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앤 로우 High and Low / 인-비트윈스 In-betweens

안드레아스 에릭슨展 / Andreas Eriksson / mixed media   2019_0920 ▶︎ 2019_1103 / 월요일 휴관

안드레아스 에릭슨_세마포어 지리산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 템페라_195×240cm_2019

초대일시 / 2019_0920_금요일_05:00pm_학고재 본관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학고재 Hakgojae Gallery 서울 종로구 삼청로 50 Tel. +82.(0)2.720.1524~6 www.hakgojae.com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학고재청담 Hakgojae Cheongdam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89길 41 B1 Tel. +82.(0)2.3448.4575~6 www.hakgojae.com

예술이 된 풍경 ● 안드레아스 에릭슨과 친구가 된 것은 한 채석장에서였다. 지역색에 따라 다양한 빛깔을 띤 석회석이 있는 곳이다. 채석장에서 보낸 날들은 따뜻했다. 우리는 에릭슨의 집 앞에 낮은 돌담을 짓기 위해서 큰 석판을 잘게 부쉈다. 채석장은 광활했으며 색채의 변주가 아름다웠다. 그곳을 운영하던 두 형제에 대한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늘 먼지에 뒤덮여, 마치 두 개의 고전 조각상처럼 보였다. 진정 인상 깊었던 것은 형제의 영롱한 담청색 눈이었다. 그로부터 나는 안드레아스 에릭슨의 회화를 연상한다. 불현듯 터져 나오는 찬란한 색이 차분한 연갈색 색조와 충돌하는 화면. 이러한 대비는 완전히 새로운 색채를 창조해낸다. 시각적 환영일 뿐일지라도 말이다. ● 이 글에 '예술이 된 풍경'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나는 안드레아스 에릭슨에 대한 글을 시작하며 케네스 클라크의 1949년 저서명을 차용한 것에 유감이 없다. (길지 않은 글이지만 고전의 참조가 더 등장할 예정이다.) 에릭슨의 작업에는 세월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다.

안드레아스 에릭슨_설악산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 템페라_130×80cm_2019

우리는 우리가 만들지 않은 것들에 둘러싸여 있다. 클라크의 문장을 옮겨 쓰자면, 우리와 다른 생명과 체계, 그러니까 구름과 나무의 형상이나 색채에 의해서다. 이러한 자연 경관을 통해 우리는 자연과 예술,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힌다. 안드레아스 에릭슨은 무엇을 그리는 것일까? ● 화가 장 밥티스트 카미유 코로는 자신의 작은 풍경화 몇 점에 「에뛰드」라는 이름을 붙였다. 쇼팽의 음악적 에뛰드와 연관한 것일 테다. 에릭슨의 소형 회화는 코로가 그랬듯 회화에 대한 심미적 접근 방식이 주는 자유에 대한 자각을 드러낸다. 코로는 예술의 사실성에 대한 고찰을 포기하는 대신 감각을 전달할 수 있었다. 에릭슨의 회화는 크기에 상관없이 마치 아무 곳도 아닌 데에서 시작해 아무 곳도 아닌 데에서 끝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견고하다. 소형 회화의 한정된 화면은 정원 안에 자연을 길들여둔 것 같다. 대형 회화는 공중에서 내려다본 듯한 화면을 선보인다. 확장된 관점이며, 미지의 무언가에 대한 지도다. 회화를 보는 일이 꼭 정답에 대한 추측을 동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의 의도는 모든 이가 볼 수 있도록 화면 위에 자리해 있다. 바라보자. 이 특별한 회화적 언어와 친밀해지자.

안드레아스 에릭슨_덧없는 #16_판넬에 씌운 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 템페라_38×33cm_2019
안드레아스 에릭슨_덧없는 #6_판넬에 씌운 캔버스에 유채_38×33cm_2019

이 글을 쓰며, 우리 여름 가옥의 입구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지붕 아래로 분주하게 집을 짓는 두 마리의 새를 본다. 사람이 만든 구조물이 둥지를 트는 새들에게 목적의식을 부여했다. 새들의 건축이 건물의 틈새를 흉내 낸다. 다만, 안전은 환상일 뿐이다. 우리는 매일 수차례 집을 드나들고 그때마다 어미 새는 급히 달아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둥지는 멋지게 지어지고 있다. 마치 사람이 가장 소박하고 작은 조각을 만들고자 노력한 결과물 같다. 우리는 정말이지 우리가 만들지 않은 것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새들도 그렇다. 안드레아스 에릭슨의 새 조각은 둥지를 트는 새들에 관한 작업이다. 새이자 곧 조각인 이들은 에릭슨의 작업실 유리 문과 창문에 충돌해 생을 마감했다. 유리 위에 반사된 공중의 환영이 수많은 새들을 죽도록 만들었다. 창문은 내부의 채광을 위한 것이고, 작업실이 산골에 위치하다 보니 안팎의 경관을 최소한으로 차단하도록 설계한 탓이다. 이 청동 새들에 자연과 문명의 관계가 내재해 있다. 새들은 운명을 다했고, 에릭슨은 그들을 고전적인 청동 조각으로 부활시켰다. 순교자를 기리듯이.

안드레아스 에릭슨_바이젠시 no6_리넨_240×200cm_2019

존 러스킨이 말하길 "구성이란 곧 불균등한 것들을 나열하는 일"이라고 했다. 에릭슨의 두더지 둔덕 연작은 불균등에 관한 감각을 일깨운다. 실제 두더지 둔덕을 모아 석고로 뜨고 청동으로 주조했다. 승리와 패배를 동시에 나타내는 조그만 산이다. 잔디밭에서 두더지는 늘 승자다. 두더지가 판 복잡한 구조의 지하 땅굴은 굽이치는 강줄기를 연상시킨다. 두더지가 땅굴을 파듯, 에릭슨은 회화의 화면 위를 유랑한다. 두더지 둔덕 조각을 완고한 고집, 즉 지속적인 예술 창작의 필요를 형상화한 기념비로서 해석할 수도 있다. 바닥에 놓인 두더지 둔덕들은 원본과는 다른 개념을 함축한다. 정원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지만, 작가에 의해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한다. 갤러리 공간에서 두더지의 노동은 저항적 오브제로 재해석된다. 흙에게 영구적인 맥락을 부여한 것이다.

안드레아스 에릭슨_미완의 회화를 위한 스케치_플라스틱에 실크스크린_103.7×73.7cm_2017

에릭슨은 스스로의 설치 작업들을 굳이 구분 지으려 하지 않는다. 매체의 변주는 한 공간에 다수의 서사가 공존한다는 믿음을 주기 위한 요소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에릭슨은 태피스트리와 두더지 둔덕 조각, 회화와 판화의 재료적 상이함을 수용한다. 그리고, 개념적 측면에서 보았을 때에 이들이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도록 유도한다. 그의 작업은 모두 같은 맥락으로 통한다. 삶과 예술의 무계획성에 대한 것이며, 모든 것이 빛과 어둠의 관계, 때로는 우연으로 연결되어 있음에 관한 것이다. 절묘한 미감을 조율하고, 재편성하는 작가의 역할이 태피스트리 작업에서 두드러진다. 이 복잡한 작업은 형태, 지형, 그리고 단번에 섬세하고도 투박한 모든 것이 될 수 있을 법한 구조적 양상을 포괄적으로 드러낸다. 재료 자체로서 리넨은 전통 회화 캔버스와 직접적인 연관을 띤다. 한편, 태피스트리 재료로서의 리넨은 표현의 지지체로 남아 침묵하기보다 스스로 목소리를 낸다. 대형 회화들은 은밀한 회화적 실험의 과정을 거쳐 왔다. 그러나 회화 연작의 시작부터 끝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된 것은 단 하나의 드로잉이다. 각각의 회화에서 실재의 형상은 축소된다. 새로움이 탄생한다. 새들의 죽음마저도 새로운 무언가를 낳았다. 새롭고도 영원한 것 말이다. 에릭슨은 스스로 터득하고 발전시켜온 예술 언어를 사용하는 동시에 그것을 면밀히 탐구한다. 이 실재하는, 지속적인 연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존재들 사이의 연관성과 새로운 관계들을 발견하기 위하여, 그의 두 눈은 활짝 열려 있다. ■ 사라 워커

안드레아스 에릭슨_내용은 언뜻 보인다 85_청동 주조_32×13×7cm_2019

Landscape into Art ● I became friends with Andreas Eriksson in a stone quarry. The quarry contained different coloured limestones, specific to the region. The days in the quarry were warm and we broke larger slabs into smaller pieces to use for a low stone wall which we built in front of Eriksson's house. The quarry was vast, and the colour shifts were beautiful. I vividly remember the two brothers who ran the stone quarry. These men were constantly covered in dust, making them look like two classical sculptures. What was truly striking was that their eyes were ice blue. I think of this in relation to Eriksson's paintings. The sudden burst of bright colour colliding with a discreet hue of light brown. And how this contrast creates a new colour, perhaps only optically. ● I have given this short essay the title Landscape into Art. I'm not going to be ashamed of using Sir Kenneth Clark's book title from 1949 as a starting point in a text about the artist Andreas Eriksson. (There will be other archaic references in this miniature essay.) There is something timeless in the works by Eriksson. ● We are surrounded by things not made by us, to paraphrase Clark, a life and structure different from us. Formations of clouds, trees and colours. Through these natural vistas we are entwined with ideas of nature, art and beauty. What does Andreas Eriksson portray? ● The painter Corot named some of his small landscape paintings Études, perhaps connecting them to the musical Études by Chopin. Eriksson's small-format paintings exude Corot's notion of a freedom of working with an aesthetic painterly departure, Corot could abandon thoughts of artistic truths and instead convey a sensation. Eriksson's paintings, both small and large, seem to start nowhere and end nowhere, yet they are solid. The boundary of the small-format paintings is like the taming of nature into a garden. The large paintings suggest something of an aerial view. The viewpoint widened, a map of something not yet known. To look at painting doesn't have to be a guessing game. The artist's intentions are there on the canvas for everyone to see. Stare. Become acquainted with this particular painterly language. ● Writing this, I am observing two birds busy building a nest underneath a tiled roof situated directly opposite the entrance to our summer house. The man-made structure serves a purpose for the nesting birds. The architecture mimics a crevice. The safety is just an illusion though. We enter and exit the house many times a day and each time the soon-to-be parents flee. The nest is coming along nicely despite this. It looks like it is made by a human being trying to create the most rustic little sculpture. We truly are surrounded by things not made by us. And so are the birds. Andreas Eriksson's bird sculptures are related to the nesting birds. The birds-cum-sculpture died when crashing into the glass doors and windows of Eriksson's studio. The illusion of air materialized in glass left a number of birds dead. Studio windows are made to let the light in and in the case of a studio in the countryside, to create a minimum of interruption between the outside and inside. The relation between nature and civilization is incorporated in these bronze birds. They died and Eriksson resurrected them as classic bronze sculptures. Almost like martyrs. ● John Ruskin wrote: "To compose is to arrange unequal things". The sense of inequality comes to mind when thinking of Eriksson's molehills. The molehills are actual molehills. Collected by Eriksson in a plaster cast and then cast in bronze. These sculptures are small mountains of both victory and defeat. The moles always win the battle of the lawn. The underground burrows dug by the moles make an intricate system, the movement brings to mind river meanders. Eriksson paintings are related to what the moles dig, he too wanders. The molehill sculptures can also be interpreted as a celebration of stubbornness. The need to continuously make art. The molehills placed on the floor contain different notions: they are unwanted in gardens, but they have been given a new status by the artist and their labors have become defiant objects on the gallery floor. Low-status dirt given an eternal corpus. ● Eriksson is not interested in creating a division between the works in his installations. The difference in material characteristics is not an element used to make us believe there are a multitude of stories in the room. It is quite the opposite, Eriksson acknowledges the material divide between tapestries and molehills, the paintings and prints and urges us to meditate over the closeness between the works in terms of ideas. All of his works speak the same language. They speak of the haphazardness of life and art, how everything is connected through relationships of light and darkness, but also of chance. The artist's role of organizing and re-organizing the sublime is evident in the tapestries. These complex works expose all aspects of form, the topography and structure seem to be able to be everything at once, both subtle and crude. The material itself, the linen, is directly linked to the classic canvas of a painting but in the tapestries the linen itself speaks rather than being the silent foundation for expression. The large paintings have been through a process of a painterly game of whispers whereas one drawing has been continuously used from beginning to end in the series of paintings. With each painting, the look of the original is reduced. The birth of something new. Even the death of the birds gives birth to something new. New and eternal simultaneously. Eriksson uses the artistic language he has learned and developed but he also tries to pry it open, his eyes wide open when looking for connections and new relationships between the different characters in this physical, continuous chronicle. ■ Sara Walker

Vol.20190920b | 안드레아스 에릭슨展 / Andreas Eriksson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