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회화의 모험: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The Adventures of Korean Contemporary Painting: I will go away all by myself展   2019_0927 ▶︎ 2020_0329 / 월요일,설날당일,1월 1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권순영_박경진_서고운_안두진_안지산_양유연 왕선정_우정수_이샛별_이소연_이우성_이호인 장종완_전현선_조문기_최병진_최수진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설날당일,1월 1일 휴관 관람종료 1시간 전까지 발권가능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Cheongju 충북 청주시 청원구 상당로 314 5층 기획전시실 Tel. +82.(0)43.261.1400 www.mmca.go.kr

격렬한 변화와 실험의 열정이 끓어올랐던 격동의 20세기를 거치면서 단련된 '현대미술'은 인공지능(AI)이 '회화'의 영역에 도전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현대미술의 장르 간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각 장르의 장점을 취하여 자유자재로 뒤섞는 혼종 예술, 고해상도의 영상 미디어, 대규모 자본과 효율성이 극대화된 공장형 제작 시스템이 탄생시킨 거대하고 화려한 설치 미술, 음향과 조명, 영상과 안무가 결합 된 대형 퍼포먼스 등 '현대미술'의 외형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난해하지만, 뭔가 그럴듯한 핫 한 아이템'으로 대중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 이번 전시는 급변하는 세상 속 '현대미술'의 개념이 무한 확장된 이 시대에, 가장 보수적이며 전통적인 매체인 '회화(繪畵)', 즉 캔버스나 종이 등의 평면 지지체 위에 유화, 아크릴, 수채 등 다양한 물감을 이용하여 작가의 아이디어와 개념을 구현(묘사)하는 행위가 여전히 의미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 회화의 '위기론' 혹은 '종말론'은 현대미술의 역사에서 끊임없이 등장했던 이슈였다. 가장 처음 회화의 존재가 심각하게 위협당했던 시기는 '카메라'가 등장했던 19세기 후반이었다. 세상의 이미지를 재현하는 화가의 손보다 훨씬 정확하게 세상을 포착하는 '카메라'는 괴물과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영민한 예술가들은 사진이 포착할 수 없는 '초현실', '추상', '개념'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영역을 넓혔고, 당당히 현대미술의 주류로서 20세기 미술사를 이끌었다. ●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 미술계에서도 '회화'의 한계론이 팽배했었다. 당시 한국 미술계는 실험적인 대안공간의 출현과 함께 영상 미디어, 설치 미술의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이러한 상황은 2000년대 중반 유례없었던 한국미술의 호황기에 극사실적이며 장식적인 회화가 주목을 받으며 다시 한번 극적인 반전을 맞게 된다. 이후 짧았던 호황의 끝이 지난 후 도래한 기나긴 불황의 터널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 이번 전시는 치열한 미술계에서 끊임없는 노력으로 자신만의 '회화' 세계를 구축했으며, 또 다른 변화와 성장의 가능성이 잠재되어있는 30~40대 회화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조망한다. 이들은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일상과 현실에 대한 깊은 사유와 체험을 바탕으로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시선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표현한다. 전시에 참여한 17명의 작가는 미술관 기획전시실 내외부 공간과 로비, 개방수장고 유리벽 등의 다양한 공간에서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 당대의 예술가들이 온몸으로 체험하고, 치열하게 표현해낸 '세상의 풍경'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확장될 것이다. 예술가들은 세상의 기준과 평가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방향을 설정한 채 묵묵히 나아간다.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는 오롯이 단독자로 세상과 마주하는 예술가들의 운명을 상징한다.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은 누구도 도달하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어야 한다. 가족도 친구도 그 누구와도 함께할 수 없는 외롭고, 적막하며 좁은 가시밭길이다. 하지만 예술가는 그 길을 주저 없이 선택한다. 그래서 예술은 위대한 것이다.

*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는 와카타케 치사코의 소설 제목을 차용한 것이다.『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와카타케 치사코 저, 정수윤 역, 토마토출판사, 2018.8.)

권순영_LOVE 5_한지에 채색, 아크릴채색_50×50cm_2017

권순영(1975~)은 밝은 파스텔톤 색채와 순정 만화 속 캐릭터를 자유자재로 활용하여 적나라하고 잔혹하며, 때로는 아름답고 황홀한 풍경을 자유자재로 펼쳐내는 이야기꾼이다. 표피적으로 감지되는 밝은 색채와 순정 만화 주인공들의 이미지와 달리 권순영의 풍경은 '지옥도'에 맞먹는, 살벌하고 잔혹하며, 가학과 피학의 비틀어진 이미지가 출몰하는 공간이다. 여성과 아기, 미키마우스, 눈사람 등 꿈과 희망, 기쁨과 사랑의 상징이었던 캐릭터들은 권순영의 작품 속에서 나약한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괴이한 생명력을 부여받는다. 이들은 그림 속 주인공이 되어 종횡무진 활약하며 잠재(혹은 거세)되어있던 사도마조히즘적 욕망을 폭력적으로 분출한다. 작가는 잔혹한 현실 속에서 희생당한 수많은 연약한 존재를 애도하는 동시에 한없이 취약한 '순수'와 '순진'의 허상을 드러낸다. 이들의 굴레를 벗겨버리고, 채찍질하고 밀어붙임으로써 더럽고, 추한 세상에서도 충분히 생존할만한 강한 존재이자 욕망의 화신으로 변신시킨다. ● Love 연작은 검은색 정사각형 바탕 위에 화려한 테두리로 장식된 사랑의 에피소드를 보여준다. 작가 특유의 순정 만화와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 크리스마스트리와 꽃, 화려한 구슬 등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변형되고 절단된 신체의 인물들, 불타거나 흐물흐물 녹아내리고, 꼬챙이로 관통된 눈사람 등의 이미지는 작가 특유의 냉소와 컬트적 요소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서커스 2」(2019)와 「눈물의 여정」(2019)은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그동안 권순영의 작품 속에 등장했던 애환의 캐릭터들이 '서커스단'의 단원이 되어 멋진 공연을 펼치고, 또 다른 미지의 공연장을 향해 여러 칸의 열차에 나눠 타고 달밤에 이동하고 있다. 작가 자신의 분신이자, 자식과도 같은 결함투성이의 캐릭터들에 대한 깊은 애정과 따뜻한 시선을 듬뿍 담고 있는 작품이다.

박경진_엄습 #.1(제작과정)_캔버스에 유채_227.3×545.4cm_2019

박경진(1982~)은 생계를 위해 병행하고 있는 영화와 뮤직비디오 배경 세트장의 풍경과 인부들의 모습을 그린다. 수많은 영화와 뮤직비디오의 화려한 배경을 위해 일시적인 설치와 철거가 반복되는 무대의 뒤쪽 풍경은 화려하게 가공된 결과물과 달리 거칠고 조악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박경진은 그동안 자신이 참여했던 무대 설치를 꼼꼼히 기록했고, 각각의 단편들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무대와 주인공을 창조한다. 박경진의 초기 작업은 9.11 테러와 쓰나미와 후쿠시마 원전 폭발, 세월호 참사 같은 비극적인 사건을 다루는 것이었다. 하지만, 작가는 어느 순간 이러한 비극적인 사건들을 주목하고 회화로 재현하는 과정에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게 되었다. 결국, 작가는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시간과 장소,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세트 제작 현장과 그 속의 사람들 이야기를 기록하고, 재구성하는 회화 연작을 발표하게 되었다. ● 박경진은 이번 전시에서 공간 설치 신작 「엄습 #.1」(2019)을 선보인다. 전시장 입구에 비스듬히 세워진 캔버스에는 공포영화나 재난 영화의 세트처럼 폐허가 된 을씨년스러운 건물 내부의 풍경을 보여준다. 중심에 있는 세 명의 인물과 화면 좌측의 툭 튀어나온 배를 내민 아저씨, 그리고 오른편 인부들은 서로 고립된 채 연극 무대의 배우처럼 각자의 역할에 몰입한 듯 보인다. 박경진은 '누군가'를 위해 무대를 준비하던 보이지 않는 조력자들을 자신들이 만든 무대의 주인공으로 전면에 등장시킨다.

서고운_사상도(팽창기-붕괴전기-붕괴후기-골격기)_캔버스에 유채_66.9×267.6cm_2018

모든 존재는 소멸한다. 초현실적인 풍경 속 썩어가는 주검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서고운(1983~)의 회화는 외면하고 싶은 진실의 실체를 관객의 눈앞에 던져놓는다. 암흑의 중세 시대에 인간은 신의 존재를 통해 죽음의 공포를 극복할 수 있었다. 현대문명을 이끌어온 '과학'은 죽음의 실체를 밝혀냈지만, 우리에게 '죽음'은 여전히 두렵기만 한 대상이다. 작가 역시 작품을 위해 '죽음'과 '소멸'에 대한 각종 정보와 이미지(?)를 수집하고 재현하는 과정의 극심한 고통과 피로감을 고백한다. 하지만, 작가는 생명의 시작과 끝의 운명적인 순환과정 중 '죽음'과 '소멸'의 압도적 공포와 허무, 엄숙과 숭고의 양가적 감정에 대한 본능적인 끌림으로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 「존재하는 것은 모두 사라진다.」(2018), 「사상도」(2018)는 생명을 잃은 육체의 소멸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냉철한 해부학자의 기록처럼, 땅에 누운 주검은 부패의 가스로 팽창하면서 동시에 곤충의 요람이자 들짐승의 먹이로 서서히 분해되어 하얀 백골 상태로 변화된다. 「수평이 되는 시간」(2018)도 충격적인 이미지를 보여준다. 죽음 이후에 온전히 수평으로 스러지는 육신의 껍질은 시간의 경과에 따라 썩어내려 액체화된다. 심심치 않게 언론에 등장하는 '고독사'의 증거물처럼 육신은 이처럼 처절하고, 허망한 흔적을 남기고 사라진다. 서고운의 회화는 화려한 과학 문명의 불빛 속에서 불사를 꿈꾸는 인간들의 오만과 무지를 드러내며, 썩어버릴 육신의 한계를 각성시킨다.

안두진_분리되는 돌_캔버스에 유채_아크릴채색_181.8×227.3cm_2016

안두진(1975~)은 세상에 존재하는 이미지를 묘사하는 그림이 아닌, 작은 세포의 분열을 통해 성장하는 생명체와 같이 스스로 발생하는 회화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작가는 '이미지' 구성의 최소 단위를 '이마쿼크' (이마쿼크는 원자를 핵과 전자로 쪼갠 후 핵을 다시 중성자와 양성자로 분리한 후 추출된 최소 개념을 부르는 쿼크(quark)와 이미지(image)를 합성한 조어다.) 라고 지칭하며, 하나의 끝없는 분열을 거친 작은 세포가 다양한 생명체로 진화한 것처럼 점, 선, 면 같은 단순한 형태의 반복으로 구축된 초현실적인 풍경화를 보여준다. 삼각형, 구형, 원뿔 등의 기하학적 도형과 빨강, 파랑, 초록 등 강렬한 원색으로 구성된 풍경은 미지의 외계 행성처럼 환상적으로 느껴진다. 안두진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고, 참조가 필요 없이 스스로 생성되는 '이미지'의 실험을 끊임없이 지속하고 있다. ● 「닮은 것과 닮은 꼴」(2016), 「분리되는 돌」(2016)은 안두진의 작품 특징을 잘 보여준다. 낯선 외계의 행성 같은 초현실적인 풍경 속에 등장하는 거대한 산과 바위, 숲과 강물의 형상은 특정한 장소나 이미지를 묘사한 것이 아니다. 마치 초기 지구의 척박한 환경에서 처음 등장한 세포의 무한 분열이 만들어낸 생명체로 가득한 원시 지구의 모습처럼 각각의 이미지들은 작은 색 점의 덩어리가 모이고, 중첩되고, 스치고, 겹치면서 성장한다.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반복되는 수많은 붓질의 중첩은 이처럼 세상에 없던 새로운 풍경을 탄생시키고 있다.

안지산_잘려진 것들의 기억_캔버스에 유채_210×194cm_개인소장_2018

안지산(1979~)은 캔버스에 물감으로 표현하는 행위, 즉 '무엇을 그릴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질문을 던진다. 때문에 안지산의 회화는 특정한 소재나 표현 방식에 고립되지 않는 유연함을 지니고 있다. 작가는 개인의 경험이나 기억, 온·오프라인에서 수집한 다양한 이미지들을 콜라주 하여 3차원 공간에 미니어처로 재현한 후 평면 회화로 옮기거나, 자신의 손과 발에 물감을 바르고, 씻어내는 행위를 회화로 재현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만의 '회화'적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안지산은 미술사의 수많은 선배 작가들이 고민했던 '회화의 표현'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를 통해, 끊임없이 부딪히고 깨지며 거대한 바위를 조금씩 굴리며 나아가는 예술가의 고된 여정을 보여주고 있다. ● Memory of cutouts(2018)는 작가가 그린 이미지들을 잘라 미니어처로 구성한 후, 이를 확대하여 회화로 재현한 작품이다. 초록색 나무를 배경으로 머리에 사과를 얹은 여인과 뭉게구름 등 연극무대의 배경 같은 이미지는 친숙하면서 생소한 느낌을 전달하고 있다. 어린아이들의 종이 인형 놀이처럼 작은 무대를 연출하고 회화로 확대하여 표현하는 방식은 날 것의 생생함을 전달하며, 재현과 모방의 '대상'을 공감각적으로 구축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날 선 감각을 고스란히 '회화'로 옮기려는 작가의 의지를 보여준다. 「구름수집」(2019)은 작가가 그린 다양한 구름 그림을 벽면에 배열하고 회화로 묘사한 풍경정물(?)화이며, 「매달린 꽃, 푸른 꽃, 서 있는 꽃」(2019)은 색칠한 조화를 벽면에 설치하고 회화로 옮긴 정물 풍경화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구름 그림과 색칠한 가짜 꽃을 공간에 설치하고, 회화로 재현하는 방식을 통해 대상과 주체의 관계, 회화의 물성과 표현의 방법에 관해 탐구하며, 전통적인 풍경화와 정물화의 재현 방식으로부터의 이탈을 시도하고 있다.

양유연_붉은 못_장지에 아크릴채색_148×107cm_2015

눅눅하게 가라앉은 색채와 어두운 그림자, 수상한 공간 속 모호한 정체의 인물들이 등장하는 양유연(1985~)의 회화는 안일한 일상의 시간과 공간 속에 감춰진 불안과 두려움, 낯설고 생소한 순간을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끊임없이 외부의 시각적 정보를 받아들이고 해석하며, 행동하는 연속된 반복 속에서 생활한다. 무의식적(기계적)으로 또는 의식적으로 작동되는 우리의 지각은 심리적인 혹은 물리적인 요인에 의해 요동치는 순간을 맞이한다. 주변의 일상적이고 평범한 풍경이 기이하고 비범한 풍경으로 보이거나 혹은 낯설고 소름 돋는 공포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양유연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의 경직된 풍경의 이면에 감춰진 낮선 풍경의 조각들을 하나씩, 하나씩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 하늘을 향해 메케한 연기를 뿜어내는 두 개의 굴뚝(「잠든 괴물」, 「눈뜬 괴물」)은 돈키호테가 돌진했던 풍차처럼 거대한 괴물의 형상으로 묘사된다. 어둑한 폐건물의 작은 창문에서 쏟아져 내린 빛의 흔적, 무심히 쌓여있는 마네킹의 분절된 하반신, 짙은 어둠 속에 머리가 갇혀 버린 사람의 형상, 붉은 핏물 속에서 무언가를 사냥(?)하는 남자의 모습 등 작가가 묘사하고 있는 공간 속 인물들은 낯설고 기이하며, 불안한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왕선정_티비가 있는 풍경_캔버스에 유채_65×100cm_2017

왕선정(1990~)은 일상에서 경험했던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작품 소재로 사용한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바탕이 된 「에덴-劇」 연작은 아이들의 그림처럼 자유로운 선과 색채 표현을 통해 성서의 이야기로 덧씌운 가정 속 폭력과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두 딸은 성모와 악마, 어린양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사랑과 행복, 화목과 평화의 상징인 '가정'이라는 폐쇄된 공간 속에서 벌어지는 권력자(아버지)의 무자비한 폭력과 힘없는 희생자들의 절망과 불안의 기억이 동화 속 이야기처럼 표현되어있다. 젖과 꿀이 흐르고 사랑으로 가득 찬 '에덴'은 신의 분노로 쫓겨난 인간에겐 돌아갈 수 없는 '허상'으로만 남아있다. 왕선정의 그림은 지상의 '에덴'으로 포장되는 가족이 언제든 '지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 「에덴-劇」 연작 속 '악마'는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는 폭군이자, 그 또한 근원적인 결함을 지닌 애증의 존재로 나타난다. '악마'에게 마냥 당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성녀와 어린 양들의 무기력한 모습은 '전래 동화' 또는 어린아이의 천진한 '그림일기'처럼 묘사된다. 지옥 같았던 기억과 깊은 상처 위엔 망각이라는 시간의 층이 서서히 쌓였을 것이다. 좌충우돌 마초의 에너지를 뿜어내던 덩치 큰 악마가 교회에서 눈물을 흘리고, 외로이 TV를 보는 어리바리한 모습들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그'의 존재에 대해 연민의 시선을 던지는 작가의 변화된 시각을 보여준다.

우정수_프로타고니스트_로즈핑크 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잉크_116.8×91cm_2018

우정수(1986~)는 '시간'을 물질화시키는 방법으로 '책'과 '작업'을 생각했다. 역사와 철학, 신화와 종교 등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강박적인 독서는 자신의 그림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수단이었고, 또한 자신의 그림을 설명하기 위해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인 것이었다. 이렇듯 작가에게 책 읽기와 작업, 세상에 관한 탐구는 긴밀한 연결고리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가 책을 통해서 알게 된 수많은 진리와 지혜의 언어들은 현실 속에서 무력한 한계를 드러내곤 했다. 우정수는 사회라는 거대한 집단의 일원이지만 예술가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초기 작업에서는 세상에 대한 비판과 냉소적인 시선을 담긴 서사(이야기)에 주목했다면, 근작의 경우에는 추상적인 이미지, 색채와 붓질의 표현 등 조형적이며, 감각적인 회화작 표현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 우정수는 미술품수장센터의 상징적인 공간인 1층 개방 수장고와 보이는 수장고의 유리 외벽(46.5x4.4m)을 이용하여 작가 특유의 위트와 유머러스한 이미지가 돋보이는 드로잉 설치작품 Sing-geul Beong-geul을 선보인다. 중세의 신화와 전설, 종교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도상들과 스마일 맨 같은 만화 이미지들은 유리 외벽 안쪽의 미술관 소장품과 함께 어우러지며 시공을 초월한 이미지들의 향연을 펼치고 있다. 1층 로비 전면 벽에는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강렬한 로즈핑크 작품 「프로타고니스트」 연작이 전시된다. 신의 저주로 10년간 바다를 떠돌며 온갖 시련을 겪었던 오디세우스의 신화처럼, 거대한 파도에 깨질 듯 위태로운 배의 형상은 거친 세상의 바다를 가로질러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예술가'의 운명을 상징하는 듯 보인다.

이소연_검은 숲 3_캔버스에 유채_170×180cm_2019

이소연(1971~)의 회화 속에 등장하는 날카롭게 찢어진 눈매의 신비로운 소녀는 작가 자신의 모습이다. 이소연은 스스로 그림 속의 주인공이 되어 흥미로운 세상을 탐사하는 모험담을 펼쳐 보인다. 작품 속 주인공은 매번 다른 의상과 머리 모양, 독특한 사물들과 함께 다양한 풍경을 배경으로 존재감을 뿜어낸다. 이소연의 작품은 전통적인 '초상화'와 달리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셀카를 찍는 관광객들의 '기념사진'과 유사하다. 이소연은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작품 속 주인공을 통해 작가가 직접 경험한 세상은 물론, 현실에서 실현 불가능(?)한 욕망과 환상의 세계를 탐험한다. 작가는 모험담의 중심에서 '내가 여기 있었다!'라고 무언의 선언을 외치고 있다. ● 「검은 숲 1」(2019)은 낮과 밤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간 작업실 주변의 평범한 숲속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인물이 중심이 되었던 전작과는 달리 원경의 하늘과 전경의 각종 잡풀 등이 화면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어두운 숲을 배경으로 신령한 존재처럼 등장하는 새 머리 가면의 소녀와 흰 개들의 모습은 낯설고도 신비로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한낮의 강렬한 태양 빛에 선명하고 뚜렷한 색채를 내뿜던 숲속의 식물들이 슬며시 다가오는 어둠으로 인해 흑회색, 흑록색, 흑청색, 흑갈색 등 하나의 덩어리로 뭉쳐진다. 양평의 한적한 시골 동네에 정착한 작가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양하게 변모하는 숲의 신령한 기운을 화면 속에 포착해내고 있다.

이샛별_스키너2_캔버스에 유채_90×72.7cm_2018

이샛별(1970~)의 작품에 등장하는 녹색 자연은 낯설고, 불편하다. 기괴하게 뻗은 가지와 열매는 동물의 내장처럼 번들거리며, 사람들을 집어삼킬 것 같은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작품 속 풍경은 우리가 흔히 자연을 생각하며 떠올리는 휴식, 안정, 치유와 같은 자동 반사적인 연상을 비켜나간다. 이샛별은 우리가 인식하는 자연은 문명화된 세계에서 만들어낸 가공된 이미지, 즉 '우리의 삶에 피부처럼 들러붙은 가장 자연스러운 자본 시스템을 은유' 한다고 언급한다. 이샛별은 기괴한 '자연'의 모습을 통해 욕망과 쾌락으로 점철된 자본주의 문명의 괴물 같은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 「스키너」, 「특이점」 연작은 다양한 인물들의 초상화이다. 하지만, 이들의 눈, 코, 입이 있어야 할 자리는 각종 초록 식물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남성의 얼굴은 좀 더 구체적이며 사실적인 식물들로 채워져 있으며, 추상적이며 유기체적인 장기처럼 변형된 식물들은 여성의 얼굴을 채우고 있다. 작가는 남녀 간의 생물학적인 다름 못지않게 사물에 대한 인식과 해석에도 미묘한 차이가 있음을 드러낸다. 「녹색 에코 6」는 징그러운 식물들로 가득 찬 숲속의 남녀를 보여준다. 이들은 미지의 행성에서 조난된 인물들처럼 위태로워 보이며, 거대한 식물들은 이들을 압도하고 있다. 조그맣게 피어오른 모닥불의 형상은 두 남녀를 보호하기엔 터무니없이 미약해 보인다.

이우성_도망가는 사람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과슈_193.9×103.3cm_2011

이우성(1983~)은 작가와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이들은 다양한 사회, 문화, 정치, 경제 상황을 공유하며, 함께 울고, 웃으며, 슬퍼하고 분노하는 공통의 경험을 나누는 존재들이다. 이우성은 틀이 없는 천 위에 만화체의 이미지로 다양한 이야기를 표현한다. 천 그림의 장점은 문 내린 셔터 앞이나 담벼락, 공원, 카페나 펍 등의 공간에 부착하거나, 늘어뜨림으로써 자연스럽게 대중과 조우하며, 이로 인해 작가가 다루는 다양한 이슈와 발언들이 '예술'이라는 형식의 무게로 인해 관객과 괴리되는 위험성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미술관 로비에 설치된 「알바트로스」(2016)는 세상에서 가장 높이, 멀리 나는 새로 알려진 알바트로스를 묘사한 작품이다. 강렬한 붉은 색 바탕을 배경으로 커다란 날개를 펼치고 활공하는 알바트로스의 모습에서 무한한 '자유'의 쾌감이 느껴진다. 「아무도 내 슬픔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2011)와 「도망가는 사람들」(2011), 「가능한」(2012) 등의 초기 작품은 전시실에서 선보인다. 활활 타오르는 몸뚱이와는 전혀 상관없는 듯 무표정한 오리배, 앞뒤 터진 바퀴의 자전거를 타고 무언가로부터 도망가는 남자, 불타오르는 '정면'을 향해 노를 젓는 정신 나간 인물 등은 한여름 밤의 악몽과도 같이 공포와 불길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다. 젊은 예술가로서, 이 시대의 청춘으로서 겪어야 하는 고민과 불만, 절망과 우울의 정서가 '모순'적인 상황을 통해 은유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호인_남산타워_종이에 유채_38.5×30cm_2017

이호인(1980~)은 밤의 풍경 즉, '도시의 밤 풍경'을 그린다. 인공위성이 촬영한 밤의 지구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화려한 빛으로 가득 찬 도시의 풍경이다. 지구의 '밤 풍경'은 '인간'이 만든 풍경이다. 이호인은 빛이 충만한 원경의 도시 풍경을 화려한 원색으로, 전경의 어두운 산의 실루엣과 나뭇가지 등은 어두운 무채색으로 묘사한다. 단순하고 과감한 화면구성과 속도감 있는 선, 그리고 감각적인 색채의 표현은 어둠 속으로 후퇴하는 자연과 빛을 뿜으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도시의 이미지를 극적으로 대비시킨다. ● 자연은 인간에게 자신의 귀퉁이를 내어주고, 그 자리를 차지한 인간들은 야금야금 자연의 생살을 파먹으며 영역을 확장해왔다. 이제 인간들은 자신들의 도시를 장식하는 조경의 대상으로 '자연'을 축소해 버렸다. 그 대표적인 이미지가 바로 밤의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가 조망하는 화려한 밤 풍경은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풍경이다. 억만년 동안 이어졌던 밤의 어둠을 찢어버린 전기 불빛은 형형색색의 환상적인 색채로 풍경을 물들이고 있다. 자연은(작가의 시선을 통해) 무채색 어둠을 몸에 두른 채 물끄러미, 인간의 풍경을 조망한다. 빛과 어둠, 들뜸과 침잠, 생기와 창백이 공존하는 이중적인 풍경이다.

장종완_높은 버섯과 양들_양가죽에 과슈_110×74cm_2019

장종완(1983~)은 사랑과 평화가 흘러넘치는 유토피아 풍경을 묘사한다. 환상적인 자연을 배경으로 인간과 동물이 친구가 되고, 젖과 꿀이 흘러넘치는 아름다운 풍경은 작가가 어린 시절 접했던 특정 종교의 홍보 전단과 이발소에 붙어 있던 정체불명의 목가적 풍경을 패러디한 것이다. 작가는 회화, 애니메이션, 설치 등 다양한 방식으로 상상 속 유토피아와 동화 속 세계관의 허황된 낙관주의를 비틀고 꼬집는다. 작가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수집했던 다양한 짐승 가죽을 활용한 연작 회화를 선보였다. 인간의 생존을 위해 사냥당했던 짐승들은 이제 대량 사육을 통해 자신들의 고기와 가죽을 인간에게 바치고 있다. 죽음의 이미지가 말끔하게 세척된 가죽 바탕에 파스텔톤 색채로 그려진 풍경 속에는 환상의 파라다이스와 가상의 우화 속 동물과 식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 전시장 입구 벽면에 설치된 30여 점의 가죽 회화는 과거 어르신들의 필수템이었던 여우 목도리부터 작은 설치류, 소가죽, 심지어 곰이나 호랑이 같은 육식동물(인조가죽) 등의 다양한 가죽 위에 그려진 것이다. 각각의 가죽에는 성스러운 빛이 충만한 평화롭고 목가적인 분위기 속에 어우러지는 인간과 동물, 종교를 패러디한 각종 동식물의 우화가 펼쳐져 있다. 사각형 나무틀에 매달려 사지를 펼치고 있는 아름다운 가죽의 주인공은 자신의 사냥감(?)에게 사냥을 당해 '가죽'이 벗겨진 어느 운 나쁜 호랑이의 비극을 보여준다.

전현선_나란히 걷는 낮과 밤(14)_캔버스에 수채_112×145.5cm_2017

전현선(1989~)은 인물, 정물, 풍경, 추상, 구상 등의 다양한 이미지들을 자유롭게 활용하여 이야기를 구성한다. 모니터 위에 평면적으로 겹쳐진 윈도우 창의 이미지처럼 시공을 초월한 이미지들이 화면 속에 등장한다. 삼각형, 사각형, 원뿔 등의 기하학적인 추상 형태와 동식물이 등장하는 자연 풍경, 각양의 인물들은 특별한 규칙이나 질서, 위계와 경계 없이 묘사되어있다. 스크린 위에 무작위로 띄워진 이미지들처럼 가볍고 무게 없는 이미지들은 향연은 작가가 사용하는 불투명 수채화의 눅눅하게 가라앉는 채색 효과로 인해 존재감을 얻게 된다. ● 「나란히 걷는 낮과 밤」(2018~2019)은 전현선의 작품 경향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총 15점의 캔버스로 구성된 커다란 화면 속에는 이미지의 향연이 펼쳐져 있다. 제목의 암시하듯 낮과 밤의 구분, 추상과 구상, 풍경과 정물, 안과 밖, 중심과 주변, 원인과 결과 등 등 서로를 구분하는 경계를 초월한 각양의 이미지가 '나란히 걷고 있는' 평등한(?) 풍경이다. 삼각뿔, 원뿔 등의 기하학적 추상 형태는 나무, 바위, 숲, 폭포, 토끼, 탐스러운 복숭아, 담벼락, 드로잉, 만화, 회화 이미지와 함께 어우러진다. 전현선은 자신의 회화에 대한 고민들, 즉 차이 혹은 다름, 구분과 분류, 평가와 인정 등 '해결되지 않은 작은 물음표'들이 모이고 뭉쳐져서 하나의 잠정적 결론의 형상이 만들어지는 회화를 꿈꾸고 있다.

조문기_공격과 방어_캔버스에 유채_162.2×130.3cm_2016

가족은 마냥 행복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일까? '가족'이라는 껍데기의 이면에서 벌어지는 온갖 추악한 사건들과 비극의 순간을 묘사하는 조문기(1977~)의 회화는 한편의 블랙 코미디처럼 씁쓸하게 다가온다. 인류의 역사에서 부모와 자식, 형제와 자매 등 혈연관계에서 벌어진 치열한 암투와 비극적인 결말은 그 양상이 조금씩 달라졌을 뿐 문명화된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하다. 종종 뉴스를 장식하는 가족 간의 잔혹극들은 조문기의 그림을 평범하고 애교스럽게 보이게 만들 만큼 자극적인 경우가 많다. ● 「상주와 함께」는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의 구도를 차용하여 장례식장에서 벌어지는 가족 간의 혈투(?)를 묘사하고 있다. 화면의 중심, 상복을 입은 사내들이 서로 쥐어뜯으며 혈투를 벌이고 있다. 화면의 왼편에는 거나하게 취해 웃통을 벗어젖힌 건장한 사내(흔히 집안에 한 명씩은 있을 법한 주사 있는 인물)가 셔츠를 말아쥔 채, 이를 말리는 두 사내에게 제지당하고 있다. 화면 왼편 바닥에 쓰러진 인물은 자식들의 싸움에 충격받은 노모로 보인다. 꼴사나운 장면을 피해 아기를 안고 나가는 인물, 이런 싸움에 이골난 듯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여인의 모습은 우리들의 경험 속 기억들과 겹치면서 너무도 생생한 현장처럼 느껴진다. 두 눈을 감고 있는 무표정한 인물들이 벌이는 무언의 참극은 비극적 요소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최병진_006_캔버스에 유채_92×65cm_2015_미술은행 소장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경험과 기억 속에서 살아간다. 아무리 평범한 삶을 살았던 사람의 인생이라도 몇 권의 소설책을 쓸만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쏟아지게 마련이다. 최병진(1975~)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가족과 주변인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작품 속에 녹여낸다. 작가 특유의 입체적인 만화체의 인물과 세련된 색채의 표현은 큐비즘과 같은 모더니즘 회화 대가들의 표현 방식을 차용하여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 1부터 25까지 일련번호가 매겨진 초상들의 몸을 기하학적인 구조물이 둘러싸고 있다. 단단한 돌이나 철재 갑옷처럼 인물들의 상반신을 꽉 조이는 정체불명의 구속복은 불시에 작가의 정신과 몸을 지배하고 옥좼던 '강박증'의 순간을 시각화한 것이다. 일상의 시공간에서 갑자기 숨이 막히고, 몸이 돌처럼 굳어지는 고통을 겪었던 작가는 자신이 경험했던 공포의 실체를 객관화시키고, 묘사하며, 마주 보는 행위를 통해 '몸'과 '마음'의 깊은 상처를 회복시키고자 했을 것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대부분의 공포는 실체를 알 수 없기에 증폭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최수진_색담배_캔버스에 유채_90.9×90.9cm_2016

'화가의 작업' 그 이면의 풍경을 보여주는 최수진(1986~)의 회화는 거침없는 표현의 자유로움과 솔직함, 천진함과 순수함, 호기심의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최수진의 그림은 전통, 실험, 명상, 고귀, 숭고, 아우라 등 '회화'의 껍데기에 덧씌워진 세상의 비평과 평가를 염두에 둔 과한 진지함 혹은 거창한 사명감 따위와는 거리가 멀다. 그저 화가의 상상력을 실현하는 도구에 대한 넘치는 애정, 물감과 색채 대한 무한한 호기심 등 '그리기'의 원초적인 기쁨을 솔직하고 대범(?)하게 보여줄 뿐이다. ● 「무지개 제작소」 연작에는 빨강, 파랑, 초록, 보라 등 다양한 물감을 제작하는 제작소 식구들(작가의 분신 혹은 아바타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색을 채집하고, 직조하고 염색하며, 약탕기로 짜내고, 무지개 수타면을 만들고, 색을 숙성시키며, 색 두루치기, 색 버무리, 색 말랭이 따위를 만들며 분주하게 움직인다. 화려한 색깔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 그리기에 대한 끝없는 열정은 세상의 기준이나 가치, 평가 따위로 훼손된(?) 가장 원초적이며, 근원적인 '회화'의 존재 이유를 보여주고 있다. ■ 국립현대미술관

Vol.20190927c | 현대 회화의 모험: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