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ting to Seek

죠셉 초이展 / Joseph Choï / painting   2019_0905 ▶︎ 2019_0929 / 일요일,추석연휴 휴관

죠셉 초이_Day Dreamer 2_리넨에 유채_130×195cm_2018~9

초대일시 / 2019_0905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추석연휴 휴관 전시 마지막 날(29일) 관람가능

이유진갤러리 LEE EUGEAN GALLERY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77길 17(청담동 116-7번지) Tel. +82.(0)2.542.4964 www.leeeugeangallery.com

의미가 된 태도, '그리기' ● 현대에서 미술이란 무엇이고 어떠한 기능일까? 인류는 언어 이전에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하고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그리기라는 방법을 통해 미술을 탄생시켰다. 이 후, 미술은 현재까지 이전의 개념과 형식을 부정함으로써 새로운 이즘과 형식이 생성되는 과정의 반복을 통해 역사를 만들어 왔다. ● 이 역사의 가장 끝부분에 위치한 오늘날 현대미술은, 기존 형식과 차별화를 위해 활용할 수 있는 모든 개념을 수용하면서 실행 가능한 온갖 태도를 실험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대미술은 별다르지 않고 특별한 의미도 없는 행위를 되풀이함으로써 순환논증의 오류를 반복하고 있는 듯하다. ● 이처럼 과잉된 개념과 결과 없는 과정 반복의 피로감을 해소 할 수 있는 묘책은 없을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써 필자는 까닭 있게 검토되어야 할 개념으로서 순수한 '그리기' 태도를 제시한다. 개념과 충격요법이 강조되는 현대 미술의 흐름에서, 그리기라는 태도에 주목한다는 것은 무모해보일지 모르지만, 미술에 대한 신뢰 상실이 만든 다시 순수하게 그리는 태도의 회화로 회귀현상은 무시하기 어려운 뚜렷한 흐름이다. ● 작가 죠셉 초이는 본 전시 '욕망의 시작(starting to seek)'에서 회화의 정의를 확인하듯 그리기의 태도와 과정을 잘 나타난 작업들을 보여준다. 화면 가득 거침없이 자유롭게 그려진 다양한 층위의 공간과 이미지는 즉흥적 연상에 따른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매혹적인 이야기를 품고 있다. 거대 담론에 기대지 않고, 본래 회화로 존재하게 하는 순수한 표현의 태도와 행위적 과정에 중심을 둔 그의 작업은 현대 미술이 망각한 감각의 만족을 소환하기에 충분하다. 죠셉 초이의 작업을 읽어 나감에 있어, '그리기'라는 태도의 의미화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죠셉 초이_Composition_리넨에 유채_100×100cm_2018~9

작가의 말을 빌면, 작업은 캔버스에 즉흥적으로 연상되는 이미지를 던지듯이 그리는 것을 시작으로, 이 그려진 이미지를 수습하기 위해 연상되는 또 다른 이미지를 배치하고 화면을 구성하고 지워내는 과정의 반복이라고 한다. 꼬리 잇기 놀이처럼 던져진 이미지를 화두로 순간순간 즉흥성에 의존하여 연상되는 이미지로 화면을 채워나가는 작가의 작업 방식은 애초에 완성된 결과라 할 수 있는 밑그림은 없다. 따라서 작가에게 있어 작업은 그리기란 태도가 만드는 과정의 연속이고, 이것이 멈춰지는 시점이 결과가 된다. 즉, 무엇을 그리려고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리는 과정에서 이미지가 쌓이고 구체화되는 오토마티즘 특성을 보여준다. ● 작업의 이미지들은 조각상을 포함한 인물이나 다양한 정물들이 거꾸로 서있기도 하고, 책의 일부가 찢겨져 다음 페이지의 이미지가 드러나 보이듯 전후의 이미지나 상이한 공간의 층위가 겹쳐지고 연계되며 새로운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 즉흥적 이미지 채집에 따라 배치되고 겹쳐진 결과의 작업은,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시공간과 다양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치밀한 계산의 결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작업을 마주하는 관람자는 화면을 구성하고 있는 이미지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추론하고 반응하는 점은 흥미롭다. 결국 현대미술이 절대화하고 있는 개념은 일종의 해석이 만드는 허상의 신화임을 증명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개념이 전부인 현대미술에서 개념을 배제한 결과도 동일한 결과를 도출한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이는 다시 개념놀이에 함몰된 현대미술의 오류를 되풀이하는 것이다, ● 작가가 신화화된 현대미술의 거대 담론을 거부하고 작업의 동기이자 의미로 삼은 것은 상상하고 표현하는 순수한 '그리기' 태도의 소환이었고, 이 선택은 과연 미술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분명한 방향을 제시한다고 본다. "조각상이 공간에 녹아들고 최종 이미지 밑면의 대상과 배경을 투영하도록 표현한 건, 영원한 정의나 신화화된 질서는 지속 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요. 순수하게 그리고 표현하는 행위와 과정이 더 큰 즐거움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라는 작가의 말을 통해 현대미술이라는 명제의 그늘에서 우리가 망실한 것이 무엇인지 명징하게 확인할 수 있다. ● 화면의 거울은 또 다른 공간을 비춰내고 있다. 거울로 비쳐진 공간은 표현된 제한 공간이 아니라 비상구이자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일 것이다. 그는 이렇게 또 다른 세계로의 모색을 암시한다. 순수하게 '그리기'라는 태도를 의미화 하며. ■ 이정훈

죠셉 초이_Man with a Landscapehead_리넨에 유채_195×130cm_2019

회화의 불가능성을 찾아서: 죠셉 초이의 2019년 회화 시리즈에 대하여 ● 예술이란 무엇인가? 앵글로색슨 철학은 예술을 정의하기 위해 필요충분조건에 상당하는 논증을 얻기 위해 힘써왔다. 무수한 이론의 완성을 추구했다. 가령, 모방론 · 표현론 · 형식론 · 제도론 등 무수한 논리가 개발되었다. 그러나 불모의 답변으로 그쳐왔다. 그것을 언어로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한 꿈을 좇는 일과 같다. 내가 보기에 예술은 정의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다. 예술이란 신화의 또 다른 형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명이 개화하고, 세계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 정교화해지면서, 사람들은 예술이 신화였다는 사실을 잊어갔다. 과학이 발달하면 세계에 대한 지식도 늘거니와 세계를 효율적으로 운영시킬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진다. 그러나 그 가능성의 이면에 극심한 허무감이 드리워진다. 이에 대해 니체만큼 뛰어난 설명을 한 사람은 없다. 니체는 말한다. "우리는 전대미문의 자유를 누린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그렇다. 우리에게 한계란 주어지지 않는다. 어딜 둘러보아도 그렇다. 우리를 둘러싼 이 광대한 공간 속에 서있자니 특권적인 느낌조차 받는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엄청난 공허이기도 하다." 1) 이 자유와 허무 사이의 건널 수 없는 간극에 다리를 놓으려는 시도는 무수히 많았다. 니체, 하이데거, 앙리 뢰페브르 등 많은 철학자가 문제 해결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려 했다. 횔덜린, T. S. 엘리엇, 예이츠, 스티븐 스펜더 등 시인들도 허무를 극복하고자 했다. 우리는 세계를 명확히 알 수 없고, 따라서 세계는 어두움으로 드리워지는데, 다만 어두운 세계를 비추는 섬광이 존재한다는 것만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섬광이 바로 시(詩)이며, 시는 예술의 근원이다. ● 죠셉 초이는 시성(詩性)을 화면에 구축하는 보기 드문 화가이다. 작가는 시와 세계와의 관계, 회화의 매개자로서의 자아가 세계와 관계 맺는 프로세스를 화면에 응축시킨다. 작가는 사전에 계획된 계산보다 화면에 쌓고 지우는 반복 행위를 통해서 세계가 자아에 주는 울림을 쫓는다. 예컨대, 작가는 잠들기 전에 눈을 감고 상념에 젖는다. 그때 화가의 뇌리 속에 세계는 짙은 어둠으로 다가온다. 화가는 어둠의 세계에 이미지를 투영한다. 태초의 세계를 그려본다. 문명 이전의 세계, 인간이 세계와 하나가 되어 탈존되지 않았던, 마술과 신화의 세계를 그려본다. 이성으로 분석하거나, 역사로 기술하지 않았던, 순수의 세계를 그려본다. 작가는 뇌리 속에 그려보았던 이미지로 우리의 역사를 고찰한다. 예술의 본질이 무엇인지 찾기 위함이다. 그리고 명상에 잠기며 이루었던 세계 이미지와 자아와의 대화를 화면에 반복적으로 쌓고 지우며 재구성한다. 자색과 하늘색, 흑과 백, 암갈색의 조화가 초현실적인 형식을 취하면서 우리를 시원(始原)의 이야기 속으로 침잠하게 한다. 그리스 신들과 여체, 공간 구성의 깊이를 완성해주는 탁자, 하늘을 향해 뻗어서 수직 이미지를 고양시키는 자색(紫色)의 나뭇가지, 자아를 상징하는 거울이 서로 치밀한 구도를 이루어 우리를 마주한다. 자세히 바라보면 치밀하게 구성된 구도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붓질의 움직임을 볼 수 있다. 때로는 마르게, 때로는 윤택하게 쌓여간 붓질은 다양한 속도 변화와 함께 화면을 유영한다. 그러나 작가의 회화 세계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형식미를 넘는 그 무엇에 있다. 구성과 붓질의 기교를 뛰어넘는 영역에 있다. 작가의 의도는 회화를 통해 우리의 본질이 무엇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려는 순수한 열망에 있다. 그 열망이 작가의 세계를 알려주는 관건 언어이다. 이제부터 차분하게 그 관건 언어로 찾아가보자.

죠셉 초이_Secret Relation_리넨에 유채_161.5×96.5cm_2019

신화가 서구에서 잊혀진 것은 18세기부터이다. 계몽주의가 세계에 드리워진 신화라는 장막을 거두었던 운동이라면, 그리고 신비를 거두어 이성으로 세계를 명징하게 인식하려던 프로젝트였다면, 낭만주의는 신비의 장막이 들춰져서 오히려 부끄러워했던 여인들을 구출하려던 영웅들의 몸부림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낭만주의 문학을 읽고 낭만주의 그림을 보며 자란 세대 중에 요한 바흐오펜(Johan Bachofen)이라는 신화학자가 있다. 바흐오펜은 "신화는 한 민족의 생생한 삶을 표명시키는 상징들의 주해이다."고 말한다. 2) 그는 '역사 시대(historical era)'는 수만 년의 시기를 역사 과정으로 압축한, 짤막한 에피소드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문명은 짧게 압축된 시간에 불과하다. 문명으로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인간의 역사란 생생한 삶이 증험되어 있는 신화의 상징들을 주해해왔던 과정에 불과하다. ● 바흐오펜의 사상은 영국의 신화학자 프레이저 경(卿), 헝가리의 카로흐 커렌니(Károly Kerénlyi), 루마니아의 종교학자 미르체아 엘리아데(Mircea Eliade)로 이어진다. 그들은 신화야말로 사회와 우리 자신을 알게 해주는 관문이라고 강조한다. 이들 사상은 다시 독일의 인류학자 프로베니우스(Leo Viktor Frobenius)로 이어진다. 프로베니우스는 "모든 인간 활동은, 그것이 합리적이거나 실용적으로 보이더라도, 적절히 결정된 신화의 제식화(ritualization)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사고와 행동은 모두 신화의 제식적인 합리화일 뿐이다."고 말한다. 3) 인간의 삶과 문화, 여기에 포함된 정치, 경제, 예술 그 모든 것이 신화의 합리적 연출일 뿐이다. 이들 논증을 가장 절묘하게 설명한 사상가가 바로 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이다. 그가 말한 '집단 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이라는 개념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집단 무의식이란 우리 뇌리 밑바탕에 깊숙이 자리잡아 고정되어 있는 신화를 말한다. 이 집단 무의식을 또 다른 말로 아르케타입(archetype)이라 부른다. 아르케타입은 우리 의식의 근본적인 레이어, 즉 의식의 가장 두텁고 강한 지층이다. 우리의 또 다른 의식인 양심이나 자아, 그것들이 모여 쌓인 문명이라는 레이어는 아르케타입, 즉 신화라는 두터운 지층에 아슬아슬하게 올려진,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지층이다. 우리의 근원은 자아보다는 집단 무의식인 아르케타입에 있다. 그것은 신화와 동의어이다.

죠셉 초이_Shadow_리넨에 유채_46×65cm_2019

죠셉 초이 작가의 화면 구성에 그리스 신들의 모습과 거울이 자주 등장한다. 그리스 신들은 신화를 표상하며 아르케타입을 나타낸다. 반면에 거울은 자아를 상징한다. 거울에 비춘 그리스 신들은 우리 의식 속에서 은연 중에 발아되는 무의식을 뜻한다. 그리고 탁자의 수평 이미지와 나뭇가지의 수직 이미지가 자주 등장한다. 수평 이미지는 수평적 시간을 뜻한다. 수평적 시간은 일상적 시간이다. 일상적 시간은 평범하고 반복되는 생활의 시간이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들의 시간이다. 수직적 시간은 시적 시간이다. 그것은 예술적 시간이면서 종교적 시간이기도 하다. 일상을 뛰어넘는 시간 속으로 진입하는 단계이다. 훌륭한 시 속에 완전히 몰입된 순간, 종교적 영성을 체험한 순간에 펼쳐지는 시간이다. 나무줄기와 나뭇가지는 하늘에 가까이 다가간 시간을 뜻하듯 수직적 이미지를 고무시킨다. 따라서 죠셉 초이 작가의 작품 속에는 일상과 초월, 의식과 무의식이라는 네 개의 표상이 치밀하게 짜여 있고, 우리는 누구이며 문명은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 독일의 철학자 게오르그 미쉬(Georg Misch)는 신화에 대한 주석은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하나는 산스크리트어로 "타트 트밤 아시(tat tvam asi)"이다. "너는 바로 그것이다"라는 뜻이다. 이는 종교적인 계율을 뜻한다. 또 하나는 그리스 금언인 "그노시 세아우톤(gnothi seauton)"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뜻이다. 철학을 뜻한다. 마지막으로 히브리어 "아니 제호바(ani jehová)"라는 말이 있다. "나는 나이다"는 뜻이다. 나를 나일 수 있게 해주는 그 무엇이 바로 예술이다. 따라서 종교, 철학, 예술은 모두 신화에 대한 주석이다. 이 셋을 점진적으로 종합하려는 시도에서 인간 역사에 대한 바른 성찰이 가능하게 된다. 인간 역사에 대한 바른 성찰이 없을 때 세계는 허무(nothingness)로 다가온다. 우리가 누구라는 사실을 강렬하게 직감하지 못할 때, 모든 것은 허무에 갇히게 된다. 종교, 철학, 예술이 하나로 합쳐져 허무를 섬광의 느낌으로 바꾸는 것이 시성(詩性)이자 시의 본질이며 예술의 근원이다. 허무를 섬광의 느낌으로 바꾸는 것이 하이데거가 말한 '벨텐(welten)' 혹은 '월딩(worlding)' 개념의 요지이다. 그것은 세계의 세계화이다. 허무의 어둠을 빛의 섬광으로 밝혀 세계로 드러내는 과정이다. 어두운 허무를 밝히는 일(Lichtung)이 시(詩), 즉 예술이 하는 일이다.

죠셉 초이_Starting to Seek展_이유진갤러리_2019

게오르그 미쉬의 말처럼 태초에 시, 즉 예술은 종교와 철학과 하나였다. 시를 읊을 때 그것은 단순히 유희뿐만 아니라, 수직적 시간으로 진입해 신과 함께 만나는 특별한 순간이었다. 신과의 만남 속에서 우리의 의미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였던 신화는 세 가지로 분리되어 파국을 맞이했다. 현대 예술이 그토록 난해하고 설명적으로 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죠셉 초이 작가는 인간 문명의 근원인 신화를 찾아서 끝없는 여행길에 나선다. 작가는 의식으로, 계산으로 세계를 바라보지 않는다. 계산법으로부터 벗어나, 무의식이라는 지층이 선사해주는, 세계에 대한 순수 직관을 그림 속 화면에 펼쳐낸다. 우리 존재를 뒤따르는 허무에 섬광을 밝히고, 세계를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 시와 예술이 하는 일이라는 것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바로 죠셉 초이 작가이다. 태초의 우리의 일상은 신의 목소리로 울려 퍼졌다. 신의 목소리는 뮤즈의 목소리이다. 뮤즈는 시인의 몸을 빌린다. "오마르 베오메르 아도나이(omar veomer Adonai)"라는 말이 있다. "하느님은 말하고 또 말하신다."는 뜻이다. 하느님의 음성 또한 시인의 목소리를 빌린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의 목소리란 세계를 밝히는 힘을 뜻이며, 죠셉 초이의 회화는 시인의 목소리에 대한 표현이다. 시(poet)는 성서에서 말하는 프네우마(pneuma)와 같은 말이다. 프네우마는 하느님의 영이라는 뜻으로도 쓰이지만, 숨결이라는 뜻으로 더욱 와 닿는다. 또 바람이라는 뜻도 있다. 숨결과 바람은 사람을 일깨워준다. 그것은 허무의 세계를 의미의 세계로 탈바꿈시키는 섬광이다. 시와 예술이 본질적으로 하느님의 숨결에 대한 표현이라는 것은 사실이었다. 요새의 시와 예술은 그 사실을 망각했다. 죠셉 초이의 예술 세계는 예술이 본래 지녔던 의미를 찾아나서는 여정에 있다. 그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가능성의 어둠에 하나하나씩 빛을 밝히기 시작한지 20여 년이 지났다. ● 죠셉 초이의 2019년 연작 시리즈의 제목은 프랑스어 '라 르세르슈(La Recherche)'이다. 무언가를 찾는다는 뜻의 여성 명사이다. 죠셉 초이 작가가 더욱 근원적인 시간을 탐구하겠다는 의지를 살펴볼 수 있다. 이번 전시회는 우리나라에서 오랜만에 갖는 개인전이다. 근래의 작품은 회화가 갖는 형식의 가능성과 한계가 무엇인지 회화라는 매체로써 천착하고 집중해서 추구했다면, 2019년 작품 시리즈는 깊이 있는 이야기를 구성하면서 형식적 아름다움을 배가시켰다. 우리는, 의식과 무의식, 일상과 초탈이 씨줄과 날줄 되어 종횡으로 펼쳐진 작가의 놀라운 화면 속에서, 독창적인 회화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시적 느낌이 잘 드러나있는 화면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나서야 하는' 주체는 아마도 작품을 바라보는 우리일 것이며, 작가는 불가능성의 여행으로 우리를 초대해준다. 그리고 언제나 위대한 회화나 위대한 시는 불가능성을 향해 온몸을 던졌던 사람들에 의해 태어났다. 2019년의 죠셉 초이 작가의 '라 르세르슈' 연작은 장려한 화면 구도는 물론, 서사적 이야기 구도를 동시에 담아낸 수작이다. 불가능으로 다가가려는 작가의 태도를 바라보면서, 타협하지 않고 새로운 형식과 이야기를 꾸준히 찾아나서는 작가의 세계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시와 예술의 존재 이유를 서서히 알아가게 된다. ■ 이진명

1) Henri Lefebvre, Introduction to Modernity, (New York: Verso Books, 1995) 이 책에서 앙리 뢰페브르는 니체의 "We are more free than ever before to look around in all directions; nowhere do we perceive any limits. We have the advantage of feeling an immense space around us - but also an immense void."라는 금언을 이용하여 모더니티의 윤곽을 밝히려 한다. 2) J. J. Bachofen, Myth, Relegion, and Mother Right, (New York: Princeton Press, 1992), 17 3) Leo Frobenius, African Genesis: Folk Tales and Myths of Africa, (London: Dover Publications, 2011), 1~14

죠셉 초이_Horse and Greekhead_리넨에 유채_130×161cm_2019

'Drawing', An Attitude that Has Become a Meaning ● What is art in the modern age and what is its function? Before the birth of language, human beings created art through drawing as a means of expressing and communicating their thoughts and feelings. Since then, art has made its history through a repetition of the process of creating new movements and forms by rejecting previous concepts and forms. ● Contemporary art, located at the very end of this history, experiments with all kinds of viable attitudes while embracing all the concepts that can be utilized to differentiate itself from existing forms. Despite these efforts, however, contemporary art seems to repeat the error of the cyclical argument with the repeating of acts that are not fundamentally different from its predecessor's, nor particularly meaningful. ● Is there a way to overcome the fatigue of this excess of concepts and fruitless repetition? As an answer to this question, I suggest an attitude of pure 'drawing' as a concept that deserves a serious consideration. It may seem reckless to focus upon the attitude of drawing amidst the flow of contemporary art which stresses concepts and shock therapy. However, a return to the painting of pure drawing, instigated by the loss of faith in art, is an obvious direction that we cannot ignore. ● In this exhibition, titled "Starting to Seek", Joseph Choï's works showcase the attitude and process of drawing as if verifying the definition of painting. 1) The space and images of the various layers, drawn on the canvas in a free and straightforward manner, are the results of impromptu associations, yet they have fascinating stories of their own. Not relying on metanarratives but centered on the attitude of pure expression and the behavioral processes that is faithful to the essential nature of painting, his work is enough to summon a satisfaction of the senses that contemporary art has forgotten. In reading Joseph Choï's work, I will focus on the connotations of the attitude that is 'drawing'. ● According to Choï, his work is a repetition of the process of drawing an improvised image on the canvas that comes across his mind at a given moment, placing another image that is associated with the already drawn one, composing the overall canvas, and erasing it. His working style of filling the canvas with associated images by relying on improvisation compounded upon the previous image does not make use of preliminary sketches. Hence, for Choï, work is a sequence of processes created by the attitude of drawing, and the point at which this stops becomes the result. In other words, he does not draw what he intends to draw; instead, his work shows the characteristics of automatisme 2) in which images are accumulated and substantialized during the process of drawing. ● The works are composed of upside-down human figures, sculptures, and various still lifes; sometimes images or layers of different spaces overlap, or are connected with each other, to form a new space much like the exposing of images on the next page when a page of a book is torn out. The work, which is the result of an improvised gathering, arranging, and superimposing of images, shows the time and space that cannot exist in reality, as well as various stories. It is interesting to note that the spectators of the work make inferences about the stories and respond according to the images that occupy the canvas despite not being the result of a precise calculation. This is an ironic situation that proves that 'concept'—an absolute category in contemporary art—is after all a kind of myth or an illusion fashioned by interpretation. If we grant meaning to the fact that in concept-centric contemporary art, the result that is devoid of concept produces the same result, then this in turn is a repetition of the error of contemporary art, which falls into the fallacy of the play of concept. ● Choï rejected the metanarratives that have been mythicized in contemporary art, and summoned the pure attitude of 'drawing' that he imagines and expresses as the motive and meaning of his work. I believe this choice suggests a clear direction to the question 'What is art?' "I rendered the statue so that it melted into space to project the object and background of the bottom of the final image, because I wanted to say that eternal definition or a mythicized order cannot last. I think the act and process of purely drawing and expressing can be a great joy." Through the words of the artist, we can clearly see what we have lost in the shadow of the proposition of contemporary art. ● The mirror in the canvas is illuminating another space. The space reflected in the mirror is not a representation of limited space, but probably an emergency exit and an entrance to a new world. Thus, he implies a search for another world, while giving meaning to the attitude of 'drawing' purely. ■ LEE Jounghoon

1) Painting: A formative art that draws shapes on a plane with various lines and colors. 2) Automatisme translates as automatism or automatic writing. More precisely, automatisme refers to a 'method' used to explore the world under consciousness, as defined in the Manifesto of Surrealism (1924) by André Breton: "recording the truth of thought without any control by reason, without any aesthetic and ethical preconceptions'. Automatisme had wide currency in the early phase of Surrealism. It also influenced artists such as Pollock, and in a broad sense, it supports the source of imagination in poetry and painting. (Dictionary of Art (Korea Dictionary Research Publishing), 1998)

In Search of the Impossibility of Painting: the 2019 Series of Paintings by Joseph Choï ● What is art? Anglo-Saxon philosophy has endeavored to construct arguments that correspond to the necessary and sufficient conditions for the definition of art. It pursued the completion of a myriad of theories. For example, some of the countless theories that were developed include the theory of imitation, expression, formalism, and institution. Yet, they have ended up as barren answers. Defining art in language is like the pursuit of an impossible dream. In my view, art is neither definable nor knowable, since art is another form of myth. But as civilization bloomed and scientific explanation for the world became more sophisticated, people gradually forgot that art had once been myth. As science develops, knowledge of the world increases and so does the possibility of managing the world more efficiently. However, there looms a deep sense of nihilism behind that possibility. No one has proffered better explanations than Nietzsche. Nietzsche says, "We are more free than ever before to look around in all directions; nowhere do we perceive any limits. We have the advantage of feeling an immense space around us - but also an immense void." There have been innumerable attempts to bridge the gap between this freedom and nihilism. Many philosophers such as Nietzsche, Heidegger, and Henri Lefebvre attempted to establish a system to solve the problem. Poets like Hölderlin, T. S. Elliot, Yeats, and Stephen Spender also tried to overcome nihilism. We cannot perfectly understand the world, and thus the world is cast in a shadow of darkness, but we can know that there is a light that illuminates this dark world. This light is poetry, and poetry is the source of art. ● Joseph Choï is a rare painter who composes poetry on the canvas. He condenses the process of the relationship between poetry and the world, the relationship of the self as a mediator of painting with the world. Rather than conducting some premeditated calculation, he pursues the reverberation of the world onto the self through the repetitive acts of accumulating and erasing on the canvas. To elaborate, as Choï closes his eyes before falling asleep and falls into a reverie, the world emerges as a deep darkness in his mind. He projects an image onto this world of darkness. He imagines the beginning of the world, a world before civilization in which man was unconscious of his own existence, depicting a world of magic and myth. He imagines a world of innocence that has never been analyzed by reason, nor described in history. Choï explores our history through images that he has envisaged in his mind in the process of trying to discover the essence of art. He repeatedly builds, erases, and reconstructs on the canvas the dialogues between the self and the image of the world (the imago mundi), which he has formed in meditation. The harmony of purple and sky-blue, black and white, and dark brown takes a surreal form and makes us withdraw into the story of the primordial. The Greek gods, the female body, the table that completes the depth of spatial composition, the verticality of the purple branches that stretch up to the sky, and the mirror that symbolizes the self—all these are composed to face us. If you look closely, you can see the movement of brushstrokes shining more brightly within a compact composition. Brushstrokes, which are layered sometimes dryly and sometimes richly, swim over the canvas with varying changes of speed. However, the importance of Choï's painting lies in something beyond formal beauty. It is in the realm that is beyond the finesse of composition and brushwork. The artist's intention lies in an unadulterated desire to explore the essence of who we are and why we live. That desire or aspiration is the keyword to the work of the painter. ● It was in the 18th century that myth began to be forgotten in the West. If the Enlightenment was a movement that unveiled the myth that had covered the world, and if it was a project to remove mystery and perceive the world clearly with the eye of reason, then Romanticism was a struggle of heroes who tried to rescue women who were ashamed of the unveiled tent of mystery. There is a mythologist named Johann Bachofen among the generation of people who grew up reading Romantic literature and watching Romantic paintings. He says, "Mythology is annotations on symbols that express the vivid life of a people." He says that the 'historical era' is only a short episode that compresses tens of thousands of years into a procession of history. Hence civilization is but time that has been shortened and compressed. In the first place, understanding humanity and the world through the standard of civilization is impossible. Human history is nothing but a process of annotating the symbols of myths that affirm life in all its vibrance. ● Bachofen's ideas find their heirs in the British mythologist Sir James Fraser, the Hungarian scholar of religion Károly Kerénlyi, and the Romanian scholar of religion Mircea Eliade. They emphasize that mythology is the gateway to society and our very being. Their ideas are again inherited by the German anthropologist Leo Viktor Frobenius. Frobenius says, "All human activity is merely a ritualization of appropriately determined myths, even if it seems rational or pragmatic. In other words, human thinking and action are all just ritualistic rationalization of myths." Human life and culture including politics, economy, and art are all just rational representations of mythology. Carl Gustav Jung has provided a most articulate argument of this idea. His concept of the 'collective unconscious' is well known to us. The collective unconsciousness refers to the myth that is deeply embedded in the substratum of our psyche. Another name for it is 'archetype'. The archetype is the fundamental layer of our consciousness, the thickest and strongest stratum of our consciousness. Conscience and ego—yet other aspects of our consciousness—and the layer called civilization (an aggregation of conscience and ego) form a fragile and vulnerable stratum, and are put on the thick stratum of myth that is the archetype. Our origin lies in the archetype, which is the collective unconscious, rather than in the ego. It is synonymous with myth. ● In Joseph Choï's composition, the images of Greek gods and the mirror appear frequently. Greek gods symbolize mythology and represent archetypes. On the other hand, the mirror is a symbol of the ego. The Greek gods reflected in the mirror represent the unconsciousness germinating unwittingly in our consciousness. In addition, the horizontal image of the table and the vertical images of the branches also make frequent appearances. The horizontality represents horizontal time. Horizontal time is time that is mundane. Mundane time is a time of commonplace and repetitive life. It is the time in which all events take place when people meet each other. Vertical time, on the other hand, is a poetic time. It is both an artistic and religious time. It implies a step into the time that goes beyond everyday life. It is the time that unfolds before us in such moments that we spend completely immersed in a great poem or when we experience something numinous. Tree trunks and branches inspire verticality as if implying the time when we are close to the sky. Therefore, in Joseph Choï's work, four symbols of mundane life, transcendence, consciousness, and the unconsciousness are closely woven together, forming the questions of 'who we are, and from where civilization comes and to where it goes?' ● German philosopher Georg Misch said that the annotations on mythology have three forms. The first form is the Sanskrit "tat tvam asi", meaning "You are that". It can be defined as religious precepts. The second is the Greek maxim "gnothi seauton", meaning "Know thyself". This means philosophy. Lastly, there is the Hebrew phrase "ani jehová", meaning "I Am that I Am". What makes me who I am is art. Therefore, religion, philosophy, and art are all annotations on mythology. Through an attempt to gradually synthesize these three, a proper reflection on human history becomes possible. When there is no appropriate reflection on human history, the world looms up in front of us as nothingness. When we do not intensely perceive who we are, everything is caged in nothingness. It is the nature and essence of poetry as well as the source of art to integrate religion, philosophy, and art into a whole, transforming nothingness into a spark. Turning nothingness into a spark is the gist of Heidegger's concept 'welten' or 'worlding'. It is a process of illuminating the darkness of nothingness with the spark and revealing it as the world. ● As Georg Misch propounded, poetry, i.e., art, was one with religion and philosophy in the beginning. Reciting a poem was not merely a play, but a special moment that allowed entry into vertical time and contact with the divine. From the encounter with our Creator, we could also understand the meaning of our being. However, the myth that had once been one, came to be divided into three elements and faced a catastrophe. This is why modern art has become so abstruse and explanatory. Joseph Choï starts on an endless journey in search of mythology that is the source of human civilization. He does not look at the world through the lens of consciousness and calculation. Out of the calculating mind he unfolds pure intuition onto the canvas, which is a gift from the stratum of the unconscious. Joseph Choï is an artist who understands exactly the capabilities of poetry and art: to throw a light on the nihilism that haunts us and to make the world a meaningful whole. In the beginning, our daily lives reverberated with the voice of God. The voice of God is the voice of the Muse. The Muse borrows the poet's body. There is a phrase, "omar veomer Adonai". It means "God speaks and speaks again." The voice of God also borrows the voice of the poet. That is why the poet's voice is the power to illuminate the world, and Joseph Choï's painting is an expression of the poet's voice. Poetry is synonymous with 'pneuma' in the Bible. Pneuma is used to refer to the spirit of God, but it is closer to 'breath'. It also means 'wind'. Breath and wind awaken man. It is the flash that transforms the world of nothingness into a world of meaning. It was true that poetry and art were essentially expressions of the breath of God. These days, this has been forgotten by poetry and art. Joseph Choï's art is on a journey to find the meaning that art once had in the beginning. It may prove to be a futile effort. However, more than 20 years have passed since he began to light the darkness of impossibility little by little. ● The title of Joseph Choï's 2019 series is "La Recherche". It is a feminine noun in French that means 'to search for something'. From this we can read his determination to explore a more fundamental dimension of time. This is a solo exhibition that is being held in Korea after a long interval. His recent works have delved into the medium of painting to explore the possibilities and limitations of the genre. His 2019 series has doubled the formal beauty with a composition of narratives of great depth. We can witness the potential of original painting on his astonishing canvas, in which consciousness and the unconscious, daily life and transcendence have become the latitude and longitude to be unfolded on the untrammeled canvas. The subject that 'has to search for' something within the canvas in which poetic feelings are well represented is probably ourselves who look upon the work; and the artist invites us on a journey to impossibility. Truly, great paintings and great poems were always born by those who threw everything they had toward impossibility. Joseph Choï's "La Recherche" series is a masterpiece that presents magnificent compositions as well as epic narratives. Looking at the artist's effort to approach the impossible, and his attempts to steadily seek out new forms and narratives without compromise, we gradually learn why poetry and art exist. ■ Lee Jinmyung

Vol.20190905g | 죠셉 초이展 / Joseph Choï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