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f Love, Travel, and Contemplation 사랑, 여행, 그리고 사색에 관하여

최현주展 / CHOEHYUNJOO / 崔玹周 / painting   2019_0918 ▶︎ 2019_1002 / 월요일 휴관

최현주_꿈속의 정원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5×150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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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주 홈페이지_www.hyunjoochoe.com

초대일시 / 2019_0918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라베리타 Gallery LA VERITA 서울 강남구 강남대로 280(도곡동 946-12번지) Tel. +82.(0)10.9262.3542 blog.naver.com/catko70

사랑, 여행, 그리고 사색에 관하여: 최현주의 최근작들 ● 그녀가 그동안 그려온 작품들을 돌이켜 보면, 최현주 작가는 그동안 관람자들로 하여금 평범하게 경험하는 일상적 사물들을 새롭게 상상해 보도록 자극해 왔으며 그녀가 그려낸 대안적인 세상 속으로 우리가 함께 여행하도록 초대해 왔습니다. 그녀의 이번 전시, "사랑, 여행, 그리고 사색에 관하여"는 이전 작품들에서도 보여주었던 주제들 특히 새로 태어남, 정체성, 성장에 관한 주제들을 공통적으로 다루되 그 근저에 공격성, 고뇌, 그리고 절박함의 느낌을 한층 강한 색조로 깔고 있습니다. 이 근저에 담고있는 강렬한 느낌들은 분노라기 보다는 오히려 생명력, 목적성, 그리고 깊이가 증폭되어 나타난 표현이라 보여집니다. ● 최작가는 독특하고 생생한 시각적 어휘를 개발하여 평범하지 않은 상황에 놓여진 평범한 물체로 구성된 세계를 구성했습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사물들 (달걀 후라이, 꽃, 장난감, 대중 문화의 아이콘)은 일반적으로 마주치지 않을 듯한 환경속에 종종 배치됩니다. 그런 다음 크기가 조정되고 때로는 모양이 변경되고 상황에 맞게 재구성됩니다. 이 재맥락화는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부과하는 사물들간의 맥락성 그리고 대체된 사물들의 정체성의 경계를 허무는 역할을 합니다.

최현주_I am an octopus so I am angry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트윙클_91×73cm_2018 최현주_Two heroes and a plum tree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94cm_2019
최현주_새를 부르는 나무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크리스탈_116×91cm_2019 최현주_심연에 핀 붉은 꽃_한지에 아크릴채색_118×98cm_2018

최작가가 그녀의 최근 작품에서 사용하는 많은 방법 중의 하나는 비정형적 사고 전환입니다. 종종, 우리는 처음에는 캔버스의 전경에 있는 겉보기에 눈에 띄는 물체로 이끌려 가는데, 면밀히 살펴보면 사실상 그림을 끌고 가는 주제는 전경에 의해 가려져 있는 훨씬 작은 물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작가의 그림들이 선택된 엘리트들에 의해서만 이해되고 평가 될 수있는 일종의 지적인 퍼즐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각 캔버스의 초점으로 작용하는 작은 물체들은 그 자체가 모호하지도 않고 완전히 숨겨져 있지도 않습니다. 작가가 채택한 이 방법, 비정형적 사고의 전환은 관람자들로 하여금 숨겨진 그림을 해독하도록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독특하고 새로운 의미를 생각해 보도록 하고 그로 인해 그림에 깊게 참여하도록 의도합니다. 이런 이유로 그녀의 작품들 중 일부는 거의 초현실적 특성을 보여줍니다-- 종종 느슨하게 관련된 일련의 이미지들이 제공되는데, 이는 관람자들로 하여금 빈 곳을 채워보고 그 사물들의 연결성을 강화시켜 볼 수 있는 기회로 제공된다 여겨집니다.

최현주_The great dessert of God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5×91cm_2018
최현주_청혼을 위한 기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61cm_2018

미국 풍경 시리즈 ● 그녀의 시리즈에서 미국의 풍경을 다루는 두 그림이 특히 주목됩니다. 두 그림 다 장엄한 자연을 소재로 한 반면에 그 소재를 다루는 방법들은 서로 반대적인 방향에서 접근함을 보게 됩니다. 자연에서 발견되는 장엄하고 숭고한 사물들은 그 거대한 크기 때문에라도우리가 그것을 완벽하게 경험하고 이해하기에는 벅찰 수 있습니다. 산 꼭대기, 폭포, 광대한 숲, 그런 사물들의 위대함은 우리 안에 지각적으로 그리고 또한 감정적으로 압도되는 느낌을 불어일으키곤 합니다. ● 이 시리즈의 첫 번째 그림인 오리건주의 한 폭포의 그림은 이러한 웅대한 자연의 느낌을 인간의 관계 속에 투영해 표현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비정형적 사고 전환의 한 형태를 보게 됩니다. 즉, 시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이 그림의 주 소재는 거대한 바위이고 그 거대한 바위가 공중에 떠있는 접시에 의해 지지 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접시 안으로 폭포의 물이 얇은 선이 되어 고이고 있음을 주목하십시오. 그 자연의 구조는 거대하며 우리가 저울질 하거나 정복할 수 있는 그 이상의 규모로 이루져 있습니다—즉 자연은 우리의 능력으로 완벽하게 이해하고 경험 할 수 있는 그 이상의 존재입니다. 그러나, 정작 이 그림의 사실상의 주 소재는 이 거대한 바위와 폭포가 아닙니다. 그림을 바라보는 우리는 곧 꽃다발을 들고 폭포 기슭 근처에 앉아있는 한 젊은 남자를 알아 차릴 것입니다. 세부적인 묘사가 생략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남자의 감정은 명백히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는 곧 펼쳐질 중요한 일에 관한 감정에 거의 무너질듯 사로잡힌 채 폭포에서 고인 물 속을 바라보며 깊은 사색에 잠겨 있습니다. 그가 거의 닿기도 어려울만치 높은 곳의 바위들 속에 작은 집 하나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마음의 연인, 그의 꽃다발을 받게 될 연인이 그 집에 살고 있습니다. 꽃다발을 어떻게 전해줄 것인지, 그녀의 반응이 어떨지 확신이 서지 않아, 그는 여전히 그 인식에 압도 당한채 한 자리에 머물어 있습니다. 이 매우 인간적인 상황은 현재 이 순간 그가 처리하기에는 너무나 커보입니다. ● 미국 남서부에 위치한 그랜드 캐년은 숭고한 자연 현상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입니다. 길이 277 마일에 이르는 협곡은 최대 넓이가18 마일, 깊이 1 마일에 이릅니다. 수세기 동안, 그곳에는 이 지역 출신인 푸에블로 인디언들이 거주했습니다. 푸에블로는 이 협곡을 성지로 간주했으며 오늘날까지도 자연의 신비주의와 영성의 초점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최현주 작가의 협곡의 묘사는, 난간 위에 앉아 협곡을 내려다 볼 수있는 놀라운 전망에서 한 커플이 목격 한 것처럼, 숭고한 의미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협곡 자체는 작가의 눈 아래 독특한 외관을 취하고 있습니다. 협곡의 암석과 단풍은 피스타치오 빵으로 변형되어 있고 거대한 자연신이 쓸만한 커다란 주방도구에 의해 한조각이 잘라내어져 있습니다. 이"자연적인"창조물은 말하자면 조금 덜 자연스러운 모습, 아마도 신의 요리 프로젝트의 모습을 취합니다. 사물의 서로 잇닿아 있는 관계나 연관을 새로운 관점으로 보는 과정을 통해, 숭고한 자연물이 인간의 지각적 한계에 조금 더 접근하기 쉬운 무언가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최현주_Picnic I_나무에 아크릴채색_40×30×10cm_2019 최현주_The birth of a baby turtle_나무에 아크릴채색_40×30×10cm_2019 최현주_밀리터리를 사랑한 랩퍼_나무에 아크릴채색_40×30×10cm_2019 최현주_으럇~~~!!_나무에 아크릴채색_40×30×10cm_2019

말 시리즈 ● 그녀의 색을 칠한 목마들은 언뜻보면 전통적인 어린이들의 장난감을 연상시키고, 그 목마들을 타고 있는 작은 만화 캐랙터들로 인해 더욱 장난감으로서의 연상을 증폭시키게 됩니다. 실제로, 어린이와 같은 상상력이 이 시리즈를 만들게 된 주된 창조적 동력이라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배치와 디자인은 약간 더 불길한 함축성, 즉 테라코타 전사들이 곧 일어날 침공에 대비해 줄지어 있는 듯한 느낌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또한 이렇게 사물을 재 정의해 보는 과정에는 양면성이 존재합니다. 다른 한 면에서 보면, 산업화된 생산 과정으로 만들어진 채색되지 않은 목마와 테라코타 전사의 형태들이 작가의 작품속에서 밝고 가볍게 색칠된 동화속의 캐릭터 처럼 변환된다고 생각해 볼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작가의 전사들은 여전히 부정적인 의미로의 육체적 대결, 폭력 및 비인격화 된 정체성에 의해 정의되기는 하나 작품속에서는 장난스럽기도 하며 화려하고 독특한 캐릭들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최현주_Chaos and Death_한지에 아크릴채색_61×91cm_2019
최현주_덧없는 사랑_한지에 아크릴채색, 녹슨 철사_72×91cm_2019

양귀비꽃 시리즈 ● 작가는 또한 이번 전시에서 관념으로 복잡한 주제들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데, 이는 특히 "양귀비꽃"시리즈에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꽃이 피고 지는 다양한 단계를 보여주는 세 개의 양귀비 꽃들이 가장 눈에 띠게 자리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는 죽음의 시간이 다가와 마르고 화려했던 붉은 색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 죽어가는 꽃은 일종의가늘고 약해 보이는 일종의 생명줄에 의해 다른 존재들, 즉 죽은 물고기, 올빼미, 사과, 그리고 심장을 수송하는 조각배 하나에 초현실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일련의 연결은 인간 상태의 다양한 측면에 대한 비선형적 은유로 사용됩니다. 생명을 의미하는 인간의 심장이, 그러나 이 경우 우리 자신의 삶에서 빠져 나와 우리가 경험하는 삶과 단절된 심장이 인간의 몸이 아닌 다른 매체에 담겨 자유롭게 떠도는 것입니다. 배 위에는 인간의 죄를 상징하는사과 하나가 위태롭게 자리잡고 있는데, 이 사과는 지혜를 상징하는 올빼미가 통제하는 생명선상에 놓여 있습니다. 이 연결은 미약합니다—즉 우리의 피할 수없는 결점들을 가리기 위해 우리는 지혜를 사용할 수 있지만, 이렇게 얻은 균형은 마치 위태롭게 하나의 실에 매달려 있는 것과 같습니다. ● 시리즈의 두 번째 그림은 다시한번 비정형적 사고 전환의 예를 보게 됩니다. 밝게 채색 된 양귀비는 뿌리를 포함한 전체 형태로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그러나 그 꽃은 허공에 떠 있으며 뿌리는 파충류들과 끈에 의해 묶여 있습니다. 꽃 전체가 무어라 정의되지 않은 듯한 공허한 공간에 떠 있습니다. 허공에 떠 있는 이 느낌은 별빛만이 비춰진 검은 하늘 바탕 때문에 더욱 증폭됩니다. 날개가 달린 계란 두 개가 허공에 떠 있는 식물 주위로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이 두 계란은 물론 어떤 식으로든 서로 관련되어 있지만 캔버스 안에서는 서로 먼 공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함께 쌓아온 것들의 잔재가 뿌리 뽑혀 공중에 부유하면서도 그 덧없이 강렬했던 기억은 간직한 채 그 둘은 마치 헤어진 연인들 처럼 멀어져 있습니다. 이런 삶의 모습에 낯설지 않은 올빼미는 양귀비 꽃에 앉아 이들에게 관조적인 시선을 던지고 있습니다.

최현주_What do you think about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0×120cm_2019
최현주_Where we are now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20×50cm_2019 최현주_바위에 앉아 생각하는 반가사유상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자개, 크리스탈_100×100cm_2019

사색하는 부처님 시리즈 ● 그녀의 생각하는 부처님 시리즈는 생각 혹은 느낌의 반전이라는 면에서 다른 작품들과 같은 울림을 전합니다. 이 시리즈의 각각의 그림들은 칠흑처럼 검은 배경을 바탕으로 자라난 꽃들의 군상을 묘사합니다. 그 검은 배경은 꽃들의 매혹적인 색을 강조 할뿐만 아니라 그림의 실제 주인공을 잘 보이지 않는 구석지고 으슥한 곳에 자리잡게 하는 효과도 있습니다. 그 주인공은 조용한 명상에 잠겨 있는 작은 부처상 입니다. 산만하고 감각적인 바깥 세상에서 멀어져 열반에 점점 다가가고 있는 부처님의 존재를 낭만적으로 묘사하는 그림들이 흔한 반면, 이 그림 속에서는 일종의 고뇌가 느껴집니다—부처님은 세상에서 분리되어 외부 세계에 의해 가려지고 간신히 아주 작게 인식 되어 집니다. 이 상태에서 부처님는 철저히 혼자이며 자신의 생각과 실존적 사명의 굴레에 자기 스스로를 가둬둔 자로 인지 됩니다. ■ Nathan Knispel(번역_최서윤)

Of Love, Travel, and Contemplation: Recent Works by Hyun-Joo Choe ● Throughout her work, Hyun-Joo Choe has compelled her viewers to reimagine objects of ordinary experience in drastically reworked contexts, inviting us to travel within an alternate world she has crafted over the course of her career. Her current exhibition, entitled "Of love, travel, and contemplation: Recent work by Hyun-Joo Choe" addresses themes seen in her previous works, notably those of rebirth, identity, and growth, but does so with stronger undertones of aggression, angst, and urgency. These undertones do not reflect a sense of anger within her work, but rather an amplified feeling of vitality, direction, and depth. ● Choe has developed a unique and vibrant visual vocabulary which she has employed to construct a world composed of ordinary objects involved in decidedly non-ordinary situations. Seemingly ordinary objects (fried eggs, flowers, toys, icons of popular culture), are regularly placed in environments where they would not ordinarily be encountered. They are then resized, sometimes reshaped, and re-contextualized. This re-contextualization serves to press the boundaries of identity that we unreflectively assign to both context and displaced object. ● One of the many tools Choe employs in her more recent work is that of misdirection. Frequently, we are initially drawn to a seemingly prominent object in the foreground of the canvas, only to realize that, under closer examination, the guiding force behind the painting is a much smaller object obscured by the foreground. This tendency does not indicate that these paintings are "puzzles" that can only be comprehended and appreciated by a select elite; the smaller figures operating as the focal point on each canvas are neither themselves obscure nor do they tend to stay completely hidden. As employed by Choe, this misdirection involves the viewer more fully within each painting not to decipher a hidden code, but to formulate a unique, thought provoking meaning. It is for this reason some of her work takes on an almost surrealistic quality—what is presented is often a loosely connected series of images, and it is the opportunity of the viewer to fill in and strengthen these connections.

American Landscapes ● Two paintings in her series working with American landscapes are of particular note. Both work with the experience of sublimity, but from opposite directions. Sublime objects are those, typically found in nature, that surpass our ability to fully experience or process them due to their very magnitude. Mountaintops, waterfalls, vast expanses of forest, all have the capacity to incite within us a feeling of being perceptually and emotionally overwhelmed by their greatness. ● Choe's first painting in this series, that of a waterfall in Oregon, transfers this feeling of sublimity to human interactions. We see again a form of misdirection; the perceptual centerpiece of the painting consists of massive rock structure supported by a suspended dish into which a thin waterfall provides water for a pool. The natural structure itself is massive; it's very design indicates that it is not something that could be scaled or conquered by normal means—it surpasses our ability to process or comprehend. Yet, this structure is not the true centerpiece of the painting. Viewers will be quick to notice what appears to be a young man near the base of the waterfall holding a bouquet of flowers. Despite the lack of detail, his expression is quite clear—he is in deep contemplation, staring down at the waterfall feeding the pool, nearly overcome with emotion regarding the events that will soon unfold. Way above him, a small house lies nestled in the middle of the rock, almost unreachable. His lover, the intended recipient of the flower bouquet, resides there. Unsure of how he will deliver the bouquet and what her reaction might be, he remains for the time being overwhelmed; this very human situation is at the moment too much for him to process. ● The Grand Canyon, located in the southwest of the United States, exemplifies a sublime natural phenomenon. Spanning a length of 277 miles, the canyon reaches a width of up to 18 miles and depths of 1 mile. For centuries, it was inhabited by the Pueblo Indians, native to the region. The Pueblos regarded the canyon as a holy site, and even to this day it is regarded as a focal point of natural mysticism and spirituality. Choe's portrayal of the Canyon fully recognizes this sublime significance, as witnessed by the couple, sitting on a ledge, reveling in the experience of viewing the canyon from such a wonderful vantage point. The canyon itself, however, assumes a unique façade under Choe's eye. The rocks and foliage of the canyon are transformed into pistachio bread, with a deity-sized utensil slicing off a piece. This "natural" creation thus takes on the visage of something less natural, perhaps a culinary project of a deity. In this re-contextualization, what is sublime becomes a bit more accessible to our human perceptual limits.

Horse Series ● Her painted wooden horses initially bring to mind thoughts of a traditional child's toy, thought which are amplified by the cartoonish characters riding each horse. Indeed, it would appear a child-like imagination is the guiding creative force for these brightly colored playthings. Their placement and design, however, suggest a slightly more sinister connotation, namely, that of a vanguard of terracotta warriors in formation, nearing a frenzy in anticipation of an imminent invasion. This process of redefinition, however, works both ways. From the other direction, we may choose to witness the industrialized production of both unpainted wooden horses and figurative terra cottas warrior transformed into brightly colored characters in a light-hearted children's story. Viewed this way, her army is still defined by physical confrontation, violence, and depersonalized identity, but this is a negative definition; the army is playful and comprised of colorful, unique characters.

Poppy Series ● Choe has also addressed ideologically complex themes head-on, particularly in her "Poppy" series. The first presents at the perceptual forefront three poppies in various stages of bloom, with the last nearing the point of drying up and losing its vibrant red color. A lifeline of sorts, albeit a thin and fragile one, surrealistically linking the dying flower to a slain fish, an owl, an apple, and finally a boat with a heart as a passenger. This series of connections serves as a non-linear metaphor for various aspects of the human condition. The human heart, representing life, but in this case life released from itself and disconnected from life as we experience it, is free to wander along another path with a vehicle other than the body. Above the boat, an apple, symbolizing human sin, is precariously held in place with the lifeline as controlled by an owl, the symbol of human wisdom. This connection in tenuous; while human wisdom can, and indeed does, serve to curtain our inevitable shortcomings, this control is continuously hanging by a thread. ● The second piece in the series again employs a degree of misdirection. The brightly colored poppy plant, roots and all, rushes to the forefront of our gaze. The flower is, however, suspended, its roots bound now by reptiles and string. The entire plant is floating in an undefined and seemingly vacuous environment; this lack of grounding is amplified by the black sky inhabited only by stars. Two eggs with wings fly around the suspended plant, presumably it's one time caretakers. The eggs are of course in some way involved with one another, yet occupy distant spaces on the canvas, suggesting they are now estranged, possibly estranged lovers, with the uprooted remnants of what they built now suspended and ungrounded, yet remembered due to its fleeting intensity. The owl, who has likely seen this many times, perches on the poppy plant, casting a stoic gaze upon the event.

Thinking Buddha Series ● Her Thinking Buddha series echoes a similar reversal of thought (feeling?). Each painting in the series depicts in the forefront a growth of flowers against a largely pitch black background. The background serves not only to accentuate the electrifying color of the flowers, but also to obscure the real centerpiece of each painting: a small effigy of the Buddha poised in quiet contemplation. Romanticized portrayals of the Buddha in such an existential state are commonplace; he is at home with himself, removed from the sensory distractions of the outside world, moving closer and closer to nirvana. Here, however, there is a sense of anguish—he is removed, and in this removal, obscured and barely recognized by the outside world. In this state, he is thoroughly alone, a self-made prisoner of his own thoughts and existential mission. ■ Nathan Knispel

Vol.20190918g | 최현주展 / CHOEHYUNJOO / 崔玹周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