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라니 / Go La Ni

백인태展 / BECKINTAE / 白仁泰 / painting   2019_1010 ▶︎ 2019_1031 / 월요일 휴관

백인태_진짜배기 아티스트_드로잉 형태를 취한 디지털이미지글_가변크기_2017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30817f | 백인태展으로 갑니다.

문학의 밤_고라니 북토크 / 2019_1010_목요일_07:00pm

후원 / 인천광역시_인천문화재단

관람시간 / 12:00pm~07:00pm / 월요일 휴관

옹노 인천시 중구 개항로 7-4(중앙동4가 8-37번지) 인천아카이브까페 빙고 옆

진짜배기 아티스트의 개인전을 위한 글 ● 백인태 작가는 이번 전시의 제목을 『고라니』라고 붙였다. 단독생활을 하며 대개 새벽과 해질녘에 가장 활동이 많은 고라니는 국제자연보존연맹(IUCN) 적색 목록의 '취약'으로 지정된 멸종 위기동물이나 한국에서는 유해조수로 분류되어 있어 보호받지 못한다. 데뷔 10년, 긴 텀을 두고 오래간만에 개최되는 개인전에 이 같은 제목을 붙인 이유는 이 전시가 "고립된 단독자가 품어 온 세상을 향한 끈질긴 관심"을 선보이는 자리이고 "나라는 작가가 아직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함이자, "증명이 필요한 상황"에 대한 자조적인 표현일 것이다. ● 세계는 개개인의 개성을 존중해야 하며 다양성이 지닌 가치가 중요하다고 늘 말한다. 그중에서도 예술계는 작가의 고유성에서 비롯된 표현, 실험이 특히 중요시 되는 영역이며 늘 새로운 것을 필요로 한다. 그런 환경 속에서 매일매일 꾸준히 작업을 쌓아 온 백인태의 예술 '발표' 활동은 왜 이렇게 더뎠던 것일까. ● 2010년부터 시작된 영수증 연작 중 「자기소개서」에서 백인태는 자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 "울산에서 태어나 강원도 산골에서 자라나 서울로 이사 가고 싶었으나 인천으로 이사 와서 예중·예고에 들어가고 싶었으나 일반 중고등학교를 나와 홍대에 못 들어가고 추계예술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싶었으나 판화를 전공하여 졸업 후 영국 골드스미스대학에 유학을 못가고 서울 근교 인천 작업실에서 풍족하고 여유로움과 거리가 먼 채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고 있음. 다수의 개인전과 그룹전을 꿈꿨으나 불러주는 이 없어 편의점 알바하고 있습니다."

백인태_무제_종이에 아크릴채색_110×90cm_2016
백인태_무제_종이에 아크릴채색_140×240cm_2015

잔뜩 뒤틀린 짧은 자기소개가 불편할 수도 있지만 미술을 공부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공감할 법한 내용이다. 고학력, 엘리트주의가 만연한 이 생태계 속에서 작가의 개성과 작업, 철학과 성실함은 중요하지 않은 요소인 듯하다. 순수하게 '미술이 좋아서' '재능이 있어서' 여기까지 오게 된 청년 백인태가 느꼈을 이 생태계의 모순들은 이해할 수 없고 실행할 수 없는 것들이었을지도 모른다. '작가'라는 직업을 갖고 있음에도 '작품'으로 돈을 벌수 없고 최소한의 생활도 보장되지 않는 이 정글 속에서 작가는 생계를 위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남는 시간 동안 본인이 보고 느끼는 세상사를 영수증에 기록했다. ● 이런 배경 속에서 만들어진 작가의 「작은 종이 작업」 연작들은 1만 여점의 방대한 양으로, 이번 전시를 통해 출간되는 『고라니』 1권에 400~500점이 실린다. 전체는 짧은 이야기나 시, 드로잉으로 청년 백인태의 연애사 부터 돈, 사회에 대한 생각, 작가로서의 처지에 대한 조소가 주를 이룬다. 아도르노는 '물화되고 소외된 사회를 정직하게 드러내는 것이 아방가르드'라고 주장했는데 말 그대로 대입하면 백인태의 「작은 종이 작업」 연작이야말로 '완전체 아방가르드'라고 할 수 있겠다. ● 70~80년대의 예술인들이 사회 구조의 개혁과 노동 해방을 위해 칼날 같은 구호를 벽에 걸고 투쟁했다면, 백인태의 작업에는 사회와 자신, 개인에 대한 힘 빠진 한탄과 염세적인 문구가 가득하다. 선배 예술인들의 결기 가득한 구호들이 당대 청년들의 투쟁 구호였다면 웃픈 현실을 유머로 치환한 백인태의 구호들은 80년대에 태어난 청년 세대의 투쟁 구호일 것이다. 삶을 어쩌지 못하는 청년 작가의 고민이 잔뜩 배어있는 직설과 해학과 풍자를 넘나드는 속내들은 비단 작가라서 하게 된 고민만은 아닌 듯하다. 돈이 없어서 연애도 어렵고 결혼은 언감생심이다. 결혼을 못하니 출산은 성립이 안 된다. 싸워야 될 대상은 없어졌는데 싸움은 계속 된다. 구체적인 대상이 없는 이 싸움은 길고, 지루하고, 답이 없다. 내가 속한 생태계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는 써클은 미싱 돌아가듯 나만 빼고 잘도 돌아간다. ● 백인태는 88만원 세대, 혹은 삼포세대로 불리는 범주에 속한다. 빠르게 전환되는 세상에서 그 정의조차 해묵은 느낌이지만, 우리 세대부터 시작되어 지금의 청년까지 연장된 삶의 이슈들은 갈수록 심화되기만 한다. 삼포세대는 대부분 IMF를 간접적으로 겪고 물질적으로 크게 부족함 없는 유년기를 거쳐 당연히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왔다. 그러나 가속화된 신자유주의로 인해 과거와 같은 노동시장은 존재하지 않았고, 개개인의 삶을 보장해 줄 안전망은 부모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자산이나 개인이 가진 스펙이 전부였다. 스펙마저 돈과 환경이 뒷받침 되어야 하므로 그리 공정한 경쟁은 아니다. 이 같은 환경은 예술계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세속적인 조건에 대한 개념이 없던 사람이라도 미대에 들어가면 조금씩 그 현실을 체감하고 애초부터 벌어져 있던 차이를 좁히기란 노오력을 해도 쉽지 않다. ● 이 빡센 승자독식의 세계에서도 '작가'로서 성실하게 임해 온 백인태는 보고, 듣고, 느낀 자신과 사회에 대한 관심을 언어와 이미지로 축약하여 바쁘게 던져댄다. 염세적인 시선과 심술이 가득 하지만 그 심정을 너무 잘 알기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작가는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었었다고 가정하지만 세상에 대한 관찰과 생각을 멈추지 않았고, 냉소나 무기력함을 실천으로 치환하여 작업을 위한 동력으로 삼았다. ● 그가 2017년 제작한 「피켓웨폰, picket weapon」을 보자. 촛불시위로 세상이 들끓던 시기 사람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자신들만의 '당'을 선언하고 사회와 정치에 대한 주장들을 쏟아냈다. 이것은 집단으로 뭉쳐야만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자신의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일어선 개개인들의 투쟁이었다. 「피켓웨폰, picket weapon」은 피켓이지만 몽둥이와 방패로도 쓸 수 있다. 이것은 자신을 드러낼 수도 있지만 세상으로부터 보호할 수도 있는 도구이며 삶에서 비롯되는 온갖 투쟁과 고민에 대한 결과물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고민은 태어났기에 세상과 부딪혀야 하는 모두의 숙제가 아닌가.

백인태_무제_종이에 아크릴채색_240×140cm_2015
백인태_무제 시리즈_종이에 과슈_각 14.8×10.5cm_2016

이 시대의 리얼리티를 다룬 작품들은 매체를 넘나들며 풍자적이거나 미학적인 것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백인태의 작업 역시 자신의 언어와 정서를 가감 없이 드러냈던 방식에서 선회하여 미학적으로 은유하는 방식으로 변화했다. 전시 방법에서도 모든 것을 펼쳐놓았던 이전과는 달리 관객이 자신에게 다가오도록 연출했다. 직설적으로, 빠르게 넘어갈 수 있었던 전작들에 비해 이번 전시에서 그의 작업들은 대부분 글이 없는 이미지와 책으로 보여진다. 염세적인 언어들은 건조한 이미지로 전환되고 얇은 종이에 작업하여 마치 우는 듯한 그림들은 어두운 색상과 세기말적인 도상들로 가득하다. ● 작가가 이미지를 사용하는 순간은 자신의 생각이 언어로 표현되지 않을 때지만 이미지로 치환된 언어조차 기가 막힌 상황에 놓여있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고라니'를 생각해보자. 멸종위기 종으로 분류되어 보호받아야 할 대상임에도 한국에서 유해조수로 분류되어 퇴치 대상이 된 기가 막힌 상황에 놓인 고라니. 오도 가도 못하고 자신이 속한 생태계에 적응하기 위해 애를 쓰지만 그마저 녹록치 않은 고라니. 그러나 단독생활을 하는 고라니는 세상과 관계없이 소신을 지키며 생태계에 적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것은 지난 10년간 일관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자신의 방식을 고수해 왔고, 그 생태계에 나름의 방식으로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 온 작가의 삶과 닮아있다. 또한 자신의 생태계를 만들고 지키기 위한 청년 세대의 처절한 싸움을 연상시킨다. ● "작가라면 생활과 작업이 일치되어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어떤 작가는 이것이 진리인 양 떠들어대지만 그 이면에는 욕망과 거짓이 가득한 경우가 많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입바른 말로 대중을 기만하고 생태계 교란에 앞장서는 꼴이다. 백인태의 「진짜배기 아티스트」는 정말 훌륭한 작업을 해 왔지만 생전에 빛 한번 못 봤고 그의 작업들은 쓰레기와 같이 소각된다. 예술 생태계는 언제나 종의 다양성을 요구하지만 결국 제도 속에 들어갈 수 있는 예술은 비슷한 자기복제와 시대를 넘나드는 카피를 양산하며 자위적인 찬양을 늘어놓는다. 그것조차 따라가지 못하면 도태되고 잊혀 진다. 「진짜배기 아티스트」는 자신이 죽은 후에라도 그의 작업이 지닌 가치를 대중이 알아봐 주길 바랬지만 '작업만' 했던 그이기에 그 바람을 이루지 못했다. 나는 현실의 '진짜배기 아티스트'의 바람이 이루어지길 응원한다. 그래서 그가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그만하고 작품 활동만으로도 행복한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진심이다. ■ 고경표

Vol.20191010e | 백인태展 / BECKINTAE / 白仁泰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