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 - 군집의 모양새

김부희展 / KIMBOOHEE / 金富希 / painting   2019_0828 ▶︎ 2019_0923 / 일,공휴일 휴관

김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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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희 홈페이지_kimboohee.com

초대일시 / 2019_0905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아트스페이스 호리팩토리 ARTSPACE HORI FACTORY 서울 마포구 동교로 79 바우빌딩 2층 Tel. +82.(0)2.335.5482

이미지-서사에 접속하기 ● 사람은 누구나 시공간에서 살아간다. 시공간은 순수하고 절대적인 것 같지만 사실 매우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것이다. 1.5평 남짓 감옥에 사는 죄수에겐 하루가 억겁의 시간일 테고, 게임하는 아이에게는 1시간이 1분 같이 지나간다. 우리의 지각 경험을 강조한 프랑스의 철학자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는 데카르트가 설명한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순수한 시공간이란 없으며, 우리가 지각할 때에 시간과 공간이 동시에 탄생(co-naissance)하는 것이라 했다. ● 그렇다면 이 빨간빛의 공간은 김부희의 인물들이 이러저러한 모습으로 자리잡음과 동시에 나타난 것이다. 화폭 속 인물들은 내가 그들을 지각함과 동시에 발생한 존재들이다. 비록 그들이 뒷모습만 보이고, 눈과 입이 지워져 나와 의사소통할 수 없을지라도, '그들이-있음'(il y a le monde)을 부정할 수는 없다. 프랑스어로 'monde'는 '세계, 세상, 우주'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사람들, 친구들, 주위사람들'이라는 의미도 함께 갖고 있는 단어이다. 김부희의 사람들(monde)은 쓸쓸이 혼자 남겨진 듯해도 이 공간에서 옆, 아래 화폭에 다른 사람들이 있음을 깨닫게 만든다. 결국 김부희의 세계(monde)에서 느껴지는 소외감(alienation)은 절대소외가 아닌 타인에 대한 기다림, 소통에 대한 희망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 이러한 '사람들이-있음', '세계의-존재'(il y a le monde)에 대한 경험은 과거-현재-미래의 중첩을 전제로 한다. 화폭의 인물들이 아직 미완성이거나, 소멸되어 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직 도래하지 않은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다른 곳을 향해 가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다시 메를로-퐁티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은 세계와 살(chair)로 얽힌 삶을 표현하며 살아가며, 이 표현은 항상 미완성이며 반복을 특징으로 한다. 김부희는 작가 주변에서 인체의 살을 지닌 진짜 사람들과, 인터넷 뉴스에서 이미지로 만나는 픽셀로 된 살을 지닌 사람들을, 물감의 살을 입혀 표현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의 반복 행위가 프레임 안에 그 만남들을 가두어 놓고 기억하기 위함은 아니다. 화폭 위의 인물은 스냅사진처럼 어느 한 순간을 잘 포착해 고정시켰다기보다는 오히려 캔버스와 종이 위에서, 벽과 바닥에서 끊임없이 이동하고 움직이는 듯하다. 작가의 채색 행위는 그들이 실존했던 시공간 또는 사진 속 시공간을 그녀의 아틀리에의 시공간으로 중첩시키는 활동이다. 이 인물들은 어느 한 순간도 포획되거나 고정되지 않고 커다란 시공간의 흐름 속을 통과하며 다른 곳으로 향해간다.

김부희_타임슬립 - 군집의 모양새展_아트스페이스 호리팩토리_2019
김부희_타임슬립 - 군집의 모양새展_아트스페이스 호리팩토리_2019
김부희_타임슬립 - 군집의 모양새展_아트스페이스 호리팩토리_2019
김부희_타임슬립 - 군집의 모양새展_아트스페이스 호리팩토리_2019
김부희_타임슬립 - 군집의 모양새展_아트스페이스 호리팩토리_2019

작가의 눈에 포착되었던 사람들은 그 순간 쓸쓸히 남아 있거나, 얼굴을 가리고 수심에 젖어 있거나,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길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곳에서 그들은 군집을 이루며 다른 사건들을 발생시킨다. 우리에게 뒷모습을 보이며 뒤돌아가던 청년은 그를 건물 안에서 기다리는 친구를 만나러 가는 모습이 되기도 한다.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화폭 너머 홀로 있는 다른 이(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기도 하다. 이것은 회화가 만들어내는 이야기이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단선적으로 읽히는 글로 쓰인 이야기와 달리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서사는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순환할 수도 있고 전혀 개연성 없는 것과의 만남도 허락한다. 이렇게 커다란 계열을 이루며 흘러가는 이미지-서사(image-narrative)에서 김부희는 무엇을 재현하려 하지 않는다. 단지 인물들이 화폭에 매여 있으려 할 때 물꼬를 터주고 움직일 길을 만들어줄 뿐이다. 흰 빛의 틈을 내어주고, 검은 심연의 또 다른 공간이 있음을 보여주고, 상상의 또 다른 손을 그려주어, 인물들이 화폭 밖 공간으로 다른 시간을 살고 있는 세계로 나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김부희의 인물들이 무수한 이미지의 계열을 통과해가는 가운데 새로운 이야기는 생성된다. 물론 이 이야기는 하나가 아니다. 이들이 오가는 무수히 가능한 길들에 접속하는 것은 우리에게도 허락되었다. ■ 한의정

Vol.20190825a | 김부희展 / KIMBOOHEE / 金富希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