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하 Scarlet- 本 . Rhapsody in Hypostasis

양순열展 / YANGSOONYEAL / 梁順烈 / painting.sculpture   2019_0925 ▶ 2019_1006 / 월요일 휴관

양순열_Scarlet gomujul 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고무줄_116×91cm_2019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료 / 1,000원

후원 / 한국메세나협회_세고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자하미술관 ZAHA MUSEUM 서울 종로구 창의문로5가길 46 (부암동 362-21번지) Tel. +82.(0)2.395.3222 www.zahamuseum.com blog.naver.com/artzaha www.facebook.com/museumzaha

양순열 작가는 세상의 평화와 사랑의 근원인 모성을 주제로 인왕산 기슭 자하미술관에서 9월 25일(수)~10월 6일(일)까지 전시한다. 양작가의 모성철학은 여성과 남성의 이분법으로 나누는 개념이 아닌 존재하는 것을 아우르는 대지와 같은 것을 의미한다. 모든 존재의 근원에 모성이 자리함을 표현하려하며 곡선의 정형화된 모습의 오똑이로서 우주를 품는 어머니의 거대한 마음을 담아 유니크하게 나타내고있다, 세상에서 모성의 회복을 바라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특히 이번 전시는 해질녘 저녁노을에 아이들이 재잘재잘 놀이후 어머니품으로 돌아가는 회상을 연출하며 어머니의 따뜻하고 너른 품을 느끼게한다. ● 전시공간에는 SYmuseumcollage, Dreamscape , MotherOttogi와 더불어 해질녁까지 놀고있는 조무래기 아이들이 엄마의 품안을 찾아 집으로 가는 영상도 함께 한다 호모사피엔스 조각들은 인간내면의 복잡성을 다양한 모습의 군상으로 표현한 것이다. 호모사피엔스가 정제되고 완성된 모습이 모성으로 표현된 오뚜기 형상이다. 호모사피엔스와 오똑이 작품들로 세상의 카오스를 연출했다. 모성의 따뜻한 손길은 인류문명발전에 있어서 핵심적인 요소이므로 원시시대부터 미래까지 원시인과 현재사람 안드로이드 손들로 표현되어 전시된다. 아울러 어릴적 놀이인 구슬치기 딱지치기 오자미놀이 고무줄놀이 자치기놀이의 오브제들이 전시된다.

양순열_Scarlet 5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천_296×195cm_2019
양순열_Scarlet 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천_296×195cm_2019
양순열_Scarlet 7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천_296×195cm_2019

모성적 공간을 구축하는 양순열 작가 ● 인간은 모성적 공간으로의 회귀적 본능이 있다. 자신이 태어난 모태적 공간이다. 생명이 탄생하고 시작되는 지점이다. 수도자들이 어린아이의 마음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우선 목표로 삼았던 것도 새로운 삶의 출발점에 서기 위해서다. 화가들도 예외가 아니다. 미술사의 거장들이 때론 '아동화로 돌아가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던 이유다. 새롭게 태어나는 미술사조들은 그렇게 시작되기도 했다. 유아 기적,.모성적 공간으로의 지향은 예술가들에게 강력한 창조적 에너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얼핏보면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그림 같기도 하다. 때론 자궁의 양수 같은 모태적 공간인 물에 주목하기도 한다. 햇빛이 쏟아지는 형형색색 찬란한 바다의 모습을 색점으로구현하는 경우가 많다. 양순열 작가는 어린시절 어머니 품안에서 느꼈던 감성과 어머니와 손잡고 나들이 했던 자연속의 꽃과 나비 등을 나름의 방식으로 모성적 공간을 창출해 내고 있다. 대학시절 수없이 들꽃을 찾아 다니며 사생을 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개의 학생들이 관념적인 사군자 수련에 힘을 쏟던 시절이었다.

양순열_Ottogi scarlet collage 1_천, 합성수지_45×19×19cm_2019

들꽃을 그렸지만 실은 꽃을 통해 유년기적 공간을 지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러형제의 늦둥이로 태어나 누구보다도 어머니에 대한 애착을 컸으리라 짐작된다. 어머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친구들괴 줄넘기도 하고 술래잡기를 했던 기억들은 고스란히 회폭에 감성적으로 스며들고 있다. 어머니 모습을 형상화 한 오뚝이도 유아기에 누구나 그렸던 어머니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아동화를 연상시키는 형상이다.. 자식을 위해선 늘 오뚝이 같았던 우리네 어머니다. 그 지향점은 '순수했던 유년으로의 복귀'다. 그래서 처음 그의 작품을 접할 땐 동심으로 가득 찬 어린아이의 그림이 아닌지 오해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캔버스에 다가가보면 전혀 다른 묵직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무수히 덧대 칠해진 물감의 흔적에서는 시간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양순열_Homo Sapiens_혼합재료_높이 87cm, 각 높이 50cm_2019
양순열_Homo Sapiens_혼합재료_높이 50cm_2019

여성들 곧 어머니들은 '모성'을 지니고 있다. 모성은 타인에 대한 희생과 보살핌과 평화를 지향한다. 모든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모성 정신이야말로 평화를 주장하게 하는 근원인 것이다. 나아가 남녀성별 구별 없이 평화와 희생을 지향하는 정신은 모두 '모성정신'이라 일컬을 수 있다. ● 모성은 그것이 잘 이뤄만 진다면 대단히 자유롭고 사랑이 넘치는 이상향을 낳을 수 있다. 이른바 자유혁명에 모성적 파토스가 함께 함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참된 유토피아가 종교적인 면으로만 그래도 가능성이 있음은 사랑을 근본으로 삼기 때문이다. ● 흔히 대지를 모성에 비유하나 모성은 대지보다 더 위대하다. 대지는 자연도태라는 일면 비정한 손길에 따라 생명을 키우나, 모성은 못난 자식일수록 더한 사랑으로 살리려 한다. 대지의 사랑은 한계가 있으나, 모성은 무한에까지 이른다는 얘기다. 사실 모성의 그런 특성이 사랑과 자비의 고등종교를 낳는데크게 영향을 주었다. 같은 여성신이면서도 고대종교의 이른바 대지의 여신들과 고등종교에서의 불교 보살이나 그리스도교의 성모 마리아는 모두 모성적 발로다.

양순열_Ojami_천_2019

흔히 낳은 어머니 보단 키운 어머니의 정(情)이 더 깊다 한다. 이는 '낳은'대지와 '받아들이는" 모성의 차이다. 대지에 사는 생명은 모두 유한한 존재로서 치열한 생존투쟁 속에언젠간 사라져야 할 운명이지만, 모성은 영원한 생명력을 지닌 '품'을 가지고 있기에 영원의 빛을 안겨다 준다. 모든 종교개혁자들이 '영원한 여성 곧 모성만이 우리를 이끌어 올린다'고 설파한 이유다. 모성의 신성을 강조한 것이다. 모성은 영원으로 향하는 창이라 하겠다. 양순열 작가의 작품은 그 모성의 창을 보여주려 한다. 엄마 품에 안긴 아기처럼 '무얼 먹을까, 무얼 입을까, 걱정치 말라' 한다. 아흔 아홉 번이나 용서를 청해도 다 들어주는 마음은 다름 아닌 바로 그 모성뿐이다. 그 때 그 곳에 뜨겁고도 밝은 사랑이 감돌고 그것은 빛이 되어 둘레를 비친다. 양순열의 지향점이다. 모성은 모든 것을 '받아'주는 존재다. 그래서 '바다'이다. 평화는 모든존재를 포용하는 마음이다. 모성은 바다이고 평화다. ■ 자하미술관

Vol.20190925c | 양순열展 / YANGSOONYEAL / 梁順烈 / painting.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