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연복 목판화 1984-2019- 온몸이 길이다

류연복展 / YOOYEUNBOK / ??? / painting   2019_1011 ▶︎ 2019_1231 / 월요일 휴관

류연복_꽃 한송이_Ed. 9/A.P 1_소멸다색목판_97×72cm_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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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9_1011_금요일_02:00pm

작가와의 대화 2019_1011_금요일_03:00pm 2019_1122_금요일_03:00pm

주최 / 진천군 주관 / 진천군립 생거판화미술관

관람시간 / 09:00am~06:00pm / 매표마감_05:00pm / 월요일 휴관

진천군립 생거판화미술관 ALIVE JUNCHEON PRINT MAKING MUSEUM 충북 진천군 진천읍 백곡로 1504-10(장관리 732-19번지) Tel. +82.(0)43.539.3607~9 www.jincheon.go.kr

동시대적 生과 역사적 態를 증언하는 칼의 언어 ● 류연복이 스스로 작명한 그의 이메일 주소는 풍류(pungrheu)다. 타인들이 그를 일컫는 별명은 '도사님'이고. 탁빼기 한잔 걸치고 어떤 경계도 없이 사람들 잘 사귀고 늘 허허실실 웃는 모습과, 거칠 것 없이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아온 이력이 그에게서 자연스레 묻어나는 모양새라 그런 모양이다. 그러나 80년대 이후 지금까지도 그는 한반도에서의 불의한 정치사회적 현실에 대해, 또 그런 불의한 세력에 대해 비판적 칼(조각도)을 휘두르는 검객이기도 하다. 그의 품성에는 인식적 저항·본능적 반항·그리고 낙관적이고 리버럴한 자유주의자의 부드러움이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 80년대 초반 서울미술공동체에서의 벽화팀 「상생도上生圖」 활동, 이후 「민족미술협회」와 「민예총」을 중심으로 전시 및 현장 조직 활동에서, 단칼의 날 선 목판화의 공격성을 분명하게 보여 왔다. 90년대 경기도 안성에 정착하면서 목판화 풍경을 통해 우리 국토와 이웃에 대한 애정과 문제의식, 그리고 삽화적 아포리즘을 통해 낮은 곳에 있는 생명과 자연스런 삶에 대한 통찰을 통일시키면서 작업해왔다. 류연복의 목판화를 가로지르는 주제라면, 바로 이런 생명들이 살아가는 현상인 '생生'과 그 꼴인 '태態'를 전통적인 각법의 바탕에서 현대적인 미감으로 형상화하는 '생명성'이다. 낮은 곳에서 살아있는 것, 그런 생명이 살아가고자 애쓰는 것, 죽임에 대한 항거 등을 타자들과 더불어 연대하고 실천하려는 바탕이 곧 작업이란 뜻이다. 그래서 그에겐 늘 '현장'과 '민民'이란 어휘가 접두어처럼 붙어 다닌다. ● 생명현상이란, 억누름이나 억압에 대한 본능적 반응이자 능동적으로는 스스로를 살아내고자 하는 힘의 실행이자 분출이다. 한 개의 세포나 하나의 동식물 개체로부터 군집 집단, 나아가 사회, 국가, 세계, 자연, 우주에까지 이르는 모든 생물의 동적인 활동과 의식·무의식적 의지와 지향성에 바탕한다. 불의에 저항하는 사람, 자신의 의지대로 생사를 판단하는 사람, 가치를 지향하며 사는 사람들 모두 이 생명현상에 의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그런 인자들로 형성된 사회도 마찬가지의 구조로 유지된다. 류연복은 바로 이런 자연스런 생명현상을 우리 국토와 그곳에서 살아온, 그리고 살고 있는 온갖 식물과 풍경과 민중의 삶을 통해서 '형상'과 '기운'으로 도출해낸다. 미세하고 구석진 곳의 미물에서부터 전체에 이르는 열린 생명과 삶, 그리고 그 터까지 모두 그의 칼끝으로부터 넓은 나무 판면으로 옮겨져서 통일된 힘의 이미지가 된다. 풍경으로, 사람으로, 잠언으로, 그리고 글씨로… 그렇게 그려지고 판각되고 찍혀진 이미지들은 자연과 사람의 능동적인 기운을 배태한다. 우리 국토 모든 곳에 있는 존재를 아우르는 생명력으로 말이다. 그 생명력이 이 땅에서의 숱한 삶들이 이어온 역사의 바탕이다. 낮은 곳으로부터 솟아나는 질기디 질긴 힘 말이다.

류연복_숲 2_Ed. 6 / A.P 1_소멸다색목판_92×92cm_2017

류연복의 목판화는 일도양단의 칼질로 그 이미지가 선명하다. 구사된 칼은 주저하거나 돌아가거나 에둘러 여운을 남기지 않는다. 전통적인 목판화의 원초적인 칼맛의 연장선상에서 대상의 특징을 포착해내면서 그 내용의 핵심을 도드라지게 만든다. 명료하다. 강하다. 그래서 류연복스럽다. 기실, 여담이지만, 류연복의 성격이 그렇다. 좋은 건 좋고 싫은 건 싫다는 표현이 분명하다. 어떤 사안에 대해 생각을 하고, 결정하면 곧바로 행동을 한다. 나는 그와 1985년 「신촌벽화」 탄압 대책모임, 1986년 「정릉벽화」, 2016년 「광화문미술행동」, 2017년 「목판대학」의 일을 함께하면서 그의 행동스타일을 봤다. 민주적인 토론을 하고, 일단 팀의 공론이 결정되면 그는 사심이 없고 또 저돌적이다. 뒤로 물러나지 않고 앞서서 거침없이 행동한다. 몸이 곧바로 생각을 실천한다는 뜻이다. 신념과 믿음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 류연복의 판화도 그의 성격이나 행동과 판박이다. 앞서 쓴 '단칼'이란 말처럼, 목판화에서 그의 칼은 명쾌하게 대상과 배경을 가른다. 풍경의 근골은 강력하고 그 형태의 경계는 선명하다. 장쾌한 대관적인 다시점(多視點)점의 시선부터, 작고 가까운 곳을 응시하는 섬세한 관찰의 아포리즘에 이르기까지 모든 게 명료하다. 그런가 하면, 잠언과 더불은 형상들에서는 그 맛과 형태와 내용이 유려하고 유연하고 부드럽되, 간결하고 명징하다. 뿐인가, 80년대의 목판화에 이르면 저항적 직진성과 형상 및 주제의 직접성이 오히려 추상적인 에너지로 전환된다. 작품의 전달력이 그만큼 그의 심중을 반영해서다. 류연복의 작가적 체질과 삶의 태도와 작업형식이 일치해서다. 그래서 나는 "작가가 곧 그의 작품"이란 말을 떠올리면, 류연복의 경우가 딱 거기에 해당된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와 작품, 형식과 내용이 두루 작품으로 수렴되어 하나의 세계와 주제로 귀결되어서 그렇다. 그렇게 목판화로 자신을 표현해온 세월이 36년이다. 끈질기고 뚝심이 있고 또 한결같은 사람이다. 그래서 작가다. 우리 현대목판화사에서 자신의 족적을 분명하게 남긴 목판화가로 부족함이 없다.

류연복_환도산성_Ed. 6 / A.P 1_소멸다색목판_62×185cm_2015

풍경-민중들의 질긴 삶의 터 ● 류연복 근작의 핵심은 국토풍경 목판화다. 한반도 구석구석 그의 눈길이 목판화로 바뀌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풍경과 역사와 민중의 삶이 강인한 힘으로 드러난다. 아름다운 곳과 추한 곳을 가리지 않고 애정어린 그의 눈길이 국토풍경으로 전치된다. 수려하다가 비극적이고, 애절하다가 역동적이다. 그런가 하면 어딘가는 평화로운 쉼터로 묘사된다. 언뜻 겸재가 오버랩 된다. 그렇다. 류연복에게서는 겸재의 시선과 멋이 드리워져 있다. 근래 풍경목판화로 전 국토를 누빈 작가가 둘인데, 김억과 류연복이다.1) 홍선웅과 김준권도 있지만 이 둘은 풍경의 개념에 대한 접근이 약간 다른 궤에 있기에 여기서는 논외로 한다. 홍선웅은 전통문화적 바탕에서, 김준권은 목판조형적 실험으로 풍경을 다루고 있어서, 실제 국토의 현장성을 주목적으로 하는 류연복, 김억과는 작업 동기나 맥락이 조금 다른 지점에 있다. ● 친구인 이 둘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각자 미적 개성이 뚜렷하다. 국토에 대한 애정과 자연에의 미적 시선이 공통점이되, 류연복이 기운과 흥취라는 풍류적 미감의 서정적 접근에 의한 민중정서를 반영하는 태도를 취한다면, 김억은 이웃의 일상적 삶의 기록과 서사를 통한 시공간의 역사성을 중요시한다. 그래서 내 주관적인 기준에서 비교하자면 류연복은 겸재, 김억은 미적인 고산자에 가깝다. 그만큼 이 둘의 국토에 대한 형상성은 구체적으로 두드러지고, 또 그만큼 각자의 독자성은 분명하다. ● 아무튼, 류연복은 분단풍경인 DMZ, 금강산, 북한산, 지리산, 무등산, 한라산, 독도, 그가 살고 있는 안성… 등 전국방방곡곡을 누비며 국토의 아름다움과 민중의 비애와 강인함을 풍경으로 컨버팅해왔다. 여러 번의 칼질로 묘사하는 방식보다는, 단 몇 번으로 단칼의 칼질이 빚은 선명한 형태감과 골격의 표현을 선호한다. 그것은 오윤의 인체에서 보이는 근골의 꺾임이 야기하는 기운을 솎아내는 형태나 칼질과 닮았다. 특히 산의 판각에서 돌올시키는 형태적 힘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런 꺾임과 연결, 굵고 가는 선의 반복이 칼맛의 리듬과 호흡을 통해서 류연복의 풍경을 유려한 에너지로 전환시킨다. 부분은 단단하고 딱딱(剛)한데도 전체는 부드러운 흐름(柔)을 띄면서, 풍경 '너머' 민중적 한과 강인한 생명력(强)을 불러낸다. 이런 작업과정에서 류연복은 크게 두 가지의 방식으로 풍경에 접근한다. 답사한 현장의 철저한 사생과 구체성에 기반한 실제 현장 풍경과, 그의 조형적 미의식으로 관념화시킨 평면적으로 편화된 이미지가 그것이다. 전자는 전통 실경산수의 맥락에, 후자는 디자인 일러스트적 맛에 기반한다. 「환도산성」, 「북한산을 거닐다」, 「금강산」 연작은 전자의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단단함과 부드러움의 회화적 조화가 압권이다. 남성적인 근골과 여성적인 살의 맛이 현장적 리얼리티와 역사성으로 잘 결합되어 풍경화가 제공할 수 있는 미적 쾌감의 한 지점에 다다랐다. 그런가 하면 가로로 길게 늘어진 「D.M.Z」연작에서는 무언가 적요한 허정미(虛情美)를 이끌어내는데, 이도 전자의 주요한 작품에 속한다. 분단 조국의 잘린 허리 그 현장에서 격렬한 현장성보다는 작가의 정서를 있는 그대로 노출하는 관조적 태도로, 오히려 분단의 긴장감을 극대화시킨다. 이와 유사하되 더 서정적인 바다를 건너가는 나비를 그린 「다시 건너간다」의 작은 나비와 장중한 바다의 대비는 한편의 시적인 드라마로 손색이 없다.

류연복_나는 온몸이 길이다-여름·가을·봄·겨울_Ed.5/A.P 1_ 다판다색목판_각 91×91cm_2012

후자인 일러스트적 특징을 지닌 대표적 작품으로는 「나는 온몸이 길이다」, 「세월-상흔-꽃」, 「한라-상흔-꽃」과 같은 반복적인 시각적 패턴을 구사하는 연작들이다. 내면적인 심상 이미지를 통해서 작가의 서정을 자연스레 표출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뒤에 거론되는 잠언(Aphorism) 형식의 작업과 그 조형적·형식적 형상어법의 맥락이 연결된다. ● 그리고 이 둘을 아우르는 최근의 실험으로 「꽃 한송이, 2018」, 「꽃, 2017」과 같은 작품이 있다. 「꽃 한송이, 2018」는 들판에 온갖 폐기된 무기들이 집적되어 탑처럼 쌓인 꼭대기에 핀 야생화 한 송이가 좀 더 명료한 메시지로 전쟁에 대한 거부를 하는 작품이다. 풍경을 보고 그리는 방식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동시대적 주제를 강조하는 형식으로 변주한다. 이럴 때 풍경에서 장소성의 리얼리티는 감소되나, 작가가 의도하는 당대적 메시지는 강화된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 시기 '종전선언'을 기대했던 작가의 희망이 강하게 반영되어서일 것이다. 그리고 이보다 먼저인 2017년에 시도한 「꽃」은 뭍 생명들의 상생적인 생태문화, 그 에코 사이클(Eco-cycle)에 관한 내용이다. 철저하게 평면으로 환원시킨 화면에는 여러 도상이 함께 어울리면서 유기적으로 화면을 구성한다. 대포의 포신·포탄·총구 등과 함께 달팽이·물고기·새·나비·다람쥐·곤충 등이 함께 어울리며 무성한 녹색의 숲을 이루는 '상생(相生)'을 그려내고 있다. 현장성보다는 작가의 강한 희망이 몽타주로 어우러진 잠언적 형상성이 회화적 입장으로 연결된 적극적 시도다. 한반도에서 평화를 바라는 류연복의 마음이 작업으로 유추되어 나오는 알레고리다. 근작의 모던한 이 형상성에서 류연복의 형상어법의 변주가 감지된다. ● 이처럼 풍경을 통해서 류연복은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현실적·역사적 문제들에 대해서 발언하고 있다. 강력한 단칼의 힘으로, 유려한 서정으로, 또 아이디얼리즘에 바탕한 내면적 관념과 희구의 공감을 확장하는 소통성으로…. 그 바탕에는 국토를 몸으로 누비고, 헤매면서 산하와 그 사이 사람들의 삶을 동시에 하나의 에너지로 응결시키려는 류연복의 작업의도가 있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그의 풍경 목판화는 힘이 넘치고 건강하다. ● 한편 「도피안사 전도, 2003」, 「외암골 전도, 2002」, 「동강전도, 1999」 등은 전통적인 부감법(俯瞰法)과 함께, 고지도의 사방을 아우르는 시점(視點)을 수용하면서 드넓은 공간을 한눈에 조망케 한다. 웅장하다. 게다가 강의 흐름이 길처럼 꼬불꼬불 펼쳐지고, 그 동세에 산과 집들이 어우러진 풍경은 답사와 함께 새의 눈으로 본 상상도이되 지도처럼 실경이라고 하겠다.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 류연복의 목판화가 비로소 자기식의 풍경을 확보하는 마중물이 바로 이 작품들이라고 하겠다. 그 이후 땅에서 풍경을 올려보거나 산에서 내려다보는 겸재의 진경(眞景)과 같은 금강산이나 북한산과 같은 대형의 산 그림들이 가능해진 건 바로 이 시기, 이 판화들에서 확보한 풍경의 골격과 공간감각, 그리고 거기에 어울리는 칼의 구사가 그 바탕에서 충분하게 자기 조형의 튼튼한 뼈와 근육이 되면서부터였다. 그로부터 그의 풍경목판화는 그 특유의 강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포용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조각도로 세상을 솎아내고, 또 동시대 불의에 저항하는 칼잽이가 문기(文氣)까지 아우른 고수의 포스를 물씬 풍기면서 말이다.

류연복_외암골 전도_Ed. 20 / A.P 2_다판다색_120×84cm_2002

일상적 삶에 대한 잠언-작은 생명에의 예의 ● 한편 류연복의 또 다른 장점은 목판화를 출판미술과 삽화에 활용하는 멀티플레이어란 점이다. 그의 간단한 칼질로 만평이나 카툰처럼 일상적이되, 동시에 출판미술로서도 충분히 제 기능을 하는 아포리즘 일러스트의 소통성은 분명 장점이다. 회화적인 풍경목판화와 더불어 90년대 이래로 류연복이 집중해서 가다듬어온 매체라 하겠다. 기실, 목판화의 본래적 정체가 출판용 삽화 아니던가. 목판인쇄, 목활판 인쇄, 목판화, 금속활자에 이르기까지 인쇄술의 강국이었던 우리 전통에 비추어보면, 류연복의 이 일러스트 작업도 1950년대 이래로 순수미술로만 범위가 좁혀진 우리 현대 목판화에 전통목판화의 열려진 기능성을 재귀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미술을 모르는 일반 서민들이나 민중과의 마음을 나누는 형식으로 본다면 더없이 친근한 내용과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 소소한 일상에서 마주친 대상이나 현상들, 그 낮은 곳에서 일렁이는 생각과 마음의 편린들, 그러면서도 거대한 시국과 사건에서의 상처들을 자분자분 낮은 언어로 얘기하는 이 형식은, 80년대 문화 투사로서 그가 일정 부분 유보했던 삶의 지혜에 대한 잠언을 드러내는 형식으로 손색이 없다. 노자나 장자가 판화 이미지 밖으로 걸어 나오듯 소탈하고도 깊은 사유들이 쉬운 시각언어로 번안되었다. 이미지의 힘이다. 지식이나 전문적인 소양이 없어도 소통할 수 있는 성찰과 통찰의 결과물들이다. 이런 언어들로 류연복 스스로 본인의 판화와 글로 에세이를 간행하고, 또 80년대 이래로 친우 문인들의 책표지나 삽화, 진보운동권 각종 행사의 현장포스터, 전단, 현판, 장서표 등으로 목판화를 활용해왔으니 긴 시간 지속적인 그의 판화가로서의 실천은, 그 자체로 한국 현대목판화에 소중한 자산이라 하겠다. ● 칼칼한 단칼의 구사와 간단하게 편화 한 캐릭터의 평면성이 제시하는 이 이미지들은 가볍고 발랄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문인화의 그것처럼 적요하고도 절제된 선비적 품격도 갖췄다. 간단한 언어의 구사와 함께한 이 그림들은 분명 일상적 소통에 장점이 있다. 또한 서구는 물론이고 중국이나 일본 목판화와는 전혀 다른 간결미가 제시하는 류연복의 이런 시각적 형상언어는, 미술이라는 '아우라'의 권위를 근본적으로 해체시킨다. 탈 아우라의 이런 류연복 판화의 매체특정적 메커니즘은 분명 대중적이되, 따뜻한 감수성으로 인해 서민적이고, 또 때로는 부조리에의 저항이 담김으로 민중적이고, 현장에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동요케 해서 군중적이다. 한마디로 류연복이란 사람의 있는 그대로의 다면적 모습이 반영되어 나오는 게 바로 이 소소한 관조성으로부터 독자를 견인하는 일러스트 목판화라고 하겠다. 이 출판미술 목판화의 관조성은, 그의 회화적 목판화의 묵직한 무게감과 비판적 정치성을 보완한다. 한칼 한칼 생활에서의 깨달음을 목판에 옮길 때마다, 그의 풍류도사로서의 탈속과 첨예한 현실인식이 깊고 부드럽게 어울리는 것은 분명하다.

류연복_5.18 기념 십자가_Ed.10/A.P1_채색목판_29×23cm_2015

민중-저항의 역사 ● 90년대 안성으로 낙향하면서부터 시작한 풍경이 류연복 목판화의 힘줄이고 출판용 일러스트가 류연복 목판화의 살이라고 본다면, 뼈대는 역시 80년대의 저항적·역사적 작업이라 하겠다. 1984년경부터 시작한 것이니 35년쯤 되었다. 처녀작 격인 「갑오농민전쟁」, 5.18에 관한 「뒤늦게 세운 비석」, 「무엇을 바라느냐」 등의 자연주의적 서정성의 시선으로, 변혁기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하려는 리얼리스트의 입장이 진득하게 묻어나온다. 지금처럼 몸에 잘 저축된 칼의 운용이나 기교보다는 당연히 청년작가의 몸짓에 의한 직접성과 어눌함이 보이지만, 한편으로 날 것의 싱싱함은 자연스럽다. 그러면서도 「씻김굿」이나 시민들 판화체험을 위해 제판한 「십이지신상」 등은 조선시대의 목판화의 전통양식을 수용한 것으로, 전통목판화를 소환하면서 거기에다 동시대적 문제의식을 중첩시킨 초기 목판화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이후 86년도 경 그의 기질이 그대로 반영된 「기도」, 정신대시리즈 중 하나인 「능욕도」, 그리고 6월 항쟁의 현장을 그대로 포착한 「6월 항쟁중 시민의 항의」, 반독재 투쟁의 이미지를 극대화한 「끝내 이루리라 이루어 내리라」, 노동자들의 투쟁을 형상화한 「갈라치며 나아가자」, 「골리앗 전사들」 등은 이 시기 류연복의 대표작들이다. 지금의 능숙해진 칼의 구사에 비하면 투박하지만, 당시 류연복의 사회적 의식과 전투적 실천성은 여지없이 드러난다. 주저함 없이 파 내려간 칼의 직진성도 그렇지만, 다듬지 않고 거칠게 밀어붙인 호흡에서 당시의 긴박했던 그의 심리와 시대상이 묻어난다. 확실히 그땐 젊었다. 기교나 테크닉이 아니라 날 것의 표현성을 힘으로 밀어붙인 목판화의 칼맛과 판면의 표정은 류연복 "답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류연복_골리앗 전사들_채색목판_110×68cm_1990

마무리하면서 ● 물론 환갑이 지난 지금도 그는 여전히 젊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라서다. 나와는 몇 번 함께 동지로 활동한 적이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나는 그와 함께 팀원으로 작업한 적이 있었다. 86년 정릉 그의 집 담벼락에 벽화 「상생도」를 함께 그릴 때도 먼저 선두에 나서서 작업을 이끌었다. 또 2016년 말부터 2017년 3월까지, 「광화문 미술행동」을 함께할 때도 그랬다. 회의를 통해서 어떤 사업안이 정해지면, 그는 머리를 굴리지 않는다. 주저 없이 몸이 먼저 나서면서 일을 했다. 자기 개인의 이득은 전혀 생각지 않는다. 오로지 일의 명분과 자신의 역할에 책임지는 모습만 보인다. 그러면서도 남들보다 앞서서 힘든 노동을 두말없이 휙휙 날렵하게 처리한다. 화단에서 보통의 선배들은 뒷전에서 일을 시키는 데 비해 허드렛일조차도 류연복은 자신이 먼저 몸으로 그렇게 처리했다. "류연복답다"는 말은, 온몸으로 밀어붙이는 그의 생활 태도와 작업 과정에 잘 어울리는 수사다. ● 아무튼, 1980년대 초에는 서울미술공동체를 통한 벽화운동으로, 이후 민미협과 그림마당 민을 중심으로 작가활동을 지속한 류연복의 저항적 이력은 결국 지금 남아있는 100여 점의 그의 80년대 목판화와, 그 이후 500여 점의 작품으로 증명된다. 그리고 80년대 그의 건강한 의지와 비판적인 의식으로부터 도출된 저항적인 미적 태도는 90년대의 자기 성찰적 잠언과 더불어 국토풍경을 통한 낮은 곳으로부터의 기운 혹은 정서, 즉 진지한 민중성으로 확장한다. 민중성은 반드시 전투성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80년대에는 그래야 했겠지만). 또는 사회과학적인 논리의 문제만도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정서, 혹은 더불어 일하고 누리려는 따뜻한 생명성을 의미한다. 낮은 곳으로부터 움트면서 소외된 존재들에 대한 연민과 공감과 함께, 이웃과 연대하려는 세계관의 발로이기도 하다. ● 1980년대 이래 지금까지 류연복의 이런 세계에 대한 입장은, 그 소재나 방식이 바뀌었을지라도, 여전하다. 작가로서 방법적 모색과 일탈과 실험은 했었어도 그가 세계를 대면하는 마음과 태도는 그때와 같은 지점에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대미가 바로 지금 진행하고 있는 대형 목판화들이다. 국토와 민중에 대한 애정, 작가로서 목판화에 대한 자기표현의 정합성, 그리고 동시대에 대한 지식인적인 실천적 참여라는 삼위일체가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간단명료한 잠언으로, 또 때로는 웅대한 서사적 서정으로 갈무리 지어지고 있다. 이런 작가적 궤적은 한국현대목판화의 진행과정 중에서 평가받아야 할 분명한 지점을 확보하고 있다. 허허실실 낙관적 웃음과 함께, 국토를 순례하며 그곳에서 이웃들과 함께하려는 그의 미적 지향성과 함께 말이다. ■ 김진하

* 각주 1) 홍선웅과 김준권도 있지만 이 둘은 풍경의 개념에 대한 접근이 약간 다른 궤에 있기에 여기서는 논외로 한다. 홍선웅은 전통문화적 바탕에서, 김준권은 목판조형적 실험으로 풍경을 다루고 있어서, 실제 국토의 현장성을 주목적으로 하는 류연복, 김억과는 작업 동기나 맥락이 조금 다른 지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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