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으로부터-People, from People

허정은展 / HEOJUNGEUN / 許貞殷 / sculpture   2019_0904 ▶︎ 2019_0909

허정은_얼굴_무명천에 바느질_36×28×26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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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41-1 Tel. +82.(0)2.736.1020 www.insaartcenter.com

중앙대학교에서 조각을 전공한 허정은 작가는 사람과 사람의 몸을 지속적으로 탐구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인체에 관한 주제를 무명, 실크와 같은 섬유를 주재료로 하여 실과 바늘로 꿰매고 채색하고 붙여 조형화한 섬유 조각(Fabric Sculpture)에 몰두하고 있다. ● 현대조각은 재료와 주제 면에서 백화제방(百花齊放)의 시대로 접어든지 오래다. 그래도 섬유조각은 낯설다. 천과 바늘이라는 창작 도구도 낯설고, 가벼운 천을 통해 바위보다 무거운 주제를 형상화하는 것도 낯설고, 창작된 작품들 속에 내재하고 있는 수정가능성도 낯설다. 또한 섬유조각은 다른 현대미술 작품들처럼 새로운 통찰 속에서 생성된 개념과 치밀한 계산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작업과정과 결과물에는 항상 우연성이 지배한다. 은근과 끈기와 합리적인 과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바느질을 통해 완성되는 작품들이 하나같이 탈 이성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연성(softness)의 물성을 가지고 있는 섬유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동기와 작업과 결과물 속에 아이러니가 작동하는 것이 섬유조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낯선 작업을 허정은 작가는 성실하게 진행하고 있다. ● "사람, 사람으로부터" (People, from People)展에서 주목되는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 「얼굴」은 완성됐지만 작가가 계속 작업하고 있는 특이한 작품이다. 재료의 특성과 제작과정 때문에 수정가능성과 변형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섬유조각의 본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 작품 속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같은 공간에 함축되어 있다. 완성되었는데 미완성이라는 패러독스는 폴 드 만(Paul de Man)의 맹목(blindness)과 통찰(insight)의 진자운동을 떠올리게 한다. 이 작품을 통해서 섬유조각의 탈경계적인 성격을 확인할 수 있다.

허정은_손_무명천에 바느질_53×29×18cm_2019

「손」은 전통적인 조각을 연상시키면서 동시에 무명이란 재료가 가지고 있는 플렉시블(flexible)한 성격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작품의 외형적인 무게와 함께 주제의 다양한 변주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손바닥에 새겨진 인위적인 손금들 때문에 다양한 해석을 불러온다. 손금이란 운명을 지시하고 있다고 이해되기 때문이다. 또한 섬유를 조각하는 작가의 바느질 작업까지도 연상된다.

허정은_나무_무명천에 실크스크린, 채색, 바느질_38×23×6cm(가변크기)_2018

「나무」는 몽골 샤먼들이 신앙하는 "어머니 나무(Эхийн мод)"처럼 초공간적인 내러티브를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기존의 무거운 재료가 아닌 가벼운 무명천으로도 수많은 역사와 신화를 담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가 작품을 통하여 얼마나 사물을 궁리하고 있는 가를 알 수 있다.

허정은_사람_무명천에 바느질_36×24×8cm(가변설치)_2019

「사람」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신체를 조각한 작품이다. 누워있고 엎어져있는 두 개의 무명천 신체는 큰 변형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원본이 되는 사람과 거리를 두고 있다. 조각이 입체적인 은유(metaphor)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제목이 '사람'인데 사람의 신체보다는 윤동주의 시 작품처럼 분열된 자아가 클로즈업된다.

허정은_black bile_무명천에 바느질_29×20×14cm_2019

「black bile」은 신체와 감정이 한 공간에서 작동하는 슈르레알리즘(surrealism)과 관련이 깊은 작품이다. 문학예술의 역사에서 보면 검은 새는 반복되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무명천이 만들어 놓은 삼차원적인 구도 속에서 검은 새는 엎어져있는 신체와 함께 생명과 죽음의 순간을 함축하고 있다. 우울이란 생의 집착과 죽음이 교차하는 덩어리라는 걸 다시 확인시켜 준다. 섬유조각에서 채색은 가시적인 효과와 함께 추상적인 관념을 솟아오르게 한다.

허정은_눌려있는 사람_무명천에 바느질_36×23×25cm_2019

「눌려있는 사람」은 재료와 개념이 모순을 일으키는 작품이다. 무명천이라는 가벼운 재료에 충실하면서도 동시에 무거움이라는 생각을 한 덩어리로 모아놓았다.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헝겊나무와 이를 묵묵히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과 사람이 앉아 있는 낮은 사각기둥의 질감이 모두 거칠다는데서 형이상학적인 감흥을 일으킨다. 조각에서 사람과 몸은 아직까지 화두(話頭)로 작동하고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허정은_달_무명천에 바느질_25×33×12cm_2019

「달」은 동화적인 상상력을 일으키는 작품이다. 무명천 철장 속에 갇혀 있는 보름달이라는 형상이 해학적인 미소를 일으킨다. 그런데 동화 속에는 항상 성인들의 사악함이 깃들어 있으니 훼손된 동심이나 포박된 천진난만함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을 감지할 수 있다. 섬유조각이 가지고 있는 다원적인 의미망이 자연스럽게 드러나 있다. ● 허정은 작가가 실과 바늘과 섬유로 조각한 인체 형상들은 침묵의 시공간 속에서 입체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가벼운 섬유들로 이루어진 작품들은 리비도적인 욕망도, 초월적인 정신도 모두 융합시켜 하나의 추상으로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가 구체적인 형상들로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탈경계적이고 다원적인 메시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허정은 작가가 전통적인 조각의 본령을 기본으로 섬유 조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 허정은 작가의 네 번째 개인전 "사람, 사람으로부터"는 섬유조각의 낯설음을 깨는 전시회라고 할 수 있다. 우리시대 조각은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아우성 속에서 천지사방으로 달려가고 있다. 허정은 작가의 섬유조각 작품들도 하나의 목소리로 이러한 소란 속에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허공에서 떠도는 부질없는 목소리가 아니라 대지에 뿌리를 깊게 내린 느티나무 같은 정신을 고수하고 있다. 이번 전시회가 낯설면서도 친숙한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섬유조각의 본성은 전통의 지속보다는 변형을 지향하고 있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 속에서 이러한 기운을 발견할 수 있다. 허정은 작가의 다음 전시회가 벌써 기대되는 것이 이 때문이다. ■ 장두식

Vol.20190908f | 허정은展 / HEOJUNGEUN / 許貞殷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