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able

첨삭가능한展   2019_1004 ▶︎ 2019_1229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권민경_김수_김나연_마크앤솔_민정See_박유미_백서윤 손유화_송석우_심효선_이지웅_이현정_장수익 장은혜_정민규_정지원_최진연_튜나리_한수민_허주은

후원 / 대구현대미술가협회_대구광역시 기획 / 박창서

관람시간 / 10:00am~09:00pm

수창청춘맨숀 대구 중구 달성로22길 27 Tel. +82.(0)53.252.2566~70

『Editable : 첨삭 가능한』 전시는 최근에 많이 논의되고 있는 에디톨로지(Editology), 즉 편집학에 대한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는 초연결 사회로 규정되며 사회를 이루는 모든 관계망은 구축과 해체 그리고 재구축이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다. 최근의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 그리고 SNS를 통해 편집은 이미 학문의 영역을 넘어 우리의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은 비단 인간들 사이의 관계망뿐만 아니라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사물들과의 관계망으로 확장되고 있다. ●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들이 작품을 위해 수집한 텍스트나 이미지를 비롯한 다양한 정보 중 일시적 혹은 잠정적으로 선택하는 과정을 관객에게 제시하고자 한다. 현대 미술 특히 포스트 모더니즘의 방법론으로 사용된 이미지나 텍스트의 차용 혹은 전유는 편집의 한 예시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편집을 통한 '첨삭 가능함'은 독창성과 원본성이라는 모더니즘적 태도에 대한 현대 예술의 새로운 접근 방법으로 간주할 수 있다. 편집은 작가, 작품, 관객이 맺는 일의적인 관계의 형식을 다의적인 관계로 전이시킨다. 작품의 의도성은 실천과정에서 직면하게 되는 조건들과 상황들을 통해 약화하기도 하고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행되기도 한다. 애초의 의도에서 벗어남이 작품의 실패로 귀결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예술작품은 이 우발적 이행 과정을 거치며 새로운 생성을 위한 힘과 다채로운 의미의 층위를 획득한다. ● 이번 "Editable : 첨삭 가능한" 전시에는 회화, 사진, 조각, 영상, 설치 등의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작업하는 20명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들이 소개된다. 이번 전시 주제와 작가들의 작품의 형식을 기반으로 세 가지 특성으로 세분화할 수 있다. ● 첫번째는 '첨삭되는 이미지와 매체'이다. 권민경, 김나연, 마크앤솔, 이지웅, 이현정, 장수익, 장은혜, 한수민 작가는 이미지를 수집하거나 처리하는 과정을 통해 그들만의 고유한 작업의 주제를 드러내는 동시에 매체의 한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선보인다. 그 특징을 다음과 같이 분석할 수 있다. 이미지를 편집하여 비현실적인 상황을 현실적으로 드러내기, 편집된 평면 이미지를 축적하여 입체적으로 재구성하기, 편집된 이미지가 드러내는 이질적 리얼리티, 이미지를 파편화하기 혹은 파편화된 이미지를 재편집하거나 패턴화하기. ● 현대 예술에 있어서 창조 행위는 예술가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다양한 조건들과 상황들 속에서 첨삭되는 우연적이고 동시에 필연적인 편집 과정을 수반하는 실천이다. 창조 행위자인 예술가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들과 사건들 속에서 정보들을 취합하고 선택하는 과정이 반드시 작업의 의도를 오롯이 실천하기 위한 일의적 과정일 필요는 없다. 편집은 현대 예술의 창조적 행위에서 취할 수 있는 하나의 새로운 방법론이 되고 있다. ● 두 번째는 '첨삭되는 기억과 기록 그리고 장소 혹은 공간'이다. 민정See, 송석우, 정민규, 정지원, 최진연, 튜나리 작가는 기억이 기록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첨삭 과정들과 이 기억과 기록이 장소와 공간을 마주했을 때 발생하는 기억과 기록의 편집 과정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 선보인다. 기억들은 파편화된 이미지로 기록되고 시간의 흐름을 통해 약화하기도 하고 강화되기도 한다. 기억은 장소를 이미지화하고 장소는 기억을 소환한다. 기억은 우리의 정체성을 증명하려 하지만 나약하고 장소가 소환하는 기억은 때로는 몽환적으로 우리를 낯설게 한다. ● 세 번째는 '첨삭되는 텍스트와 정보들'이다. 김수, 박유미, 백서윤, 심효선, 손유화, 허주은 작가는 텍스트, 이미지, 데이터, 소리 등 다양한 정보들을 매개로 작업하는 작가들이다. 텍스트나 정보는 필연적으로 불확실성을 전제로 하고 그 텍스트나 정보가 수행하는 의미 전달은 불명확하다. 번역의 과정에서 번역자가 검색되는 무수한 유사어 중 하나를 선택하듯이 단어를 선택하고 편집하고 교정한다. 대체 가능한 유사어처럼 작가는 관객에게 작품을 제시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작가는 관객을 번역자로 혹은 편집자의 자리로 인도한다. ● 이상과 같이 "Editable : 첨삭 가능한" 전시에서는 다양한 매체의(회화, 조각, 사진, 영상, 설치 등) 작품들을 통해 첨삭 행위의 다양한 과정을 보여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 첨삭 행위의 과정에는 버리고 취하고 교정하며 느꼈을 작가들의 고민을 관객들도 같이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관람자가 작품들을 감상하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첨삭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관람자와 작가가 함께 교정자 혹은 편집자가 되는 전시가 되기를 희망한다. ■ 수창청춘맨숀

심효선_시작과 끝이 없는 이야기-한 아이_관객참여설치_가변크기_2019

아툴 가완디는 저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 인간의 가장 중요한 욕구로서 자기 이야기를 스스로 완결하고 싶어 하는 열망을 언급합니다. 죽음을 예견할 수도 대면할 수도 없는 인간, 혹은 그 스러짐에 무기력한 인간이 유일무이하게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 저는 세상과 개인이 맞닿는 접점에 주목하여 비물질 상태의 소리나 텍스트를 시각화하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결정되고 완성된 결과물보다 하나의 틀을 제공하고 진행과 완성은 여러 요인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결정되도록 유도합니다. ● #호모나랜스 #문장릴레이 #돌림노래 #ongoingstory #레이어 #부분과 전체 #순환 #비물질드로잉 ■ 심효선

송석우_IDENTITY : 정체성의 사유 #006_매트 페이퍼에 피크먼트 베이스 잉크젯 프린트_66.66×100cm_2017 송석우_IDENTITY : 정체성의 사유 #005_매트 페이퍼에 피크먼트 베이스 잉크젯 프린트_100×150cm_2017

앞으로 나아갈 과정의 그림을 그려보며, 문득 '나는 무엇을 향해 달려가는가' 라는 자아의 질문을 던지곤 한다. 폭풍처럼 흔들리고 고민하는 내 자신을 돌아보는 시기 를 가지며 불완전체의 시선을 나만의 감정으로 표현하였다. ● 스스로 가지고 있는 내면의 세계를 드러내는 은유를 통해 현재 모습을 흑백의 이미지로 투영시켜 그 작은 세상 속에서 지루하지만 익숙한 시간과의 대립구도를 가지 고 예기치 않은 혼돈의 시선을 나타낸다. ● 각기 다른 시간, 공간, 대상들을 조합하여 이미지를 완성해 나가는 과정에서 수 많은 감정들을 만나게 되며, 곧 세상과 대면하는 '나'라 는 존재에 현실과 마주하는 미묘복잡한 감정을 대신하였다. ■ 송석우

이지웅_방독면을 쓰고 저항하다_메탈에 페인트_200×160cm_2019 이지웅_Question_메탈에 페인트_130×110cm_2019 이지웅_Festival piece|_메탈에 페인트_30×17cm_2017

나는 음악, 인간의 폭력성, 욕망을 시각화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회 구조적 현상과 모순을 음악이라는 자유로운 리듬감 속에 담아 회화와 설치로 승화시켰으며, 시위 현장의 잔혹함과 인간의 모순적 생각, 행동을 통해 그들의 탐욕과 욕심에 대한 문제를 수면위로 나타냈다. 힙합이라는 음악의 사회적 흐름을 조각하고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나의 냉철한 시선은 캔버스 작업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들의 저항적 행위는 또 다른 균열을 일으키며, 시위 현장의 다른 음률을 가진 음악이 되어 나에게 힙합이라는 가면을 벗게 했다. 가정의 불화에서 겪었던 아픔과 가난으로부터 다가오는 사회적 압박을 음악이라는 요소로 해소하려 했다. ■ 이지웅

김수_해석된 감정_롤랑 바르트의 애도일기 번역본, 작가 번역본을 종 이에 바늘구멍_각 21×15cm_2017

번역하는 일을 통해 단어의 선택앞에 고심한 적이 많다. 모국어에서 상용되는 표현들이 적합할수도 있고, 때론 그 나라의 언어로 전달되어야만 하는 정보로서의 단어가 필요할때도 있다. 그러면서 번역은 언어를 고스란히 옮겨내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감정은 번역될수 있는 보편적인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다. 그것은 예술작품이 글로서 해석되어질 때 생겨나는 공통분모와 다르지 않다. 예술은 옭고 그름을 판단할수 없는 해석의 끈임없는 연장선을 가지고 있다. 저멀리서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과 그 시선을 찍고 있는 포토그래퍼와의 거리만큼 상대와 마주하거나 혹은 같은 편을 바라보고 있다고해도 시각과 언어사이에 존재하는 거리안에 설명할 수 없는 공기들이 흐른다. ■ 김수

이현정_붉은 드로잉 시리즈 3_판화지에 혼합재료_100×70cm_2019 이현정_붉은 드로잉과 그 패턴 3_프린팅이미지_84×59.4cm_2019

저는 자기치유에 대해 작업합니다. 이번 붉은 드로잉 시리즈도 그 연장선으로 제 안에 있는 감정들을 밖으로 끄집어내며 치유의 기능을 수행했다고 생각합니다. 붉은 드로잉 시리즈는 아버지에 대해 묵혀두었던 감정과 이미지들을 끌어내 진행한 작업입니다. 또한 그런 드로잉들을 이용해 패턴화 시키는 작업도 병행하게 되었는데요. 드로잉이 기억에 대한 작업이라면 패턴시리즈는 그 기억의 확장에 대한 작업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패턴의 특성은 이렇습니다. 이미지가 반복되어 붙어지며 새로운 형태를 저에게 가져다줍니다. 제가 의도한 부분과 의도치 않게 편집되는 부분들이 섞여 들어가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하는 것입니다. ■ 이현정

손유화_세 개의 하얀 기억_캔버스에 유채_각 30×30cm_2019

나는 붓과 캔버스를 활용하는 회화작가painter로써 동시대미술에서 회화매체가 매우 뒤쳐져 있다는 망상에 빠져있다. 이것은 마치 피해망상처럼 나를 따라다닌다. 나는 이러한 망상을 작업에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피해망상이 커지면서 더 이상 나는 이미지를 그릴 수 없었다. 결국에 나는 그림을 읽는 그림을 생각했다. 텍스트만 남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내가 손으로 그린 텍스트가 눈으로 읽혀 머릿속에서 이미지가 되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이미지는 각자의 머릿속에서 다른 이미지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현재의 내가 찾게된 내가 그릴수 있는 회화이다. 나의 망상은 계속된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회화작가로써 나의 피해망상이 회화의 본질을 찾게끔하는 원동력이 된다. ■ 손유화

최진연_Hammering I-v Ver.B&W_혼합재료, 영상_가변설치, 08:00:00_2018

작업의 순기능은 기존 상황에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시스템의 폭을 넓히고 감흥을 주며 더 풍부한 사고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것이 예술의 순기능이며 작업을 하는 이유이다. 순기능이란 긍정적인 기능을 말하는 것이며 예술이나 시스템의 그릇된 오류가 가져온 폐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 더불어 본인이 작업 행위에서 느꼈던 생각, 의미, 의도, 과정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을 전시의 목적으로 두기 때문에 단순히 정제된 결과물을 발표하는 것이 아닌, 과정 중에 일어난 여러 가지 변수들과 그에 따른 파생물을 날것의 상태로 노출시킨다. ● 본인은 특정 그룹에 맞춰진 시스템이 타 계층을 기만하는 상황에 주목하고 있으며, 예술의 순기능을 드러내기 위해 원초적인 근력을 사용한다. 사회의 기만적 시스템이 인간 이성의 결과로 구축된 폐단이라 여김으로, 이성적 인간 위치가 아닌 원초적 동물의 위치에서 이러한 불편한 상황을 고발하려는 것이다. ● 불편하고 의문점이 생기는 것들의 예를 들어 보면, 기능의 향상이 없는 상태로 외관만 변형해 소비자 앞에 소개되는 제품들처럼 기업의 이윤만을 추구하는 사회 경제 시스템, 행정 정책에 의해 오히려 훼손되는 정치 행정 시스템, 믿음으로 진리를 강요하는 종교 시스템이다. 예를 든 시스템을 외부 상황이라 정의하고 질문을 한다. ■ 최진연

장은혜_Pieces_혼합재료_가변크기_2019

무언가 비워있다는 건 차갑다. 온기가 모두 빠져 나가버린 공간은 외롭고 쓸쓸한 공간이다. 나는 존재감 없고 쓸쓸한 공간에 나를 철저히 내팽개칠까 봐 두렵다. 나는 따뜻해지고 싶다. 나는 존재되고 싶다. 무언가 채운다는 건 따뜻하다. 쓸쓸한 텅 빈 공간에 나는 무언가를 채울 때 외로움을 잊는다. 나는 따듯함의 온도를 찾기 위해 끊임없이 채우고 채운다. 채워질 때 온기가 존재되어지고 따뜻한 기억을 상기시킨다. 비우고 채우고 채우고 비운다. 외로움을 가득 채우다 보면 따뜻함이 그립고 따뜻함을 가득 채우다 보면 비울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 ■ 장은혜

장수익_meaningless(무의미한)_전선_73×130cm_2019

"마치 화살처럼 나를 꿰뚫어 온다." ● 무언가 자기자신도 모르게 환영의 기억처럼 눈길이 가는 이미지들이 있다. 그러면서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그 이미지를 바라본다. 나는 그 이미지에서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 이러한 과정에서 진정한 무의식에 대한 상징적 의미로 분석하는 행위가 사실 무의미함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무규정성의 무의식에 대해 작업을 진행하는 행위가 결국 마을을 비우는 것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 장수익

마크앤솔_artifical-studio_쇼핑백, 드로잉, 사진, 프린트물, 책상, 의자, 스텐드_2019 마크앤솔_artifical-studio_창문, 마스킹테이프_290×315cm_2019

인공 스튜디오 (artifical-studio) ● "독일에서의 작업실은 내가 자고 먹고 보고 쓰고 생각하고 고민했던 기록이다. 나의 일상의 공간이자 흔적이 되었던 공간이 이내 곧 스스로 생각하고 작동하기 시작했다. 공간이 곧 내가 되어 있었다." ● 3개월간의 베를린 레지던시를 통해 우리는 공간이 가진 현상과 아우라를 사진과 영상 그리고 일상적인 사물의 재배치를 통해서 타자이자 주체인 나를 경험하고 스스로가 점차 공간 안에서 재정립되어 가는 것을 체험하고서 몸이 스스로 기억하는 것을 공간 안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특히 우리가 주목한 것은 공간과 사람들의 움직임이었다. 거대한 공간들 속에서 군집하고 잠시 머무르는 현장성은 타자인 우리에게 다양한 관점의 변화를 주었다. 시선의 흐름에 따라서 인물의 모습들이 웅장한 공간의 작은 조형물로 느껴졌고 그러한 유동적인 시선의 변화는 점, 선, 면으로 치환되어 기하학적 라인들로 구성되기도 했다. 또한 우리는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담고자 했다. 원본이 가진 아우라가 복사본을 통해서 아우라의 회복 또는 마찰을 설명하면서 가상의 복사본은 실재의 원본처럼 이미지 고유의 정체성을 동반하는 동시에 스스로가 아우라를 뛰어넘는 이미지적인 혁명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한 일련의 창작 과정들을 클라우드 방식처럼 수창청춘맨숀 공간 안에 동기화하여 가상의 스튜디오로 다시금 재구성하여 공간과 시간의 경계에 대한 기록 그리고 나를 대변하는 이미지들의 감정과 회복의 과정들을 관객들에게 공유하고자 한다. ■ 마크앤솔

한수민_여름에마시는뜨거운커피의요정_디지털 프린트_8×10cm_2019 한수민_지워진방지턱의요정_디지털 프린트_8×10cm_2019 한수민_오래된계산서의요정_디지털 프린트_8×10cm_2019 한수민_행복한집의요정_디지털 프린트_8×10cm_2019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평범하고 흔한 일상 속에서 저는 우연히 작은 요정들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비록 조그마하지만 항상 열심히 할 일을 해내고 있고, 그 작은 힘을 모아 큰 일을 이루어 내고야 맙니다. 비록 우리 눈에 크게 띄지는 않지만요. ● 우리 일상속의 큰일부터 사소한일 까지도 중요하지 않은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모든 일과 상황에는 그것들을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작은 요정이 있다고 믿습니다. ■ 한수민

허주은_검은 봉지는 끌려다닌다._3채널 영상_가변설치_2019 허주은_회색소음_1채널 영상_가변설치_2018

검은 봉지는 끌려다닌다. ● 그것은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은 것처럼 보인다. 옮겨진다기보다는 끌려다니는 것 같다. 버려질 곳을 찾아 질질 끌려다니는 것 일 수도 있다. ● 그 와중에 그것은 쓰레기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안에 중요한 것을 품고 있다 하는 것 같다.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조용하지만 선명하게 흔적으로 남기는 중 일 수도 있다. ■ 허주은

백서윤_● ● ● ● ●_인터랙티브 설치, 영상, 커스텀 소프트웨어, 2개의 프로젝터, 패브릭, 종이_2019

작가는 인공지능을 사용하여 숫자, 문자, 기호, 그림을 포함한 데이터 100개 중 5개를 무작위로 골라 뽑힌 데이터를 사용하여 작업하였다. 뽑힌 데이터들은 다음과 같다. 2, ●, Cell, =, Displace. 반복되는 영상은 위의 데이터를 사용하여 만든 작업이고, 버려진 데이터들은 바닥에 뿌려져있다. 첫 '해체' 작업은 작가에 의해 이루어진다. 인공지능에 의해 '선택'된 데이터들은 작가에 의해 '구성' 되고 관객이 이를 '해체'를 함으로써 작품은 완성된다. 작가는 관객에게 묻는다. 버려진 95개의 데이터들은 쓸모없는 데이터일까 재구성의 데이터일까. 당신에게 이 데이터들은 SAVE 인가 DELETE 인가. ■ 백서윤

민정See_버려지다문_디지털프린트_가변설치_2019

나는 도시에서 자라 학군 좋은 곳 이라는 데서 치열히 공부했고, 과외와 학원들을 다니며 도시, 경쟁사회 속에 바쁘게 살아왔다. 나 외에 다른 것들을 무감각하게 못 본채 빠르게 걸었다. 그 후 몇 년간 아팠고, 지금은 도시와 나의 관계에 대해 사유하고, 의문한다. 개인의 사유, 스토리, 시선을 영상, 설치, 사진, 판화 등 다 매체로 시각화한다. 도시와 도시인을 말하기에, 하루에도 셀 수 없이 쏟아져 나오는 인쇄물들, 빠르게 변화하는 영원성을 말 할 수 없는 일회성을 가진 도시 문화는, 나의 작업 매체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대개의 작품은 영원히 남는 작품이 아니라, 동시대의 해프닝 같은 일회성을 갖고 작업한다. 잡을 수 있는 안정감과 무게감이 아닌, 가벼운 순간의 개인의 시간을 보인다. ■ 민정See

권민경_edge of season_디지털 프린트_66×50cm_2019 권민경_eating floating clouds_디지털 프린트_2019

삶이 '왜 여기에 왔는지 모르지만 본능적으로 견뎌내다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라고 정의한다면, 우리는 그 막연함과 권태로움에 때때로 절망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운명에 순응 할 수 밖에 없는 동물들과 달리, 인간이기에 그저 가만히 받아들일 수는 없었습니다. 당장 이 우리를 탈출 할 수는 없어도 반전을 상상해볼 수는 있습니다. DAY DREAM 시리즈는 동물들을 주인공으로 일상의 권태가 상상의 장면으로 바뀌는 마술같은 순간(백일몽, day dream)을 화면에 구현해 본 작업입니다. 이 환상 안에 인생사의 나른한 희망과 씁쓸한 유머를 담았습니다. ■ 권민경

튜나리_대흥동(2019)_피그먼트 프린트_150×600cm_2019

시간은 공간으로 흔적을 남기고 기억은 그 속에 점으로 묻혀있다. 시간은 비록 무형의 형태로 흘러가지만 우리는 그 시절 그때의 공간으로 시간을 기억 하고 있다. ● 무형으로 흘러가 버린 시간을 잡기 위해 유형화 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수집으로 기억을 끌어모아보려 한다. 화려했던 흔적이 남은 구 도심의 풍경을 촬영 한 뒤 관공서 및 개인이 보관하고 있는 오래된 사진을 수집한 다음 디지털 콜라주했다. ● 시간의 흔적이 된 이 곳으로 겹겹이 쌓인 기억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 튜나리

김나연_untitled_영상_00:18:00_2018

4B연필을 길게 깎아 그림을 그린 다는 것은 미술의 배움과 입시의 시작을 이야기한다. 결국 날카로운 연필을 잡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다는 것은 혼란스러움의 시작이다. 나에게도 자유롭게 그리던 그림과 달리 4B연필을 잡고 그리는 그림은 늘 고민의 연속이었다. ● 그림 속에 빛의 방향부터 흑백의 강도까지. 조금 더 선을 그어야 할까 아니면 여기서 멈춰야 할까. 정해진 시간 안에 나는 흰 도화지를 그럴 듯 해 보이도록 채워 넣어야 했다. 색연필과 크레파스로 그릴 때는 늘 작기만 했던 도화지가 너무 크게만 느껴지고 혼란스러웠다. ● 물위를 떠다니지도 그렇다고 바닥에 붙어있지도 못하고 마치 발꿈치를 들고 날이 서 있는 듯한 4B연필들을 보며 나는 동질감을 느꼈다. ● 그림을 그리는 도구에서 벗어나 오브제로 연필을 선택했다. ■ 김나연

박유미_바다에 잠기다_PVA, 잉크, 단채널 영상_가변설치_2019

우리는 매일 말하고 클릭하고 터치한다. 그것은 세계에 접속하기 위한 행위이며, 행위의 도착점은 소통이다. 소통은 이 시대를 지배하는 중요한 이념이다. 그러나 나는 너에게 절대적 타인일 수밖에 없으며, 우리는 결코 닿을 수 없다. 다만, 우리는 타인으로서, 절대고립의 세계 안에서만 서로를 만날 수 있다. 어둠 속에서만 서로를 애도할 수 있다. ● 녹아내린 언어는 검은 바다가 되어 풍경으로 남았다. 언어를 잠식해버린 바다를 바라보며 우리는 고요해진다. 그곳은 절대고립의 세계이다. ■ 박유미

정민규_현대인의 모습 :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 #03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120×120cm_2018

타자 및 사회와 관계하며 살아가는 인간에게는 구조화된 틀이 둘러싸여져있다.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특정 옷을 입는 인간의 이미지는 외부 시선으로부터 개인의 이미지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옷이 가지는 사회적 이미지는 개인의 이미지와 동일시되며 이미지는 스테레오 타입화된다. 개인은 옷을 입혀놓은 사람 모형처럼 존재하며 사회적으로 형성된 이미지는 개인의 이미지로 구성되면서 개인의 이미지를 소외시킨다. 일련의 작업으로 나는 개인의 이미지를 드러내 표면에 형성되어있는 구조화된 틀을 의식적으로 환기하고자 했다. ■ 정민규

정지원_너와 너 사이의 대화 Conversation between you and you_ TV, 모니터, 프로젝터, PVC 원단_가변설치_2019

우리가 보는 사건들, 사물들, 현상들을 우리는 온전히 바라보고 있는것일까? 여러가지의 해석과 편집 혹은 각자의 경험으로 그것들은 더해지기도 제해지기도, 또 다른 방식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현재를 사는 나는 가끔 어떤것을 택하는것이 옮은 시각인지 결정하는것이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또 그 시각의 결정이 과연 옮은것인지란 질문을 던지기도 또는 서로 이해 되지 않는 아웅다웅 가운데 지치기도 한다. 시시각각 변하며 우리 앞의 시야를 가리는것들은 왜곡일까 겹의 축척일까? 우리의 생각의 결정체가 단순하게 판단될 수 없기에 그 겹들은 온전하기도 혹은 불완전하기도 하리라. ■ 정지원

Vol.20191013f | Editable-첨삭가능한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