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각의 기술_the art of relief

듀킴_리단_장파展   2019_0919 ▶︎ 2019_1012

듀킴_라트린시아: 새로운 유토피아_ 3D 프린팅 플라스틱, anus 실리콘 캐스팅, 실리콘 튜브, 워터 펌프_가변크기_2019

초대일시 / 2019_0919_목요일_06:00pm

기획 / 이준영 후원 / 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0:00am~06:00pm

오퍼센트_5% 서울 용산구 우사단로10길 90

OO녀 등의 호명을 통해 규범을 어긴 여성을 과도하게 비난하는 것, '정신병자'라는 표현을 비하의 의미로 쓰거나 범죄자가 정신질환자라는 점을 필요 이상으로 부각하는 것, 타인의 성적 지향과 정체성에 대해 조롱하거나 관심을 쏟는 것은 모두 비슷한 맥락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한 사회에서 성원권을 가졌다는 사실이 진정한 의미에서 환대받고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근 불거지는 백래시(backlash)에 대한 논의, 여전히 만연한 소수자에 대한 낙인찍기는 이미 수차례 이야기되었던 의제라도 다양한 시점에서 새롭게 이야기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지금 우리 사회에는 정체성 논의에 있어 중요한 의제인 인종, 젠더, 섹슈얼리티, 장애뿐만 아니라, 아직 본격적으로 논의에 포섭되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관점을 통해 해석할 수 있는 새로운 요소들이 존재한다.

장파_2019

이러한 문제의식과 함께 전시 『양각의 기술』은 정체성을 가시화하고 긍정하는 것에 대해, 그리고 지금의 정체성 담론에 새로이 포섭될 수 있는 영역과 주제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듀킴, 리단, 장파는 일반적인 믿음과 편견의 토대를 의심하거나 억압의 언어를 재전유하고, 혹은 숨겨져 왔던 것을 가감없이 드러내 보인다. 그러한 수행에 있어 이들의 퀴어, 정신질환자,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은 어떤 사회적 기준으로부터의 이탈이나 부정성을 더 이상 지니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일반적인 기준에서는 결핍으로 여겨지는 것들을 정립의 도구로 사용한다. 들뢰즈는 욕망이 결핍에 의한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긍정적인 것임을 주장한다. 즉 욕망한다는 것은 패인 곳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평면에서 돌출되어 나아가는 것이다. 이처럼 욕망은 구축과 생산의 배후에 놓여 있다. 이들은 움푹 패인 판을 뒤집어 돌출점을 만들어내며, 성실하게 '욕망'한다. 무언가의 결여가 아닌 그 무엇 자체를 추동력 삼아서.

리단_2019

하지만 양각이 상징하는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그 튀어나온 면이 결국 원래의 표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은 아이러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양각은 표면을 기준으로 높낮이가 있는 수직의 체계를 형성한다. 하지만 옆에서 보면 돌출부들은 모두 균일한 표면을 지니고 있다. 아무리 서로 다른 존재들도 결국은 인간이라는 점에서 원래는 하나였던 표면을 나누어 지닌 양각의 돌출부와도 같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을 궁극적인 성취의 대상이 아니라 그것 자체를 좋은 삶을 위한 기술(art)로 보는데, 이를 통해 사랑을 목적점으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난다. 마찬가지로 『양각의 기술』은 어떤 이상이나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조형해야 할 모양으로서의 돌출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유롭게 욕망하고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것, "깊이가 아닌 표면에서 미끄러지며 그 평면에서 위계없이 노는 것" 이 양각의 기술이라 말하고 싶다. 우리 모두는 예외 없이 돌출된 표면을 가지고 있으며, 이 세계는 무수한 양각의 집합 그 자체이다. ■ 이준영

Vol.20190912c | 양각의 기술_the art of relief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