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해경(山海經) : 상상 여행

유혜경展 / YUHAEKYUNG / 劉惠鏡 / painting   2019_1010 ▶︎ 2019_1203

유혜경_山海經-상상여행II_장지에 채색_60×110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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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특강 / 2019_1112_화요일_11:00am_동양신화로 떠나는 상상여행

관람시간 / 10:00am~06:00pm

수하담 아트스페이스 Suhadam Art Space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로 190-8 3층 Tel. +82.(0)31.8016.6170 www.instagram.com/suhadampangyo

유혜경 작가의 2019년 전시 스케치 "산해경(山海經)-상상 여행" ● 작품을 보기 전 생각이 많으면 감각은 무뎌진다. 분석한 회화의 양이 쌓일수록 감각의 인간이 아닌 관념의 인간으로 굳어지는 듯하다. 그래서 어느 때부터 갤러리 가는 길에는 기억의 책장들을 한 장 한 장 버리는 의식(ritual)이 생겼다. '작품을 보는 것'은 잠시라도 선입견을 정지하고 내 감각을 열어 작가의 공간을 느끼는 것이다. 내 과거의 지식이 탄성의 힘으로 곧 달라붙을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작가의 감각, 사유, 상상으로 채우고 싶은 것이다.

유혜경_山海經-상상여행I_장지에 채색_60×110cm_2019

전시장에 들어서자 새소리가 들려온다. 시원한 산에 들어온 듯하다. 그 소리만으로도 켜켜이 쌓인 마음의 짐이 가볍게 느껴진다. 청량하다. 하지만 앞에 펼쳐진 작가의 설치는 사뭇 다른 공기를 품고 있다. 공허하게 하늘로만 올라가는 익명의 작은 사람들. 산뜻한 공기 아래 무거운 안개가 지나간다. 무엇인가 이질적이다. 다른 향의 공기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는 전시 공간뿐만 아니다. 작가의 또 다른 내면의 공간인 캔버스도 전시장의 느낌처럼 이질적이다. 가벼운 민트색의 산이지만 공간은 그 향기처럼 산뜻하지 않다. 전 전시에서 느꼈던 산의 위용은 대단했다. 일상의 장소 등 어디든 산은 마치 번식을 하듯 확장하였고, 그 살아있는 산에 붙은 하얀 익명의 사람들은 '쉬지 못하고' 무엇인가 행위를 하였다. 작가가 추구하는 소요(逍遙)나 청담(淸淡), 은일(隱逸)과 분명 거리가 있다. 상상의 공간에서조차 마음껏 '노닐지' 못하는 작가의 마음은 전시장의 공간에서, 캔버스의 공간에서 그대로 표현된 듯하다. 이는 아마도 작가의 다층적인 내면일 것이다.

유혜경_山海經_장지에 수묵_215×150cm_2019
유혜경_山海經Ⅰ(산해경)_장지에 수묵_215×150cm_2018

의식의 공간에서 작가의 하루는 힘겹다. 하루에 들어서는 순간 끊임없이 '해야 되는 것'이 연결된다. 시간은 그 의무의 고리가 이어진 방향으로 강압적으로 흐르며 시간의 매트릭스는 그것을 이루기 위한 편리한 장치다. 그의 하루는 오차가 허락되지 않는 시간의 가혹함이 있는 듯하다. 하루의 시간이 그러한데 공간은 그 현실의 무게감으로인해 변형된다. 공간은 시간의 힘에 굴복한다. '해야 되는 것'으로 지배된 공간, 인간의 숨소리나 피부의 감각, 감정과 상상은 의식의 공간 안에 들어설 수가 없는 것이다. 작가의 이러한 시공간은 작가의 작업과정이나 작품에서 그대로 표현된다. 고된 캔버스의 제작 과정, 화백록의 산들 위의 작은 인간들, 화면에 종종 등장하는 기하학적 도형 등이다. ● 소요(逍遙)나 은일(隱逸), 청담(淸淡) 등은 이러한 힘겨운 의식의 삶에 쉼을 주는 관념들이며, 이를 통해 작가만의 헤테로피아, 즉 겹쳐진 공간을 캔버스에 이룬다. 이는 전작들에서 작가가 꿈꾸었던 유토피아, 가산(假山) 놀이이다. 하지만 관념이 만드는 유희는 감각의 지점에서 멀어질수록 현실과 인간에서 벗어난다. 작가는 가산의 관념으로 현실에 침투하려 하지만 그 시도만으로는 진정 '노닐 수'가 없다. 향기로운 화백록 산들의 주인은 하얀 익명의 인간들이 아닌 것이다. 작가는 또 다른 현실을 필요로 한다. 이는 무의식적인 현실인 신화이다.

유혜경_개대(開隊)_장지에 수묵드로잉_30×41cm_2019
유혜경_대조(䲦鳥)와 염유어(冉遺魚)_장지에 수묵드로잉_30×41cm_2019
유혜경_저인(氐人)과 고걸이(高傑李)_장지에 수묵드로잉_30×41cm_2019

작가의 캔버스에 산해경(山海經)의 신화가 녹아 들어간다. 고대부터 이어져온 당당했던 화백록의 산들은 이들의 침범으로 놀이터가 되었다. 그 검은 생명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편안하게 논다. 고고한 관념은 이들의 등장으로 균열이 생긴다. 사실 이들의 기이한 모습은 그 기원을 돌아볼 때 결코 가볍지 않다. 신화의 괴물들은 역사이전 인간을 유지했던 버팀목이었다. 이들은 인간의 깊은 곳에서 생성된 원시적 표상이며, 역사의 흥망성쇠에서 도상으로 살아남았다. 그 도상은 비록 아무런 힘도 없이 책 몇 쪽에서 그 낯섦과 기괴함으로 우리에게 보이지만, 역사 이전 시절엔 권력이었고 언어였고 또한 생명이었다. 이러한 신화의 괴물들은 인간 무의식과 상응한다. 이성의 힘이 약할 때 이미지는 자유로워진다. 그 이성의 시선에서 벗어난 마음, 즉 억압된 검은 공간인 무의식은 어릴 때 상상했던 이미지와 이야기가 살아있는 곳이다. 작가의 깊은 무의식과 산해경의 검은 괴물은 이렇게 만난다.

유혜경_질주불휴_오브제, 드로잉설치_가변크기_2019_부분
유혜경_질주불휴_오브제, 드로잉설치_가변크기_2019_부분

작가가 힘겹게 도입한 산해경의 괴물들은 희미해진 즐거움의 감정이 연결된 작가 내면의 어두운 모습이다. 그들은 어둡고 기괴하나 슬프지 않고 일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작가가 진정으로 원하는 휴식을 산에서 취한다. 이는 전시 공간 옆에 커다란 족자에 펼쳐진 검은 산에서 이루어졌다. 괴물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품고 놀고 대화하고 또 관계하고 있다. 그 어둠의 존재들은 화백록 그림의 하얀 사람들과는 대조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자신 있게 드러낸다. 상상의 검은 땅에서 이 검은 괴물들은 예전부터 놀고 있는 듯 자유롭다. 작가의 깊은 내면에서 스며 나온 이 괴물들 속엔 사회가 규정하지 않는 은밀한 작가의 이야기가 들어있지 않을까? ● 따라서 작가는 기존 동양화의 선배들과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기존 작업이 화백록의 산을 현대의 공간에 끌어들였다면, 이 괴물들의 존재는 작가의 깊은 내면의 존재를 '선배들의 유토피아'에 던진 도발적인 사건인 것이다. 균형과 질서, 초월적인 아름다움은 지워졌다. 하지만 이 시도는 생명력의 문을 열었으며 전통의 조형에 균열을 줌으로써 나의 깊은 세계를 향할 수 있는 문을 만들었다. 작가의 작업은 그 시간의 작가 내면 전체를 표현한다. 그러므로 작가의 소요는 '나'를 이미지를 통해 확인하는 것일지 모른다. 진정한 소요를 위해 '도(道)'의 경지가 필요하다고 할 때, 그 '도'로 가는 길은 바로 '나'가 아닐까 싶다. 호접지몽(胡蝶之夢)에서 말하는 꿈과 현실을 초월하는 거대한 정신세계는 잘 모르지만, 매일 임상에서 고민하는 프로이트가 말했던 '무의식의 의식화'가 그 작은 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도'라는 이상향을 꿈꾸기보다 나의 억압된 과거의 어두운 힘이 현실에서 춤추는 것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과정, 그 순간을 작가는 회화로 선택하지 않았을까? 내가 화백록의 산에서 놀고 있는 검은 괴물을 반기는 까닭이다.

유혜경_산해경(山海經) : 상상 여행展_수하담 아트스페이스_2019

언제부터인가 예술은 인간의 전체를 담기 시작했다. 그 두께나 넓이에서 인간의 무의식은 절대적인 영향력을 주는 듯하다. 최근 유혜경 작가의 작업은 자발적으로 인간의 심연에 존재하는 무한한 에너지로 향하였다. 정신 분석 임상의 경험과 예술의 과정은 같지 않지만 '나'를 향한 방향성에서 일치하는 것 같다. 사실 무의식의 체험은 나의 끝없는 불완전함을 확인해나가는 과정이며 고통스럽다. 현대 예술은 이러한 인간의 무한한 '불완전함'을 시각화한다. 작가는 이 불안한 세계 앞에 서있다. 이는 바로 예술의 선배들이 서왔던 '결정되지 않은 땅'이다. ■ 이현권

Vol.20191014g | 유혜경展 / YUHAEKYUNG / 劉惠鏡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