coexist in one body. The Maitreya Buddha of today, which was fairly deformed from its original form, calls those who had desperate yearnings in life by projecting their time, death and faint, vain hope onto the Maitreya statue. ● Increasingly eroded by the passage of time, the Maitreya Buddha carved from stone is an religious object and also called a work of art today. Its material world made of stone must be quite mysterious and surreal to those who made the Maitreya statues to worship Buddha, stake their life on a future Maitreya Buddha and have a desire in this world and a yearning for a paradise or utopia to come. How is it possible to appreciate the beauty of Maitreya Buddha that holds the remains of abstract history in the grotesque material? Why do they feel a certain magical power from it? To those who share religious energy, Maitreya Buddha would not be an unfamiliar or aesthetic object at all. There are still people who stake their entire life on the Maitreya Buddha in a temple because they hang onto a tiny crumb of faith. ● However, 'loneliness' is followed for those who do not share faith as such. Instead, psychological and emotional aspects take the place. Some have a belief that disappears beyond the horizon of aesthetics and logics, whereas others take aesthetic and sensuous aspects just because of its physical properties and surrounding ambience. Nonetheless, people who have a lack of understanding of the history and doctrine of Buddhism and the Maitreya belief can also feel beauty from the sculptural traces of the Maitreya stone statue. Maitreya Buddha, once a medium of religious experience and belief, appeared to emit energy and spirituality to the artist in itself. Yu seems to capture such a sentiment and emotional reaction, something that is hard to express or indicate in an appropriate manner, with the camera. ● Yu said that she intends to explore the human mind that created Maitreya Buddha statues. This goes beyond the issues of specific religions and beliefs. In her blood and memories as a Korean, the various traces of religious beliefs (i.e. mountains, temples, Maitreya statues, old stones and mosses and candle drippings) must have moved her mind sufficiently. In turn, the ambiguous disturbance, shock and attraction must have driven her to take pictures. In this sense, her photograph is not documentary or informative on Maitreya Buddha or Buddhist temple. Except for photography for such a purpose only, photographs target inner mind occurring from their objects after all. ● It appears that Yu decided to ask herself why she was attracted to Maitreya and later find out little by little by photographing Maitreya Buddha statues that she bumped into and setting them as her photographic object. Photographing is a process of knowing yourself in such a way, which comes before knowledge or thought. Only through the process of embodying them in artwork, you get to know what thought made you approach the object and photograph it. Only after the completion of a photograph or its visualization, you can somewhat clearly recognize what emotions and thoughts made you take the picture of it. Although I mentioned 'clearly,' the Maitreya Buddha has fairly unconscious and ambiguous aspects like the fog, spider web or faded trace because of the unclear glimpse of temple precinct or surrounding landscape and objects. The mystical mood filled the air. This amounts to imagery memories that touch deep inside beyond the layers of our unconsciousness, which is a sort of cultural archetype and a sign and trace of disappearing and scattering. It is only transferred in our memory and blood. It is the so-called tradition beyond yourself and also in touch with culture and history. Then, taking it as a photographic object, or rather identifying its hint and having a desire to photograph it, means that there is an intention to know yourself (identity) and to retrieve the missing memories. Besides, various issues linked to the archetype of overcoming obstacles in modern days and the spirit of Korean culture appear to be intertwined closely and delicately. At the center of it, there is also a spirit of understanding photography, which is evidently different from other cultures. ■ Park Young-Taek

Vol.20190808d | 유혜숙展 / YUHAESOOK / 劉惠淑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