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衣)식(食)주(住)와 주(呪) Food, clothing, shelter and charm; The Reenchantment of Life Necessities

박수환展 / PARKSOOWHAN / 朴秀桓 / painting   2019_1011 ▶︎ 2019_1023 / 월요일 휴관

박수환_붉은아파트_경면주사, 나무_190×60×50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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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수원시_수원문화재단

관람시간 / 11:00am~09:00pm / 월요일 휴관

예술공간 봄 ART SPACE BOM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서문로 76-1 Tel. +82.(0)31.244.4519 www.artspacebom.com

물음의 빌기呪와 시대앓이 ● 박수환은 2018년 부적에 사용되는 경면주사(鏡面朱砂)로 '붉은 아파트'를 선보이며 『의衣 식食 주住 와 주呪』전을 개최했다. 이번전시는 같은 제목으로 열린 두 번째 전시이다. 작가가 처음 '붉은 아파트'를 선보이며 '주呪'라는 화제를 꺼내놓았을 때 이 붉은 덩어리는 현대적 공간을 나타냈고 시대의 상징을 지칭했으며 그 주변을 서성이는 한 세대를 이야기했다. 그러나 작가의 전기와 함께 아파트는 '불가능'과 '간절함'으로 은유되었고 소원(所願)하며 빌어야(呪)하는 것으로 변모했다. 이렇게 시대가 쌓아놓은 거대한 상징은 이후 세대에게 전가되는 무게가 되었으며 짊어지는 것도 벗어던지는 것도 쉬이 결정할 수 없는 난제가 되었다. 때문에 무엇인가 바라고 비는 중인 작가의 화면은 불안과 불편을 함께 머금고 어떤 화면은 아득하고 막막한 감정을 동반했다. ● 박수환은 '반응'하는 작가이다. 그는 자신의 표현과 특정 주제에 대한 탐구를 바탕으로 정기적인 결과물을 내놓기 보다는 자신의 일화를 만들어가며 현재와 살아가는 시대에 반응하는 작가이다. 작가는 앞서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소환하는 자신의 자전적 기억에 관한 진술"과 "사회적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소환하는 유명인사라는 대중적 아이콘에 관한 대중으로서의 진술"로써 반응한 바 있다. 양쪽 모두 예정된 순간을 위해 준비된 주제이기 보다 작가가 시시때때 느끼고 감지한 것에 대한 반응이다. 이때의 작가는 시지각적이며 수행적인 시도들로 반응했다. 『의衣 식食 주住 와 주呪』시리즈 역시 이같은 과정 중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하나의 시리즈를 두 번에 걸쳐 수행하며 박수환의 '빌기呪'는 새로운 지점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이번전시가 '진술'로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그것을 명쾌하게 해결하는 '풀이'가 아닌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를 쥐고 힘겨워하는 '앓이'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박수환_의(衣), 식(食), 주(呪)2_145.5×112.1cm_2018
박수환_의(衣), 식(食), 주(呪) 7_65.1×90.9cm_2018

기능과 역량의 향상, 성취와 달성의 반복. 이 같은 테마는 청년기를 지나는 모든 생명체에게 책무로 다가온다. 책무를 달성한다면 사회적으로 '좋은' 수식어를 동반하는 청년이, 책무를 달성하지 못한다면 자전적으로 의미를 찾아야하는 청년이 될 것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앞선 테마들 앞에 '예술' 혹은 '미술'이라는 단어를 넣어도 문제는 달라지지 않는다. '예술적 기능과 역량의 향상, 미술적 성취와 달성을 반복'하는 이들은 특정 영역 안에서 좋은 수식어를 동반하는 청년이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자전적인 삶의 의미를 찾아야만 할 것이다. 기성의 시대는 이러한 상황의 양립에서 일방적인 정답을 교육했고 유통했으며 일반화했다. 이를 위한 방법은 무엇이든 소비하는 것이었고 수단과 방법은 가리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배앓이'와 '가슴앓이'를 수반하는 고민보다도 쉽고 빠른 선택과 성장이 시대의 미덕이자 미학으로 뿌리를 내렸다. ● 박수환의 「의衣 식食 주住 와 주呪」시리즈는 2019년에 들어 모색의 시기에 접어들었다. 이번 전시가 이루어진 곳은 기성 가옥을 개조해 여전히 곳곳의 구조가 남아있는 공간이다. 여기에 작가의 2019년 작품은 같은 주제를 유지하면서도 평면과 구조물 설치, 걸개그림, 소품 등으로 품종을 확장했다. 시간과 손때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공간과 품종을 확장한 아파트가 만나자 전시공간은 곳곳에 아파트를 품은 '아파트 단지'로 변모했다. 그것도 굳이 구분 한다면 신도시의 신축단지라기보다 이미 한 세대를 지나보낸 것 같은, 시간이 짙게 스민 아파트 단지의 모습이 연출됐다. 거기에 박수환의 아파트는 또렷하지 않다. 기본적으로 한지 위에 물감을 스미게 하여 형상을 이루고 이후 배접하는 것이 작가의 화면이 지닌 물리적 구성이다. 때문에 화판에 아크릴로 이루어지는 아파트의 표현에 비해 자연스레 묘사의 양은 줄어들고 선명도는 비교적 낮아진다. 또한 2차 3차의 면 처리가 어렵기 때문에 작가의 1차적인 표현에서 화면의 분위기가 크게 좌우된다. 덧붙여 작가는 황색염료로 염색된 바탕 위에 붉은색의 경면주사만으로 화면을 이루고 있어 일반적이지만은 않은, 특수한 아파트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이러한 분위기는 건축물을 새것처럼 보이게는 하진 않지만 침착하면서도 많은 이야기를 머금고 있는 곳으로 보이게 하고 마냥 밝진 않지만 다가가기 어렵지 않은, 우리가 보아왔던 소시민의 아파트를 연상케 한다. 이러한 특징은 비슷한 소재를 공유해 온 동시대 미술 중에서도 박수환의 아파트가 구분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수환_붉은아파트의 벽_경면주사, 한지_가변설치_2019
박수환_의(衣), 식(食), 주(呪) 5_181.8.1×181.8cm_2018

작가의 아파트는 또렷하지 않고 그러한 아파트가 모인 단지의 분위기 역시 경쾌하진 않다. 작가 역시 이번전시에 자신이 아파트를 통해 드러냈던 문제의식의 풀이로써 청사진의 답을 내놓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 문제를 두고서 나아갈 수 없는 답답함, 나아갈 수 없는 무지의 영역에서 밀려오는 불안 같은 순환적인 상황들을 전시공간에 펼쳐 놓았다. 이러한 상황들이 전시장의 분위기를 형성하고 작가가 이야기 하고자 했던 세대의 우울로 또다시 환유된다. 이러한 환유의 끝에 맞닥뜨리게 되는 것은 "여전히 알 수 없다"는 나약함과 "어느 곳에 빌어도 해결은 되지 않는다"는 허망함 같은 감정일 것이다. 삶과 예술, 양쪽 모두를 둘러보아도 시대를 돌파하기 위한 답은 멀고 아득하기만 하다. 그저 나아가야 하며 내발로 딛어내야 한다는 유산 같은 말들에 의지해 걸음을 내딛고 있을 뿐이다. 작가가 한 시리즈로 두 번의 전시를 진행하며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소재에 대한 진화된 해석도 거기서 파생될 수 있는 장르적인 권력도 아니다. 오히려 박수환이 발견한 것은 현재 '앓이'중인 자신의 모습과 함께 대류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모색 중인 예술의 자리일 것이다. 아파트는 작가가 빌고 바라왔던 안식과 위로의 공간, 거주공간의 한 유형이다. 개인이 소망해오던 자리이기도 하고 사회적 관점에서 지나고 진입하려 했던 어떤 기점기도 하다. 또한 신분의 현대적 표식이자 계급적 상징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시대의 물신이자 권력화 된 아파트단지의 위력을 우리는 곳곳에서 목격했다. 박수환에게는 예술과 미술 역시 이러한 면면을 지닌 영역으로 여겨진다. 누군가에게는 터무니없고 가늠조차 할 수 없지만 꾸준히 그곳의 주인들이 나타났다. 아파트도 예술도 그러했다. 이같은 파악의 연장에서 박수환에게 예술의 자리를 가늠하는 일은 예술과 미술만을 논하는 것에서 끝을 맺지 않는다. 연속된 「의衣 식食 주住 와 주呪」시리즈에 담겨있는 것은 아파트라는 기호만이 아니다. 오히려 기호를 제거하고 작품을 바라본다면 아파트가 아닌 작가가 다가가 진입하려했던 예술의 영역과 시대의 주름이 부각된다. 인류문명의 미술까지는 아니더라도 한국의 예술, 한국의 청년작가가 체감하는 이시대의 미술계는 상징적인 기점을 가지고 있었으며 사회적 관점에서 지나고 진입해야 할 영역이었던 것이다.

박수환_의(衣)식(食)주(住)와 주(呪)展_예술공간 봄_2019
박수환_의(衣)식(食)주(住)와 주(呪)展_예술공간 봄_2019

풀리지 않을 문제들에 대하여 문제제기를 하는 이들이 있다. 자신의 문제 해결 능력을 과시하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고 고민하며 앓는 모습을 드러내는 이들이 있다. 박수환의 작업이 모색의 시기를 맞았다는 것은 그 역시 이러한 수순에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이러한 시간을 보내는 이유를 모범답안을 찾기 위함이라거나 기성답안의 개정판을 선보이기 위해서라고 유추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문제제기와 함께 기다렸다는 듯이 내미는 답안을 경계해야 할지도 모른다. 박수환은 다음의 시대에 물음을 던지는 자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진실되고 즉각적인 반응을 위해 새로운 예술과 시대를 기다리며 앓는 중이다. 자신의 삶과 건강한 긴장을 주고받는 곳에 예술 또한 위치하기를. 이렇게 박수환이 꺼낸 '주呪'라는 화제는 삶과 예술의 건강한 주행(走行) 위한 새로운 화제로써 '주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영역을 지나며 이렇게 그의 예술은 자리하고 반응하는 중이다. ■ 이주희

Vol.20191019g | 박수환展 / PARKSOOWHAN / 朴秀桓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