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 / ruin / 廢墟

여인영展 / YEOINYOUNG / 呂仁暎 / painting   2019_0917 ▶︎ 2019_0922

여인영_버려진 것들_한지에 먹, 흑연, 자개_116.8×182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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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영 블로그_blog.naver.com/yeovely93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충청북도_충북문화재단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주말_10:00am~06:00pm

충북문화관 숲속갤러리 CHUNGBUK CULTURAL FOUNDATION 충북 청주시 상당구 대성로122번길 67 Tel. +82.(0)43.223.4100 www.cbcc.or.kr

삶의 흔적-기억하고 기록하다 ● "예술 작품은 사물들의 진정한 본질을 전혀 예상하지 않은 방식으로 현출(顯出)하게 하면서 사물을 전적으로 새로운 빛 안에서 드러나게 한다. 진정한 예술 작품에서는 진리가 작품 가운데서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하이데거 「예술작품의 근원」)

여인영_폐허_한지에 먹과 흑연_162.2×260.6cm_2019
여인영_이름 없는 꽃, 꽃이 있던 자리_한지에 흑연_70×70cm_2019

멈춰 서 바라보다 ● 여인영은 낡은 건물들을 그려오고 있다. 24년 동안 한동네에 살았지만 한 번도 인식되지 않았던 건물이 어느 순간 눈에 들어오고 마치 처음 보는듯한 낯선 감정을 느끼면서부터 그 지역의 건물에 관심을 갖고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여인영은 이러한 '낯설음'을 자신의 기억속의 '틈'으로 표현한다. ● 우리는 무의식적 시각 활동을 통하여 수많은 것들을 보지만, 그것들 중 대다수는 우리에게 인식되지 않고 무심히 지나쳐 가거나 기억 속에 의미 있는 것들로 각인되지 못한 채 인식과 기억사이를 부유한다. 하지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 그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시구에서처럼, 의미 없는 사물로 지나쳐 버리던 익숙한 것들이 어느 날 낯설게 다가오고 우리는 비로소 멈추어 서서 바라보게 된다. ● "소제동을 기록하며 옛 것들에서 나를 찾고 발견하게 된다. 그 낡은 마을이 상처 난 채로 벗겨진 나와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먹 드로잉 혹은 강렬한 색채로 상처를 그리는 그 동안의 표현 방식이 순식간에 바뀌게 되는 순간이었다."(작가노트) 그를 불러 세운 것은 간단치 않은 삶의 무게와 흔적들임을 짐작케 한다.

여인영_유한한 삶은 너와 다시 만날 그 날을 더욱 소중하게 해_한지에 먹, 분채, 흑연_각 49×49cm_2019
여인영_기억의 틈_한지에 먹과 흑연_91×116.8cm_2018

낡은 것이 아름다운 이유 ● '낡다'는 「물건 따위가 오래되어 헐고 너절하게 되다」는 의미를 가지며 이는 인간의 사용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이다. 자연물, 예를 들어 꽃이나 바위, 나무와 같은 것들에 낡았다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자연물은 생성과 소멸의 주기적이고 끊임없는 순환과정 속에 있음으로 소멸과 쇠락의 순간에도 그것에 대해 우리가 갖게 되는 정서적 감흥은 유한한 인생의 메타포로서 유용할 뿐 오래되고 낡았다는 표현이 주는 인간적 개입은 없다. 따라서 오래되고 낡은 것이 우리에게 주는 감정적인 여운들은 그 대상에 머물렀던 '인간적인 시간과 흔적' 때문일 것이다. 홀로 혹은 두어 채가 서로 기대어 있는 건물들은 단지 사물로서 건물이 아니라 하이데거가 말하고 있는 '존재이해'에 대한 유의의화有意義化를 꾀하고 있으며 인간 삶의 터전으로서 그 사물의 본질을 드러내고 있다고 해석될 수 있다. ● 낡은 건물들은 「강남 부동산」, 「지선 미용타운」, 「신라당」 또는 해독하기 어려울 만큼 부식해 버린 「주산학원」과 같은 간판을 내걸고 있거나 너무 낡아서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가정집들로 이루어져 있다. 누추하고 남루하며 폐허와 같은 건물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한 때는 그 누군가의 치열한 삶의 자리였을, 특별할 것 없는 무심한 일상이 분주히 반복되었을, 이제는 번잡스러운 생기가 가라앉고 번들번들 닦고 조이는 부지런함이 사라진 공간에서, 사물로서 건물들은 이제 삶의 현장으로서 그 존재의 모습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즉 여인영이 기억하고 기록하고자 하는 건물들에는 인간의 시간과 흔적이 묻어 있고 그 시간과 흔적만큼 치열하고 간단치 않았을 삶의 자취들을 담고 있기에 그 앞에서 우리는 미적 쾌감을 넘어서는 정서적 특별함을 마주하게 된다. 이는 한바탕 난장처럼 떠들다 가는 인간 삶에 대해 존중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 한지에 먹과 연필을 이용해 그려진 건물들은 그 형태가 완전하게 그려지거나 화면 전체를 다 채우지 않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우리의 삶이 그런 것처럼 자유로운 듯 자유롭지 않은 먹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일은 흥미롭다. 딱딱하게 갇혀있는 줄만 알았던 연필로 한지를 채우고 물을 부으면 먹처럼 번져 나간다."는 작가의 말에서 보듯이, 연필로 그은 딱딱한 선들은 물의 개입으로 순간적인 번짐과 예측하지 않은 형태를 만들어 내며 이는 작가의 통제를 벗어난 우연성을 허용함으로써 인생사의 수많은 관계와 인연들이 만들어 내는 자발성과 어떤 틀 안에서 명확하게 규정될 수 없는 삶의 여백에 주목하도록 이끈다.

여인영_망각 속 폐허_한지에 먹과 흑연_90.9×72.7cm_2018
여인영_그 거리 버드나무_한지에 흑연_72.7×60.6cm_2018

물리적 세계의 심리적 세계로의 치환 ● 낡은 건물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반추하며 관계와 인연에 대해 고민해 오던 여인영은 신작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버려 진 것들」과 「유한한 삶은 너와 다시 만날 그날을 더욱 소중하게 해」에서 작가는 두 개의 캔버스를 이어 붙여 하나의 캔버스를 만든 후, 버려진 자개장을 그려 넣거나 빨간색의 실을 교차시켜 놓은 나무틀을 캔버스와 나란히 놓는 작업들을 하고 있다. ● 「버려진 것들」에서는 시간과 기억에 대한 작가의 탐구가 형식적 진척을 이루며 좀 더 섬세하고 특별한 자기만의 미학적 기반을 획득한다. 두 개의 캔버스를 나란히 붙여 하나의 화면으로 만든 후 자개장을 그려 넣은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분절되고 중첩되는 듯한 묘한 감흥을 준다. 이때 자개장은 검은 색의 연필로 묘사했지만 그 장식인 자개는 실재 자개를 붙여 놓았다. 흑백으로 가라앉은 듯 그려진 자개장과 아름다운 색의 반짝이는 실재 자개의 조합은 "회상의 형성은 결코 지각의 형성 뒤에 오지 않는다. 즉, 그 둘의 형성은 동시간적이다.... 그리고 지각과 회상의 이러한 동시간성은 바로 과거와 현재의 공존을 의미한다."(전수진,베르그송 철학의 미학적 의의,(석사학위 논문 축약본 P9), 출처: 한국미학회)는 베르그송의 언급을 떠올리게 한다. ● 이전 작품들에서 간혹 보여지는 빨간 선들은 (특히 「강남부동산」에서의 빨간 전깃줄) 서서히 가라앉듯 퇴락하는 존재를 고립된 것으로 가두지 않고 어디론가 연결되고 연장되는 느낌을 주는 데 이 빨간 선들은 「유한한 삶은 너와 다시 만날 그날을 더욱 소중하게 해」에서 더욱 적극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듯하다. 현재적 시간에서 한걸음 물러나 있는 듯 보이는 자작나무(이 자작나무는 마치 무시간속의 존재처럼 보인다)로부터 나온 빨간 선은 나무 판자위의 무수한 선들의 교차로 이어져 있다. "계속되는 관계의 실패에 좌절한 때가 있었다. 인연이 없으면 결과도 없다고 나를 위로했다. 불교에서는 연기가 모든 것이 생기 소멸하는 법칙이라고 말한다. 모든 현상은 원인인 인(因)과 조건인 연(緣)이 상호 관계하여 성립하며 인연이 없으면 결과도 없다는 말에 공감했다."는 작가는 불교의 연기사상을 이 작품 속에 담아낸 것으로 보인다. ● 작가로서의 짧은 경력에도 불구하고 여인영은 치열하게 고민하고 새로운 시도들을 계속해 오고 있다. 특히 신작에서 보여지는 소재와 형식의 변화는 그의 작가로서의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시간과 기억, 관계와 인연에 대해 고민해 온 그는 낡은 것들이 존재하는 물리적 공간을 심리적 공간으로 치환시키며 새로운 시공간의 그물을 짜고 있는 듯하다. 커다란 캔버스에 이제 막 자신의 이야기를 그려나가기 시작한 여인영이 어떠한 질문을 던지고 답하며 자신만의 이야기의 실타래를 풀어갈지 자못 기대된다. ■ 이경인

Vol.20190917d | 여인영展 / YEOINYOUNG / 呂仁暎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