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기: 게으른 구름 Soungui Kim: Lazy Clouds

김순기展 / KIMSOUNGUI / 金順基 / mixed media   2019_0831 ▶︎ 2020_0127

김순기_조형상황 Ⅲ–보르도의 10월 Situation Plastique Ⅲ–Octobre à Bordeaux_ 단채널 영상(4:3), 마스터 필름 16mm_00:13:45_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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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기 홈페이지_kimsoungui.co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 / 국립현대미술관 후원 / 주한프랑스문화원 협찬 / 아시아나항공_로보티스(Robotis)_복순도가 발효건축

관람료 / 4,000원(MMCA서울 통합권)

관람시간 / 10:00am~06:00pm / 금,토요일_10:00am~09:00pm 관람종료 1시간 전까지 발권가능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Seoul 서울 종로구 삼청로 30 6,7전시실, 전시마당 Tel. +82.(0)2.3701.9500 www.mmca.go.kr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윤범모)은 『김순기: 게으른 구름』을 8월 31일부터 2020년 1월 27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개최한다. ● 이번 전시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해 온 재불작가 김순기 작가의 삶과 예술, 자연이 조화된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회고전이다. 김순기(1946~)는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1971년 프랑스 니스의 국제예술교류센터 초청작가로 선발되면서 도불했다. 니스 국립장식미술학교, 디종 국립고등미술학교 등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해왔다. 플럭서스의 대가 존 케이지(John Cage), 이라 슈나이더(Ira Schneider) 등과 교류하면서 예술, 철학, 과학이 접목된 실험적인 작업을 지속해왔다. ● 김순기는 68혁명 이후 자유롭고 지적인 토론이 활발하던 남프랑스에서 철학자, 예술가 그룹과 교류해왔다. 1980년대부터 파리 교외 비엘 메종(Viels-maisons)의 농가를 개조한 작업실에 거주하면서 동·서양의 철학, 시간과 공간 개념에 관한 탐구를 바탕으로 영상, 설치, 드로잉, 회화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정형화될 수 없는 예술과 삶의 관계를 고찰해왔다.

프랑스 작업실에서의 김순기

전시명 『게으른 구름』은 김순기가 쓴 동명의 시 제목으로, 작가가 지향하는 예술의 의미, 삶의 태도를 은유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게으름은 삶에서 지양해야할 불성실과 나태, 부정적인 측면을 함의한다. 하지만 김순기에게 게으름이란 타자에 의해 규정된 틀에 갇히지 않고, 삶의 매분 매초가 결정적 순간임을 긍정하며 사유하고 행동하는 일이다. 김순기는 텃밭을 일구며 독서하고 붓글씨를 쓰는 일상의 모든 행위를 통해 예술이 매일 각자의 순간을 풍요롭게 만는 삶의 일부임을 보여준다. ●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김순기의 예술세계를 그가 실험해온 다양한 매체를 통해 조명한다. 먼저 6전시실에서는 '색 놀이 언어 놀이: 일기(日記)-작업실에서'를 주제로 작가가 작업실 주변에서 수집한 돌멩이, 나무 등을 이용해 제작한 오브제와 판화, 「일기」(1971~75)를 비롯해 1970년대 초반 퍼포먼스 영상, 언어와 이미지의 차이를 이용한 언어유희가 담긴 「색 놀이」 연작, 작업실에서 보낸 사계절의 시간을 담은 「이창」(2017) 등이 소개된다. ● 지하 3층은'일화(一畵)-활쏘기와 색동', '조형상황', '빛과 시간으로 쓴 일기'세 가지 주제로 구성된다. 먼저 '일화-활쏘기와 색동'에서는 황학정에서 국궁을 수련했던 작가가 색에 대해 탐구한 회화와 퍼포먼스 영상 「일화」, 「만 개의 더러운 먹물자국」 등을 선보인다. '조형상황'에서는 1971년부터 1975년까지 남프랑스 해변 등에서 현지 예술가, 관객들이 참여한 퍼포먼스를 소개한다. '빛과 시간으로 쓴 일기'에서는 1980년대 초 프랑스 정부 지원으로 연구한 작품 중 1987년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에 출품했던 「준비된 피아노」(1986)와 함께 「애주-애주」(2013), 「Gre Gre」(1998)를 소개한다.

김순기_게으른 구름展_국립현대미술관 서울_2019

7전시실에는 '작업실에서의 고독과 탐구 VS 예술적 교감으로 빛나는 여름밤'을 주제로 실험적인 영역에 도전해온 작가의 예술적 여정을 보여준다. 1975년 한국 첫 개인전 「김순기 미술제」를 비롯해 1986년 존 케이지, 다니엘 샤를르 등을 초청하여 개최한 멀티미디어 페스티벌 「비디오와 멀티미디어: 김순기와 그의 초청자들」(1986) 관련 자료 등을 선보인다. 미디어랩에서는 '신자유주의 시대, 예술의 의미'를 주제로 비디오 카메라를 메고 전 세계를 일주하며 촬영한 「가시오, 멈추시오」(1983), 호주 원주민의 제의 모습을 담은 「하늘 땅, 손가락」(1994)을 비롯해 자크 데리다, 장 뤽 낭시, 백남준 등과의 인터뷰 영상이 전시된다. ● 전시마당에는 2019년 현재의 시간과 공간을 고찰한 신작 퍼포먼스 「시간과 공간 2019」를 선보인다. 입력된 명령만 수행하는 로봇과 초자연적인 존재로서 무당이 등장해 게으르고 심심해하는 로봇 '영희'가 시를 읊고 무당 김미화의 굿하는 소리, 전시마당 내 설치된 다양한 기구들이 내는 소리가 함께 어우러진다. 로봇 제작에는 미디어아티스트 윤지현, 박얼, 이동훈이 참여했으며, '심심바보 영희'는 로봇기술 전문 기업 로보티스(Robotis)의 모터와 3D프린팅 전문 회사 크리에이터블(Creatables)에서 출력한 부품으로 제작되었다. 9월 8일에는 전시마당에서 무당 김미화, 로봇 영희와 함께 신작 사운드 퍼포먼스를 진행된다.

김순기_게으른 구름展_국립현대미술관 서울_2019

9월 중 출간 예정인 전시 도록에는 미술평론가 성완경, 문혜진, 김남수의 작가론을 비롯해 마르세유 미술학교 제자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정정화 교수의 『비디오와 멀티미디어: 김순기와 그의 초청자들』회고록, 세계적인 비평가이자 큐레이터 제롬 상스(Jérôme Sans)의 인터뷰, 철학자 장 뤽 낭시(Jean Luc Nancy)가 쓴 작가론이 수록되어 김순기의 예술세계를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는 예술가이자 시인, 연구자 김순기가 평생을 걸어온 일상과 실천으로서의 예술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전시"라며 "해외에서 왕성히 활동했으나 국내에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가의 진면목을 발견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국립현대미술관

김순기 미술제 컨퍼런스 장면 Scene of Soungui Kim Art Festival_1975

1. 김순기 미술제 ● 김순기는 1975년 서울 미국문화원에서 『김순기 미술제』라는 제목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1971년 프랑스로 건너간 이후 처음으로 서울에서 개최한 이 전시에서 작가는 현대미술에 대한 생각을 발표하고, 공유하기 위해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11일부터 16일까지 열린 전시 기간 동안 매일 저녁 6시부터 7시까지 작품 슬라이드와 영화를 상영했고, 9월 13일부터 16일까지 "여러분과 함께 이 미술제에 관하여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토론회를 가질 것이므로, 여러분의 많은 참석을 바랍니다"라고 초대했다. 오늘날 전시와 함께 상영회, 토론회는 흔하게 열리지만 당시로서는 '전람회'라는 용어 대신 '미술제'라고 쓰고 영상을 활용하는 등의 구성은 시대를 앞선 혁신적인 것이었다. 미술을 회화 혹은 시각 예술로만 바라보는 당시 분위기 속에서 '김순기 미술제'는 일대사건이었다. 영상 「일기」는 1971년부터 1973년 사이에 작가가 프랑스에서 실행했던 퍼포먼스들이 담겨 있다. 나무에 도끼로 패고, 들판의 흙을 파서 옆에 쌓았다가 다시 그 구덩이를 메우고, 바닷가에서 물을 퍼서 다시 그 옆에 물을 붓는 「물+물(일기)」, 실뜨기를 하는 「줄놀이(일기)」 등이 담겨 있다. 자연 속에서 일상적인 행위에 기반을 둔 퍼포먼스는 미술의 비물질성을 추구했던 1960년대 해외 미술계 동향과 흐름과 같이하며, 회화 중심이었던 한국 미술계의 경향과 비교할 때 매우 앞선 것으로 김순기 미술제에 참여한 젊은 미술학도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2. 「오늘」(1975) ● 「오늘」(1975)은 김순기 미술제에 출품했던 작품 중 하나이다. 당시 작가는 전시 기간 중에 매일 종이 위에 '어제', '오늘', '내일'이라는 단어를 썼다. 어제, 오늘, 내일이라는 언어가 갖는 의미와 함께 종이 위에 기록되고 또 지나가 버린 시간의 이동을 생각해보게 만든다. '오늘'이라는 글씨는 쓰면서 존재했던 사람은 어제로 흘러가버렸고, '내일'이라는 추상적 개념은 '오늘'을 거쳐 '어제'로 기록된다. 이 작품 외에도 「아스프로망의 일기」에서는 야외에서 나무 앞에 돌을 조금씩 쌓아올리는 퍼포먼스를 통해 하루하루를 기록했으며 「달력, 물방울」에서는 수도꼭지에서 먹물이 흘러나오도록 하여, 시간의 흐름을 작품의 핵심적 요소로 보여주었다. 1975년 『김순기 미술제』에 등장한 실험적인 작품들은 작품의 성격상, 물질로 남아 있지 않으며, 기록영상을 통해서 볼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비물질성 때문에 그의 작품을 감상하기가 힘든 어려움이 있었다. 이는 예술에 있어 시각적 스펙터클이나 환영을 추구하는 것에 반대하며, 자연 속에서 시간과 공간이 만들어내는 상황에 더 관심을 두었던 작가의 미학적 태도 때문이다. 김순기는 예술을 별도의 세계 속에 존재하는 것, 캔버스 내에 만들어낸 사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또 영원히 존재할 사물을 만들고 남기기보다, 다시 돌아오질 찰나, 곧 사라질 순간을 포착하고 그 순간 속에 온전히 머물면서 존재하고자 했다.

김순기_조형상황 Ⅲ–보르도의 10월 Situation Plastique Ⅲ–Octobre à Bordeaux_ 단채널 영상(4:3), 마스터 필름 16mm_00:13:45_1973

3. 「조형상황」과 드로잉 ● 어린 시절부터 현대미술의 중심지인 파리로 가겠다는 꿈을 키웠던 김순기는 1971년 니스에 위치한 국제예술교류센터(Centre Artistique de Rencontre International) 의 초청작가로 선발되어 도불했고 국제예술센터(빌라 아르손Villa Arson)에서 서울대 미대 시절 발표한 「소리」를 발전시킨 야외 설치 작품 「조형상황 Ⅰ」을 발표했다. 니스 국립장식미술학교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4학년으로 편입했으며 1972년 전국 미술대학 우수졸업생 36인 중 한 명으로 선발되어 파리에서 전시에 참여하기도 했다. 1970년대 초반 프랑스 문화부는 68혁명의 영향으로 젊은 예술가들을 발굴해 장학생으로 선발하고 졸업 후 교수로 임용하는 정책을 시행했는데, 김순기도 이 정책에 따라 1974년 마르세유 고등미술학교에 임용되었으며 니스 국립장식미술학교, 디종 국립고등미술학교 등에서 교수로 재임했다. 보수적인 파리 미술계와 달리 니스, 앙티브, 카뉴 쉬르 메르, 깐느 등과 마르세유, 엑상 프로방스와 같은 지역에서는 자유로운 분위기로 새롭고 실험적인 미술 실험이 적극 장려되었다. 「조형상황 Ⅱ」와 「조형상황 Ⅲ」에서 김순기는 미대 학생, 작가, 일반인과 함께 대형 풍선을 만들어 해변에서 바람에 날리고 영상으로 그 장면을 담았다. 작품에 사용된 카메라는 방송용 고가 장비로, 김순기는 직접 촬영하지 않고 참여하는 일반인들과 작가들에게 카메라를 맡겨 자유롭게 촬영하도록 하였다. 롤랑 바르트가 저자의 죽음을 말하며 독자의 참여를 통해 텍스트의 의미가 완성된다고 했듯이 김순기도 예술이 열린 시공간에서 만들어진다고 해석한 것이다.

김순기_비디오와 멀티미디어, 김순기와 그의 초청자들 존 케이지 콘서트 John Cage's concert in Video & Multimedia: Soungui Kim and her invitees_1986

4. 김순기와 친구들 ● 김순기는 1986년 마르세이유에 위치한 비에유 샤리떼(La Vieille Charité)라는 곳에서 전시를 개최할 것을 제안 받았다. 이곳에서 김순기는 『비디오와 멀티미디어: 김순기와 그의 초청자들』이라는 제목으로 여러 나라의 예술가 동료들을 초대하여 6월 25일부터 7월 10일까지 퍼포먼스와 전시, 토론과 파티의 장을 열었다. 이 행사에는 존 케이지, 백남준,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1987년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의 기획자인 다니엘 샤를르(Daniel Charles), 일본의 비디오아트 선구자 고 나가지마(Ko Nakajima), 'Time Zone'의 24개 비디오 설치로 유명한 미국의 이라 쉬나이더(Ira Schneider), 데이비슨 질리오티(Davidson Gigliotti),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인 정정화 등이 참여하는 등, 초기 비디오아트의 주요 작가들이 참여했다. 참여 작가들에게 여비나 숙식이 충분히 제공되지는 못했지만 적은 예산에도 기꺼이 초대에 응하며 함께 전시를 만들고, 퍼포먼스를 발표하며, 함께 식사를 나누고 대화를 이어간 초여름밤의 향연이 펼쳐진 것이다.

5. 존 케이지 – 빈 말들 & 미라주 베르발(Mirage Verbal) ● 김순기는 생트봄에서 열린 워크숍에 참여한 플럭서스의 대가 존 케이지(John Cage)와 만나면서 교류를 지속했다. 1986년 김순기는 마르세유에서 개최한 페스티벌 『비디오와 멀티미디어: 김순기와 그의 초청자들』에 존 케이지를 초청했고 케이지는 매니저 몰래 마르세유로 와서 행사에 참여했다. 존 케이지는 전시 기간 중에 있는 김순기의 생일인 7월 5일에 맞춰 퍼포먼스를 발표하기도 했는데, 마르셀 뒤샹의 일기에서 나온 텍스트를 이용한 퍼포먼스 「빈 말들」과 「미라주 베르발」 두 작품을 발표했다. 케이지가 웅얼거리며 낭독을 시작하자 점차 관객들이 자리를 비웠고, 자리를 뜨면서 생기는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비롯한 여러 소리가 더 예민하게 공간을 채웠다. 케이지가 낭독한 의미를 알 수 없는 텍스트, 내용을 알 수 없는 웅얼거림은 알아듣기 힘들다. 이 언어화되지 않는 소리는 우리가 이분법적으로 체험하는 소리와 침묵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다. 우연성에 몸을 맡기고, 때로 엉뚱한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기꺼이 수용하며, 인위적인 행위를 최대한 지양한 김순기의 예술관은 존 케이지의 예술관과 깊이 공명한다. 존 케이지가 의미 있는 소리와 소음의 경계를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고, 자연 그대로의 소리에 우리의 귀를 열게 했듯이, 김순기의 작품에서 사물들 역시 언어적 틀이나 위계 없이, 본래의 상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김순기_빛의 길 Chemin de lumiere(The path of light)_ 핀홀 카메라, 아날로그 C 프린트_173×123cm_1998

6. 핀홀 사진 ● 김순기는 노자의 예술론에서처럼 '작위'를 지양하고 사물과 풍경의 원래 모습을 담으려고 했다. 전통적으로 산수화는 정신 수양을 위한 실천 행위였으며 개별 작품의 시각적 완성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회화의 시각적 매력은 화가의 내면의 덕과 인품이 자연스레 배어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외조부와 서예가였던 어머니가 붓글씨를 쓰는 모습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오랜 프랑스 생활에도 먹을 갈고 붓글씨를 써왔다. 김순기의 서예는 서법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형식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쓰는 것을 추구한다. 잘 쓰려고 애쓰지 않고, 몸에 남은 '습'을 버리고, 그 순간의 마음과 몸의 상태 그대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김순기의 서예는 작가가 직접 쓴 시에 담긴 생각을 자연스럽게 담아내는 그릇이자, 내용 그 자체이다. 바늘구멍 카메라로 담은 작업실 안팎의 풍경 사진 역시 '억지로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려는' 작가의 미학적 태도를 반영한다. 핀홀 카메라는 오랜 시간 두어야 하며, 빛의 양에 따라서 결과가 바뀌게 되는데, 김순기는 특별한 풍광을 포착하려 애쓰지도, 유명 사진가처럼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려 애쓰지 않는다. 김순기의 눈으로 보면 세상의 모든 사물과 풍경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기에 의미 있는 것과 아닌 것을 나누는 것이 무의미하다. 또한 모든 순간이 결정적이며 동시에 영원에 귀속되는 것이기 때문에 결정적 순간을 찾아 헤맬 필요가 없다. 시간은 김순기가 작품에서 계속해서 탐구해온 주제 중 하나인데, 장 뤽 낭시는 "김순기는 시간을 질료로서 경험하며, 이전과 이후, 왼쪽과 오른쪽, 어제와 내일, 해변의 끝에서 끝, 동쪽과 서쪽을 동시적인 것으로 인식하는데, 여기에서 시간은 모든 시간을 의미하며, 모든 시간은 항상 현재이다"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김순기_O.O.O._혼합재료_160×300×100cm_1989

7. Vide&O ● 이번 전시에서는 김순기가 작품을 제작하기 전에 남긴 여러 드로잉을 소개한다. 김순기는 작품을 제작할 때, 수많은 메모와 드로잉을 남긴다. 「Vide&O」의 경우에, 전체 느낌을 담은 회화적인 드로잉이 있는가 하면, 마치 엔지니어의 도면처럼 수치와 비례를 정밀하게 표기한 드로잉도 남긴다. 또한 한 작품에 대해서 한 번의 드로잉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 반복해서 드로잉한다. 드로잉은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붙잡아 구체화시키는 과정이며,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점점 실제로 구현되어 간다. 「Vide&O」는 영어 비디오이자, 프랑스어로 '비어 있는' '물'이라는 이중의 의미를 띈다. 작가는 전시를 위해 얼음으로 모니터 모양의 조각을 제작하려고 했고, 특히 모니터의 프레임과 내부가 서로 다른 속도로 녹아내릴 수 있도록 수차례 연구와 실험을 계속했다. 마침내 방법을 찾아 제작을 의뢰했을 때, 얼음 공장 직원이 '비디오'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해 실수로 '빈 물'이라고 표기하여 주었다. 평소 언어 게임을 즐겨 하는 작가는 '실수'로 붙은 제목이 영상을 보여주지만 비어있는 모니터의 속성을 적확하게 포착했다고 생각하여, 아예 작품 제목을 「Vide&O」로 명명했다. ■ 국립현대미술관

게으른 구름 ● 잘 보기 위하여 / 잘 읽기 위하여 / 잘 생각하기 위하여 / 잘 하기 위하여 / 안경을 쓸 필요가 없다 // 생각도 그림도 다 아니다 / 보이는 것도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다 / 보이지 않는 것도 보이는 것도 이다 /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는 것은 / 안에 있는 것도 아니오 / 밖에 있는 것도 아니오 / 이쪽도 저쪽도 아니다 / 그냥 그것이다 그냥 게으른 구름이다 / 그냥 노닐다가 / 그냥 모습, 그냥 색깔, 그냥 소리 ■ 김순기

Vol.20190831d | 김순기展 / KIMSOUNGUI / 金順基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