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증(Vertigo)

성북 N 작가공모展   2019_0920 ▶︎ 2019_1025 / 일,공휴일 휴관

초대일시 / 2019_0920_금요일_05:30pm

아티스트 토크 / 2019_1014_월요일_07:00pm_평론가 정현(패널)

참여작가 / 림유_이현주_편대식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성북예술창작터 SEONGBUK YOUNG ART SPACE 서울 성북구 성북로 23(성북동 1가 74-1번지) Tel. +82.(0)2.2038.9989 cafe.naver.com/sbyspace www.facebook.com/sbartcenter www.sbculture.or.kr

현기증, 벼랑과 희망의 끝없는 뫼비우스 ● 성북지역 작가 및 성북관련 주제를 다루는 시각예술분야 작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다양한 담론을 제시하는 '성북 N 작가공모'(2016-2019 현재)의 네 번째 전시 주제는 '현기증(Vertigo)'이다. ● 올해의 선정 작가 림유, 이현주, 편대식과 함께 하는 '현기증'은 현 시대를 폐쇄적인 미궁(Labyrinth)처럼 감각하고 반영하는 세 작가의 매우 개성 있고 다채로운 작업들로 채워진다. 픽션(Fiction)에만 등장하던 장면들이 이제는 극한 현실이 되는 풍경 속에서, 작가들은 묵시록(Apocalypse)적 상상, 포스트휴먼(Post human) 시대에서의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며 서로 극히 다른 '예술도생(藝術圖生)'의 길을 보여준다. 가상(假象)이라 믿었던 것들이 실재가 되고 있는, 아니 가상이 실재를 초월하고 있는 지금, 'SF'라는 용어조차도 'Science Fiction(공상 과학)'이 아닌 'Scientific Fact(과학적 사실)'로 치환되어야만 할 것 같은 현재는 세상 모든 것을 의심하고 송두리째 뒤엎어야만 잃어버린 퍼즐 조각을 찾을 것 같은 때이기도 하다.

림유_[동시에_To The Hole ; PANIC] - 3_ 디지털 프린팅 이미지, 혼합재료_가변크기_2019
림유_우주의 두통2 Cosmic Headache_ 디지털 프린팅 이미지, 혼합재료_가변크기_2019

밝은 색 크레파스나 색연필로 칠한 다음 그 위에 어두운 색을 덧칠하여 송곳이나 칼끝으로 긁어 부분부분 밝은 바탕색이 나오게 하는 스크래치를 떠올리게 하는 림유의 디지털 이미지들은 그가 만든 이미지 '유닛(unit)'들을 수없이 겹쳐 만든 작업이다. 그 결과물은 앞서 말한 초현실주의자들의 스크래치 기법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스펙터클한 장면을 구현하다가 결국에는 실패한 컬러 모니터의 깨진 픽셀의 집합 같기도 하다. 림유의 작업은, 클로즈업, 꼴라쥬, 암전, 네거티브, 중첩 등을 통해 시종일관 음울한 분위기를 전하는 영상도 마찬가지로, 단지 우울하다는 형용사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묘하게 '뒤집힌 세계'를 감지하게 만든다. 지상이 아닌 지하, 의식이 아닌 무의식, 웃음이 아닌 눈물... 혼돈과 공포와 우울과 불안 이미지를 무한대로 겹쳐 놓은 카오스 절정의 디지털 이미지들, 빛과 어둠, 삶과 죽음 등 공존 불가한 대상들이 일시에 '혼재'하는 세계가 내포된 영상은 분명 괴이하고 낯설다. 그러나 작가는, 우리가 그저 깨닫지 못한 탓에 표상화하지 않은 진실을 넌지시 꺼내놓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것이 현실의 최전선.

이현주_소파위의 여행자(Armchair traveler)_혼합재료_가변크기_2019_시리즈 일부
이현주_응, 응, 응. 잠, 잠, 잠.(Yes, yes, yes. Nap, nap, nap.)_ 혼합재료_가변크기_2019_시리즈 일부

익숙한 현실과 공고한 질서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며 몰려오는, 아니 누군가에게는 처음부터 그런 환상을 믿지 않았기에 몸 속 깊이 스며있는 어지럽고 메스꺼운 느낌들. 림유가 타오르는 온도로 그것들을 토해 냈다면, 이현주 작가는 냉정한 태도로 임한다. 마치 '기계'처럼. '혼합매체'와 '가변크기'라는 뭉뚱그려진(그러나 어쩌면 최선인) 설명이 붙은 그의 오브제 조각들은, 통제 가능하기에 마음이 편해진다고 느끼는 사이즈 등 작가가 정한 최소한의 규칙들 속에서 편의상 조각이라 부르는 언저리의 무언가가 되는 것이다. 돌, 잉크, 파라핀, 비닐주머니 등, 길에서 주울 수 있거나 가게에서 살 수 있는 재료들의 조합으로만 만들어진 이현주의 작품은, 림유의 디지털 이미지들과 마찬가지로, 모두 유닛의 반복과 합으로 이루어진다. ● 과연 무엇이 인간을 규정하는가라는 질문을 내포한 포스트휴먼 시대의 도래를 더 빨리 예민하게 대면하고 있는 예술가는 주체성의 문제와 함께 스스로를 어떻게 규정하고 '창작' 행위를 이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질 수 있다. 최소한의 규칙, 유닛, 기능, 이런 단어들은 작가를 '기계'로 부름직하게 만든다. 속이 텅 빈 몸뚱이이자 간략한 알고리즘에 의해 움직이는 기계. 그러나 그 기계가 고집하는 최소한의 조건 중 하나인 유닛 작업이 결국 다른 대상과의 연결을 적극적으로 촉발하며 주어진 환경에 의해 행보를 결정해야 하는 창발적(Emergence) 특성을 갖는다는 점은 이것이 작가 나름의 제안이자 대안임을 추측케 한다. 작업을 함에 있어 어떠한 주장도 입장도 없는 오로지 기능만 남겨진 기계로 스스로를 설정하여 순간순간 결정에 임해야 하는 작가, 본래의 쓰임새에서 궤도 이탈된 오브제들, 그리고 그 두 만남으로 이루어진 미완의 결과물. 여러분은 서사도 없고 특정한 형태도 없는 유닛 작업의 완전체를 '상상'으로 완성하시라, 작가는 그렇게 주문할 뿐이다. 단, 혼잣말처럼.

편대식_Black Lead Mirror_나무판에 연필_244×122cm_2019_과정
편대식_Untitled(Fort-da)_벽에 연필_100×200cm_2017_과정

한편, '유닛(연필 선)'을 무한 반복하고 중첩시켜 만들어낸 편대식 작가의 '검은 평면들'은 물질인가, 재현인가, 아니면 고도의 정신성인가. 이 모든 질문을 안고 있는 편대식의 연필 드로잉은 사실 매우 신경증적이고 강박적인 메커니즘 속에 있다. 주체적 판단 없이 입력 값대로 움직이는 무한 반복 기계와 같다. 적어도 작업의 순간에는 그렇다. 그리고 그 부산물은 아무것도 지시하거나 재현하지 않는 납작한 검정색 화면뿐이다. 허나 결코 미니멀리스트(Minimalist)들이 주장하는 물질 덩어리는 아니다. 빈 곳을 남김없이 채우고야 말겠다는 맹목적 의지를 불사른 것만 같은 그의 작업은 "와!" 하는 감탄과 "휴-" 하는 애처로움을 교차시키는데, 이 지점에서 그의 작업은 관람자와 연결된다. 이 연결은 감정적 동요와 관련이 있으며, 두 감정의 촉발은 모두 화면 뒤에 감춰진 '노동'과 연결되어 있다. 즉, 노동의 결과가 주는 황홀감, 그리고 동시에 노동의 동기와 행위 자체가 주는 쓸쓸함이다. 인간은 과연 무엇을 추구하는 존재인가라는 새로운 물음이, 인간은 무엇으로 규정되는가라는 앞선 물음과 교차되는 순간이다. ● 과학기술과 물질문명이 인간 주체성과 유기체성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마저 전복시켜버린 지금, 기계가 거의 모든 인간 활동을 대신 할 수 있는 이 때에, 고행에 가까운 반복노동과 그에 따르는 극심한 신체적 고통이 대체 가당키나 한 것일까? 멀리서 반짝이는 물질을 통해 극도의 비물질성을 떠올리게 되는 그 반전의 지점에서 일종의 숭고를 느끼기를 작가는 진정 바라는 것일까? 인류 구원의 애타는 마음을 가진 예수의 아버지로 분한 심정일까? 가상성이 실재를 대신하는 지금 시대에 차마 상상하기 힘든 고통을 수반하는 그의 작업을 대하게 되는 마음은 처연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순간, 물질도 비물질도, 예술도 노동도 아닌, '인간 그 자체를 다시 새롭게 인식하게 만드는 힘'이 그 순간 조용히 생성되는 것을 보게 된다. 울렁, 멍. ● 우리는 이들의 다양한 작업들을 총체적 카오스 시대에 반응하는 신음이자 신호음이라고 읽고, 그러한 자각으로부터 희망의 단서를 찾을 수 있다고 전제해 볼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뒤따르는 질문들이 있다. 과연 재난을 피해 이주시켜줄 방주가 어딘가에는 존재하는가? 있다면, 그 방주가 데려다 줄 새롭고 싱싱한 땅은 있는 것일까? 희망은 어디선가 솟아나는 신비한 무엇이지만, 뱅뱅 도는 뫼비우스의 띠에 갇힌 느낌은 무엇 때문일까? 희망과 함께 꼬리를 물고 나타나는 절망의 그림자. 그러나 또 다시 그 힘을 누르고 나타나는 희망. 그리고... ■ 김소원

Vol.20190921d | 현기증(Vertigo)-성북 N 작가공모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