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독풍경 / 多讀風景 / Landscape of Extensive Reading

봄로야展 / Bom, Roya / mixed media   2019_1030 ▶︎ 2019_1112

봄로야_다독풍경_종이에 혼합재료_32×22cm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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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로야 홈페이지_bomroya.co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서울문화재단_한국문화예술위원회_서울특별시 협찬 / 디앤오

관람시간 / 01:00pm~08:00pm

스페이스 XX SPACE XX 서울 영등포구 도림로128가길 1 B1 www.facebook.com/spacexx

산책의 나직한 몸짓 ● 이제 막 글자를 익힌, 나의 일상에는 없던 단어들을 문자로 마주하기 시작했던 시기를 생각해 본다. 여전히 밤마다 달에 쫓기던 시기의 이야기다. 집에 있던 책이나 신문은 물론이고 길을 가며 보이는 간판이나 전단지, 혹은 과자며 세제며의 포장지 따위에 적힌 글자들을 모조리 읽어 보던 시기, 새로 배운 말들을 온갖 문장에 끼워 써 보던 시기의 이야기다. 글자보다 먼저 익힌 단어들이 있었지만 이 시기에 새로 알게 된 단어들 ― 정확히는 소리들 ― 은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눈치껏 짐작할 수 있는 것들도 있었지만 나와는 동떨어진 세계에서만 쓰이므로 쉽사리 알아낼 수 없는 말들이 많았다. 신문 사회면쯤에서 배웠을 "규탄"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살았다는데, 더 이상 그 말을 쓰지 않게 된 것은 뒤늦게 뜻을 알게 된 시기부터였을 것이다. 어느 문장에서 읽고는 나름대로 짐작했지만 다른 문장에서 볼 일은 없었으므로 한참이 지나도록 그것이 틀렸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말도 있다. ● 금세 끝나지는 않았다. 버스를 타고 지나는 길에서 멀리 보이던 공장지대의 간판에 적힌 기아뿌리라는 네 글자가 톱니gear와 도르래pulley를 뜻한다는 걸 알기까지엔 수년이 걸렸다. 달리 물을 곳도 없었으므로 그저 매일 반복해서 읽어 볼 뿐이었다. 이 반복을, 답 없는 공간에 떨어져서는 그저 붓을 들 수밖에 없었던 이의 것과 비교해도 좋을까. 간신했지만 가질 수 있었던 제 자리를 잃고서, 멀지 않지만 전혀 다른 곳으로 가야 했던 그는 자신의 세계가 무너지는 틈새로 비집고 들어오는 풍경들에 도무지 익숙해지지 못했다. 그저 그것을 보고 그리는 일에 겨우 익숙해질 수 있었을 뿐이다. 나의 단어 목록에 오랜 시간 그저 낯설고 이상하며 쓰이지 않는 말로서 뜻 없이 올라 있던 기아와 뿌리는 그곳에서 일하고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가장 일상적인 어휘였을 것이다. 우연히 한 번 보고는 잊은 것이 아니라 매일 마주치며 되뇔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행운이다. 너머의 세계를 놓지 않는 법을 배울 수 있었던 운 좋은 기회였다. 도태된 땅을 바라보며 반복을 드로잉한다고 했던 그에게는 어떤 행운이 있었을까.1)

봄로야_다독풍경_종이에 혼합재료_22×32cm_2019
봄로야_물 같은 풀_종이에 혼합재료_24.8×24.8cm_2019

도시의 주변부에서 반복되는 개발과 철거와 재개발, 그로 인하여 언제나 어딘가에는 있게 되는 짓는 중이거나 허무는 중인 건물들, 밀려 나와 그곳에 이른 자기 자신과 그만큼 더 밀려 나간 누군가. 쇠락의 연쇄에 실려서는 끊임없이 보고 그리고 중얼거리고 꿈꾸어야 했던 작가는 공터에서 자라는 계란꽃과 표정 없는 눈으로 자신을 맞는 도로방호벽을 만났고, 또한 그런 풍경 앞에서 함께 흥얼거리거나 중얼거릴 친구들을 만났다. 지금껏 제 것으로 삼아온 것과는 다른 공간, 다른 공기, 다른 삶 속에 던져져 커다래진 불편과 피로, 혹은 두려움을 부러 반복해 불러들임으로써 익숙해지고 담담해질 수 있었다. 처지고 가라앉은 변두리라고는 해도 애초에 누군가가 살아 온 곳, 앞으로도 누군가가 살아갈 곳이다. 그에게 또한 삶은 가능할 것이다. 다만 끝까지 문제로 남을 것은, 둘레를 따라 그어진 선을 타고 넘을 수 있는가 하는 것, 그것 하나일 테다. ● 그리하여 덩굴을 만난다. 변두리의 변두리, 터를 닦고 건물을 세울 것도 없이 비에 무너지지 않게 풀뿌리로 잡아만 두면 되었던 곳에 식재된 생명들이다. 큰 쓸모는 없지만 내버려 두어도 재주껏 살아 남는다는 이유로 그곳에 이른 그들은, 큰 이유는 없지만 자랄 수 있으므로 자라고 넘칠 수 있으므로 넘친다. 인간이 세운 건물이며 소음방지벽이며를, 의도 없이 뒤덮는다. 이따금 마른 건물을 꾸미기 위해 심겨진 것들도 언제나 인간의 뜻을 넘어 뒤덮는다. 목적지 없이 타고 넘어 그저 나아간다. 뿌리 박힌 곳으로부터 도망치려 들지 않지만 구애받지 않으므로 이미 자유롭다. 그리하여 그는 스스로 덩굴이 되어본다. 다만 푸르렀거나 제가 덮어버린 무언가의 모습을 하고 있었거나 혹은 다른 무언가의 형상을 하고 있었던 이파리와 줄기들이, 그렇게 뻗어 나가다 어느 날 이내 걷혀 버렸던 덩굴이 되어본다. 하릴없이 가닿은 곳에서 도리 없이 보이는 것들을 견디기 위해 복기해야 했고 나아가기 위해 동행을 청해야 했던 그는 오늘 기대도 경계도 없이 걷는다. 기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함께하기 위하여 친구들을 초대한다. ● 전보다 조금 더 즉물적이거나 조금 더 산만하다 해도, 혹은 조금 더 장난스럽다 해도 이상할 일은 아니다. 마음이 겨워 힘주어 그렸기에 오히려 알아볼 수 없게 된 사물들, 꾸밈없이 촬영하고 거름 없이 늘어둔 풍경들, 긴장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마주쳤기에 낯선 이에게 건네는 인사들. 점들이 보이면 으레 잇고 종이가 보이면 마냥 접듯이 길이 있으면 그저 소요하는 사람이 있다. 골목 하나 지났더니 펼쳐진 낯선 풍경 한 귀퉁이에 앉은 무언가를 한참 바라보다 돌아서 놓고는 소상히 묘사하지도 다시 찾아내지도 못하는 사람이 있다. 그럼에도 끝없이 그에 대해 말하는 사람, 우연히 또 마주쳐서는 반가워하는 사람이 있다. 여기 모아 둔 것은 그를 스친 풍경들이자 그가 걸은 궤적들, 그의 폐포를 거쳐 핏속에 녹았다가 다시 폐포를 훑고 나온 먼 곳의 공기들이다. ● 그 사이의 몇 개의 공터에는 새 건물이 자랐다. 그 곁으로 곧 덩굴들이 자라 견고한 콘트리트벽을 위협할 것이다. 불안이 조금은 가라앉았고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지만, 걷고 싶은 강가와 그곳을 노니는 오리들 혹은 행인들을 알게 되었다지만, 이것은 성장의 서사가 아니다. 답 없는 공간을 드디어 탈출한 이야기도, 읽기에 능해져 어떤 것이든 편히 살필 수 있게 된 이야기도 아니다. 문자를 익힌다는 것이 무언가를 알게 되는 것이기보다는 모르는 단어들을 끝없이 마주하게 되는 여정의 시작이었던 것처럼, 종종 책 한 권을 덮으며 그 책을 이해하는 것을 다음 책을 덮은 후로 미루곤 했던 것처럼, 모던한 플라뇌르flâneur가 되지 못한 채 웃자란 풀잎들 사이를 걸으며 한쪽의 강물과 맞은편의 빌딩을 넘보는 사람의 이야기다.

봄로야_근사한 악몽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22.5×30cm_2019
봄로야_물 같은 풀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26×35cm_2019

여전히 무르다. 우울 혹은 불안 같은 말들을 오늘도 되새긴다. 담을 넘어 자라기로, 완성 없이 뻗기로 하였지만 덩굴처럼 거침없지 못하므로 다만 덩굴인 체하며 조심조심 내딛는다. 단독자가 되지 못해 얻은 다독이라는 말을 이리저리 굴려보지만 앞구르기는 이번에도 해내지 못하였다. 하지만 있다, 막힘 없이 나아갈 때는 필요치 않았으므로 알지 못하였던 몸짓들이 ― 장애물 앞에서 몸을 틀거나 뒷걸음질 치거나 숨을 고를 때에야, 위협 앞에서 숨을 곳을 찾고 몸을 웅크리고 호흡을 참을 때에야 비로소 발견하게 되는 제 자신의 움직임과 감각들이 있다. 오래 걸었지만 종종 멈추었으므로 남은 것은 언제나 그런 몸짓들이 묻어 있는 지근至近한 장면들이다. 가로막혔기에 혹은 치고들었기에 고르지 못한 이 장면들이 하나의 풍경이 될 때까지 몇 번을 더 걸어 나설 것이다. 여전히 고르지는 못할 풍경을 향해, 함께.

* 각주 1) 이 단락에 쓰인 말들 중 "답없는 공간", "도태된 땅", "반복을 드로잉한다"는 봄로야의 지난 개인전 《답 없는 공간: 근사한 악몽》(서울: 탈영역 우정국, 2016.10.13-27.)에서 따 온 것이다. 이후의 여러 말들도 그렇다.

봄로야_No Line_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_42×31.5cm_2019
봄로야_좋은 산책 2_단채널 영상, 4K, 사운드_00:06:50_2019

This project starts from a physical practice of walking on the boundary between a city and its suburb, which is normally for administrative convenience. Some words, which existed during the project, played certain roles, but were erased after completion. A change of the landscape in which the center and its periphery are distinguished along dots on a map roughly corresponds to recalling these words. I focus on the meaningfulness of the walk. When I walk, I look at the structure of place, and at the same time, I touch the revisiting of a private narrative which a grand city or a grand narrative forgets. I say in poetic words a story of an ordinary life made from a happening between 'accident' and 'incident,' which I encounter when walking. The walk that keeps visiting unfamiliarity is done sometimes by myself, and sometimes along with conversations and experiences with a companion. Its results, including drawings, photographs, writings, and performance, are gestures that defer ambiguous depression, anxiety, obsession, and fear toward life and remain incomplete. These gestures become a method to feel the moment of completion, and thus, resolves tensions between completion and incompletion of the everyday, between instability and stability, and between fear and ease. The everydayness of my work is attached to the viewer's mind in a form of various feelings depending on the viewer's choices, and completed as each own's narrational landscape. ● Plastic barricades, noise protection walls, and the Kudzu vine become a boundary for safety and a symbol of defense and protection, to meet human needs. Between 2016 and 2018, I worked on plastic barricades and noise protection walls, and this time, I work on the vine, which reveals an ironic status of a city. The ecosystem of the vine intervenes the construction of a city, and also, invades and demolishes it. People plant Kudzu vine in order to develop mountain areas for another usage, or make it greener for prevention of landslide, but the vines soon became trouble. With a reproductive power, they cover and invade surrounding plants, things, and buildings, and blur their boundaries. The existence of their skin is decided by the outer force. They are visible, but should not be seen. At the same time, they forcefully make themselves to be seen. I apply this ambivalent aspect of the vine to my own body and wander the boundaries of a city with an attitude of disguise, protection, and defense. This walking practice becomes a gesture to observe urban phenomena and to ponder upon the survival and relations of each other. ■ 안팎

Vol.20191030a | 봄로야展 / Bom, Roya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