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 대한 탐구-유랑

김지원_김태헌展   2019_0927 ▶︎ 2019_1108 / 월요일 휴관

김지원_유랑-꽃집展_스페이스몸미술관_2019

초대일시 / 2019_0927_금요일_06:00pm

김지원-꽃집展_제2전시장 김태헌-붕붕展_제3전시장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_2019 청주공예비엔날레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스페이스몸미술관 SPACEMOM MUSEUM OF ART 충북 청주시 흥덕구 서부로1205번길 183 제2,3전시장 Tel. +82.(0)43.236.6622 www.spacemom.org

만유(漫遊), 흩어져 노닐다. ● "빽빽한 수풀은 산길에 닿고 / 깊은 강은 절문 밖 멀리 흐른다. / 뭉실뭉실 구름기운 피어오르고 / 반짝반짝 물보라가 나부끼누나. / 하늘이 이리 큰지 몰랐었는데 / 부처님 뵈오니 '공空이 남았네. / 때때로 손을 씻고 속세 물러나 / 기쁨 좇아 불시에 참예하리라." - 두보, "도솔사를 바라보고" "둘이서 술을 드니 산꽃이 피네. / 한잔 하고 또 한잔 하고 또 한잔 하고 / 휘하여 자려 하니 그대 갔다가/ 내일 아침 내키면 금 안고 오게." - 이백, "대작"

김태헌_내 이야기 좀 들어볼래?_앰뷸런스 설치_2019_부분
김태헌_내 이야기 좀 들어볼래?_앰뷸런스 설치_2019_부분

"유랑"은 김지원, 김태헌, 각각 두 명의 개인전으로 기획된 전시이다. 두 작가 모두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드로잉을 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2인전이 아닌 두 개의 개인전으로 구성된 유랑은 스페이스몸미술관 특유의 소장품에서 비롯된 전시로, 김지원에게는 영여(상여와 같은 뜻)를, 김태헌에게는 오래된 앰뷸런스를 제공하였다. 둘 다 운송의 목적을 지닌 사물이자 죽음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쉽게 알아차릴 수 있겠다. 심지어 낡은 앰뷸런스는 아직까지 자동차 번호가 살아있어서 실제로 운전이 가능한 상태다. 우선 김지원에게 도착된 영여는 우리에게 익숙한 상여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웅장한 구조와 화려한 색채로 만들어진 상여와 달리 개인의 필요에 의해서 공작하듯 얼기설기 만든 모양새가 친근한 느낌을 주기도 하고 양철을 오려 붙인 상여 지붕의 투박한 꽃 장식은 괴상한 정도다. 김태헌에게는 80년대부터 사용된 앰블런스가 제공되었다. 흰색 코란도를 앰뷸런스로 개조한 이 물건을 보고 작가는 무엇보다 자신의 80년대를 먼저 떠올린다. 그는 같은 시절을 보냈던 앰블런스 몸체 위에 젊음과 자유의 의지가 뒤엉킨 채로 모든 게 혼란스러웠던 시절의 기억을 써내려갈 예정이다.

김지원_유랑-꽃집展_스페이스몸미술관_2019
김지원_유랑-꽃집展_스페이스몸미술관_2019
김지원_유랑-꽃집展_스페이스몸미술관_2019
김지원_무제_종이에 연필, 과슈_45×40cm_2019 김지원_무제_종이에 볼펜, 과슈_54.5×39.5cm_2019
김지원_유랑-꽃집展_스페이스몸미술관_2019
김지원_유랑-꽃집展_스페이스몸미술관_2019

나는 김지원, 김태헌 두 작가의 작업을 보는 순간 불현 듯 당나라 시대의 시인 두보와 이백을 떠올렸다. 물론 나는 한시(漢詩)를 잘 알지 못하지만 두보와 이백이 나눈 우정과 유명한 시구 몇 개쯤은 어렴풋이 기억할 수 있다. 당시 당나라 사대부들은 자주 여행을 다녔다고 전해진다. 허나 그 이유가 만유라기보다는 특정한 목적을 두고 떠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허나 두보는 그러한 목적과 달리 계속 만유를 이어갔고, 그러던 중에 드디어 낙양에서 이백을 만나게 된다. 이백도 24세부터 43세까지 만유의 시기를 가졌다. 당대 출사할 방법은 과거 급제와 지방관 천거가 있었는데, 이백은 과거를 거절하고 출사엔 실패하면서 술을 친구로 삼아 유람을 즐겼다고 알려져 있다. 언뜻 유랑이라 하면 하염없이 명상하듯 유유자적한 만보객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만유의 시간이라고 현실을 비껴갈 수는 없는 법. 두 작가는 두보와 이백처럼 만유를 통하여 일상적인 것과 특별한 것, 실재하는 것과 허구인 것, 현재하는 것과 기억하는 것 혹은 상상하는 것을 뒤섞거나 솎아내며 여정의 순간순간을 빠르게 드로잉으로 담아낸다.

김태헌_유랑-붕붕展_스페이스몸미술관_2019
김태헌_유랑-붕붕展_스페이스몸미술관_2019

"꽃집"이란 부재를 붙인 이번 전시에서 김지원은 영여와 함께 떠나는 유랑을 상상한다. 최근 김지원은 독도를 방문했다. 하늘의 도움 없이 독도를 제대로 보기란 쉽지 않다고 하는데, 천운이 있었는지 그는 청명하게 독도를 보았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독도는 작지 않으며 오히려 웅장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유랑은 단지 먼 곳을 떠나는 것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그는 어느 눈 내리던 겨울, 포천 작업실 마당에 비친 달빛을 받고 있는 마른 맨드라미꽃은 비록 처절한 핏빛 적색이 퇴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형언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을 느꼈다고 한다. 이처럼 우연한 마주침은 시공간의 차원을 뒤집어버리거나 미지의 통로로 이끄는 기묘한 힘이 있다.

김태헌_유랑-붕붕展_스페이스몸미술관_2019
김태헌_여행 가방_오브제에 아크릴채색_38×31×9cm_2019
김태헌_유랑-붕붕展_스페이스몸미술관_2019
김태헌_붕붕6_캔버스에 혼합재료_94×72cm_2019

목적 없는 여행은 김태헌에게도 중요하다. 그는 여행계획은 거의 세우지 않는다고 한다. 일단 어디론가 떠나서 다른 장소에 머무는 것이 중요하다. 작가가 말하길, 자신의 그림은 화풍이 여럿인데, 그 이유가 자신이 현재 머무는 곳의 느낌과 정서가 그림에 반영되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말한다. 단순하지만 절묘한 자각이다. 설명을 덧붙이자면, 자신이 현재 있는 곳의 지배적 양식을 이용하여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다. 즉 특정한 양식이란, 지역의 기운, 빛, 온도와 정서는 물론이고 역사와 문화를 내포하고 있기에 지역에 따라 상대적으로 변화하는 스타일은 작가가 어떻게 지금 여기와 교감하는지를 설명해준다. 김태헌은 이번 전시에 "붕붕"이란 표제를 붙였는데, 그는 이미 같은 표제의 책을 출판한 바 있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붕붕(鵬鵬)이란 장자 이야기에 나오는 붕새, 말풍선, 손오공이 타고 다니는 근두운으로 그림 속 이미지를 연결하는 접속사이자 그림을 가볍게 만들어주는 장치"와 다름없다고 설명한다.

유랑展_정중월 음악회_스페이스몸미술관_2019

곰곰이 두 작가의 그림들을 보고 있자니, 김지원은 그림이란 화두를 가운데 두고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매우 일상적인 것으로부터 비범한 순간을 발견하고, 김태헌은 시시각각 변하는 시대, 자신의 위치와 시선에 충실하게 외부 세계를 관찰하고 그 사이에 풍자와 비유를 삽입하길 즐기는 듯하다. 만유는 세상을 떠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이를 통하여 현실을 마주하고 스승을 만나고 우정을 나누기 위함일 것이다. ■ 정현

Vol.20190929b | 인간에 대한 탐구-유랑 - 김지원_김태헌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