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하는 기억

박정혁展 / PARKJUNGHYUK / 朴正爀 / painting   2019_0920 ▶ 2019_1004

박정혁_7개의 꼭지점 2_혼합재료_가변설치_2019

초대일시 / 2019_0921_토요일_05:30pm

대안예술공간이포 초대展

관람시간 / 11:00am~06:00pm

대안예술공간 이포 ALTERNATIVE ART SPACE IPO 서울 영등포구 도림로126길 9(문래동3가 54-37번지) 2,3층 Tel. +82.(0)2.2631.7731 www.facebook.com/spaceipo

유동하는 기억, 훈육된 창의성에 관한 대안언어 ●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펄럭이는 은박비닐은 전통적으로 견고하다고 알려진 캔버스나 한지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불편한 메타재료'이다. 박정혁 작가는 이번 개인전에서 문래동 대안공간이라는 가변적 조건 속에 이 혼돈스럽고 감각적인 작업들을 던져두었다. 은폐된 구조의 지배관계를 언캐니(Uncanny, 낯익은 두려움)적 감수성 속에서 해석한 작업들은 훈육된 보는 방식에 익숙한 우리들의 취향을 의심하게 만드는 동시에, 예술이 가진 '감각의 확장'을 여는 대안언어를 생성시킨다. 창의성이라는 가변 언어를 동시대 사회구조 속에서 이야기해온 작가는 '상실과 욕망'에 갇힌 현대인들의 감성이 유미주의로 포장되는 현실에 대해 지적한다. 은박비닐 연작 「Park's memory」는 거장들의 작품(이미 진부해진 아카데믹한 소재 등)이나 대중문화 속 다양한 이미지들을 혼재시킴으로써 "만들어진 구조 속에서 당신의 취향은 온전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작가는 이미 광고와 포르노 등의 이미지들을 르네상스 거장들의 신화로 둔갑시킨 거대회화 연작 「Park's park」(2007~)에서 '숭고한 대상'을 향한 차용의 문법을 사용한 바 있다. 창의성과 취향의 문제를 사회적 모순에 대입한 작가의 탁월함은 '걸작(masterpiece 혹은 유명작품)=전형(全形, Canon)'이라고 믿어온 응시(凝視, Gaze)를 파편화시킨다. 인간 심연(深淵)에 존재하는 균열의 증거들을 이방인·신·괴물로 해석한 후기구조주의학자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 1941~)는 숭고를 대상없음으로 해석함으로써 "조증과 울증의 변증법으로서의 선의 결핍(Privatio boni)"이라고 칭한다. 작가가 선택한 허무주의 미학에의 접근은 작품 속 대상을 고정하지 않는 '유동하는 기억'으로 옮겨 놓는다. 외곽선이 존재하지 않는 흔들리는 기억들은 환영과 실재 사이를 부유하면서 정체성 문제로까지 논의를 확대시키는 것이다.

박정혁_7개의 꼭지점 2_혼합재료_가변설치_2019
박정혁_Park's memory 5_혼합재료(가변프레임에 은박비닐페인팅)_176×111cm_2019
박정혁_Park's memory 6_혼합재료(가변프레임에 은박비닐페인팅)_168×111cm_2019

구획된 취향, 사회적 모순에 돌을 던지다. ● "문화권력 속에서 작가 박정혁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유동하는 기억은 권력효과에 대한 사회비판적 물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초기 작업은 미디어 설치와 퍼포먼스 등을 통해 시스템 속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작가의 삶은 '이름 있는 예술학교=유행하는 작업'이라는 정체성과 맞닿아 있었고, 이유 있는 저항은 현실 관찰적 작업을 통해 구체화되었다. 8~90년대 속에서 성장기를 보낸 작가의 경험들은 '세계경영=대우'를 떠올리던 어머니의 '새대우 약국'의 이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가족이라는 이름 속에서 형성된 작가의 정체성은 병상에 누운 할머니의 숨을 수치화한 「166cm」(2004, 생을 향한 외마디의 최고점=작가의 눈높이)를 통해, 'It's easy'란 천개의 퍼즐조각을 맞추어가는 싱글채널 비디오 「3분 33초」(2004, 가족이라는 훈육방식의 메타포)를 통해 구현된 바 있다. 가족사로부터 시작된 구조의 모순에 대한 관심은 목적지향적 애견 컨테스트 「KMDC」(2004, 유기견 순위를 매김으로써 비엔날레 현장을 비판)와 훈육과 사회폭력을 담은 「극장연작-3분 54초」(2009)를 통해 확대되었다. 한국사회의 영웅주의라는 딜레마에 던진 박정혁의 시선은 신자유주의 속 자본논리가 인간의 창작을 공공연하게 억압·왜곡시키는 상황과 맞닿아 있다. 평면작업 「Park's park」와 「Park's memory」가 주는 주체(Park)의 정체성은 '작업의 전체과정이 구성되는 캔버스'라는 장(場)을 가로지른 대안언어를 추구함으로써 훈육된 감상으로부터의 해방, 이른바 온전한 당신만의 취향을 회복시킨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본인은 2012년부터 2017년까지 모재단과의 법정분쟁(부당해고)으로 작업을 거의 못했다."라고 고백했다. 대중문화와 아카데미즘을 조화시킨 새로운 내러티브(Narrative, 인과 관계로 엮인 허구) 작업들은 그가 싸워온 '라이프 퍼포먼스(?)'와 맞물려 가벼우면서도 가변적인 낭창낭창한 감각위에 기억 문제를 얹어낸다. 사건들이 더해지면서 왜곡되는 현실, 그 안에서 작가가 배운 지혜는 그럼에도 예술의 역할은 사회의 균형추와 같은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박정혁_Park's memory 7_혼합재료(가변프레임에 은박비닐페인팅)_168×111cm_2019
박정혁_Park's memory 8_혼합재료(가변프레임에 은박비닐페인팅)_141×111cm_2019

은박 비닐을 보는 방식, 기억과 감각에 대한 서사 ● 작가가 견고한 캔버스로부터 탈출하면서 은박비닐을 선택했을 때, 많은 이들은 '보관과 보존문제'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낯선 재료들을 의심하는 사회적 강박은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경계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와 유사한 재료를 사용했던 알젤름 라일리 전시(Anselm Reyle, 2013)에선 어떤 이도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국제적 작가가 선택한 재료를 향한 믿음은 의심과 경계마저 허무는 '인식의 마법'을 부렸던 것이다. 은박비닐을 보는 방식, 이른바 본다는 것에 대해 의심은 펄럭이는 작업 속에서 감각이 변화하면 현상도 변할 수 있다는 교훈을 안겨준다. 작가는 '유동성(流動性, liquidity)'을 오늘의 시대인식 속에 녹여냄으로써, 결과보다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피력한다. 색을 최대한 자제하고 은박비닐 자체가 갖고 있는 울렁거리는 느낌을 살려내는 노력은 해석의 다양한 가능성을 끌어내는 것이다. 이렇듯 기억과 감각을 향한 은박비닐의 착시(錯視) 효과는 고정되지 않음을 유도함으로써 인식의 틀을 다차원으로까지 확장시킨다.

박정혁_유동하는 기억展_대안예술공간 이포_2019
박정혁_유동하는 기억展_대안예술공간 이포_2019
박정혁_유동하는 기억展_대안예술공간 이포_2019

박정혁의 대안적 시선은 한 인물의 안타까운 죽음에서 착안한 「일곱 개의 꼭지점」(2015, 2019 융합설치)을 통해 극대화된다. 고인이 생전 마지막 날에 방문한 7개의 지역을 별자리가 연상되도록 연결한 작업으로, 떠난 이의 흔적을 통해 과거로부터 이어진 오늘의 우리들을 돌아보도록(回諭)하는 작업이다. 알 수 없는 부호처럼 떠다니는 7개의 별자리 형상들은 주변 상황에 의해 동선(動線)이 더해지면서 사람들이 기억하거나 대상을 인식하는 감각조차 변하도록 유도한다. 유동하는 7개의 별자리, 그리고 빙하를 연상시키는 고정된 설치물, 이 둘의 감각적 화해는 떠난 이의 발자취가 우리 삶을 비추는 별자리가 되기를 바라는 작가의 바람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창작은 규정이 아니라 질문이 되어야 함을, 관계란 단정이 아닌 열린 가능성이 돼야 함을 주장한다. 사회적 모순을 향한 날카로운 질문으로부터 출발해 다양한 변신을 거듭하며 숙고해온 박정혁 작가, 그의 오늘은 확장된 새로운 유토피아를 향한 도전적 발걸음이자 훈육된 창의성을 향한 자전적 물음이라고 할 수 있다. ■ 안현정

Vol.20190922b | 박정혁展 / PARKJUNGHYUK / 朴正爀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