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cophony : Shuffle Cards 카코포니 : 셔플 카드

박규석_박운형_윤보경_정지윤_현미展   2019_0812 ▶︎ 2019_0831 / 일요일 휴관

초대일시 / 2019_0812_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30pm / 일요일 휴관

갤러리 분도 Gallery Bundo 대구시 중구 동덕로 36-15(대봉동 40-62번지) P&B Art Center 2층 Tel. +82.(0)53.426.5615 www.bundoart.com

카코포니 전시가 15회를 맞이했다. 적잖은 시간이 지나갔다. 카코포니는 신진작가 프로모션이라는, 이제는 조금 식상해진 개념으로 벌어지는 이벤트다. 우리는 미술대학을 졸업한 당해 연도의 작가 가운데 소수를 가려서 전시를 치러왔다. 그 결과를 자부해도 좋을 만큼 카코포니를 거쳐 간 이들 가운데 많은 작가들이 활동 중이다. 우리는 최근 몇 년 간 한국 미술계에서 벌어지는 여러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카코포니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 프로그램이 늘어났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좋은 일이다. 올바른 취지에서 이루어진 기획은 미술에 그만큼 기여하는 바가 있을 것이고, 그 사례가 적은 것보다 많은 게 당연히 좋다. ● 여기에 우리는 이 전시를 통해서 카코포니가 기록한 지난 일과 지금, 그리고 앞날을 바라보려고 한다. 작업 활동을 시작하는 젊은 세대들을 주시하는 일에 갤러리 분도가 선도적인 활동을 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시기적으로는 빨랐지만 최초도 아니고, 오랜 역사를 쌓았어도 완벽한 기획으로 기능하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는 가운데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은 흔히 볼 수 있는 미술의 일상사가 되었다. 우리의 카코포니 또한 이런 분위기 속에서 관성적으로 흘러가고 있던 건 아니었는지 반문을 거듭하고 있다. 이런 문제의식 아래에서 치렀던 『카코포니 리마인더』展(2017)은 역대 전시 참여자 가운데 미술계에서 버티고 있는 생존자들을 가려서 그들의 현재 모습을 확인하는 기획이었다. ● 거기서 얻은 유무형의 정보를 바탕으로 우리는 유행처럼 번져나간 신진작가전의 판을 흔들어 깨우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보여주고자 하는 우리의 시도가 크게 파격적인 것은 못된다. 작가를 가리는 기준을 이미 현장에 한 발 내딛은 작가(여전히 신진 또는 청년작가겠지만)로 넓혔다. 대학원 재학생을 포함하는 기준을 잡았는데, 여러모로 안정되지 못한 원칙으로 두기는 했지만, 내부 진통을 겪기도 했다. 창업자 사후 애플사의 제품에 대한 정체성 논쟁이 벌어진 것을 보면서, 뭔가가 플러스(+)된 개념이 우리에겐 필요했다. 그 결과가 여기서 보여주는 셔플(뒤섞기)이다. 우리는 이 판에서 카드 게임의 패를 다시 섞듯 스스로를 갱신하고자 한다.

박규석_Endless game_캔버스에 유채_227.3×181.8cm_2019

박규석은 밤에 집으로 돌아가는 어두운 숲길에서 마주하는 감정을 「달빛중독」의 세계로 펼쳐 보인다. 작가의 망막에 기록된 일상의 풍경은 아크릴과 오일, 락카 같은 색 재료로써 구별된 층위로 겹쳐진다. 어둠을 밝히는 달빛은 앞으로 더듬더듬 나아가는 이의 진로를 오히려 혼란스럽게 만든다. 현실을 비추는 회화 속에서 달빛은 한 개인이 거스를 수 없는 사회 구조로 표현되며 어떤 면에서는 현실을 바로 보게 한다. 작가는 일종의 열린 결말을 제안하며 관객이 달빛에 물든 스스로의 이야기를 완성할 조건을 그림 속에 장치해 둔 셈이다.

박운형_보다, 정원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6.8×91cm_2019

권태로운 하루를 콜라주 형식으로 그린 박운형의 「정원」은 아주 사적인 것들의 집합체다. 등굣길에 발견하는 색바랜 표지판, SNS에 스쳐가는 이미지, 집에서 키우는 식물이 그것이다. 일상에서 수집한 이미지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작가의 손끝으로 이어진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관객 앞에 펼쳐진 낯선 정원은 각자가 꾸밀 법한 정원으로 공감을 이룬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정원을 대하는 태도 정도일까. 그리는 행위를 통해 해방감을 느끼는 박운형의 정원은 역설적이게도 단조로움과는 거리가 먼 자유롭고 유쾌한 감정의 안식처이다.

윤보경_누군가의 성_혼합재료, 단채널 영상_250×90×50cm, 00:03:00_2019

윤보경의 서랍장은 화려함으로 둘러싸여있다. 형형색색으로 장식된 서랍장에서는 웅성거림 비슷한 게 들린다. 귀기울여보면 그 웅성거림은 불편한 이야기들이다. 작가는 주변에서 채록한 인터뷰 사운드를 어린 시절에 그랬듯 서랍 속에 숨긴다. 흘려듣는다면 별 의미 없지만, 목소리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이면 그것은 우리 옆에 도사린 어두운 사건들이다. 화려한 겉 속에 감춰진 추악함을 드러내는 건 용기가 필요하다. 작가는 그 실천이 예술행위의 한 가지란 사실을 보여준다.

정지윤_아파트신화_혼합재료_66×45×48cm_2019

정지윤은 사회 체계의 관습에 물음표를 단다. 그 물음표는 작가가 만들어낸 가상의 세계관에서 튀어나온 별종으로 묘사된다. 또 그것은 투박하기 그지없는 아파트 형상으로 현실에 그림자를 드리우기도 한다. 작가는 개인의 삶이 사회 속에서 작동하는 부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무력감을 묘사하고 있다. 이 치밀한 세계에서는 일탈 자체가 용납되지 않고, 작은 해방의 공간도 쉽사리 허락되지 않는다. 「원래 그래왔다」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 아파트라는 주거환경 속 삶을 인질처럼 비유하는 묘사가 이루어진다. 그 자체가 자산이지만 동시에 긴 시간동안 갚아야 되는 빚 덩어리로서의 아파트라는 현실이야말로 안락하지만 구속된 삶 아닌가.

현미_Ride a Rabbi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3×130.3cm_2018

도시에서 벌어지는 황망함 중 하나가 쉴 새 없이 변하는 주변 경관일 것이다. 현미는 자신이 생활하는 공간의 변이과정을 캔버스에 옮기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공사판의 비계와 방진부직포는 더 이상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결코 유쾌할 수 없는 그 이미지들은 뇌리 깊이 자리 잡은 옛 풍경과 겹친다. 작가가 느낀 상실감은 누구나 겪어봄직한 느낌이므로 그 자체가 특별할 건 없다. 벌어지는 일들로부터 눈을 떼지 않고 기록하는 이 행위가 작가에게 어떤 유의미를 획득하는지도 중요하지만 그림을 마주한 이로부터 씁쓸한 웃음을 짓게 만든다면 이미 누군가의 마음에 가 닿은 것이 아닌가. 평범함 속에서 이끌어내는 특별함이야말로 현미가 그리 길지 않은 작가 이력 속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다. ■ 조준호

Vol.20190812a | Cacophony : Shuffle Cards 카코포니 : 셔플 카드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