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빛

정보연展 / JUNGBOYEON / 鄭保蓮 / painting   2019_1016 ▶︎ 2019_1022

정보연_35×123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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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일요일_12:00pm~06:30pm

갤러리 그림손 GALLERY GRIMSON 서울 종로구 인사동10길 22(경운동 64-17번지) Tel. +82.(0)2.733.1045 www.grimson.co.kr

색채로 빛나는 생의 자존감 ● 천에 안료와 금분으로 이루어진 정보연의 그림은 서울의 특정한 장소를 그린 풍경이자 수직으로 맞물려 올라간 건물들의 집적으로 이루어진 산동네의 전형적인 장면을 개념적으로 선사한다. 분명 서울의 이태원이나 남산 주변에서 흔하게 접하는 매우 사실적인 풍경이기도 하다. 작가는 그곳의 특정 장면을 사생하고 이를 바탕으로 해서 제작하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 그림은 구체적인 장소에 대한 재현, 기록적인 의미를 지닌 동시대의 풍경이지만 동시에 그 풍경을 빌어 이를 회화적으로 재구성한 것이기도 하다. 다분히 추상적인 풍경이자 기호에 가까운 그림이다. 구체성과 관념성, 사실과 개념이 공존하고 현실과 환영이 같은 강도로 스며들어 있다. ● 산동네 전체가 먼 거리에서 조망되듯이 그려진 것도 있고 그 내부로 근접해서 골목길, 계단, 상가와 그 주변에 흩어진 일상의 여러 기물들 및 나무와 화분 등이 드문드문 박혀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더러 인물이 슬쩍 등장하기도 한다. 시선과 동선의 움직임, 거리와 시간의 차이가 화면에서 물씬 묻어난다. 이는 화가의 유동적인 신체의 흐름이자 동시에 그 이동 경로와 시선의 낙차에 편승해서 함께 몰려다니는 관자의 시선, 몸의 흐름이기도 하다.

정보연_100×300cm
정보연_35×123cm
정보연_210×65cm

화사하고 선명한 색상과 반듯하고 명확한 윤곽선이 '그래픽'하게 자리하고 있고 명암의 강렬한 대비 풍경이 모종의 정서를 동반하면서 성격화되어 있기도 하다. 그런가하면 상당히 복잡한 구도 속에 치밀하게 구성된 화면은 기하학적인 면/색면과 유사한 색채들 간의 상호관계성으로 연접되면서 무척 짜임새 있는 시각적 순환 고리를 만들어놓고 있다. ● 특히 반복해서 등장하는 야경을 그린 경우에 있어서 진한 노란색으로 칠한 창문, 가로등, 달빛 등은 다채로운 색채들의 모자이크에 통일감을 부여하는 한편 보는 이의 시선을 정서적으로 유도하면서 화면 전체를 지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아울러 이 따스하고 정감어린 노란 색채가 부여하는 심정적인 톤도 상당한 편이다. 지상에서 허공까지 몰고 가는 시선이자 바닥부터 서서히 산동네의 정상부근까지 그리고 그 위에 자리한 캄캄함 밤하늘, 저 가늠할 수 없는 깊은 공간까지 힘껏 몰고 가는 시선/색이기도 하다. 이는 산동네 풍경으로 인한 불가피한 구도이자 동시에 모종의 염원, 희망, 기원 등을 간절히 품고 각박한 현실에 발 딛고 사는 사람들의 고단하고 신산한 삶과 운명에 대한 이야기를 퍽이나 감성적으로 전달하면서 이어나가는 서사의 동선이자 공감대를 유도하는 통로/길의 역할을 한다.

정보연_35×123cm
정보연_220×90cm
정보연_200×100cm

정확한 본을 뜨고 주어진 윤곽선 아래 약간의 색차를 만들어내면서 견고하게 칠해지는 이 진채의 채색화는 기존 채색화의 표면, 발림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천에 칠해지는 색채는 종이에 그려지는 것과는 분명 다른 맛이 있다. 작가는 종이를 대신해 천을 바탕 면으로 사용하고 그 피부 위에 분명하게 구획된 면에 맞는 색을 분배하듯 칠했다. 이런 방식은 흡사 단청이나 불화제작의 방법론을 설핏 연상시키는 편이다. 실제로 작가는 오랜 시간 그 일을 병행해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림의 구성은 치밀하고 정교하게 배치되어 진행되며 색채와 색채 또한 일정한 패턴을 유지하면서 증식되어 나간다. ● 그림 속의 색은 현실계를 지시하는 것, 재현하는 것 같지만 실은 작가에 의해 임의적으로 자율적으로 칠해진 색의 세계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평면적인 화면 구성과 납작한 색채의 발림, 선조 중심의 형태파악으로 이루어진 이 그림은 다양한 색채의 병렬적인 효과를 증폭시키며 색채와 색채 간의 관계, 차이, 연결로 인해 이루어지는 효과적인 구성의 맛을 극대화하는 편이다. 특정 풍경을 부단히 연상시켜주는 그림이지만 실은 이 그림은 전적으로 선과 색, 색면으로 짜인 텍스타일과도 같다. 그러한 색상의 짜임이 빚어내는 화음과도 같은 맛이 우선한다는 생각이다. 반듯한 색면으로 나눈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화면이자 실제의 풍경을 부단히 연상시켜주는 구체적인 풍경이 서로 겹쳐진다. ● 지붕과 벽면, 창문으로 이루어진 집의 개념적 도상과 함께 전봇대, 가로등, 교회의 붉은 십자가, 달과 별이 함께 한다. 약간씩 방향을 달리하면서, 또한 서로가 서로에 기대어 조밀하게, 촘촘히 박혀있는 건물들은 다르면서도 엇비슷하고 다른 크기, 다른 높이를 지니면서도 결국 동일한 대지에 박혀 피어오르는 풀이나 나무와도 같은 초상을 지닌 존재들이다. 그러니 이 건물은 인간을 대리하고 삶을 대체하는 도상이기도 하다. 이 개념적 풍경을 가로질러 가면서 낮과 밤이 교차한다. 해와 달, 별과 가로등, 창문을 통해 번져 나오는 불빛 등은 이 풍경에 현실의 시간성을 부여하고 다양한 시간의 차이를 반복하면서 순환하는 일상의 윤회를 거듭 기술한다.

정보연_227×170cm
정보연_70×34.1cm
정보연_70×34.1cm

작가는 그렇게 다양한 색상으로 교직된 표면 아래 산동네와 골목 풍경, 특히 야경과 달빛, 리어카와 그 위에 가득 담긴 물건, 설핏 그림 보는 이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인물 등의 여러 이미지를 빌어 삶의 이야기를 덧씌우고 있다. 색채로 짠 직조물 위에 은밀히 밀어 넣은 이 삶에 대한 흔적의 개입은 기존 텍스타일, 텍스트에 또 다른 문양을 직조하는 형국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보연의 그림은 두 개의 층위가 겹쳐 만든 채색화다. ● 사실 작가가 구사하는 다채로운 색채는 개별 색채의 차이만큼이나 다양한 삶의 사연을 은유하고 그만큼 무수한 생의 서사를 거느린다. 이 색은 저마다의 위치에서 각각의 고유한 영역을 담보하면서 확고히 빛나고 명과 암을 동시에 거느리면서 지상에 견고하게 뿌리박고 똑 바로 서있다. 창공에 빛나는 별처럼 지상에는 산꼭대기까지 들어찬 수직의 작은 집들이, 그곳에 사는 무수한 직립보행의 운명을 지닌 목숨들이 바글거린다. 그들 또한 자신의 집처럼 뿌리를 내리며 자립한다. 바로 그 자존감에 대한 모종의 헌사가 이 그림의 핵심적인 주제라는 생각이다. ■ 박영택

Vol.20191016c | 정보연展 / JUNGBOYEON / 鄭保蓮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