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랜드

양은혜展 / YANGEUNHYE / 梁恩惠 / painting   2019_0920 ▶︎ 2019_1027 / 월,화요일 휴관

양은혜_낮잠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116.8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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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 /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주관 / 인천서구문화재단_전시기획사 리미티드 블루 후원 / 문화체육관광부_국민체육진흥공단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화요일 휴관

정서진 아트큐브 Jeongseojin Artcube 인천시 서구 정서진1로 41 iscf.kr blog.naver.com/iscf_kr

#1 나 ● 그림 속 주인공은 '나'이다. 나는 몸은 자라서 어른이 되었지만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미성숙한 존재이다. 남들이 정해놓은 규칙과 기준에 자신을 맞추고자 헉헉거리다 보니 어느새 성인 나이가 되었을 뿐 독립된 인격체로서의 자아에 대해 이제서야 고민하기 시작한 덜된 어른이다.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다던 행복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삶의 목표를 잃고 뒤늦게 주변을 돌아보니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기댈 곳 하나 없다. 무엇을 길잡이 삼아 인생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일까. 눈 앞이 깜깜한 혼란 앞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을 만큼 허무와 무기력이 밀려온다. 당연히 청춘에게 기대되는 열정과 의지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다시 생각한다. 행복에 이르는 길을 잃었을 뿐 행복이 영원히 사라져버린 것은 아닐 거야. 그것을 다시 만나는 날 삶의 진정한 의미도 찾을 수 있겠지.

양은혜_광합성하는날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5.5×53cm_2019

#2 노닐다 ● 모든 것이 불확실하지만 적어도 내가 여기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 '지금' '여기'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보자. 그러다 보면 조금씩 길이 보이겠지. 나는 닥치는 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해본다. 캠핑 가서 혼(낮)술하기, 꽃의 아름다움에 취해서 무아지경에 빠지기, 숲 속에서 비키니 입고 광합성하기,..엄마가 이런 나를 봤다면 혀를 끌끌 차고 등짝스매싱을 날렸겠지. 한심해 보여도 우선은 내가 놀고 즐기는데 집중해보기로 한다. 하아..어느새 몸의 긴장이 사르르 녹는다. 엔도르핀이 몸 구석구석 퍼진 걸까. 머리를 옥죄던 생각들이 희미해진다. 깃털처럼 가벼워진 나는 순간이나마 무한한 자유를 느낀다. 혜안을 얻은 듯 시야가 넓어지고 이전에는 상상한 적 없던 새로운 무언가를 꿈꿔본다.

양은혜_꽃같은 녀자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0.9×31.9cm_2019

#3 예술은 유희, 양은혜의 나나랜드 ● '나나랜드'는 영화 '라라랜드'의 변형어로서, 김난도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의 책 『2019 트렌드코리아』에서 처음 소개된 용어이다. 사회적 기준이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며 나만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것을 뜻하며, 욜로(YOLO), 소확행 등과 함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건 다름아닌 '나'라는 젊은 세대의 사고와 삶의 방식을 일컫는 말로 사용된다. ● 동시대 젊은이들이 자신에게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개체적 흐름이라 할 수 없다. 절대불변의 진리가 존재한다고 믿던 기독교와 과학의 시대를 지나, 모든 것은 변화할 수 있다는 유동성의 관념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유동성의 관념은 과거의 규범과 가치, 자연질서에 대해 많은 의문을 제기했고, 확정된 정체성은 없다는 열린 결말로 우리를 이끌었다. 자유롭지만 불안정은 필연인 시대. 하지만 존재하는 모든 것은 안정을 꿈꾼다. 그것은 생존의 본능과도 같다. 그렇다면 확실한 것은 무엇인가? 나 뿐이다. 아니, 내가 움직이고 있는 이 순간의 기억뿐이다.

양은혜_터덜터덜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40.9cm_2019

작가 양은혜는 나의 일상을 통해 시대의 정체성을 그림 속에 잘 녹여낸다. 그녀가 보여주는 일상의 에피소드들은 우리 사회의 변화하는 가치관을 저변에 깔고 있다. 그리고 그녀가 순간의 기억을 의미화하는 법은 노니는 것 바로 유희이다. 유희하는 순간이 그림이 되고 예술이 된다. 철학자 칸트는 유희 본능과 예술의 상관관계를 얘기한 바 있다. 놀고 즐기는 가운데 자유롭고, 자유로움 속에서만 비로소 창조적이고 독창적일 수 있다. 그래서 유희는 예술의 본질과 근원에 닿는 행위이다. 플라톤 이래 이어져온 예술(혹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심오한 물음에도 밀레니얼 시대의 작가들은 개인에서 답을 찾는다. 이들에게 개인의 경험은 본질 탐구와 다름 아니다. 양은혜의 소소한 이야기가 소소하지만은 않은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 조의영

Vol.20190922c | 양은혜展 / YANGEUNHYE / 梁恩惠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