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감

박기진展 / PARKKIJIN / 朴基辰 / installation   2019_1008 ▶︎ 2019_1110

박기진_만감_모래자루, 목재, 영상, 사운드, 빛, 기계장치, 식물_가변크기_2019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문안서울 서울 중구 퇴계로53길 6-17 B1

이 두 사이, 경계 그리고 비무장지대 'Between the two, the boundary and the demilitarized zone' ● 땅을 가르는 '경계'는 기표 없는 기의적인 말이지만, 그것은 현대인들에게 소유, 존재에 대한 세력을 뜻하고, 너의 편과 나의 편이라는 헤게모니의 접경이나 완충의 지대를 뜻한다. '경계'는 너와 나의 구분과 같은 차이의 구분이자 시야(視野)와 세력이 미치는 범위이며 대상이 존재하는 위치에 대한 파악과도 같은 것이다. 그리고 외물(外物)과 자아, 객관과 주관, 또는 물질계와 정신계가 어울려 하나가 됨, 즉 '경계' 없음을 물아일체(物我一體)로 본 종교적인 개념에서 '경계'는 실체가 없는 기표로서 존재한다. 그러나 현실계에서는 존재의 탄생이 곧 '경계'의 탄생을 의미하며, 서로가 구분되는 다름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게 세상의 이치이다. 전쟁을 통해 분리된 남북의 현실에 처해있는 우리에게 '경계'는 형이상학적인 개념보다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으로 현실에 존재하는 구분 선이다. ● 박기진 작가의 작업은 비무장지대: DMZ (demilitarized zone)라는 특수한 땅으로 '경계'에 대한 경험으로부터 시작된다. 비무장지대는 우리에게는 더는 넘어설 수 없는 경계 지대이지만, 법적으로 볼 때는 특정한 지역에 대해 비무장화를 선언한 국제법상의 조치이다. 정치 군사적 측면으로 볼 때 전투행위를 중지하고 잠정적인 평화를 담보해 냄으로써 정전과 평화유지의 수단으로 인정되고 있다. 군사적인 직접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상호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지대, 그곳이 대한민국 경계 안의 '경계'로 존재하고 있다. ● 그의 전시가 비무장지대에 대한 경험을 근원으로 하고 있고, 비무장 지대의 풍경을 떠올릴 수 있는 구성요소를 가지고는 있지만, 정작 전시장 안에 그가 구축한 것들은 비무장지대의 공간 재현으로 보기는 힘들다. 그런데도 비가시성과 가시성의 사이에서 참호(塹壕)라는 공간은 우리가 잠정하고 있는 군사분계선: MDL(Military Demarcation Line)을 함의하고 있다. 더욱이 그는 관람자의 의심의 눈초리를 통과하는 요소로 비무장지대를 암시하는 물리적인 재료들을 사용하고 있다. 군사시설인 초소를 지을 때나 쓸 것 같은 다듬어지지 않은 투박한 목재들, 참호를 연상하게 하는 흙이 담긴 무거운 마대 자루들, 녹슬고 비틀어진 철문, 참호 벽들의 틈과 창, 그러한 요소들은 도심의 한 장소를 비무장지대라는 무대로 변환하게 한다.

박기진_만감_모래자루, 목재, 영상, 사운드, 빛, 기계장치, 식물_가변크기_2019

서울 한복판의 전시장으로부터 비무장지대로의 장소적 연결은 전위적이기보다는 감정적인 긴장감을 만드는 것에 작가는 집중한다. 붉은 그리고 푸른빛이 교차하는 공간과 초록의 식물들이 빛나는 공간을 만들었고, 좁고 어두운 긴 터널 같은 공간을 대조적으로 구축하고, 재료로 사용된 거칠고 투박한 사물들과 새와 풀벌레의 소리가 혼재되어 관객에게 전달되도록 내버려 두었다. 비무장지대라는 하나의 공간을 다루지만, 그 곳에서 작가가 경험한 장소성을 구축함으로써 관객이 전시장에서 경험하는 것은 비무장지대라는 장소에 대한 친숙함과 낯섦, 가시적인 현실과 비가시적인 의도간의 충돌되거나 흡수되는 다중적인 감각의 혼재이다. 그것은 한반도의 동서를 가르는 155마일(약 250Km)에 다다르는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에 대한 서로의 대척점을 가진 '경계'가 아니라, 장소에서 작가가 경험한 다층적 시공간에 대한 혼재, 중첩된 감각적 경험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고자 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 ● 비무장지대에나 있을 듯한 터널 안에는 관측을 위한 작은 창이 나있다. 그 틈사이로 하늘과 들, 들풀과 새들의 영상이 보인다. 마치 야생의 자연처럼 보이는 영상 속 풍광들은 사실적일까? 필자인 나는 갈 수 없는 그곳에 대한 경험들은 오로지 영상으로 제작된 작가의 경험과 기억에 의존하고 있다. ● 내가 희미하게나마 기억하는 것은 판문점의 관망대에서 망원경 너머 내가 봤던 비무장지대에 대한 인상이다. 많은 관광객에 떠밀려서 판문점의 관망대에 서 있었던 나로서는 비무장지대의 자연과 풍경보다도 어떤 지표로도 구분되지 않은 '경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호기심 그리고 어딘가는 존재할 '경계'에 대한 암시를 줄 넓은 들판에 점점이 들어서 있는 감시초소와 참호들에 망원경의 초점을 맞췄었다. 그래서였을까, 박기진 작가의 작업에서 드러나는 비무장지대이라는 암시를 주는 물리적 형태와 구조가 무엇을 닮아있었는지 분별이 어려웠다. 그래서 작가의 장소 경험은 실제적이기보다는 개념적인 '경계'로 열림과 닫힘의 상태 그리고 긴 통로와 같은 것으로 암시된다. ● '회전하는 참호'는 관객참여의 작업으로 통로와 공간간의 열림과 닫힘, 통로를 위한 의례(ritual)로 읽히는 설치 오브제이다. 원형 회전 판 위에 흙을 담은 마대 자루는 참호 벽처럼 쌓여서 있고 작은 입구를 열어두었다, 운전대와 같은 것이 판의 중심에 부착되어있어서 관객은 운전대를 돌려서 두 개로 분리된 각각의 원형 참호들을 통로로 연결할 수 있다. 두 개의 원형참호는 분리된 두 개의 땅의 설정으로, 작가는 분단을 체험하는 방식을 무대적 장치처럼 전시에 삽입하고, 관객이 자동적으로 작가가 설정한 의도를 따라서 참호의 입구와 통로를 연결하는 행위/운동(motion)을 수행하게 함으로써, 각각의 영역 간의 '경계'를 비 장소화하고 '통로'로 전환하게 하는 의례(ritual)에 참여하게 한다. 이때 관객들은 참호의 운전대를 움직여서 하나의 연결 통로를 만들고자 하는 시도를 하게 되는데, 그러한 관객의 행위, 시간, 의지와 같은 것들은 두 개의 각기 다른 원형 참호를 하나로 연결하기 위한 '통과의례'(rite of passage)가 되는 것이다.

박기진_만감_모래자루, 목재, 영상, 사운드, 빛, 기계장치, 식물_가변크기_2019

'통과의례'는 빅터 터너 Victor W. Turner의 이론으로 한 민족지에서 빚어지는 갈등과 모순 속에 다시 하나의 사회로 귀속되는 과정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하나의 민족은 위반, 위기, 교정, 치유와 재통함(re-passage)을 거친다. 비록 그것은 사회적이고 종교적인 제의(ritual)의 과정이라고 명명하지만, 우리가 처한 상태, 하나의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되는 과정의 제의(suggestion/motion)를 뜻한다고 나는 해석하고자 한다. ● 박기진 작가가 전시를 통해 필자인 나에게 주는 분단의 상태에 대한 명시(明示)는, 우리가 염원하는 통일(unity)의 문제에서 군사적인 비무장지대가 정치, 사회적인 상징적 지표로 리멘(limen)(리멘 (limen)은 '문지방'이란 뜻의 라틴어) 이나 리미널티(liminality)(리미널리티(liminality)는 '문턱에 있음을 가리킨다. 즉, 통상의 일상적인 문화와 사회의 상태와 어떤 상태를 형성하고 시간을 경과시키고 법과 질서를 유지하고 구조적인 지위를 정해가는 과정 사이의 중간적인 상태를 나타낸다.)의 장소라고 말하고자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 지대는 누구의 땅도 아닌 것에서 변용 가능성을 지닌 중간지대이다.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귀속되지 않는 것을 통해서 도달하는 비가시적인 지표이다. ● 비무장지대는 과거에는 물리적 전쟁을 막기 위한 구조적 장치로 남과 북의 체재를 유지하기 위한 완충지로의 경계와 틈이었다면, 현재는 자연 생태를 보전하는 지대이자 평화의 지대로 한반도의 상징이 되었다. 시대의 비극이 만든 장소는 한반도 전쟁 후 66년간에도 땅의 순환을 멈추질 않았다. 생명의 순환들은 새로운 장소를 만들어낸다. 닫힌 비가시적인 장소가 아니라, 남과 북 서로에게 열린 가시적 장소가 될 수 있다. ● 비무장지대에 대한 작가의 장소적 경험으로 이행(passage)의 의미는 그의 작업인 「통로(Path)」(박기진 개인전 「통로(Path)」, 2017.11.15.~12.15, JJ 중정 갤러리)에서도 드러나는데, 서로 대척적인 지점에서 자신과 외재로의 공간 이행만이 아닌, 시공간의 공존, 감성과 이성의 혼재(混在), 지각과 환영의 다층적인 장소 경험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나는 추론한다. 그의 작가 노트에 적혀 있던 글을 통해서 그가 경험한 비무장지대는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상황에 대한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박기진_만감_모래자루, 목재, 영상, 사운드, 빛, 기계장치, 식물_가변크기_2019

"...매일 보는 철책 내부의 수목과 능선, 구릉과 개울이 미묘한 감동과 슬픔을 주었던 기억이 있다. 가슴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풍경과 손바닥에 땀이 날 만큼 두려움과 숨이 멎을 것 같은 적막함과 요동치는 떨림이 동시에 떠오르는..." (작가 노트 '통로에 관해', 박기진, 2017) ● 자유(freedom), 평등(equality), 동료애(friendship), 동질성(homogeneity)은 남과 북이 통일(unity)로 획득되는 것들이지만, 그것에는 반드시 통과의례를 치르게 된다. 남과 북이 가진 정치적, 경제적 교섭뿐만 아니라, 서로가 연결되는 어떤 지점을 만나게 될 때까지, 서로의 대척되는 고정점을 벗어나는 행위와 시도를 반복하고 지속해야 한다. 예외적인 상태... 비록 나는 그것까지는 예측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도 우리는 그 예외를 정상화하려 하지는 않는다는 것은 중요한 의지이다. ● 박기진 작가가 분단과 통일의 접점을 찾는 비무장지대에서 그리고 진퇴와 순환을 반복하는 리미널리티에서 필자인 나에게 던지는 시대적 비극이 만든 비무장지대에 관한 질문에 단문의 답을 적는다. ● 이 두 사이의 지점, 마치 통과의례처럼 그 중간 지점에서 사건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 성원선

박기진_만감_모래자루, 목재, 영상, 사운드, 빛, 기계장치, 식물_가변크기_2019

오래전 느꼈던 만감과 오늘 구현한 만감, 그리고 관객이 받아드릴 만감에 대하여 ● 새벽에 광주에서 출발한 열차는 용산역에서 분리되어 갈라졌다. 어수룩한 어둠이 내릴 쯤에야 경원선의 종점 신탄리에 내렸다. 낡은 철재 간판에 쓰여진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문구는 가히 전방에 왔다는 느낌을 더했다. 용산을 거쳐 신탄리까지 오는 동안 생소한 역들에서 많은 동기들이 내리고 결국 종착역으로 향하는 객실에는 나와 송민종 소위만 남아 있었다. 소박한 신탄리역 플랫폼에는 콘크리트를 뚫고 나온 풀들이 건들거리며 있었다. 여섯 량 짧은 객차에서 몇몇이 주섬주섬 더플백을 들고 내리고는 이내 작은 대합실 너머에서 트럭을 타고 역을 빠져나갔다. 트럭들이 광장을 빠져나가는 순간 동기들은 호루 밖으로 머리와 손을 내밀어 잘 가라고 인사했다. ● 10월 백골 OP에서 바라본 민들레 평원과 만도 평원은 아름다웠다. 실개천이 흐르는 넓은 분지형의 평지는 드문드문 나무가 있는 초지였고 색이 강렬했다. 앞에서 브리핑하는 OP 관측 장교는 주요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연신 전방을 설명했지만, 귀에 들리지 않았다. 철원과 원산 구조곡이 만든 멋진 풍광은 한동안 내 눈을 놓아주지 않았고, 시각 이외에는 다른 감각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관측소를 나오니 아늑함은 사라지고 겨울 냄새가 나는 바람과 멀리 보이는 오성산이 왠지 모를 두려움을 주었다. 떨어지는 롤러코스터나 어두운 뒷골목에서 느껴지는 소름 같기도 하고, 어릴 적 반복해서 꾸었던 끝없이 떨어지는 꿈 같기도 하고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이었다. 신선함과 건조함, 그리움과 새로움, 슬픔과 아름다움, 편안함과 긴장감, 고요함과 굉음이 동시에 밀려왔다. 10년이 더 지난 최근 나는 이 느낌을 만감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 송민종 소위와 나는 전포대장(Battery Executive Officer)과 교육장교(FA Battalion Training Officer) 두 보직을 두고 신경전을 벌였다. 전포대장은 독립 포대에서 근무하는 활동적인 병력 지휘자였고, 교육장교는 대대의 지휘부에 근무하는 사무직 참모 직위였다. 우리는 둘 다 전포 대장이 되기를 원했다. 결국 내가 포대로 갔지만, 이 신경전은 내내 미안한 감정으로 민종을 대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교육장교가 힘든 탓일 것이다. 둘 다 전포대장 자리를 원했지만 그러지 못했고, 그럴 수 없었다. 결국 지금 우리는 전혀 다른 일을 한다. 나는 작가가 되었고 민종은 세무 공무원이 되었다.

박기진_만감展_문안서울_2019

내 친구 위(Xuan Huy Nguyen)는 독일 국적 베트남 작가이다. 그는 젊은 시절 독일로 망명했다. 베트남에서는 그가 그리는 그림을 전시할 수가 없었다. 반체제적이라는 이유로 그는 작품 활동 중단을 강요당했고 20대 초반 모국을 떠나 망명길에 올랐다. 위는 어릴 적 화재로 인해 한쪽 귀와 목 언저리에 큰 화상 흉터가 있었고 그때의 트라우마인지는 몰라도 신체와 고기(육류)가 섞여 있는 사실적이고 신화적인 그림을 그린다. 베를린에서 다시 만난 그는 여전히 밝았고 그의 딸은 그를 꼭 빼닮았다. ● 끊어진 대동강 철교를 촬영한 AP 통신의 사진 기자 맥스 데스포(Max Desfor)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 1950년 12월 중공군을 피해 공습으로 끊어진 다리 위를 아슬하게 넘어 남하하는 피난민들의 행렬을 담은 그의 사진은 우리에게 전쟁의 단면을 여과 없이 보여 주는 기록 중 하나이다. 전쟁의 후반은 소모적 고지전을 지속하며 고착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병력의 희생을 강요하고 능선과 봉우리를 빼앗고 빼앗기며 정전 협정에 도달하는 동안 전쟁 세대들이 느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 크리스타(Christa Wolf)는 '나누어진 하늘'을 쓴 동독 작가와 이름이 같은 동독의 기자 출신 여성이다. 1989년 그는 신입 기자로 동독의 신문사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통일 이후 더이상 기자 생활을 할 수 없었다. 숙련되고 체제 적응이 빠른 몇몇의 기자들만이 동유럽 특파원 등으로 업계에 남았다. 그는 크로이츠 베르크 구청에 개설된 영어 강좌를 나와 같이 듣는 동료였다. 차분하고 말수가 적은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였으며 러시아어를 잘 구사하였다. 통일 이후 독일은 러시아어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떨어졌으며, 학교에서도 러시아어 수업들이 폐강되었다고 한다. 크리스타는 30년이 지난 이제서야 영어를 공부하고 있다. ● 기억이란 참 믿을 것이 못 된다. 내가 본 DMZ의 풍경이란 아름답고 고요하며 슬프고 꿈틀거렸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실체는 이미 없다. 기억하고 싶은 것만 남았을 뿐이다. 그런데 나는 그 설명하기 힘든 느낌을 기억하려 애쓸 뿐이다. 전 세계에 DMZ가 있었던 곳은 독일, 베트남과 한반도 세 곳이다. 이 중 독일은 자유주의 체제로, 베트남은 공산주의 체제로 통일되었다. 많은 동독의 사회 지도층은 직업을 잃었고, 많은 남베트남의 사회 지도층은 목숨을 잃었다. 많은 동독 지역 주민들은 통일 전 동독을 그리워했으며, 많은 남베트남 지역의 주민들이 바다로 탈출했다. ● 전시장을 들어서면 1층 천장에서 대동강 철교와 한강 철교가 서로 만나지 못하며 수평으로 움직이거나 회전하는 것을 본다. 두 다리는 마주칠 듯 엇갈리며 70여 년 분단의 세월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준다. ● 계단을 내려오면 전면에는 건물이 처음 지어졌을 때 있었던 계단의 흔적이 벽과 바닥에 있고 바로 옆에 모래 자루들이 쌓여 있어서 전시장 전체가 마치 벙커처럼 보이게 한다. 실제 크기의 벙커와 두 개의 원형 참호가 자리하고, 계단 밑 공간에는 열리지 않는 문이 있다. 이 열리지 않는 문은 조그만 창과 문틈으로 거리감을 느낄 수 없는 빛의 공간을 볼 수 있다. 문 너머에 밝고, 크기를 알 수 없는 공간이 있음을 느끼게 하지만 문은 닫힌 채 열리지 않는다.

박기진_만감展_문안서울_2019

● 동선을 따라 벙커로 진입하면 관측 창을 통해 영상을 바라볼 수 있다. 영상은 로드무비같이 지속적으로 움직이며 기억의 파편적 모습을 연상시키는 장면들이 빠르게 지나간다. 도시와 바다, 클럽과 화재, 듀공의 모습들이 스치듯이 지나간다. 영상은 도로를 주행하는 장면과 미로처럼 뻗은 지하의 좁은 통로 장면들이 영상의 흐름을 유지한다. 영상에는 현장에서 녹음된 소음과 함께 색소폰으로 부는 'On the Sunny Side of the Street'이 흘러나온다. ● 벙커의 내부로 좀 더 들어가면 작은 DMZ를 볼 수 있다. 한 평이 채 안 되는 공간에 자연광과 같은 색온도의 조명으로 만들어진 작은 정원이다. 이 정원은 두 개의 관측창을 통해 식물과 상대를 교차된 상태로 바라볼 수 있다. 이 순간 관람자는 관찰자가 되고 정원의 식물들이 주인공이 된다. 벙커의 세 번째 관측 창을 마주하고 서면 전시장의 다른 쪽이 보인다. 이때 관람자는 낙엽 위를 걷는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있다. ● 벙커의 출구로 나가면 조명의 방이 있는데 여기에는 두 개의 조명이 매달려 있다. 이 조명들은 이데올로기로 해석될 수도 있고 남북한을 상징하기도 한다. 또한 이 조명등은 서로 다른 관점으로 인식할 수도 있다. 푸른 등과 붉은 등은 각각의 색깔을 드러내다가 둘 다 붉게 변하거나 둘 다 푸르게 변하면서 방을 물들인다. 붉은 등과 푸른 등이 점등되었을 때 공간 밖에서 바라보면 보랏빛이 공간의 내부를 채우지만, 실제로는 공간 내부에 푸른 등과 붉은 등이 존재할 뿐이다. 푸른색과 붉은색이 만나면 보라색이 된다. 푸른빛과 붉은빛이 만나면 보랏빛이 된다. 푸른빛과 붉은빛이 만나면 푸른빛이 된다. 푸른빛과 붉은빛이 만나면 붉은빛이 된다. ● 다시 전시장 중앙으로 오면 두 개의 원형 참호가 있는데, 관객은 참호를 회전시켜 방향을 바꿀 수 있다. 본래 참호는 전면이 적의 방향으로 향해 있고 후면에 아군 방향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있다. 이 전면 벽과 후면 출입구의 위치를 회전시키면 두 개의 참호가 하나의 둘레를 형성하는 통일의 상황이 될 수도 있고, 서로 대치하는 분단의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어느 한쪽이라도 대치 상황을 유지하면 그 소통은 연결되지 않는다. 두 개의 참호 사이에는 ''솔직한 다리'가 놓여 있다. ● 사람들은 각자가 바라보는 대로 상황을 인지한다. 사실이란 그렇게 각각의 형태가 된다. 이것은 마치 지문과 같아서 우리 사회의 상식이란 그 구성원의 수만큼 존재한다. 때로는 너무 멀어서 볼 수 없는 것이 있다. 때로는 너무 가까워서 볼 수 없는 것이 있다. 때로는 나여서 볼 수 없는 것이 있다. 때로는 너여서 볼 수 없는 것이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만감이 교차한다'라는 상황을 아주 가끔 마주한다. 나의 경우에는 DMZ를 본 날 그 감정을 처음 느꼈던 것 같다. 이 느낌을 여러 사람에게 설명해 보았지만, 감정이란 것이 사람마다 순간마다 상황마다 너무 달라서 그것을 공유하기란 쉽지 않았다. 복합적인 감정들이 쏟아졌던 그 순간이 오늘따라 더 그립다. 이 전시는 작가의 시각으로 바라본 분단과 사회를 비무장지대에서 느낀 다중 감정을 토대로 풀어 쓴 이야기다. 전시장의 특성을 최대한 고려해서 설치된 다섯 개의 신작이 가까이 있어서 깊이 돌이켜보지 못한, 너무나도 익숙한 현실에 대해 작지만 진지한 질문을 한다. ■ 박기진

Vol.20191014j | 박기진展 / PARKKIJIN / 朴基辰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