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평과 한글-나랏말싸미

2019_0809 ▶︎ 2019_0922 / 월요일 휴관

오프닝 퍼포먼스 / 2019_0809_금요일_05:00pm_성능경

참여작가 강병인_강용면_금보성_김종구_김형관_류준화 문봉선_박종회_성능경_안상수_오윤석_유승호 윤진섭_이길우_임옥상_정고암_허미자_홍인숙

관람료 / 1,000원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자하미술관 ZAHA MUSEUM 서울 종로구 창의문로5가길 46 (부암동 362-21번지) Tel. +82.(0)2.395.3222 www.zahamuseum.com blog.naver.com/artzaha www.facebook.com/museumzaha

유승호는 'echowords'시리즈 작업으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유아적인 문구와 의성어를 '한글'로 반복적으로 써 내려가는 매우 복잡하며 시간 소모적인 작업 프로세스를 거쳐 만들어진 이미지는 한편의 산수가 된다. 이 수 많은 문자들은 모이고 흩어져 옅고 짙은 농담을 표현하고 있다. 이는 멀리서 보았을 때는 익숙한 풍경으로 보이고 가까이서 보았을 때 흩뿌려진 글자로 읽혀진다. ● 유승호의 작품 안의 글자들은 잊혀진 고화를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본래 원작에 담긴 복잡한 사상적 이야기를 벗겨냄과 동시에 아이들이 자주 사용하는 유머스럽고 다소 경박한 단어들을 사용함으로 인해 이미 옛 것이 되어버린 전통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다. 유승호의 이러한 작업은 그의 장난기 어린 놀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의 최근작에서는 더욱 명랑하고 쾌활한 언어들을 사용하고 있다. ● 원작의 제목과 상반된 다소 가벼운 의성들은 원작의 무거운 이야기를 작가 특유의 재치와 해학으로 변화시킨다. 스스로를 '유화백'이라 칭하는 작가는 전통의 무게와 진지함을 가지고 있는 산수화를 파편적인 의성어를 반복하여 배치하는 방식을 통해 유머러스하게 제고하게 한다. ■

박종회_안평대군무고송이반환_순지에 담채, 유채_210×149cm_2019

한글의 조형성을 공감하여 ● 2008년 개관 이래로 몇 해 전부터 매년 안평대군과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모티브로 전시를 기획하기도 하고 이와 관련된 학술행사를 개최해오기도 한 자하미술관에서 이번에는 안평대군과 그의 아버지 세종대왕을 연결하는 고리로서 한글을 주제로 특별기획 전시를 마련하였다. 자하미술관은 안평대군의 집터 근처에 자리잡고 있다는 지리적 연고를 전시기획과 연결하여, 이로부터 파생되는 주제를 단계적으로 확산시키며 비교적 탄탄하고 꾸준하게 미술관 기획전시들을 운영해왔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처럼 조선 제 4대 왕인 세종께서 우리 백성이 문자로써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싶어도 글을 쉽게 깨우칠 수 없는 상황이라는 형편을 이해하고, 기존의 문자인 한자로는 제대로 자기표현이 안 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한글을 창제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안평대군은 한글창제에 직, 간접적으로 적지 않은 기여를 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때마침 한글과 관련된 영화가 개봉되고, 경상북도 상주에 있다고 알려진 두 번째 훈민정음 해례본에 관하여 국민적인 관심이 높은 시점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시의성 면에서도 아주 적절한 기획이라고 할 수 있다. ● 18명의 작가가 서예에서부터 회화와 입체, 그리고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를 관통하면서 우리 한글을 조형적으로 분석하고 자기화하여 작품으로 녹여내는 작업은 이미지를 중심으로 표현되는 미술 분야에서 이러한 주제에 접근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어려운 작업이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한번쯤 도전해 볼 가치가 있는 시도라고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 이번에 출품한 작가들 가운데 상당수는 1998년 안동에서 발굴된 무덤의 부장품 가운데 소위 '원이 엄마의 한글편지'라는 출토품에서 자신의 작품의 모티브를 이끌어내고 있다.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31세에 요절한 남편을 그리는 애절한 사연이 담긴 아내의 한글 편지는 그 내용에 있어서도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마치 한 편의 일기나 짧은 소설을 읽는 듯한 감흥을 주기도 하여서 글을 쓰는 작가들뿐 아니라 시각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에게도 창작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글의 내용을 떠나서 당시의 상황을 추측해보더라도 '원이 엄마의 한글편지'는 세종대왕이 백성의 심정을 표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한글창제의 취지가 제대로 구현된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 참여 작가 가운데 류준화는 이러한 원이엄마의 사연에 공감하여, 젊은 나이에 남편을 떠나보내는 임신한 아내의 애처로운 감정이 글자 하나하나에 담겨있는 그녀의 편지를 따라 써보는 작업을 통해 상상 속에서 그 현장에 참여해본다. 작가는 이 편지를 통해서 원이 엄마를 그려보고 마치 그녀의 고결함을 말해주려는 듯이 피어난 하얀 목단을 화면 중앙에 탐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부귀영화와 품격, 그리고 행복한 결혼을 상징하는 목단의 꽃말은 원이 엄마의 애처로운 처지와 대비를 이루며 한 여인이 처한 상황을 더욱 안타깝게 느끼게 해준다. 하지만 화면 상단 오른쪽에 곱게 머리를 뒤로 올려 비녀를 꽂은 원이 엄마(로 추정되는 인물)의 뒷모습에서는 현실의 어려움에 흔들리지 않고 굳세게 살아가려는 여인의 의지가 읽히는 듯 하기도 하다. ● 문봉선 역시 원이 엄마의 편지를 필사하듯이 색지에 먹으로 써내려가면서 그 여인의 마음을 더듬어보기도 하였고, 김종구는 자신의 쇳가루 글씨 작업에 대한 해석에다 원이 엄마의 서간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까지 연결하면서 자신이 만들어내는 '문자 덩어리'가 마치 원이 엄마라는 여인의 마음을 담은 '문자 응어리'로 전이된다는 각운(脚韻)의 재치와 기호학적 해석으로까지 작품의 의미를 확장시키고 있다. ● 한글을 문인화와 서예와 연결하여 안평대군을 상상하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 박종회의 작품이나 안평대군의 삶을 떠올리며 그린 강병인의 소나무의 정신, 그리고 흙과 먹을 섞어 글자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하나의 획에 에너지를 담은 임옥상의 작품 등은 안상수의 타이포그래피와 김형관의 한글자판을 형상화한 작품, 정고암의 전각 작품, 그리고 오윤석의 글자해체 작업을 통한 언캐니(uncanny)한 이미지를 창출해내는 작업 등과 함께 한글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다양하게 채택되어 작품화되는 현상을 펼쳐 보여준다. ● 허미자, 홍인숙, 그리고 강용면과 금보성의 작품에서는 한글의 형태가 회화의 중요한 조형 요소 가운데 하나로서 등장한다. '집'과 '사랑'이라는 감성적인 단어와 꽃다발을 연결한 홍인숙의 화화나 '약속'이라는 단어가 주는 사회적 의무감의 무게를 입체로 표현한 금보성의 작품은, 평면뿐 아니라 입체 작업을 통해서도 한글이라는 소재를 다루는 다양한 측면들을 보여주고 있다. 이길우와 유승호 역시 한글의 획과 자모의 형태가 화면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면서 또한 현대사회의 디지털 문화에서 익숙하게 만나게 되는 화소의 단위로서 한글의 형태가 그 기능을 담당하는 작품을 보여주기도 한다. ● 이번 전시의 오프닝에서는 성능경의 퍼포먼스가 진행되었으며 출품작 가운데에는 미술평론가이자 행위예술 작가로 활동해 온 윤진섭이 한글의 모음과 연결된 발성 퍼포먼스를 기록한 사진 연작 작품들도 함께 출품되고 있다. 이처럼 18명의 작가들이 다양한 관점과 해석에서 도출된 표현 기법을 통해 자신들의 작품과 한글과의 접점을 모색해 온 실험과 노력이 한자리에 모인 결과가 결국 『안평과 한글-나랏말싸미』전이라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이러한 해석과 표현의 다양성이 세종대왕과 안평대군을 비롯한 학자들의 한글창제에서 바라던 기대감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번 전시는 자신의 내부로 수렴해 들어가는 감성을 표현하는 작가들의 작품에서 결핍되는 역사의식과 거시적인 문화와 삶에 접목되는 개념을 작품으로 녹여내려는 노력이 읽혀진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하계훈

강병인_한글 솔_화선지에 먹_205×70cm_2019

둔중한 쇳덩어리는 오랜 기간 그라인더로 깎아내는 작가의 행위를 거쳐 바닥에 조용히 내려앉아 육중함과 공격성을 제거된 가벼운 쇳가루로 변화된다. 작가는 깎아진 쇳가루를 흘려내려 글자를 쓴다. 쇳가루로 쓰여진 '문자 덩어리' 작품은 죽은 남편을 애도하는 '원이엄마' 서간을 생각하며 내면에서 일어나는 말로 형용될 수 없는 인간의 깊은 심적 상황들을 쉼 없는 글자행위로 드러낸 인간의 내재된 한글 문자응어리이다. ■ 김종구

안상수_문자도(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00×120cm_2019
정고암_촛불_아크릴_혼합재료_164×114cm_2019

글자가 커졌다, 작아졌다, 꾹꾹 눌러 썼다, 흘러 썼다... 이승을 떠나는 남편에게 보내는 원이 엄마의 편지글은 그녀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31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진 원이 아빠에 대한 원망, 다시 볼 수 없는 남편에 대한 그리움, 아버지 없이 자라야 하는 뱃속의 아이에 대한 애처로움. 그녀의 슬픔을 어찌 짐작조차 할 수가 있을까? 내가 원이 엄마에 대해 아는 것은 오로지 무덤 속에서 발견된 편지글이 전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장의 편지 글에서 그녀의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흘러나온다. 꿈에서라도 보고 싶다는 원이 엄마의 애절한 사랑을 기리기 위해 나는 그녀의 편지글을 반복해서 써 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슬픔을 위해 편지글을 조각내었다. 조각난 글들 사이로 고결하고 순결한 하얀 목단이 그녀처럼 피어올랐다. ■ 류준화

유승호_가나다라 ga na da ra_종이에 먹_122×160cm_2019
허미자_Untitled(1)_혼합재료_194×130cm_2019
금보성_한글얼굴_캔버스에 유채_160×130cm_2001
류준화_하얀목단_장지에 아크릴채색, 먹_160×220cm_2019

나의 작품의 테제는 예술적 "치유"이고, 방법적으로는 작가의 메시지를 기호화시키고 이를 반복-중첩시켜 언캐니-이미지로 표현한다. 더불어 한지나 천 또는 영상매체, 네온 등의 물성을 작품의 구성요소로서 적극 반영하고 있다. 초기 종이 작업은 한국의 서체와 문인화, 산수화, 상징적 도상 등을 차용하고, 이 기호-이미지를 한지에 재현한 후 칼로 오려내거나, 절취된 부분을 꼬아서 원본의 이미지를 재구성하였다. 이것은 차용하고 있는 대상의 원본성을 현재의 맥락에서 재해석하려는 것이며, 명료하게 인식되는 이미지를 불명료하게 만듦으로써 예술에 대한 감각적 접근을 더욱 강화시키려는 의도이다. 그리고 한지나 천 등의 물성을 적극적으로 작품의 특성으로 유입시키려 하였다. 그리고 방법론을 확장하고자 네온의 물성과 빛을 이용하여 공간-드로잉을 실험하였고, 시간성과 반복성을 보이고자 영상매체를 활용하여 3차원의 조형성을 실험하였다. 이러한 방법의 확장 중에서 현재에는 서체와 문인화의 이미지와 텍스트성을 벗어나서 나의 메시지를 상징적 도상이나 텍스트로 추상·기호화시키고 있다. 또한 기호를 심플하게 디자인하고 이를 최소단위로 반복-중첩시켜 불분명하고 모호한 이미지이지만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의식에 접근하는 언캐니-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대상 또는 기억의 재현을 통해 어떤 고정된 이미지와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으로부터, 기억으로부터 유추된 인상을 압축하고 이를 일격성이 강한 선적인 표현들로 화면을 구성하는 방식이다. 기법적 측면에서도 칼 드로잉 대신 붓질의 반복-중첩을 통해 단일한 이미지를 구축하거나, 배경에 그려진 이미지를 물감과 목탄 등의 재료로 뒤덮어 버림으로써 텅 빈 화면처럼 보이게 한다. 이것은 초기작업의 이미지 또는 텍스트를 차용함으로서 이미지를 재구축하는 표현방식을 벗어나 나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이미지'와'텍스트'를 창출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이미지는 미와 추, 선과 악, 음과 양, 슬픔과 기쁨 등의 모든 이분법적 관념을 깨뜨리고 인간의 모든 감정이 발견되는 언캐니-이미지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 오윤석

이길우_들리는 풍경014003_순지에 향불, 장지에 채색, 배접, 코팅_125×157cm_2014
임옥상_흙 A2_캔버스에 흙, 먹_218×291cm_2018

손으로 긋던 돌맹이 막대기로 긋던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뭔가를 땅에 끄적였다./'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이전에 '태초에 일획(一劃)이 있었다'/그 일획이 그림이 되고 문자가 되었다./한글 탄생도 그 일획의 연장이다./그 일획 ㅡ 일필에 도전한다. ■ 임옥상

오윤석_Hidden Memories? Good Place_ 패널, 캔버스에 종이, 아크릴채색_180×90cm×2_2013
김형관_Flowering 개화기_래디언트 라이트 필름_100×200cm_2019
강용면_온고지신_아크릴, LED_55×90×10cm_2019
윤진섭_어법Diction2019_사진_2019
성능경_한글·말·씀_퍼포먼스_00:07:21_2019
홍인숙_행복_드로잉, 판화_120×150cm_2009

나는 나의 삶과 예술, 나의 일상과 예술이 일치돼 이 둘이 전혀 구분이 되지 않는 상태를 지향한다. 그럴 경우 예술이란 이름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삶에서 예술이란 이름을 떼어버릴 때 삶은 지고의 순수한 상태로 남게 될 것이다. 내가 요 근래 부쩍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예술과 자본'의 관계에 대한 논평과 그것의 사회적 실천으로서의 활동은 얼책(facebook)과 일상적 공간, 예술적 공간(갤러리, 미술관 등)을 두루 관통하며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이 활동들이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긴밀히 연관돼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예술이 삶에 깊숙이 파고 들 때 예술은 보석처럼 빛난다. 오오, 빛나는 일상이여, 삶이여, 삶 그 자체여! ■ HanQ

Vol.20190809d | 안평과 한글-나랏말싸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