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形)으로의 회귀

조은필展 / CHOEUNPHIL / 趙恩畢 / installation   2019_0924 ▶︎ 2019_1112 / 일,월요일 휴관

조은필_형(形)으로의 회귀-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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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킴스아트필드미술관 기획展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월요일 휴관

킴스아트필드 미술관 KIMS ART FIELD MUSEUM 부산시 금정구 죽전1길 29(금성동 285번지) 제1전시관 Tel. +82.(0)51.517.6800 www.kafmuseum.org blog.naver.com/kafmuseum www.instagram.com/kims_artfield

'시간'을 통한 形으로의 回歸(회귀)色(색)의 판타지 "나의 블루에 대한 집착은 강박에 가깝다. 내 공간을 그 색으로 메우고 싶다. 공간은 늘 사물을 품고 있다. 그 사물도 다 파랗게 덮어버린다. 그리고 그 블루의 힘은 강해져서 보다 효과적으로 나를 둘러싼 세계의 영역으로 변모시킨다. 나의 사물이나 공간은 제한되어 있지만 그 속에는 우주, 바다 같은 무한함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한계 또는 유한함에 대항하는 질긴 '의지' 그 자체인 것이다. 우주나 바다에 대해 무한함으로 비롯되는 경이와 공포감 그렇지만 궁금증과 도전의식이 함께 공존하는 것처럼 이 색은 단지 좋아하는 것을 넘어 공포나 끈덕진 의지의 표식이기도하다." (조은필 작가노트 중에서) ● 조은필 작가의 '블루'에 대한 집착과 강박의 단초가 되는 유년시절의 개인적 이야기는 그녀의 작업을 이해하는 시작이 된다. 그녀의 개인사에서 보면 '블루'는 내밀한 개인의 심리적 결핍에 대한 '보상의 色'이었다. 세상의 객관적이고 일반적인 데이터와는 무관하게 '블루'는 조은필 개인의 '심리적 기호'로서 '더 블루 (The Blue)' 가 되었다. 나에게 그녀의 이러한 '블루'에 대한 집착과 강박적 증상은 역설적으로 조은필 개인의 끊임없는 '정체성'의 확인 그리고 '안정과 조화'에 대한 보다 우선적이고 절실했던 욕구의 분출로 여겨진다. 이러한 작가의 내밀한 '안정과 조화'에 대한 욕망은 '블루'라는 개인적 色(색)의 판타지로서 다양한 매체와 공간연출을 통해 표현되어왔다.

조은필_형(形)으로의 회귀-흘러내리다
조은필_형(形)으로의 회귀-퍼지다
조은필_형(形)으로의 회귀-물
조은필_형(形)으로의 회귀-번지다

'시간'을 통한 또 다른 접근 ● 데릭 저먼(Michael Derek Elworthy Jarman, English film director, 1942~1994)은 개인의 내밀한 사적영역의 서술에 있어 '영화'라고 하는 컨텍스트와 영상매체를 통해 개인적인 색의 철학과 그 미학의 형상화에 있어 자신만의 시각적 언어로 재형상화하고 있다. 데릭저먼 감독은 자신의 유작(遺作)이 된 자전적인 기록영화 『Blue 블루』에서 개인적인 기억과 흔적으로 가득한 시와 일기를 나레이션으로 흐르게 하고 80여분의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화면을 일관되게 '불투명한 블루'빛의 스크린으로 연출하고 있다. 관객을 당황스럽게 하는 이러한 블루스크린의 불투명한 연출방식은 바로 데릭 저먼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불투명함을 잘 표현하고 있다. 자신 스스로도 설명이 불가능한 '나'라는 실존에 대한 역설적 방식의 연출방식이다. 이러한 데릭 저먼감독의 영상매체를 통한 연출방식은 감독 자신의 내밀한 개인사를 강렬한 시각적 기호로서 형상화 하는데에는 탁월한 효과가 있었으나 개인적 서술영역의 객관화 내지는 타자로 하여금 반응을 요구하고 공유할 수 있는 '여유'의 배려는 생각할수 없다. ● 조은필 작가의 이번 킴스아트필드 미술관의 『형(形)으로의 회귀』전에는 이전의 '블루'라고 하는 작가 개인심리사의 중요한 시각적 기호가 다른 방식으로 연출되고 있다. 이전의 '블루'가 작가 자신에게 강력한 호소력을 가지고 주(主, Main)가 되는 공간의 연출요소로서 등장했다고 하면 이번 전시에서 '블루'는 그 강력했던 가시적 요소를 줄이고 '시간'이라는 중요한 요인을 통해 변화된 결과들을 가시적 형태로 '회귀'시킴으로써 '시간의 흐름'이라는 또 다른 테마를 등장시키고 있다. 다시 말하면 '시간'이라고 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작가의 중요한 시각적 기호인 '블루'와 함께 다양한 '오브제'를 통해 시각적인 형태로 회귀되고 있다고도 말 할 수 있다.

조은필_형(形)으로의 회귀-가루
조은필_형(形)으로의 회귀-프레임 1
조은필_형(形)으로의 회귀-이끼 

대표적인 작품으로 「형(形)으로의 회귀- 기둥」(2019)은 이러한 작가의 의도를 잘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관객은 기둥 어딘가에 보이지 않게 설치해 놓은 링거병에서 반복적이고 일정하게 물방울이 떨어지면 고요했던 전시장에서는 잔잔하게 시간 순으로 울려 퍼지는 그 소리를 연쇄적인 반응으로서 물방울의 파장의 形(형)을 수조를 통해 청각적・시각적 형태로 인지하게 된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사건은 이미 몇 초전의 일어난 일이지만 그 물방울로 인해서 보여지는 파장의 연속은 관객으로 하여금 '시간'이라는 보이지 않는 개념을 유추해서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고대 그리이스의 대표적인 건축양식의 일부로서 이오니아 양식(Ionic order) 기둥과 코린트 양식(Corinthin order) 기둥이 재현되어 같은공간에서 연출되고 있는데 이러한 고대 기둥의 재현은 연쇄적인 반응, 청각적・시각적 형태의 반응 현상과 함께 다양하게 확장된 '시간'의 개념을 시각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한다. ● 이번 조은필의 전시는 마치 영화의 쇼트필름들을 공간에 펼쳐서 감상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전의 전시가 개인적 판타지의 '단면들', '필름컷'이라고 한다면 이번 전시는 '고요한 나레이션'과 함께 상영되는 짧은 단편영화들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이전에 '블루'로 일관했던 강렬한 시각적 연출이 관객으로 하여금 다른 생각을 할 틈을 주지 않았던 작가의 강박적 호소에 대한 설득의 강요를 받는 공간이었다고 하면 이번 킴스아트필드 미술관의 『형(形)으로의 회귀』전은 오히려 한걸음 멈춰서서 작품에 몰입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부여된 '묵상'의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변화된 작가의 작품세계를 보면서, 막혀있는 동굴이 아닌 그 끝에 빛을 보고 걸어가는 또 다른 순례길로 접어든 여유있는 작가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죽은 나무의 뿌리와 그 그림자를 프로젝트 영상을 통해 자연스럽게 연출한 「형(形)으로의 회귀-뿌리」(2019), 또 다른 '블루'의 색채로 염색한 모스(moss)와 액자프레임이라는 오브제를 다양하게 연출한 「형(形)으로의 회귀- 프레임1」(2019), 「형(形)으로의 회귀- 프레임2」(2019)의 작품에 이러한 작가의 정신이 잘 표현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조은필_형(形)으로의 회귀 -프레임 2
조은필_형(形)으로의 회귀-뿌리

이 외에도 인상적인 작업은 조은필 작가가 영국에서 유학 생활을 했을 때 우연히 접하게 된 마조렐 블루(Majorelle blue)의 안료와 흰색 깃털로 아름답게 연출한 「형(形)으로의 회귀- 가루」(2019)이다. 마조렐 블루는 모로코에 위치한 마조렐 정원에서 유래된 색으로서, 정원을 건축한 사람인 자크 마조렐의 이름을 따 '마조렐 블루'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이브 생 로랑의 정원으로 더 유명하다. 온통 '블루'로 채색된 공간을 보면서 작가는 해방감과 충족감을 느끼고 그 안료를 꼭 한번은 작품에 사용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때의 염원했던 마음을 15여년이 지나서 작품을 통해 성취했으니 이 또한 작가의 개인적인 '블루'의 심리사를 그대로 담은 작품일 것이다. 인터렉티브를 위한 설치는 오히려 아날로그적 감성을 불러 일으키는 조금은 미숙한 방법으로 설치되었다. 부드러운 깃털이 마조렐 블루 안료를 반복적으로 천천히 쓸어갈때의 흔적은 또 다른 작가의 개인적 블루에 대한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 20세기 후반 대표적인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는 『프루스트와 기호들』에서 예술에 대한 그의 핵심적인 정신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오로지 예술을 통해서만 우리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또 오로지 예술을 통해서만 우리가 보고 있는 세계와는 다른, 딴 사람의 눈에 비친 세계에 관해서 알 수 있다. 예술이 없었다면 그 다른 세계의 풍경은 달나라의 풍경만큼이나 영영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을 것이다. 예술 덕분에 우리는 하나의 세계, 즉 자신의 세계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증식하는 것을 보게 된다." (『'시간'을 통한 形으로의 回歸(회귀)』, 도록 서문) ■ 임수미

Vol.20190922h | 조은필展 / CHOEUNPHIL / 趙恩畢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