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ERSIONS

박소라展 / PARKSORA / 朴素羅 / painting   2019_1025 ▶︎ 2019_1121

박소라_One of The Versions-SOFT CAOS-B1A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7×162.2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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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주최,주관 / ROAD

래미안갤러리 Raemian Gallery 서울 송파구 충민로 17

부유하는 이미지의 사용자들 ● 이미지가 부유하며 떠도는 순환의 고리는 이미 갖춰졌다. 오늘날의 이미지가 처한 국면에서 예술과 이를 수용하는 전시는 몇 가지 면에서 과거와는 전혀 다른 흥미로운 지점을 갖게 되었다. 가장 두드러지는 지점은 바로 작가가 더 이상 자기 작품의 유일한 창작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현대미술 작가는 여기저기서 이미지를 가져와 차용하고 가공/재생산한다. 즉 작가는 기존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면에서 엄밀하게 따지면 작가이전의 익명의 원작자가 따로 있는 샘이다. 이런 작품은 주로 전시라는 형식을 통해 대중에게 공개되는데, 이때 작가는 원작자로서의 새로운 위상을 양도 받는다. 이렇게 부여된 위상은 일반적인 경우의 수준보다 훨씬 더 강력한 것이어서 최초 원작자의 권위를 심하게 위협하거나 훼손하기도 한다. 허나 그 순간에도 전시라는 형식의 애꿎은 변덕은 잠잠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때도 역시 이질적인 장면을 목격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사진 촬영의 허용이다. 겨우 얻어낸 작가의 저작권이 관객에 의해 침해되는 상황을 용인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엄격하게 금지된 행위가 비교적 최근에 들어서는 가장 흔한 장면이 되었다. 관람객은 전시장에서 기념촬영을 하거나 인상 깊은 작품을 개인의 사진첩에 보관할 수 있다. 어찌 보면 기관(전시공간)이 관람자가 지닌 모종의 욕망에 지지를 보내는 듯 보인다. 허나 촬영이 허용된 보다 직접적인 원인은 아마도 이미지의 보급과 확산에 있을 게다. 각 개인에 의해 기록된 작품의 사진과 전시장의 풍경은 온라인 또는 SNS 상에 노출되고 누구나 볼 수 있는 이미지로 전환된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흥미를 자극하며 또 다른 복제/재생산의 가능성을 증폭시킨다. 필시 작품과 전시에 부여된 의미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해석적 확장을 유발시키는 경우의 수가 증가할 것이다. 이로써 현대인은 모두 이미지의 적극적인 생산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박소라_One of The Versions-Dear Amazon 0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116.8cm_2019
박소라_One of The Versions-Dear Amazon 0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116.8cm_2019
박소라_One of The Versions-Immortality in the Cloud 0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116.8cm_2019
박소라_One of The Versions-Lie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116.8cm_2019
박소라_One of The Versions-Reprospective-2FB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116.8cm_2019
박소라_One of The Versions-SOFT CAOS-02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7×162.2cm_2019
박소라_One of The Versions-The Strange Order of Things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116.8cm_2019
박소라_One of The Versions-Unnecessary Exhibition in Life 01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7×116.8cm_2019

박소라 작가의 작품은 이러한 일련의 현상들을 반영한다. 작가는 전시장을 방문하여 그 풍경을 사진으로 남기고 그것을 다시 회화로 재현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전시장에서 받은 느낌의 여운을 담아내기도 하고, 색감을 변형하여 새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작가가 기존의 창작 이미지에 개입하는 방식인 한편 제2의 창작자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는 수단이기도 하다. 특히 작가는 관람자의 동선을 일종의 흔적으로서 굳이 바닥에 새겨두는 번거로움을 자처한다. 분명 작가의 확고한 목적의식이 있기 때문이리라. 이는 불특정 다수의 익명의 관람자들이 각자의 삶의 일부로 삽입해 낸 경험들에 대한 표상이다. 방문자들이 누비고간 흔적을 남긴 것이다. 동일한 현장에서의 경험일 지라도 그것이 각자에게 똑같이 인지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개인의 성향, 가치관, 지식수준, 정보량, 감정상태 등의 차이들은 확고한 변별력을 갖출 것이 뻔하다. 바로 이점이 개인에 의한 창조적 반응을 발생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전시현장은 이들에 의해 부유하기에 적합한 이미지의 형식으로 변환되고 새로운 순환구조를 파생시킨다. 이 다이나믹한 현장에 박소라 작가는 자신의 작업물을 끼워 놓음으로써 순환의 가속화와 다변화를 조장한다. 그렇게 작가는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관람자와 창작자의 역할을 두루 수행해 낸다. 작가는 그에게 주어진 역할을 벗어나 관람자의 영역을 넘보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반대로 관람자에게도 작가의 영역으로 넘어오기를 권한다. 박소라 작가는 작품을 통해 그들과 잠재적 창작자로서 동등하게 마주한다. ■ 홍용상

Vol.20191025e | 박소라展 / PARKSORA / 朴素羅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