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향望鄕 1세

허남영展 / HUHNAMYOUNG / 許南英 / photography   2019_1001 ▶︎ 2019_1013 / 월요일 휴관

허남영_연변 룡정 이호순_젤라틴 실버 프린트_50.8×60.9cm_1998

작가와의 대화 / 2019_1005_토요일_05: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사진위주 류가헌 Mainly Photograph Ryugaheon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106(청운동 113-3번지) Tel. +82.(0)2.720.2010 www.ryugaheon.com blog.naver.com/noongamgo

사진에는 그리움도 찍힌다망향望鄕의 한恨과 함께 사라져간 사람들재일교포 2세 사진가 허남영이 기록한 러시아, 일본, 중국의 한인 1세 ● '사할린, 망향1세'. 동토(凍土)의 바람이 훑고 지났음인지, 어딘지 이국적인 낯빛이다. 탄광에서의 중노동으로 마디가 굵어진 손가락들을 깍지 끼고, 등 뒤에 걸려있는 자물통처럼 오도카니 앉아 있는 그에게는 일설로 할 수 없는 무수한 세월이 잠겨 있는 듯 보인다. 사진가 허남영이 찍은 「망향 1세」의 사진이다. ● 현재 사할린에는 한인 1세와 그 후손들이 4만 명 넘게 살고 있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남사할린을 차지하였고, 전쟁 물자와 인력이 부족해지자 조선인 6만여 명을 강제징용 했다. 해방이 되었지만 귀환 대상자를 일본군 포로와 일본 국적을 가진 자로 한정하면서 조국으로 돌아갈 길이 끝내 막혔다. 그리하여 다시 러시아 땅이 된 그곳에서 일평생 망향의 한을 품고 살아간 이들이 바로 사할린의 한인 1세대들이다. ● 논 앞에 한 노인이 꼿꼿이 서 있다. 우리네 농촌에서 쉬이 볼 수 있는 농투성이 얼굴인데 입성은 어딘지 낯선 '연변, 망향1세'. 일제강점기에 강제로 고향을 떠나, 중국 동북지역 길림성에서 일평생을 산 농부다. 미처 다 여미지 못한 인민복 단추처럼, 그 가슴 내부에도 평생 여미지 못한 '망향'의 그리움이 담겨 있을 것이다. ● '일본의 망향1세'는 언뜻 한국 어느 주택가인가 싶은 골목에 서 있다. 하지만 식물의 종류, 건물의 양식, 작은 소도구 등은 그녀가 선 배경이 일본임을 짐작케 한다. 한국과 일본을 알아채게 하는 그 미세한 간극 안에 담겨있는 무수한 비극의 역사를 지나, 그녀는 지금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 한반도에 본관을 둔 채 사할린에서 연변에서 일본에서 평생을 살다간 한인 1세들은 모두가 현대사 질곡의 세월을 온 몸으로 통과해 온 '생존자'들이지만, 결국 망향의 한을 품은 채 사라져갔다. 「망향 1세」의 사진가 허남영은, 누구보다도 그 한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이다. 바로 그가 '일본의 망향1세'를 부모로 둔 한국인 2세이기 때문이다. ● 1956년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종합사진전문학교에서 사진을 전공한 허남영은 1990년대부터 집중적으로 중국 길림성 연변, 일본, 사할린의 한인 1세들을 찾아가 그들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동북아에 흩어져 살고 있던 한인 1세들의 모습을 기록함으로써, 잊혀진 역사와 그 역사 속의 민초들이 기억되도록 한 것이다. ● 사진을 보고 있으면 구슬픈 망향가가 들려오는 듯 한 허남영의 「망향 1세」가 10월 1일부터 2주간 사진위주 류가헌에서 전시된다. 눈빛출판사에서 출간된 같은 제목의 사진집도 함께 만날 수 있다. ■ 망향望鄕 1세

허남영_연변 연길 김분단_젤라틴 실버 프린트_50.8×60.9cm_1990
허남영_오사카 이쿠노 박풍화_젤라틴 실버 프린트_50.8×60.9cm_1999
허남영_사할린 아니바 조성홍_젤라틴 실버 프린트_50.8×60.9cm_1992
허남영_사할린 코르사코프 신천성_젤라틴 실버 프린트_50.8×60.9cm_1992

사람과 물건이 자유로이 오가고 정보가 빠르게 돌아다니는 요즈음,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살 수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굶주림과 생활고, 정세 불안으로 인해 또는 강제적으로, 태어난 고향을 쫓기듯 떠나온 사람들도 있다. 러시아 동쪽 끝 사할린, 중국 둥베이(東北)지역 지린(吉林)성과 일본에는 반도에 본관을 가지는 코리안계 3백만 명 가까이가 생활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이 개인의 의지로 혹은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제강점기 동안 정든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과 그 자손들이다. 선조들이 잠들어 있는 고향 땅을 등지고 국경을 넘거나 바다를 건넌 1세들은 생활습관과 언어, 종교조차도 다른 이국땅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고난에 시달리는 생활을 보내며 살아와야 했다. ● 가라후토(樺太)라 불리는 사할린으로 건너간 사람 중에는 반도 남쪽 출신이 많다. 현해탄을 건너 일본 규슈에서 육로를 통해 북쪽으로 올라가 쓰가루(津輕) 해협을 넘어 홋카이도로, 그리고 소야(宗谷) 해협을 건너 이동한 끝에 다다른 이곳에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탄광 등지에서의 가혹한 노동이었다. 동토의 혹독한 환경을 감내하며 기다리던 해방의 날을 맞았지만, 귀국의 길은 가로막혀 버렸다. 소련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자 어제까지의 생활이 일변했다. 언어도 습관도 하룻밤 사이에 바뀌어 버려 망연자실한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 중국에 사는 조선족은 약 200만 명. 그중 대부분이 지린, 헤이룽장(黑龍江), 랴오닝(遼寧) 지역의 동북3성에서 생활하고 있다. 19세기 중엽, 거듭되는 굶주림과 흉작으로 변경지대 농민들이 비옥한 토지를 찾으러 국경을 넘어와 정착하게 되었다. 19세기 말에는 약 6만 명에 불과했으나 일제의 식민지화에 의한 만주개척과 이주정책이나 정치망명자 등으로 해방 시에는 230만에 달했다. 너른 들판이 한가로이 펼쳐진 둥베이 지방에 벼농사를 뿌리내리게 한 것은 조선족이며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에는 소수민족의 하나로 정주하고 있다. ● 재일코리안의 역사도 100년이 넘어서고 있다. 이 타향살이의 세월은 격동과 변동의 시대이기도 했다. 일제 치하에서 생활고를 겪었고 전쟁 중에 가혹한 체험을 했으며 해방 후에는 냉전의 틈새에서 뒤흔들렸다. 탄광에서 노역하고 피폭을 당했으며 대지진을 겪어 낸 1세들이 걸어온 길에서 통곡의 세월이 담긴 인생을 엿볼 수 있다. ● 그러나 해마다 1세 어르신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그들이 걸어온 원래의 풍경을 잃어 가고 있다. 이 사진집 본편에서는 이렇듯 타향살이를 해온 1세들의 이야기를 엮었다. 오늘날 코리안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나라에서 세대교체가 진행 중이고 정주하려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으며 새로운 형태로의 이주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의 초석인 1세들의 모습과 발자취를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 허남영

Vol.20191006j | 허남영展 / HUHNAMYOUNG / 許南英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