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니들이 멈춘 날 The Day When the Saw Tooth Stopped

송민규展 / SONGMINGYU / 宋旼奎 / painting.installation   2019_0807 ▶︎ 2019_0825

송민규_톱니들이 멈춘 날_아크릴, 알루미늄, 비닐 시트_230×620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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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9_0806_화요일_05:00pm

2019 인천아트플랫폼 창·제작 발표 프로젝트展

주관 / 인천문화재단 인천아트플랫폼 기획 / 송민규

관람시간 / 09:00am~10:00pm

인천아트플랫폼 윈도우 갤러리 Incheon Art Platform Window Gallery 인천시 중구 제물량로218번길 3 Tel. +82.(0)32.760.1000 www.inartplatform.kr

인천아트인천아트플랫폼은 올해,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하는 '2019 입주 예술가 창제작 프로젝트'를 통해 10기 입주 예술가의 창작 활동을 지원합니다. 2019 시각 입주 분야의 창·제작 프로젝트는 아홉 번째로 송민규 작가의 개인전 『톱니들이 멈춘 날(The Day When the Saw Tooth Stopped)』을 진행합니다. 이번 전시는 최근 발표된 드로잉 연작 「다른 합성」과 더불어 전시명과 같은 제목의 신작 「톱니들이 멈춘 날」을 공개하는 자리입니다. ● 작가는 주로 개인의 경험 풍경에서 비롯된 데이터를 가공하거나 분류, 체계화하여 기호와 상징 그리고 장식이 수반된 그래픽 형태의 작업을 선보여 왔습니다. 작가는 2016년부터 현실에 기반을 둔 허구의 이미지를 드러내며 변증법의 정반합(正反合) 논리를 접목시킨 '공상과학드로잉(SFD: Science Fiction Drawing) 3부작'을 기획하거나, 이 후 속편의 형식으로 제작된 를 통해 작업 중 완결되지 않은 이야기와 변화된 밤하늘의 검은색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공개하는 두 개의 작업은 작가가 이전 작업에서 출발하여 각각 작가가 인천에 머물며 관찰한 어두운 밤의 풍경과 작가의 경험을 담은 일종의 풍경화이자 맵핑(mapping)의 결과물입니다. 특히 전시장 정면에 설치된 신작 「톱니들이 멈춘 날」은 자유공원에서 바라본 풍경 속 작가가 생활하는 일상의 반복적인 패턴을 3~4가지 기호로 변환하여, 감각적으로 포착한 일종의 개인적인 기록입니다. 그동안 납작한 구조 안에서 해결책을 찾던 작가의 태도와 고집스럽게 스스로 만든 시스템 안의 관성을 탈피하고자 하는 시도이며, 작가 태도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냅니다. ■ 인천아트플랫폼

송민규_톱니들이 멈춘 날_아크릴, 알루미늄, 비닐 시트_230×620cm_2019

톱니들이 멈춘 날 : 감각번역기계의 아름다운 변칙 ● 우리가 사는 세상은 반투명하고 물컹거린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그렇고, 사람과 사물 사이, 사건과 사건 사이도 그렇다. 그 어느 것도 명확하지 않으며, 견고하지 않다. 그것은 사람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사물이 기억(의미, 내용: 심층)을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물의 표층이 기호가 되고, 상징이 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가진 기억, 그것이 가진 불투명성 때문이리라. 우리는 사물의 기억을 모두 알 수 없다. 그리고 물리적 세계의 그 물컹거림, 그 흐느적거림, 그 물리 감각을 느낀다. 아주 가끔은 그 반투명성과 물컹거림을 제거하고 싶을 때가 있다.

송민규_톱니들이 멈춘 날_아크릴, 알루미늄, 비닐 시트_230×620cm_2019

Black Bay, 4.09PB 3.0/0.6 : 세상을 해체하는 방식 ● "그러니 어둠의 속도는 빛의 속도보다 빠를지 몰라. 빛이 있는 곳에 늘 어둠이 있어야 한다면, 어둠이 빛보다 먼저 나아가야지." …… "어둠은 빛이 없는 것이죠. 빛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곳이요. 어둠이 더 빠를 수도 있어요─항상 먼저 있으니까요." (엘리자베스 문, 『어둠의 속도』 중에서) ● 지금 송민규의 어둠은 4.09PB 3.0/0.6이다. 『금속과 설탕의 결합술』까지는 그의 어둠은 N0을 지향했다. 기호화된 잠언과 90%까지 제거된 포르노그래피, 추상화된 사물의 이미지가 중첩되어 있는 「Metal and Sugar / Part 3」 연작(12개)에서 그의 완벽한 어둠이 조금 밝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지만, 그래도 그때까지 어둠은 N0을 지향했다. N0을 향하는 것은 가장 '완벽한 어둠의 색(Super Black)'을 향한 투쟁이다. 하지만 'SF 드로잉 3부작(SF Drawing Trilogy)'(2016~2018)을 마무리 짓고, 작가 자신이 이 3부작의 번외편이라고 말했던 『코드:블랙베이(Code:Black Bay)』(2018)에서 그 투쟁은 멈췄다. 그의 어둠이 밝아졌다. 빛의 속도가 어둠의 속도를 어느 정도 따라잡은 듯 '적당한 어둠'이 되었다. 그와 동시에 빛은 두 개, 혹은 세 개의 색으로 분해되고, 크기가 다른 수백 개의, 어쩌면 수천 개의 미립자 망점으로 분화되었다. 이 수많은 빛망울은 벡터(Vector)가 되어 '적당한 어둠'을 밝힌다. 작가는 지금 달빛이 비치는 밤하늘을 4.09PB 3.0/0.6과 두세 개의 색분해, 수많은 망점, 수치화된 벡터로 보고 있다. 세상을 기호로 표기하는 방식, 이것이 송민규가 세상을 해체하는 방식이다.

송민규_톱니들이 멈춘 날_아크릴, 알루미늄, 비닐 시트_230×620cm_2019

작가는 반투명하고 물컹한 세상을 작도(作圖)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 언어를 패턴화하고 모양자(템플릿, template)를 만든다. 세상을 계량화하고 수치화한다. 마치 지금의 어둠을 4.09PB 3.0/0.6으로 표시하듯이 세상의 불명료함을 걷어내고, 물리 감각을 고정해 납작하게 만들고자 한다. 그리고 벡터화된 이미지를 그 위에 중첩한다. 벡터 이미지는 수학의 방정식으로 이루어진 그래픽 이미지. 수치화된 이미지이다. 이로써 바짝 마른 디지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송민규의 이미지는 흐릿함을 걷어내어 명료하고, 물리적 감각을 소멸시켜 납작하게 눌려 있는가? 여전히 송민규의 작업은 반투명하고 물컹하다. 그가 지금 밤하늘의 색으로 제시한 '적당한 어둠'은 DUNN-EDWARDS 페인트사의 제품인 블랙베이(Black Bay) 색으로 먼셀(Munsell)의 색상 수치에 따라 색상(hue)이 군청(PB) 4.09이고, 명도(value)가 3, 채도(chroma)가 0.6인 색이다. 하지만 이 색상의 수치가 말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밝은 검은색이 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이 검은색에는 달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송민규는 'SF 드로잉 3부작'을 마친 후 밝은 달이 밤하늘을 변화시키고 있음을 발견했다. 3부작까지는 달의 변화는 보았지만 밤은 '완벽한 어둠'이었다. 늘 어둠이 빛보다 빨랐다. 하지만 이제 빛이 어둠을 따라오고 있다. 주체에 집중했던 그가 어느 순간 환경을 봤다. 더 나아가 환경은 주체를 소멸시키고 빛망울만 가득하게 만들었다(「Black Bay」, 2018). 주체의 존재감은 소멸됐다. 이것은 일종의 해체인 동시에 극단적 거리두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어떻게 왔을까?

송민규_11:00_캔버스 패널에 아크릴채색_40×29cm_2019

SF 드로잉 3부작 : 해체로 재구축, 정치적인 추상 ● 송민규는 'SF 드로잉 3부작'을 설계한다. 그에 의하면 'SF 드로잉'은 "영화나 소설에서 환상, 상상의 장면을 위해 사용하는 그래픽, 특수 효과에 기대어 오늘날의 풍경을 기호와 상징으로 번역, 편집하여 추상으로 위장하는 작업"이다.1) 그 설계의 시작은 『수영장 끝에 대서양』(2016)이었다. 3부작 중 제1부로 불리는 이 전시는 태국에서 익사(溺死)할 뻔했던 두려운 경험 이후 수영을 배우게 되면서, 그 과정을 "고난도의 게임을 하는 게이머가 마지막 엔딩을 보기 위하여 공략집을 참고하며 노력하는 태도에 비유"(작가노트, 2016)하며 제작한 100개의 기록적 드로잉이 중심이 된 전시였다. 이 과정에서 그는 '정신과 마음의 언어'를 기하학적인 패턴과 유기적 형상을 중첩해 시각화한다. 일상의 소소한 경험-사건을 문구로 만들고 그 문구의 각 단어를 추상적인 시각 기호로 옮기는 실험을 한다. 다시 말해, 정신과 마음이 물컹하게 만져지는 물리적 세상을 언어로 압축하고, 다시 시각 기호로 압축했다. 그로 인해 세상은 중층적으로 압축되어 송민규의 시각 기호로 '최적화' 되었다. 그의 '감각번역기계'가 등장한 것이다. 작가 자신의 구성적 자율성을 배제한 채 엄격하게 구축한 '주관'적인 논리 시스템에 맞춰 모든 것을 통제하며, 일상세계를 수렴(收斂)한 정신과 마음의 문자언어를 추상적 벡터 기호로 번역하려는 '감각번역기계'의 초기 모델이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3부작의 제2부인 『낮보다 환한』(2017)은 '완벽한 어둠'이 중심을 이루는 전시였다. 가장 '완벽한 검은색'은 먼셀의 명도가 0인 단계, 중성색(neutral)의 머리글자를 따서 N0인 색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100% 빛을 흡수하는 검은색을 만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에 송민규의 '완벽한 어둠'은 대략 N0.75~N1이었을 것이다. 『수영장 끝에 대서양』이 태국의 전통 색채로 구현한 추상적 시각 기호를 보여준 전시였다면, 『낮보다 환한』은 완벽한 어둠에서 '낮보다 환한' 지시대상을 뚜렷하게 보여주고자 기획된 전시라 할 수 있다. 작가에게 2016년과 2017년은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 그리고 그것이 고스란히 작가 주변에서 재현되고 있는 암울한 시기였다. 부조리와 억압, 통제로 점철되어 있던 이 '암흑기'가 '완벽한 어둠'을 불러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시기에 광화문 광장에 촛불이 그 어느 빛보다 환하게 타올랐던 것처럼 낮보다 환한 지시대상(비행기의 궤적, 대부도의 인공위성, 인천항의 조명 등)은 감출 수 없는 정의를 상징하듯 완벽한 어둠 속을 뚫고 더욱 또렷하게 보인다.

송민규_11:00_캔버스 패널에 아크릴채색_40×29cm_2019

개인적 서사와 사회적 서사를 시각 기호로 번역하는 것은 시각 기호에 기억(의미, 내용)을 심는 것이다. 3부작 중 제1부와 제2부는 결국 시각 기호에 기억을 심는 과정이었다. 이제 제3부다. 피날레(finale)다. 송민규는 제3부인 『금속과 설탕의 결합술』(2018)에서 모든 것을 걷어차 버린다. 그가 'SF 드로잉 3부작'을 설계한 것은 제3부를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모든 의미를 걷어차 버리는 무의미한 껍데기. 송민규는 이 작업을 위해 주위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이미지(포르노그래피, 광고, 영화 이미지 등)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 이미지의 일부를 지워버린다. 어떤 이미지는 90%까지 이미지를 상실한다. 재현성이 훼손되면서, 내용도 함께 사라진다. 표층의 식별 불가능성(재현성의 훼손)은 심층을 휘발시킨다. 작가는 이런 껍데기만 남은 이미지들을 중첩하고, 그것에 작가가 지닌 구성적 자율성을 발휘해 이미지를 조작한다. 이렇게 만든 작품이 「Metal and Sugar / Part 1」 연작 86점과 「Metal and Sugar / Part 2」 연작 9점, 「Metal and Sugar / Part 3」 연작 12점이다. 어떤 이미지라도 의미에 얽매이지 않고 만들 수 있는 작업, 서사를 해체하는 작업, 서사를 껍데기만 남은 추상적 시각 이미지. 하지만 '해체(déconstruction)'는 '파괴'가 아니라, 해체라는 형식의 재구성이다. 그래서 '해체'는 또 다른 '구성'이다(해체/구성).2) 껍데기만 남기고 해체하는 것은 껍데기만 남게 구성하는 것이다. 의미를 상실한다는 메타 의미를 만드는 것이다. 의미를 상실할수록 의미가 커지고 "추상적일수록 정치적이다."(김남수) 송민규는 의미를 걷어차 버림으로써 의미 없음이 가지는 더 큰 의미를 작업으로 보여주었다. 이렇게 송민규의 'SF 드로잉 3부작'은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그 번외편으로 『코드:블랙베이』에서 '달'과 '달빛', '기억 속 도시의 모퉁이'를 소환한다.

송민규_톱니들이 멈춘 날展_인천아트플랫폼 윈도우갤러리_2019

변칙적 감각번역기계 ● 『수영장 끝에 대서양』에서 구축되기 시작했던 송민규의 '감각번역기계'는 『낮보다 환한』에서 완벽에 가까운 시스템에 다다른다. 반투명하고 물컹한 '정신과 마음'(세상)이 문자가 되고, 문자가 완벽하게 이미지로 대치되는 논리적 완결성을 지닌 '감각번역기계'가 『낮보다 환한』에서 체계화된 것이다. 하지만 완벽한 과정이 완벽한 결과를 낳지만, '완벽한 결과'와 '좋은 결과'는 동의어가 아니다. '엄격한 규칙에 의해 통제되는 감각번역기계가 과연 조형적 긴장감을 줄 수 있는가?' 이것이 문제였다. 완벽한 자동 '감각번역기계'는 논리적 완결성은 지녔을지언정, 조형적 긴장감은 보장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구성에 작가가 간섭하는 변칙적 '감각번역기계'가 탄생한다. 데이터와 작가의 작위적 구성력이 결합하여 만들어내는 새로운 지평. 이 새로운 지평은 『낮보다 환한』에서 실험적 과정을 거쳐 『금속과 설탕의 결합술』에서 폭발한다. 송민규는 내러티브를 상실하고 껍데기만 남은 서로 무관한 이미지를 마치 '금속과 설탕'을 섞듯 무작위로 중첩하고, 조형적 완성도를 위해 작가 자신이 작위적으로 껍데기 이미지에 개입하여 손이 가는 대로 점을 찍고 선을 긋는다. 그럼으로써 조형적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송민규_다른합성 Other Synthesizing Part 1_ 캔버스 패널에 아크릴채색_131×220cm_2019

그렇다면 왜 작가는 이런 변칙적 방법을 사용하게 된 것일까? 그는 우리 삶 속에서 매번 반복되는 것들을 패턴화하여 완벽한 '감각번역기계'를 구축하고자 감각을 수치화하고 계량화해 나갔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는 매번 반복되는 것들 사이에 '차이'가 존재한다. 질 들뢰즈가 『차이와 반복(Difference et Repetition)』(1968)에서 반복보다는 '차이 그 자체'를 더 중요하게 인식하지 않았던가. 반복되는 삶 속에도 엄연한 차이가 있지 않던가. '완벽한 어둠'이 완벽할 수 없는 것은 '적당한 어둠'이 존재하기 때문이고, '적당한 어둠'이 존재하는 것은 밝은 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13개나 되는 달(「13개의 달」, 2018)이나 길게 늘어진 달(「펼쳐진 달」, 2018)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똑같은 달도 여러 가지의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다. '차이 그 자체'를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작가는 그것을 찾기 위해 실체에서 계속 미끄러지는 디지털카메라의 눈을 빌렸지만, 이를 통해서 하나의 사물도 시간과 보는 방식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게 됨을 알려줬다. 송민규는 여기서 머물지 않았다. 기억도 소환했다(「회색개론」연작, 2018). 이것은 정신과 마음의 '기호'가 아닌, 반투명한 낯익은 '이미지'다. 그리고 달빛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초근접해서 그 색채를 분해하고 수많은 빛망울로 그 빛의 색채를 재구성하기도 했다. 완벽한 어둠은 적당한 어둠에 자신의 자리를 양보했고, 감각번역기계는 변칙적으로 작동한다.

송민규_톱니들이 멈춘 날展_인천아트플랫폼 윈도우갤러리_2019

이제 송민규는 주체의 다면적 모습을 보여주거나(달, 기억 속 도시의 모퉁이; 「13개의 달」, 「펼쳐진 달」, 「회색개론」연작) 주체가 되지 못한 배경의 표정을 보여준다(빛망울의 달빛; 「Black Bay」연작). 다시 반투명해지고 물컹해진다. 어쩌면 처음부터 투명하지도 납작하게 눌려있지도 않았는지 모른다. 그는 벡터 이미지(디지털)를 손으로 직접 그리고 채색한다. 송민규는 물리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줄곧 반투명하고 물컹했었는지도 모른다. 어둠은 빛보다 빠르다. 그리고 세상은 기호보다 빠르다. "어둠이 더 빠를 수도 있어요─항상 먼저 있으니까요." 세상이 더 빠를 수도 있다. 항상 먼저 있으니까. 송민규의 감각번역기계는 현재 변칙적으로 작동한다. 그것은 세상이 더 빠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그의 작업이 더 아름다운 줄도 모르겠다. ■ 안진국

- 각주 1) 주은정, 「감각, 번역, 알고리즘」, 『금속과 설탕의 결합술』 전시, 2018. 2)국내에서 '해체'라고 번역되며 널리 통용되는 데리다의 대표적 용어인 '데콩스트뤽시옹(déconstruction)'은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에서 처음 사용했던 독일어 'Destruktion'를 프랑스어로 바꿔 사용한 것이다. 하이데거는 부정적인 뜻을 지닌 '파괴'와 구별하기 위해, 재구성의 의미가 함유된 '해체/구성'을 뜻하는 '데스트룩치온(Destruktion)'이나 '압바우(Abbau)'를 사용하였다.

Vol.20190808f | 송민규展 / SONGMINGYU / 宋旼奎 / painting.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