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길 on the Road of the Winds

정직성展 / JEONGZIKSEOUNG / 正直性 / painting   2019_1011 ▶︎ 2019_1103 / 월요일 휴관

정직성_201901:梅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130.3×97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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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9_1011_금요일_05:00pm

이 전시는 문화체육관광부, 서울시, 서울문화재단의 기금을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 이 전시의 나전칠기 작품들은 아리지안 공방의 후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공휴일_01:00pm~06:00pm / 월요일 휴관

누크갤러리 nook gallery 서울 종로구 평창34길 8-3 Tel. +82.(0)2.732.7241 www.facebook.com/nookgallery nookgallery.co.kr

2년여 전부터 제주를 오간다는 작가의 소식을 듣고, 정직성의 제주는 어떤 느낌인지 무척 궁금했다. 전시 '바람의 길'은 그 동안 작가가 그 곳 생활을 하며 얻은 큰 위안과 제주 풍경의 강한 인상을 작품을 통해 전하는 전시이다. ● 제주의 거친 바람을 맞고 피어나는 동백과 매화, 현무암 바위틈에 자라나는 나무들은 작가의 힘찬 붓질을 통해 강한 생명력을 뿜어낸다. 작품 앞에 서면 거침없이 불어대는 제주의 강한 바람을 그대로 맞게 된다. 그렇게 표현되기까지 수없이 경험하고 고뇌한 작가의 수고가 고스란히 쌓여있음을 작품은 말해준다. 제주풍경의 많은 부분을 덮고 있는 현무암의 깊은 검은색을 표현하기 위해 방법을 찾던 작가는 오랜 시간 자개장롱을 모으며 보아온 깊고 아름다운 옻칠과 빛나는 자개의 나전칠기 기법으로 제주의 풍경을 표현하기에 이른다. 구상적이면서도 추상적인 그림을 그려온 정직성은 나전칠기와 옻칠이라는 긴 시간의 손 노동을 필요로 하는 장인의 세계를 경험한다. 10여 년간 작가의 관심을 끌어왔던 나전칠기의 의미는 무엇이며 자신의 작업에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이 작업을 통해 어떤 것을 느끼고 무엇을 얻었는지 모르지만 작가는 손에 물집을 잡혀가며 열심히 작업한다. 검은 옻칠을 바탕으로 하나하나 작은 자개조각들이 모여 이룬 풍경은 작가가 처음 나전작업을 하겠다고 말했을 때 필자가 염려했던 우려가 기우였음을 말해준다. 노동의 시간과 정성이 쌓여 만들어낸 아름다움은 그 어떤 것보다 숭고함을 알려준다. ● '바람의 길'전시를 통해 아름다운 제주의 풍경과 작가가 지니고자 하는 건강한 생명력을 느껴보기를 기대하며, 새로운 장르에 도전한 정직성의 용기에 응원을 보낸다. ■ 조정란

정직성_20191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40×70cm_2019
정직성_201909:梅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97×130.3cm_2019

정직성의 스물 두 번 째 개인전 '바람의 길'은 작가가 최근 이년간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제작한 회화와 나전칠기 작품으로 구성된다. 제주 귀덕리의 바닷가 작업실에 머물며 목격한 그 곳의 기후와 독특한 생태 환경을 특유의 추상 조형 감각으로 해석한 신작들은 매화 시리즈로 시작된 자연물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더욱 넓은 영역으로 확대되었음을 보여준다. 현무암 사이사이를 비집고 자란 넝쿨과 잡목, 눈 속에서 꽃잎을 터뜨리는 동백, 긴 겨울의 끝과 봄의 시작을 알리는 매화 등 제주의 자연이 뿜어내는 기운은 거친 환경 속에서 기어이 살아남은 생명들에 깃든 숭고한 아름다움으로 작가에게 다가왔다. 특히 식물들에게는 척박한 삶의 조건이라 할 수 있는 검은 현무암 대지와 사납기로 유명한 제주의 바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제주의 생명들에 내재된 강한 생명력의 근원으로 비춰졌다. 안정적 기후 속에 크고 화려하게 자란 열대 식물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제주 자연만의 생명력. 바람의 결을 따라 누워서 자란 오름의 팽나무를 보며 작가는 지금껏 작품을 통해 일관되게 드러내고자 했던 주제를 다시금 투영시켜 보았다. 척박하고 제한된 삶의 조건 속에 존재하는 의연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고통을 고통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고자 하는 작가의 태도는 제주의 자연을 소재로 한 이번 전시에서도 여실하게 드러난다.

정직성_201914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130.3×97cm_2019

정직성은 도시, 연립주택, 공사장, 기계 등 이전 시리즈의 소재에 따라 그에 맞는 화면 구성의 논리를 정립하여 작가 특유의 개성이 느껴지는 추상의 세계를 구축해 왔다. 사실, 정직성은 필자가 아는 사실적 재현 능력이 가장 뛰어난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런 기량을 의도적으로 발휘하지 않고 군더더기가 제거된 최소한의 붓질만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추상성을 드러내는 것은 작가가 지속적으로 추구해 온 회화적 성취일 것이다. 경험하는 어떤 사건이나 상황 속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정서나 기운의 핵심적 특징만을 추출하여 붓질에 임하는 작가의 태도는 때로는 단순하게 느껴질 만큼 단호하게 명료하다. 주로 작가의 작품이 담고 있는 것은 구체적 대상이 품고 있는 어떤 기운인데, 제주의 자연을 소재로 한 이번 전시에서 주요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현무암의 대지와 돌담 등이 가진 검은색의 세련된 기품이다. 이전 매화 시리즈에서 작가는 특히 밤 매화의 매력에 빠져 다수의 연작들을 제작하였는데 마치 촛불을 연상시키는 꽃의 모습이 어두움, 밤이라는 배경을 통해 더욱 숭고한 아름다움으로 선명하게 드러난다는 사실과 검은색의 배경색 위에 꽃을 그렸을 때 드러나는 세련된 색조 구성에 매료되어 검은색에 대한 실험과 고민을 이어가던 터였다.

정직성_20191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 유채_80×100cm_2019
정직성_201918_나전, 나무에 삼베, 옻칠_59×59cm_2019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신작 중 특히 주목하게 되는 작품들은 나전칠기 기법을 차용한 작품으로 작가의 회화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다소 낯선 모습일 수도 있을 것이다. 회화 작업과 나전칠기와의 연결성은 작가에게 일어난 우연한 사건들과 앞서 언급한 검은색에 대한 고민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설명되어야 할 부분이다. 우연한 기회에 자개 장롱을 생활 공간에 두게 된 작가는 골동에 취미를 갖게 되면서 적극적으로 자개 가구들을 수집하게 되었다. 낡고 고루한 것으로 취급되고 있으나 작가의 눈에는 더없이 아름다운 조형 질서를 가진 오브제로서 자개는 오랜 시간에 걸쳐 작가에게 매력 있는 매체로 인식되었다. 제주 현무암의 검은색을 보면서 평소 익숙한 자개 가구의 검은색 옻칠을 떠올리게 된 것,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작가의 머릿속 이미지를 자개와 옻칠로 구현해 줄 수 있는 공방을 만나게 되는 과정은 우연 이라기엔 신기하게도 필연적으로 느껴진다.

정직성_201920_나전, 나무에 삼베, 옻칠_120.5×180cm_2019
정직성_201922_나전, 나무에 삼베, 옻칠_120.5×180cm_2019

전통 나전칠기 기법을 이어 가고 있는 한 공방에서 작가는 몇 달에 걸쳐 회화의 방식을 나전칠기 기법으로 변환하는 시도를 감행한다. 떠오른 심상을 안료와 붓질로 즉각적이고 즉흥적으로 표현하는 회화와 달리 일정한 프로세스를 거쳐 제작되는 나전칠기는 오히려 판화와 비슷한 성격을 보인다. 반복적인 칠과 갈아냄의 과정 속에서 의도한 옻칠의 색을 얻고 자개를 쪼개 파편을 만들어 부분의 순서대로 형태를 만들어 나간다. 색과 형태를 운용하는 회화에서의 경험은 진주패, 색패, 뉴질랜드패 등 원산지와 종류에 따라 다양한 색을 내는 자개 원료와 끊음질, 타찰법 등의 나전 기법을 이용해 변환되고 이를 통해 매화, 괴석, 파도, 번개 등의 추상적 이미지들이 탄생하였다.

정직성_201930, 201931, 201932, 201933_나전, 나무에 삼베, 옻칠_각 80×48.5cm_2019

정형화된 전통 공예의 패턴에서 벗어나 현대미술의 추상성이 접목된 화면은 깊고 순수한 검은 색조 옻칠 배경 위에 오묘한 색채를 뿜어내는 형태가 겹쳐져 화면 자체가 아름다운 발광체로서 다가오는 신선한 시각적 경험을 안겨준다. 나전과 옻칠이라는 소재와 기법을 빌었을 뿐 작가에게는 여전히 회화의 연장선상에 있는 이 작업의 결과물이 관객과 미술계의 눈에 어떻게 평가될지 필자는 자못 궁금해진다. 현대 미술의 의미 있는 일탈 혹은 매체의 확장, 혹은 공예의 현대화, 새로운 대중성과 시장성 획득에의 시도 등 다양한 해석들이 있을 수 있을 텐데, 정직성의 이 대담한 신작들로 인해 많은 논란들이 일어나고 그것이 작가의 앞으로의 활동에 고무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으면 좋겠다. ■ 곽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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