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familiar Coexistence 낯선공존

조은정展 / CHOEUNJOUNG / 趙恩正 / painting   2019_1017 ▶︎ 2019_1030

조은정_별의 방_캔버스에 유채_130×162cm_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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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9_1017_목요일_05:00pm

후원 / 폴록-크라즈너재단

관람시간 / 11:30am~06:30pm

인디프레스_서울 INDIPRESS 서울 종로구 효자로 31(통의동 7-25번지) Tel. 070.7686.1125 www.facebook.com/INDIPRESS

소통불능시대의 소통욕망 ● 최첨단 과학이론과 기술의 도움으로 몰랐던 사실이 검증되고 미개척지가 새로이 발견되는 미증유의 변화를 목도하고 있음에도 현대인이 공유하는 불안은 개인을 넘어 사회적 차원으로 증폭되고 있다. 대량 생산된 정보와 지식은 미지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했지만,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생산되는 정보의 홍수 속에 갈 길을 잃은 개인은 오로지 자신의 판단과 가치관을 근거로 이 혼란한 세상을 헤쳐 나가야만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이제 모두가 공감하는 삶, 가치, 이념이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어떠한 것도 가능한 시대가 되어버린 현대에서 정신적 분열을 경험한 개인의 불안은 곧 집단적 병리현상으로 번져가는 상황에 이르렀다. ● 한 편, 정보와 지식의 활용능력은 사회계층을 재편하는 새로운 요건으로 부상했다. 근대사회에서 재화와 노동력이 그러했듯이, 현대에서는 정보의 장악능력이 사회적 지위와 계급을 정하는 새로운 준거로 작용하고 있다. 이것은 곧 지식과 정보를 확보하고 활용하는 경쟁적인 대열에서 이탈된 낙오자들은 당장 생존권 위협에 내몰리면서 사회적 불안요소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조은정_몽상가_캔버스에 유채_97×162cm_2018

소통수단 역시 이전 세기보다 비약적으로 발달했음에도 현대인에게 드리워진 고독과 소외의 그늘은 역설적이게도 더 짙어진 느낌이다. 뿐만 아니라, 정치적 자유와 인간의 기본권에 대한 인식도 꾸준히 개선되었지만 현대인은 항상 결핍을 느낀다. 분명 동시대의 사람들은 부모세대보다 더 쾌적한 환경에 살면서 더 많은 것을 누려왔다. 그러나 행복지수는 더 낮고 삶의 만족도도 떨어진다.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지금 오히려 불안과 소외, 그리고 소통불능이 만연한 이 패러독스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 일찍이 이러한 사회 병리현상에 주목한 독일의 사회학자 하버마스는 사회구조를 분석하기 위해 ‘생활세계’와 ‘체계’라는 새로운 개념을 정립하면서 생활세계는 사회가 규범적으로 통합된 세계이고, 체계는 사회가 기능적으로 조화된 공간으로 정의했다. 언어적 합의에 의해 움직이는 의사소통적 행동은 생활세계 영역에 존재하고, 권력과 화폐의 매개에 의해 조종되는 도구적 행동은 체계에 속한다. 애초에 통일을 유지하던 두 영역은 현대사회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분열되었고, 각자 자율적인 구조로 발전해갔다. 이런 와중에 체계 영역의 기능주의적 이성이 의사소통적 이성의 요구를 무시하고 생활세계의 합리화를 왜곡시키는 “체계에 의한 생활세계의 식민화”가 발생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개인의 삶은 단지 사적인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공적 영역으로 확장되었고 그 과정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개인의 영역이 체계를 경유하며 공적 영역으로 수렴되려는 기미를 보이자 체계 속에 편입된 인간적인 요소들을 재탈환하려는 과정에서 현대인은 소외와 분열을 경험하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체계에 의한 생활세계의 잠식은 개인의 삶을 불안하게 만들며 사회를 점점 비인간화의 길로 유도하므로 하버마스는 의사소통행위의 회복을 통한 생활세계의 복권이 그 해결책임을 설파한다.

조은정_가능한 세계_캔버스에 유채_112×162cm_2018

포스터 모던 이후 소소한 담론들이 중요해 지면서 예술의 영역도 다양화된 개인의 삶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체계의 폭압에 억눌린 사적 영역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하버마스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체계의 영향력은 줄어들 기미가 없어 보인다. 자체의 내적 동력을 키워온 체계의 힘은 오히려 더 커진 듯하다. 우회적인 접근으로서 예술의 역할이 요청되는 대목이다. 다른 무엇보다 예술행위는 그러한 비인간적 요소들에 대한 감시이자 비판이며, 고발이자 환기의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 조은정의 작업은 체계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으로 보이진 않는다. 작가가 사회의 이러한 구조를 이해하고 있는지도 확실치 않다. 그러나 상식을 비트는 초현실적 그림들은 이 사회를 향한 모종의 메시지를 분명 담고 있다. ● 작업노트를 참조하면 작가는 삶의 고통과 심리적인 불행이 유발한 자존감 상실과 우울증을 사회적 혹은 집단적인 불합리에서 찾기 보다는 지극히 사적인 이유로 한정하고 개인의 감정조절을 통해 극복하려 한다. 불안의 원인을 내부에서 모색한 결과 사고중심을 타인에게 맞추며 감정을 절제하고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작품을 통해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그러므로 작가에게 있어 그리는 행위는 수행과 치유의 과정이자 내적인 수양을 통해 타인과의 행복한 공존을 꿈꾸는 통로로 보인다. ● 필자는 작가가 성장과정에서 어떤 트라우마를 겪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작품에서 드러나는 실마리를 통해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분명한 것은 작가가 타인과의 소통에 그렇게 적극적이 못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심리상태는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주요 소재인 집에서 확인된다. 작품 「별의 방」, 「몽상가」, 「푸른 나무」, 「기억의 순간」에는 작가가 국제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통해 머물렀던 다양한 형태의 집이 등장한다. 전통적 의미에서 집의 상징적 이미지는 자신만의 내밀한 삶과 심리적 안정감이 보장되는 곳이다. 뿐만 아니라,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방어적 공간이기도 하다. 화면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집이 화면을 압도하거나 무게감 있게 묘사된 것은 보호받고 싶은 작가의 현재적 욕망과 함께 불안을 떨치고 일어서고 싶은 작가의 잠재적 희망이 반영된 결과다.

조은정_우연한 추측_캔버스에 유채_97×130cm_2018

물리적 법칙을 비켜간 「별의 방」, 「위대한 항해」, 「현기증」, 「균형의 조건」 그리고 「기억의 순간」등은 현실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이 비현실적 장면들이 마치 현실세계의 그것처럼 보이도록 관람자들을 설득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이 불가능한 설정들의 실재화는 마치 어린아이들이 못 이룬 욕망을 꿈을 통해 이루는 것처럼 불만족스런 현실을 해소시키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하고 있다. ● 「몽상가」와 「숲의 정원」에서는 타인과의 공존과 소통을 모색하려는 작가의 의지가 상징적 소재를 통해 드러난다. 돌로 된 집의 굴뚝에선 연기대신 다양한 색의 끈이 바람에 휘날리고, 돌무더기에는 다양한 색의 돌들이 줄지어 있다. 현실 세계에서는 연출되기 어려운 이러한 풍경들은 타인과의 소통적 한계를 극복하고픈 작가의 자전적 독백이다. 특히, 「몽상가」는 작가의 화면구성능력이 돋보이는데, 예를 들어 자칫하면 무미건조해질 수 있는 지붕위의 풍경을 작가 자신의 분신인 개를 통해 관람자들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왼쪽에서 굴뚝위의 오색 끈으로 향하게 설정함으로써 화면에 변화와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 근작에서는 작가가 집중하고 있는 소재로 배의 등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가능한 세계」, 「우연한 추측」, 「위대한 항해」, 「모든 곳의 중심」, 「흥미로운 발견」 등이 이에 해당하는 작품들로, 함축하고 있는 구체적인 내러티브는 작품마다 다르지만 작가가 의도하는 바는 하나로 수렴된다. 수평을 유지하려는 물의 속성처럼, 배 역시 변화무쌍한 수면의 움직임에도 균형을 유지하도록 만들어진 고안물로써 감정적 절제와 균형을 통해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작가의 기획이 반영된 오브제이다. 이 작품들 중 「우연한 추측」은 작가가 추구하는 평정심 유지 욕망을 세단계로 상징화한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움직임이 멈추면서 수위가 일정하게 유지된 수면은 작가가 가장 선호하는 이미지이다. 물위에 떠 있는 배 역시 평정심 유지를 위한 기제로 작동하고 있음은 이미 살펴 본 바다. 여기에 추가된 소재는 물에 잠긴 배위의 나무로 태양을 향해 다양한 가지들을 뻗지만 좌우의 무게를 유지하며 성장하는 균형의 또 다른 기호에 다름 아니다.

조은정_현기증_캔버스에 유채_93×130cm_2019

여러 작품들에서 평정심 유지를 향한 작가의 욕망이 물, 배 등의 이미지를 통해 드러나고 있지만, 한 편으로는 이들 소재들에서 아직 평정심을 찾지 못한 현실을 반추하기도 한다. 「망각의 샘」, 「깊은 사색」, 「기억의 순간」은 아직 균형을 찾지 못한 작가 자신의 심리적 상태를 역동적인 물의 동세나 수위가 끊임없이 순환되는 폭포로 묘사한다. 끊임없이 변하고 분출하는 감정과 욕망들은 제어되기 어렵기에 순환적 수행을 통해 평정심을 찾으려는 작가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 감정을 절제하고 타인과의 조화와 균형을 유지한다는 것은 그만큼 본인의 희생을 전제로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별의 방」, 「위대한 항해」에서는 소소한 행복에 대한 염원을 감추지 않았으며, 「공존」에서는 빛(낮)과 그림자(밤)의 대비를 통해 나와 타자, 양과 음, 옮음과 그름 등 경계면에서 줄타기하듯 살아야 하는 개인의 운명을, 그와 동시에 양 진영 사이에서 조화롭게 공존하고픈 작가의 희망을 녹여 내고 있다. ● 사상적으로 현대사회는 불확실성의 시대이다. 확고하다고 신봉했던 이념들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비관주의가 나타나는가 하면, 불안과 무질서가 하나의 풍조를 이루면서 초현실주의가 유행하기도 한다. 현대에 다시 초현실이 소환되는 이유는 현실이 불안하고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꿈속에서는 작은 것이 크고 힘없는 것이 강력해지는 가정들이 가능하듯이, 조은정의 화면에는 작가의 염원과 욕망이 투영된 초현실 혹은 비현실의 기호들로 채워져 있다. 그런데 문학적 감수성과 위트 넘치는 이 낯선 사물들의 공존은 보는 이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묘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 그것은 상식을 초월한 비현실의 조합이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전혀 새로운 이야기로 우리의 감성을 자극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지는 이유이다. ■ 안규식

Vol.20191017c | 조은정展 / CHOEUNJOUNG / 趙恩正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