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 좋아요

변웅필_서용선_오창근_주재환展   2019_0823 ▶︎ 2019_0915 / 월요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기획 / 홍성미

관람시간 / 11:30am~06:30pm / 월요일 휴관

인디프레스_서울 INDIPRESS 서울 종로구 효자로 31(통의동 7-25번지) Tel. 070.7686.1125 www.facebook.com/INDIPRESS

기획의도나는 누구인가 - 좋아요 ● 예술가에 있어 자화상은 어떤 의미를 갖는 가? 자화상은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그린 그림으로 자신의 인생과 예술세계를 담아낸 작가의 정신세계로 볼 수 있다. 자화상은 유사 이해 많은 작가들에 의해 그려졌는데 15세기 얀 반 에이크는 작품 배경에 존배한다는 증인으로서 작게 그려졌으며, 내면의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서 자화상을 그린 뭉크, 뒤러는 자부심 담은 자화상을 그렸었고, 내면의 모습을 초현실적인 표현방식으로 상징적 자화상으로 그려 낸 프리다 칼로가 있었다. 오늘날 현대미술에서의 자화상은 어떤 모습일까? 현대미술에서는 자화상의 제작방식과 재료, 기법 또한 다양해져서 신디 셔먼(Cindy Sherman)은 자기 스스로를 작품의 모델 화 시키는 셀프 포트레이트(Self-Portrait) 기법을 활용한다. 자신을 성별, 나이 등을 다른 사람으로 나타냄으로써 억압된 여성의 권리에 문제의식을 제기 하기도 했다. 또한 생트 오를랑 경우, 자신의 얼굴을 캔버스 삼아 성형수술을 통해 변화되는 자화상으로 남성들의 시각에 규정된 대상화된 여성미에 맞서는 자화상 작업을 하기도 했다. 이렇듯 미술에서 자화상은 결국 작가 자신의 현실을 투영하게 된다. ● 요즘 현대인들은 소소한 일상 속에서도 직접 자신을 촬영하는 셀피가 정착된 사회이다. 과거 셀카가 없었을 때는 화가의 초상화를 통해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누구나 자신의 욕망을 표현할 수가 있다. 이를 셀카족 현상(셀피족) 이라고 한다, 셀카에서의 자신의 촬영은 자신의 기록과 함께 자기과시, 타인의 시선과 관심받기 등 나르시시즘의 욕망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자기안의 셀카에서 이를 외부로 소통하고 공유하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이에 대한 '좋아요' 반응 현상은 현대 사회에서 우리의 관계 단절을 드러내는 동시에 이를 극복하려는 나름, 또 다른 자화상과 같다고 볼 수 있다. ● 여기에서 작가들의 자화상에서는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말할 것인가? 였다면 현대인의 셀카에서는 '나는 어떻게 보여 질 것인가?'의 차이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 이번 전시에서는 화가의 자화상을 보여주고자 한다. 전시를 통해 우리의 자아와 내면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면서 화가의 얼굴인 동시에 동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얼굴을 대변하는 작가의 자화상을 보여줄 예정이다. 또한 이번전시는 관객참여 형으로 전시장 내 외에서 셀카로 찍은 사진을 작가작품과 함께 설치 할 수 있게 공간을 만들어 관람객과 함께 전시하고자한다. ■ 홍성미

변웅필_한 사람으로서의 자화상-능소화_캔버스에 유채_120×100cm_2016
변웅필_한 사람으로서의 자화상-담쟁이_캔버스에 유채_120×100cm_2016
서용선_그림 그리는 남자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9×145.5cm_2007~10
서용선_자화상_파리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92.2×149cm_2015
오창근_Portrait11_소노그래프
오창근_Spreading Phonography screen
주재환_아버지 주님께 연봉을_종이에 혼합재료_41×28.5cm_2019

나를 그리다.1. 주지하다시피 자화상은 자신이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사진 속에 담긴 모습이나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이는대로' 옮겨 그린 결과물이라기보다는, 자기가 아는 자신을 이른바 '아는대로' 그려낸 그림이다. 또는 자기가 아는 자신을 스스로 거부하는, 그리하여 전혀 닮지 않은 누군가를 담아낸 '부정의 미학'으로서 생산물이기도 하다. 따라서 자화상은 자신의 현재적 '모습'을 닮게 그려낸다기보다는 작가가 자신과의 싸움 속에서 만난 성질(性質)로서의 '자신'을 회화적으로 복기(復棋)하는 것이다. 그림에 담길, 사물화될 대상으로서의 자기 '모습'이 아니라, 육화된 경험과 생각을 끄집어내어 버무려 놓은, 자기 속에 내장된 물질로서의 살아 있는 '정신'인 것이다. ● 이런 이유로 자화상은 작가의 생각과 감정을 따라 들어가 볼 수 있는 매력적인 기제로 작용한다. 화가 자신만이 알고 있는 화가의 속심을 훔쳐보거나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화가의 자화상은 특별한 관전 포인트를 지닌, 효과적 '소통기제'라 하겠다. 보는 이를 의식한 자화상이라기보다는 그리는 자신의 정신을 치열하게 오롯이 개입시키기에 평소 사진이나 이런저런 매체를 통해서 접한 얼굴 인상보다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줄 수밖에 없는 이유다. ● 자화상은 작가의 '자기결정' 이외의 다른, 여타의 외적 부담이나 개입 없이 이루어지는 독특한 형식과 성격의 작업이다. 작가의 이른바 '내적 독립성'이 가장 빛나는 과정이요 결과물이다. 미술의 역사를 돌아보면 자화상을 많이 남긴 화가가 있고 자화상을 남기지 않은 화가도 있다. 그렸다가 이내 지워버리거나 버려 버리는, 혹은 공개하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남에게 공개하기보다는 스스로가 스스로를 위해 그리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반면 다른 작품보다 자화상으로 더 유명한 작가도 있다. ● 이렇듯 화가의 자화상은 다른 그림과는 다른 특별한 성격을 가진다.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짓고 강조하는, 또는 부정한 특별한 자기활동이기 때문이다. 화가가 스스로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드문 형식의 작업이라는 의미에서 자화상은 작가의 창작 활동 중에서 가장 빛나는 자기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작가 자신의 개인적 정체성을 구성하는 주요한 요소인 삶의 '의지와 경험'이 오롯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 자화상은 작가 자신에게는 자신의 사고와 감정, 욕망을 극명하게 강조하거나 왜곡, 과장한 긍정과 부정의 이중적 결과물일 수 있다. 작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런저런 감정과 욕망을 숨기려는 자기부정의 자화상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고 설득하려는 의미의 자화상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관객들에게는 다른 작품과는 달리 작가의 삶의 역사와 삶의 역사가 주는 생각과 조건들을 따라 들어가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임에는 분명하다.

2. 작가 자신에게 있어 만족스런 자화상은 작가 자신이 평소 그려보는 자신의 외적, 내적 자아상(自我象)과 부합하는 결과물로서의 자화상일 것이다. 훌륭한 자화상은 그것을 그린 작가 자신이 자신의 자화상을 편안하게 생각하기보다는 자신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며 스스로를 극복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그려낸 경우라고 생각한다. 이번 전시는 네 명의 작가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그 질문에 대해 생각해본 과정을 담은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전시제목처럼 보기 드문 전시이자 기획자, 작가 모두에게 힘든 과정이었을 것이다. 다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각각의 작가가 자화상의 형식에 담아내려고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또 그들이 담아낸 것이 무엇이고 왜 그런 형식을 취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 자화상은 구체적으로 묘사된, 또는 이른바 극사실적으로 형상화된 자화상으로부터 추상적인, 해체된 모습의 파편화된 자화상, 극단적인 자기표현 중심의 자화상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다. 이번 전시 출품작은 주로 물감을 두텁게 바르고 거친 붓질로 그려낸 것(서용선)으로부터 어떤 부가적인 모티프나 이미지를 개입시켜 나타낸 경우(변웅필), 자신의 일상과 생활로부터 길어 올린 오브제들을 통해 우회적으로 나타낸 작업(주재환), 영상기기 등과 같은 장치나 매체를 활용한 설치형식(오창근)의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인 방식으로 제작된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 변웅필은 선입견과 편견의 울타리 속에서 상당 시간을 살아낸 이방인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우리가 믿고 있는 나와 우리 자신에 대한 인식틀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회화적 논리가 분명한 작가 서용선은 자기인식의 역동성을 강조하고 있다. 자신의 형식적 모습보다는 '생명 발산체'로서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칼맛을 연상시키는 특유의 붓질이 압권이다. 오창근은 디지털 거울에 관람객의 모습이 비춰지는 이른바 인터랙티브 작업을 선보인다. 관객과 주변의 소리에 의해 영상이 변하는 작업으로 고정되지 않은 생물로서의 자화상이다. 주재환은 자신과 자신의 삶이 관계한 일화를 중심으로 자화상을 제작했다. 자신을 화면 속에 등장시키기보다는 일화 속에 등장하는 사물들을 통한 은유적 자화상을 선보이고 있다. ● 이들의 자화상은 작가가 자기 스스로를 알기에 스스로를 모티프로 삼아 담아낸 과정이요, 지적 결과물이다. 자기 자신과의 도덕적 친밀감이나 자신으로부터의 내적 필연성을 강조하기보다는 일정한 비판적 거리를 두고 자신의 현재와 현실을 확보하려는 노력이다. 현재적 삶의 과정 중에 자신의 물리적, 심리적 현재를 확인하려는 지성적 고민이자 미학적 탐구물이다. 자신을 그리면서 스스로를 알아내려는 철학적 질문이요, 과정에 다름 아니다. ● 자화상은 작가 자신이 자신을 결정하는 드문 작업기제일 것이다. 자화상의 또다른 매력은 그리는 작가 자신이 화제와 화두가 된다는 점이다. 또한 그리는 자신이 누구이며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자신이 하고 있는 일, 즉 예술의 어법과 화법, 작법으로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는 점이다. 그 과정의 시종을 함께하며 지켜보며 그러한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는 과정을 오롯이 경험하는 것으로, 때론 자신을 걷잡기 위한 성찰의 도구이자 필살기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자화상은 보는 이의 관점에서 흥미롭고 매력적이기에 충분하다.

3. 어떤 화가는 그림보다 판화로 자신을 담아낸다. 작업이 풀리지 않을 때, 지치고 답답할 때 골방에 틀어박혀 나무를 깎는다. 땀을 흘리며 때론 칼에 손을 다쳐 피를 흘리며 자신의 현재를 걷잡고 찾으려는 노력을 마다하지 않는다. 혹자는 해당 작가의 그림보다 판화가 더 좋다고 말한다. 판화로 제작한 자화상으로 개인전도 열었다. 이 작가에게 자화상은 어떤 의도된 미적 장치나 개입 없는 일종의 맨손으로 펼치는 싸움과도 같다. 화가 자신과 판 속에서 자신이 끄집어내려고 하는, 판 속에 박혀 있는 또다른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이다. 둘 사이의 밀고 당기는 낑낑거림 속에 솔직하고 담백한 그만의 명작이 탄생하는 뜨거운 과정인 것이다. ● 조각가들의 자소상, 자각상을 포함한 화가들의 자화상은 오래토록 자기성찰의 도구이자 소통의 방식으로 이어질 것이다. 자기감정에 대한 이해와 분석을 위한 미학적 성찰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시류나 사회의 변화에 크게 반응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자화상을 그리는 작가들은 대체로 자의식(自意識)이 강하다. 이들에게 자화상은 저마다의 영육 속에 내장되어 있는, 견지하고 있는 강한 의지와 다짐의 발현이기도 하고 자신의 지난날과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에 대한 강한 성취동기이기 때문이다. 특히 자화상은 감춰진 감정들을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드러내는 과정이자, 고정되거나 최종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특별한 매력과 지점을 점하고 있다. ● 화가가 그림을 그린다는 것, 특히 자화상을 그린다는 것은 달콤한 잠에서 깨어나려는 자각적 의지에 다름 아니다. 과거 한 대학에서는 학교를 졸업하는 졸업생들에게 저마다의 자화상을 그려 제출토록 한 적이 있었다. 이런저런 도전과 성취 그리고 좌절과 욕망이 충돌했던 대학시절에 그려본 자신의 자아상(自我象)은 무엇이었는지 졸업전시에 자화상을 함께 출품해도 좋겠다. 이번 전시가 관객들에게 저마다의 자화상을 나름의 작법으로 그려보는 계기로 작용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 박천남

Vol.20190823i | 나는 누구인가 - 좋아요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