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잘 놀았어

전영실展 / JUNYOUNGSIL / 田英實 / painting   2019_0928 ▶ 2019_1023 / 수요일 휴관

전영실_요양원 붓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2×130.2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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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아트 인 명도암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수요일 휴관 06:00pm 이전 입장시 07:00pm까지 관람가능

아트 인 명도암 ART IN 명도암 제주 제주시 명림로 209(봉개동) Tel. +82.(0)64.727.1253 WWW.아트인명도암.com

저는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미술교사로, 아내로, 엄마로, 딸로, 며느리로, 언니로…. 저에게 주어진 역할들을 수행하며 살아왔습니다. 한국에 태어난 여자들은(60년대 태어난 사람들) 가족 안에서 주어진 역할 만으로도 슈퍼우먼이 되어야 했고, 눈에 보이는 역할만이 아니라 가족 간의 관계나 가족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다양한 문제에도 시간과 애정을 쏟으면 도와야합니다. 그것을 요즘 말로 '감정노동'이라고 하던데 여자들이 해왔던 일 중에서 이 '감정노동'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시간과 에너지가 가장 많이 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여자로서의 삶이 남자보다 힘들었고 남자는 편하게 살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남자들이 가진 무게와 책임감은 다른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 삼십 몇 년 인가 시간이 지나고, 저에게 기대어 있던 존재들이 각자의 길을 가고, 저는 60이라는 나이 앞에서 지난 삶을 돌아보며 자신을 마주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오랫동안 드러나지 못한 채 바닥에 엎드려 있던 욕망을 일으켜 세우고 움직입니다. 그림을 그립니다. 이 순간이 놀랍고 감사해서 오직 저 자신을 바라보며 그리고 싶은 대로 그립니다. 나도 모르게 세상의 눈치를 보면서 쭈삣쭈삣 망설일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멈추고 생각합니다. ● '나는 왜 그림을 그리는가?' 그러면 다시 중심을 향해 집중할 수 있고 저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전영실_내 손을 잡아요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88cm_2019
전영실_내 손을 잡아요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8×70.3cm_2019

저의 이야기는 엄마와 요양원, 치매, 그리고 사람들이 가장 피하고 싶어하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엄마에게 치매가 왔을 때, 제 몸과 마음은 아픈 엄마보다 더 빨리 무너지면서 죽음 같은 공포를 경험해야 했습니다. 공포를 피하고 싶어 도망가려하면 공포는 점점 커지더니 괴물이 되어 덤벼오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음을 인정하고 치매 안으로 들어가 살기로 마음먹고 엄마와 함께 한발자국씩 치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한 달, 두 달, 일 년, 이년…. 치매가족으로 살면서 엄마는 고달픈 삶의 무게를 훌훌 털어버리더니 어린아이처럼 매순간 티없이 맑은 얼굴로 웃고 계셨습니다. 제 엄마가 아니었습니다. 엄마 자리도 벗어버리고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간 듯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모습으로 오직 그 자리에 존재할 뿐이셨습니다. 엄마가 가장 엄마다운 순간으로 보였습니다.

전영실_마중나온 붓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60.6cm_2019

요양원에서 우리는 사는 게 무엇이고 죽는 것은 무엇인지 이야기 나누었는데 삶의 무게가 사라진 엄마는 치매전의 엄마보다 더 명료하게 자신의 생각을 들려주었습니다. 요양원에서 치매 엄마와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요양원 친구 분들과 함께 있었는데 제가 오면 "동네 딸 왔구나, 그래 내 딸이 못 오고 동네 딸만 와도 좋다 좋아." 하루 종일 조용하고 생기가 없는 방안에 누군가 와서 떠들면 생기가 돈다 하시며 "동네 딸 동네 딸!"하고 부르셨고 저는 "예 동네 엄니!" 하면서 놀았습니다. 저의 많은 역할 중에 동네 딸은 가장 쉽고 신나는 역할이었습니다. 놀고, 먹고, 책 읽어드리고, 몸 만지고, 노래 부르고, 놀기 만하면 되는 역할놀이였습니다.

전영실_여신의 귀환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60.6cm_2019
전영실_서 있기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40×31cm_2019

제 그림 속에는 요양원에 계셨던 분들의 몸과 걸음걸이들이 보입니다. 하루 종일 움직일 수 없는 몸도 있고, 누운 채 하늘높이 떠오르며 "내 손 잡아라!"하며 둥실둥실 떠오르는 몸들도 보입니다. 한쪽으로 기우는 몸을 세우고 균형 잡기 위해 애쓰셨던 몸짓들이 있습니다. ● 요양원에서 집에 간다며 인사하면, 엄마는 "오늘 잘 놀았어." 하며 손을 흔들었고 저는 가벼운 마음으로 엄마를 두고 집으로 향할 수 있었습니다. 집으로 가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웃음이 납니다. 우리 엄마는 놀아본 적이 없는 어른인데… 치매에 이르자 놀기 시작했고 하루하루 놀이인 날이 많아졌습니다. 엄마가 평소에 잘 놀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쉽지만 마지막 시간에는 놀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요. 저도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거울 앞에서 제게 말을 걸어봅니다. ● "오늘 잘 놀았어." 고민했던 일들이 한순간에 펑! 하고 사라집니다. 기쁨 놀이, 슬픔 놀이…. 여러 가지 감정도 놀이하듯 술술 흘려보냅시다. 엄마 역할, 아내 역할, 화가 역할도 역할 놀이하듯 술술 풀어봅시다. (2019. 7.) ■ 전영실

Vol.20190929c | 전영실展 / JUNYOUNGSIL / 田英實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