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풀 원더-풀 Won-derful wonder-ful

이준옥展 / LEEJUNOCK / 李俊玉 / painting   2019_1019 ▶︎ 2019_1102 / 월요일 휴관

이준옥_나는 여자이니까_천에 아크릴채색_60.6×45.5cm_2019

초대일시 / 2019_1019_토요일_05:00pm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175 Gallery175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53 2층 Tel. +82.(0)2.720.9282 blog.naver.com/175gallery

당신, 나 그리고 엘리지Elegy ● 돼지머리와 케이크, 케이크에는 일곱 개의 촛불이 켜져 있다. 그림의 제목은 「봄날은 간다」. 이 작업은 신설동 부근 4층 이준옥의 작업실 한켠에 걸려 있었다. 외할아버지 회갑연의 상에 차려진,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개의 조합은 이 전시의 뉘앙스를 함축한 작업으로 보였다. 홈 비디오는 가족과 친지들을 담은 영상이기 때문에 기록의 차원에서 의미를 갖는다. 왜 그는 지금의 친지들의 모습이 아니라 홈 비디오에 담겼던 25년 전의 그들을 기억하며 이 시점에서 그렸던 것일까?

이준옥_봄날은 간다_천에 아크릴채색_60.6×53cm_2019

이준옥는 당시의 회갑연 장면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인물을 먼저 그린 후 어울리는 배경을 찾아 그린다고 했다. 작업실을 방문한 당시에도 아직 배경을 얻지 못한 그림들이 여러 점 있었는데 어떻게 마무리가 될지 모르는 상태였다. 전시제목이기도 한 「원-더풀 원더-풀」은 다소 어두운 청색의 배경에 앞에 두 명의 아이가 노래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배경은 무수한 빛들로 가득하다. 두 아이는 하얀 윤곽선에 의해 배경과 구분되어 있는데 윤곽선은 인물과 배경이 서로 다른 시간에서 나온 것임을 암시한다. 콜라주collage된 것이다. 「나는 여자이니까」와 같이 인물과 배경이 자연스럽게 처리된 그림들도 동일한 방식으로 그려졌다. 인물들은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그들의 표정과 옷을 자세히 볼 수 있도록 크로핑cropping되었다. 그로 인해 노래하는 행위는 타인을 향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인물들은 상황으로부터 고립되어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에 속해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이크를 잡고 주저앉은 「오늘은 울고 싶어라」에서는 좀 더 극적으로 드러난다.

이준옥_원-더풀 원더-풀_천에 아크릴채색_116.8×91cm_2019

우리는 일상에서 감정에 대해 말할 때 종종 '스민다' '스며들다'와 같은 표현을 쓴다. 누군가는 캔버스와 종이로 동서양의 문화적 감성을 비교하는데, 서양이 캔버스 위에 쌓는 것이라면 동양은 종이에 스며드는 감성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이러한 구분이 의미 없어 보이지만, 왠지 그럴듯하다.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는 동서양의 옛 화가의 그림을 비교하면서 동양의 화가들에게는 '마음'이란 요소가 하나 더 있다고 했다. 물과 종이의 속성을 이용하여 그리는 기법은 까다롭고 상당한 집중력과 마음을 필요로 한다. 이준옥은 유화로 두텁게 그렸던 이전 방식을 지양하고, 밑칠이 안 된 천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리는 것이 기억과 감정을 전달하는 데 있어서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 묘사하기보다는 번지듯이 그리는 채색 방식은 인물이 지닌 표정의 미묘한 뉘앙스를 포착하는데 용이하다. 특히 「봄날은 간다」의 연한 청녹색은 여러 그림에서 사용되었는데, 민정기의 그림에서도 본 적 있는 이러한 색감은 아련하면서도 애잔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심수봉의 노래처럼 그의 그림은 엘리지Elegy에 가깝다.

이준옥_눈은 감아요_천에 아크릴채색_60.6×45.5cm_2019
이준옥_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_천에 아크릴채색_60.6×45.5cm_2019

2000년 이후에는 인물화(초상화를 포함하여)를 거의 볼 수 없었다. 인물화를 거의 볼 수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온당한 걸까? 생각해보면 80년대의 민중미술과 최민화의 분홍그림들 이후에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림에서 거의 마주친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에 비해 인물화라는 장르가 곤경에 처한 것은 동시대의 인물화는 더이상 재현의 방식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동시대의 인물화는 인물 그 자체를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제기하는 형식으로 유효할 때에 비로소 설득력을 지니게 된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미카엘 보레만스michael borremans나 마를렌 뒤마Marlene Dumas는 여전히 인물화의 형식이 과거의 것이 아님을 증명해 보인다. 나는 이준옥의 그림이 다른 작가들보다 최민화에 가깝다고 느낀다. 인물이 놓인 상황과 관계성, 주제 의식이 다르지만, 인물을 그리는 방식-표정과 형태에 있어서 어떤 유사한 감각을 발견하게 된다. 이준옥의 그림에는 서구적인 미술이 주는 세련됨의 미학을 의식하지 않는, 정성 들여 촌스러운 옷의 문양과 색을 칠하는 태도에는 어떤 '짠한' 로컬리티locality 정서가 묻어 있다. 그것은 최민화에게도 마찬가지다. ● 이준옥은 대학 때부터 꾸준히 인물화 작업을 해왔다. 비록 단순한 관심사나 회화적 소재에서 그치는 경우가 있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가깝게는 「아버지」 연작이 있고, 동남아 여성을 그린 「자스민」 시리즈, 비정규직 노동자, 박근혜 전 대통령도 그렸다. 그 연장선에 「원-더풀 원더-풀」의 전시가 놓인다. 인물화는 사람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담는 형식이기에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시작하게 된다. 그가 가족과 친지들로서 첫 전시를 꾸린 것은 당연한 수순이란 생각마저 든다. 회화는 보이는 것과의 대화를 통해서 보이는 것 너머의 것을 말하는 습성이 있다. 이번 전시에서 이준옥은 당신에게, 노래하는 모습을 통해서 '노래'를 들려주려 했을 것이다. 그 노래들이 어떻게 들리는지는 당신의 몫이다. 그림 곁에서, 함께하는 함께했던 가까운 이들을 돌아보는 순간이 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 노충현

Vol.20191019b | 이준옥展 / LEEJUNOCK / 李俊玉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