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외출

이아름展 / LEEAHREUM / 李아름 / painting   2019_0814 ▶︎ 2019_0820

이아름_지금, 여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3.4×45.5cm_2019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디아트플랜트 요 갤러리 THE ART PLANT Jo Gallery 서울 중구 명동길 74 (명동2가 1-1번지 명동성당) 명동 1898광장 B117호 Tel. +82.(0)2.318.0131

가보지 않은 곳을 여행하기: 이아름의 회화1. 동시대 트렌드를 설명하기에 '여행'만큼 적합한 단어가 있을까. 대다수의 TV 채널에서 방영하는 여행 예능 프로그램과 해외 로케이션 드라마, 대형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를 가득 메운 여행 서적, 각종 미디어를 통해 쏟아지는 여행 상품 광고는 우리 일상을 지배하는 문화가 여행임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현상은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가속화되었다. 우리는 여러 디지털 매체로 손쉽게 지구촌 곳곳의 풍경을 본다. 굳이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인터넷 검색이나 가상현실을 통해 세계의 다양한 장소에 관한 정보와 생생한 이미지를 접할 수 있는 것이다. ● 미술평론가이자 큐레이터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는 2009년 '얼터모던 선언(Altermodern Manifesto)'에서 점증하는 커뮤니케이션, 여행, 이주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예술가들이 전 지구화된 지각에 반응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동시대 예술가를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라고 일컫는데, 호모 비아토르란 '여행하는 인간' 혹은 '떠도는 인간'으로 해석될 수 있는 개념이다. 이는 실존주의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Gabriel Marcel, 1889-1973)이 1951년에 발표한 책 제목이기도 하다. 마르셀에 따르면 인간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여행자의 특징을 지닌다. 즉 인간은 그 자체로 여행자이며 세상에 잠시 머물렀다 떠나는 나그네다(홍승식, 『가브리엘 마르셀의 희망의 철학』, 가톨릭출판사, 2002, 11쪽 참조). 삶이 곧 여행인 것이다.

이아름_집나간 마음을 찾습니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5.7×53cm_2019

화가 이아름이 지난 10여 년간 그림에 담고 있는 주제 역시 여행이다. 그녀는 주로 이국적인 풍경을 그린다. 에펠탑, 런던아이 같은 대도시의 랜드마크와 중세의 교회당이 있는 고풍스런 마을이 그림 안에 등장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러한 풍경이 오로지 작가의 여행 체험으로부터만 비롯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아름은 그림을 통해 자신만의 상상 여행을 떠나고, 사진, 영상자료를 바탕으로 누구나 한번쯤은 보았을법한 이미지들을 연결한다. 그러한 가운데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결합 혹은 이질적인 조합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하와이를 연상시키는 플루메리아 꽃을 스페인의 마을 풍경과 병치하는 식이다. 뿐만 아니라 화가의 상상력이 작동됨으로써 실제 대상의 형태나 색상이 바뀌어 화면 위로 재배치된다. 아크릴 물감을 묽게 써서 채색하지만 다양한 물감을 섞어 마음에 드는 색을 찾은 후 이를 여러 겹 올리는 과정을 거친다. 이렇게 이아름 특유의 강렬하고 독특한 색감이 완성되는 것이다. 작가가 그림 속 여정을 펼치는 가운데 공간은 재구성되고, 어디선가 본 듯하나 낯선 풍경이 탄생한다.

이아름_내게 머물 곳을 주세요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45.7cm_2019

2. 그런데 이아름의 그림에는 사람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대에게 가는 길」(2009), 「그렇게 우리는」(2014), 「너만을 기다리며」(2017)와 같은 작품 제목에서 때때로 인간관계가 암시될 뿐이다. 대신에 비행기, 트럭, 버스 등 어디론가 이동할 때 필요한 운송 수단이 등장한다. 가장 빈번하게는 'TAXI'라고 쓰인 노란 자동차가 나타난다. 인간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는 없으나, 작가는 '노란 택시 안에 내가 있다'라고 말한다. 일명 '옐로 캡(Yellow Cab)'은 대도시 뉴욕을 떠올리게 하지만, 이아름이 '노란 택시'라고 부르는 자동차는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화가의 분신인 것이다. 그것은 종종 통상적인 택시 형태에서 벗어나 지프나 트럭, 버스가 되기도 한다. 이밖에 그림에서 주로 보이는 소재는 바로 화분에 담긴 식물 또는 커다란 나무들과 풍성한 꽃이다. 자작나무, 사과나무, 오렌지나무, 히아신스, 등꽃, 해바라기 등 다채로운 식물이 화면에 생명력을 더해준다. 운송 수단이 이동을 암시한다면, 대지에 굳건히 뿌리내린 식물은 정착을 상징하는 존재일 것이다. 그런가하면 화분 속 식물은 이동 가능하면서도 누군가의 지속적인 돌봄이 필요한 대상이다.

이아름_언젠가, 아마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0.9×31.8cm_2019

이아름은 자신의 첫 작품으로 「세계 일주」(2007)를 꼽는다. 화가 경력의 출발점이라는 의미와 더불어, 작품 세계 전반의 특징을 파악하기 위해서 주목해야하는 중요한 그림이라고 판단된다. 가로로 긴 이 작품은 규격 캔버스에서 벗어난 1:3 비율이다. 화면 가득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일본어 간판이 있는 가게, 풍차, 뉴욕의 어느 거리에서 마주칠 법한 주택, 도로변보다는 해변과 어울릴 파라솔, 에펠탑 등이 나란히 놓인다. '도쿄', '프랑스', '파리'라고 쓰인 이정표도 서 있다. 하단에는 도로가 좌우로 길게 펼쳐지는데, 여기에도 어김없이 노란 택시가 등장한다. 작가는 일본의 후쿠오카 여행을 다녀온 직후에 이 그림을 제작했다고 한다. '일본의 네덜란드'라고 불리는 하우스텐보스에 대한 인상이 강렬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소위 혼성적 공간은 우리 주변에서도 얼마든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대표적 사례로 국내 곳곳에 조성된 '스위스 마을'이니 '프로방스'만 보아도 그렇다. 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가 말한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인 것이다. "헤테로토피아는 보통 서로 양립 불가능한, 양립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 여러 공간을 실제의 한 장소에 겹쳐 놓는 데 그 원리가 있다"(미셸 푸코, 『헤테로토피아』, 이상길 옮김, 문학과지성사, 2014, 18-19쪽). 「세계 일주」에서 화가 이아름만의 구성을 통해 더욱 과감하게 물리적 시공간이 탈피되고 단절된 간극이 이어진 것이다.

이아름_밤의 공원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53cm_2019

「세계 일주」처럼 이아름은 수직이나 수평으로 긴 변형 캔버스를 활용한다. 이러한 그림 앞에서 감상자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좌에서 우, 우에서 좌 또는 위에서 아래, 아래에서 위로 이동한다. 동양화의 두루마리 혹은 족자와 비슷한 형식인 것이다. 화면을 과감히 비우고 여백을 강조하는 것도 동양화와 유사한 지점이다. 텅 빈 공간은 보는 이들에게 그만큼 열린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또한 화가는 캔버스와 캔버스를 경첩으로 연결하여 병풍처럼 세우는 방식으로 회화 설치 작업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렇듯 자연스럽게 감상자의 움직임을 유도하는 다양한 형식은 여행을 그리는 그녀의 작품과 잘 어울리는 시도이며, 앞으로도 계속 발전시켜볼만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이아름_그날 그때, 나와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7.8×37.8cm_2018

3. 줄곧 여행을 주제로 하여 상상으로 빚어낸 풍경을 그려왔고 대체로 비워낸 공간을 강조했지만, 일부 작품에서는 패턴화된 구성이 나타나고 있다. 화가는 몇 해 전부터 이러한 변화를 모색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수직 줄무늬를 배경으로 원형과 8각형 프레임 안에 유사한 풍경을 배치한 작품 「그날 그때, 나와」와 「그날 그때, 너와」(2018)가 그렇다. 제목에서 암시되고 있듯, 두 그림은 하나의 쌍을 구성한다. 그림 속 그림의 형식을 취함으로써 같은 장소를 여행하더라도 다르게 보기 마련인 개인의 시각 차이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열망과 기대를 품고 어떤 장소를 방문하지만 우리는 시간적, 물리적 한계로 그곳의 일부만을 경험할 뿐이며, 같은 시간, 같은 곳에 함께 갔던 이들도 각자 다르게 보고 다른 것을 기억한다. 이와 같이 두 그림은 우리 기억과 지각의 파편적인 특성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 이아름은 오늘도 화폭 위에서 상상의 여행을 떠난다. 앞서 언급했던 가브리엘 마르셀의 주장처럼 인생이 여행일 뿐 아니라, 화가에게는 어쩌면 그림을 그리는 행위와 그 시간 자체가 여행일 것이다. 선을 긋고, 색을 칠하면서 화가는 화면 속 공간을 걷는다. 그와 동시에 그림은 현실의 테두리를 벗어나 숨쉴 수 있는 자유와 소망의 공간이 된다. 누구에게나 여행은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이면서 또 다시 새롭게 삶을 이어갈 에너지를 얻는 시간이듯, 이아름에게도 그림은 자기를 성찰하는 과정이자 일상을 지탱할 힘을 제공하는 장소일 것이다. 요컨대 여행과 식물이라는 일관된 화두를 다루는 그녀의 그림은 이동, 이주, 여행을 둘러싼 우리 시대의 문화, 그리고 늘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고자 하는 욕망과 안정적 정착에 대한 바람 사이에서 동요하는 인간 본성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가 전시장에서 마주하는 이아름의 그림은 이처럼 서로 상반되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한 여정의 결과일 것이다. 이제 그녀의 행로를 따라 그림 속 공간으로 들어가 보자. ■ 김보라

이아름_냉정과 열정사이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5×53cm_2018

여행이 나를 부른다. 내게 '먼 곳으로의 여행'이라는 걸 구체적으로 꿈꾸게 한 것... 다른 사람들의 여행이나 영화 속 다른 매체들을 통해 보여주는 여행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나는 끙끙 앓고, 그러다 여행을 준비하는 준비자의 설렘이 가득한 마음으로 상상으로 여행이 시작된다. 빤한 코스, 빤한 비주얼의 풍경들, 파스텔 느낌의 여행 기행문들 남들에게는 빤한 모습이지만 나에게는 새롭고 신비로운 곳으로 내 마음으로 끙끙 앓게 만든다. ● 단편적인 여행지의 모습으로 가득한 이미지들은 나의 상상 여행 속에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곳이 어디든지 말도 안 되는 곳 일지라도 나의 상상 속 여행지는 그런 풍경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어색하지 않게 모두 자연스럽게 풍경을 연출하고 있으며,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그들이 그곳을 본 듯한 착각과 실제로 있는 풍경들로 보여 작가가 여행을 다녀와 그려낸 풍경인 것처럼 보여주게 된다. ● 이젠 작가인 나에게 여행 속 상상적 풍경 속에서 여행만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머물 수 있는 곳도 찾아가고 있다. 나에게 인간의 거처로서의 집에 대한 질문, 그리고 무엇이 됐든 자신을 향해 질문하게 만드는 여행에 대한 욕망. 반대적 이지만 서로가 부딪치면서 여행의 자유와 나만의 공간에서의 평온을 서로가 서로를 원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 이아름

Vol.20190814g | 이아름展 / LEEAHREUM / 李아름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