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innere 81+ 희생자에 대한 기억 Remembrance of the victims

Tscheli Jun(최리준)展 / painting.sculpture   2019_1007 ▶︎ 2019_1013

Tscheli Jun(최리준)_untitled (81+)_혼합재료_67×82cm_2016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경희대학교 문화예술법 연구센터

관람시간 / 10:00am~06:00pm

한전아트센터 갤러리 KEPCO ARTCENTER GALLERY 서울 서초구 효령로72길 60 제1관 Tel. +82.(0)2.2015.8133 www.kepco.co.kr/artcenter

주로 독일에서 활동 중인 Tscheli Jun (한국명: 최리준) 작가는 국가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로 목숨을 잃은 수많은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싶다고 한다. 희생된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은 이름이 뭐였고, 언제 태어났고 학교생활은 어떻게 했고, 친구들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고, 무엇보다 어떤 꿈을 가지고 있었을까? 작가는 희생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상징이나 기호를 찾던 중 2018년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최광준 교수가 이한열기념관 초청 강연 『제목: 기억과 책임과 미래 – 국가 권력에 의한 인권침해사건의 해결과 미술의 역할』에서 제안한 81+ 를 접하게 되었다. 80은 한국의 역사상 처음으로 2000년 국가권력에 의해 희생된 이들에 대한 포괄적 진상규명작업을 시작한 대통령소속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대상이 80여분이었다는 점과, 한 사람 한 사람을 기억하고자 하는 의지를 담아 숫자 1을 뒤에 붙였고, 그 외에도 수많은 이들이 국가권력에 의해 희생되었다는 점을 상기시키고자 +를 달아 놓은 상징적 기호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소속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어느 특정 사건이나 지역에 국한하지 않고 한국에서 발생한 인권침해사건에 대해 포괄적인 조사를 벌인 최초의 국가기관이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Tscheli Jun(최리준)_untitled (81+)_혼합재료_80×116cm_2016

이번 전시의 제목을 『Erinnere (독일어로 '기억하라') 81+』로 정한 최리준 작가가 전시제목에 독일어 단어를 그대로 사용한 이유는 그가 주로 활동하고 있는 독일에서는 2차 대전 당시 희생된 이들을 기억하고자 하는 많은 노력이 있어 왔고 이러한 노력이 다양한 결실을 맺어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은 제작연도나 재료만 다를 뿐 모두가 untitled (81+)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다. 이들 작품 하나하나에서 이미 죽임을 당하여 더 이상 우리 곁에는 없지만, 억울하게 사라져간 이들의 흔적을 찾아 헤매는 작가의 절실한 마음이 느껴진다.

Tscheli Jun(최리준)_untitled (8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연필_97×130cm_2017

최리준 작가는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나는 지금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들 희생자들을 기억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인류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죽음으로 인해 우리 인류는 그만큼 파괴되어 버렸다. 나는 이들 희생자들을 더 알고 기억하고 싶다. 반면 가해자들은 기억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그들은 나의 기억에서 지워버리고 싶다. 기억할 만한 가치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Tscheli Jun(최리준)_untitled (8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연필_97×130cm_2017

우리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오늘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화사한 웃음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한국인들에게는 많은 아픔과 슬픔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시절의 시련과 한국전쟁의 비극을 거쳐 독재정권의 탄압 속에 국민들은 시달려야 했고 울분을 달래야 했고, 많은 젊은이들이 억울한 죽임을 당해야 했다. 이들의 죽음에 대해 정부는 '자살' 또는 '사고사'라고 발표했지만, 국민들은 이를 납득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런 의문의 죽음을 '의문사'라고 부르게 되었다. '의문사'를 일컬어 '아직 밝혀지지 않은 박종철 사건'이라고도 한다. 박종철의 죽음도 진실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의문사였던 것이기 때문이다. 의문사 유가족들은 수많은 세월동안 정부 차원의 재조사를 요구해 왔지만, 자식의 죽음의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미처 보지 못 하고 돌아가시는 분들이 한두 명씩 늘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는 희생자들의 이름마저 점점 잊혀져가고 있다.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Tscheli Jun(최리준)_untitled (81+)_천에 분채, 먹_97×130cm_2018

독일의 예를 보면, 나치정권 하에서 핍박을 받은 강제노역 피해자들을 위해 『기억과 책임과 미래 재단』을 공법상의 재단으로 설립하였고, 이 재단을 통해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여러 가지 사업을 진행해 오고 있다. 피해자들에 대한 '기억과 책임이 전제되어야만 미래가 있다'는 의미로 재단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여기서 가장 우선적인 문제는 이런 반인권적인 범죄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희생자들을 '기억'하는데 있다. 이들을 기억하지 못 하고 망각한다면, 우리는 인간과 인류로서의 가치를 스스로 상실해 버리는 결과가 되고 말 것이다.

Tscheli Jun(최리준)_untitled (81+)_천에 분채, 먹, 연필_97×130cm_2018

"어떤 인간도 그 자체로 전체인 섬이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대륙의 한 조각이며 큰 것의 일부이다. (중략) 그 누구의 죽음도 나를 줄어들게 하나니, 그것은 내가 인류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를 애도하고자 종이 울리는지 사람을 보내 묻지 말라, 그것은 바로 그대를 위해 울리는 것이니..." 이것은 16~17세기의 성공회 신부 John Donne (존 던)의 기도문인 '묵상 17'에 나오는 문구다. 인권희생자들을 기억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과 인류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다. 결국 우리 모두에게는 희생자들을 기억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죽은 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늘날 인류를 구성하는 우리들 자신을 위해 실천해야 하는 의무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의무를 어떻게 실천해 나갈 수 있을까? 희생자들을 어떻게 기억할 수 있을까?

Tscheli Jun(최리준)_untitled (81+)_한지에 분채_45×53cm_2018

독일에는 나치시대에 희생된 이들을 기억하기 위한 공간으로 수많은 '기억의 터'가 존재하고 있다. '기억의 터'는 독일어로는 Gedenkstätte, 영어로는 Memorial Site 등으로 불리고 있는데, 작은 위령비에서 부터 기념관에 이르기 까지 매우 다양한 규모와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그 수로는 전 세계에 걸쳐 200여 개가 넘는다고 하는데, 어쩌면 한국에는 더 많은 기억의 터가 필요할 지도 모른다. 희생자들에 대한 기억을 위한 최리준 작가의 이번 전시가 죽은 영령들과 그들의 유가족에게 작으나마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 현윤호

Vol.20191007e | Tscheli Jun(최리준)展 / painting.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