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仁川

오석근展 / OHSUKKUHN / 吳碩根 / photography.installation   2019_1030 ▶︎ 2019_1129

오석근_인천(仁川) 21_디지털 C 프린트_가변크기_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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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석근 홈페이지_www.ohsukkuhn.org

초대일시 / 2019_1116_토요일_05:00pm

후원 / 인천광역시_인천문화재단 주최 / 복숭아꽃

관람시간 / 11:00am~08:00pm

1부 / 2019_1030 ▶︎ 2019_1112 인천도시역사관 2019 『도시를 보는 10명의 작가』 전의 일환으로 개최됩니다.

인천도시역사관 다목적실 소암홀 Incheon Urban History Museum, Multipurpose Room 인천 연수구 송도동 24-7번지 2층

2부 / 2019_1115 ▶︎ 2019_1129 '2019 인천형예술인지원사업' 으로 선정되어 개최합니다.

인천문화양조장 Incheon Culture Brewery 인천 동구 창영동 7번지 (스페이스빔)

재현과 흔적 사이에서 길 찾기: 오석근의 기억작업 ● 매번 새로운 도시에 도착할 때마다 여행자는 그가 더 이상 가질 수 없었던 자신의 과거를 다시 발견하게 된다. 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 (1972) ● 수도권의 끝자락에 자리 잡은 항구도시 인천은 작가 오석근에게 삶과 작업의 터전이다. 원숙한 기량으로 가히 전방위적인 활동을 펼치는 예술가에게 고향 인천의 혼잡한 살풍경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폐선과 폐가, 그리고 각종 산업 폐기물이 이미 풍경의 일부가 된 그늘진 도시의 모퉁이에서 작가는 나뭇결처럼 미세한 시간의 층적을 탐사한다. 그것은 도시의 실루엣을 그저 디자인의 소재로 보는 외부적 시각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생활인의 내부적 시각도 아니다. 초현실주의도, 사실주의도, 물론 극사실주의는 더더욱 아니다. 오석근의 카메라에 포착된 인천은 무미건조하고 범속한 일상을 보여주지만 한 컷 한 컷 이어지며 깊게 패인 흔적을 마주칠 때마다 쓰라림을 전해준다. 인천은 늘 새로운 영감의 원천인 동시에 떨칠 수 없는 과거의 망령이 출몰하는 장지(葬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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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서 썩고 있는 자동차 타이어, 폐수 위를 둥둥 떠다니는 기름과 기계 부스러기들, 부둣가에 방치된 그물과 석재, 그리고 임의적으로 증축된 집들은 고유의 생명력이 제거된 채 무한대로 '리사이클링'되는 산업사회의 알레고리임이 분명하지만 동시에 삶과 죽음, 현재와 과거가 내밀하게 교차하는 운명의 알레고리, 달리 말해 작가 개인의 역사적 초상이기도하다. 인천은 한 예술가를 붙들고 그로 하여금 자신의 운명을 직시하라고 요구한다. 오석근의 예술 활동은 바로 이 요구에 응답하고자 지배적인 예술적, 정치적, 역사적 재현의 체계와 외면하고 싶은 흔적 사이에서 기억의 올을 꿰어가는 작업이라 할 수 있겠다. ● 오석근의 대표작으로 잘 알려진 「교과서(철수와 영희)」는 기성의 재현 질서를 밀어제치고 불미스런 과거로 우리를 초대한다. 한국의 기성세대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모티프의 생뚱맞은 재연은 익숙함이 아니라 오히려 생경함을 창출한다. 장롱 속에, 담벼락 앞에, 지붕 위에, 건물 옥상에, 다리 밑에, 야산에, 아파트 구석의 음지에, 심지어 시위 현장이나 바다 수면에, 기중기에 거꾸로 매달린 채로 느닷없이 출현하는 철수와 영희는 오염된 환경에서 뛰어놀고, 동네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고, 도색잡지를 훔쳐보며, 으슥한 곳에서 서로 금지된 장난을 즐긴다. 함께 서서 소변도 본다. 의상과 소품, 포즈도 제멋대로이다. 교과서의 정형을 벗어나 탈선을 일삼는 철수와 영희의 모습, 익살스러우면서도 우울하며 - 시쳇말로 '웃픈' -, 때로는 섬뜩하기까지 한 그들의 모습은 우리 각자의 과거를 환기시킨다. 애써 외면하려 했지만 끊임없이 우리를 위협해온 날선 과거가 생채기를 들쑤신다. 우리의 민낯을 감추는 도구였던 철수와 영희의 가면이 어느덧 우리의 감출 수 없는 민낯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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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적으로 볼 때, 창조적 모방이란 현실을 타개하고자하는 열망에서 비롯된다. 우리의 비루한 현실은 문학에서 말하는 이른바 '미메시스(mimesis)'를 통해 그럴듯한 이야기로 재현됨으로써 비로소 우리와 격리된다. 추악하고 비참한 현실도 이야기로 엮이고 나면 그런대로 받아들일만하고. 심지어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그런데 사진은 문학이 아니다. 문학보다 훨씬 촉각적임에도 여전히 이야기를 전해주는 영화와도 다르다. 사진도 실재를 모방/재현하기는 하지만 좀처럼 이야기를 풀어놓지 않는다. 사진은 침묵으로 일관한다. 빙그레 웃기만 한다. 사진 속에서 시간은 정지되어있다. 정지된 시간은 이야기를 중단시켜버리는 대가로 이야기가 외면해온 피사체의 자국을 슬며시 드러낸다. 「교과서(철수와 영희)」도 비록 연극적이기는 하지만 무언가의 흔적을 포착하고 있다. 그것은 사회적 가면 아래 꼭꼭 감추어두었던 우리자신의 상처 난 얼굴이다. ● 현실이란 늘 현실 이상이다. 오석근이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진행한 프로젝트 「해(海)에게서 소년(少年)에게」는 그 제목을 최남선의 시에서 따온 것이건만 개인 사진첩을 빌려온 듯 소박하기 그지없다. 오히려 너무 일상적이기에 낯설게 느껴지는 사진들이다. 우리자신의 별 볼일 없고 회한이 서린 과거가 우리를 버젓이 응시한다. 나무 사이로 카메라의 초점이 흐릿하게 맺혀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한 청소년 피사체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오석근의 작품을 대하는 우리는 진한 상실감을 느낀다. 그런데 우리가 상실한 것은 과거 그 자체가 아니다. 과거와 이별하는 것은 그 자체로는 상실이 아니다. 상실은 이미 과거에 이루어졌다. 이미 과거에 우리는 억압당하고 상처 입었으며 아쉬워했다. 오석근의 작품은 매번 새로이 그가 결코 가질 수 없었던 자신의 과거를 재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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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상실되기는커녕 여전히 현재를 옥죄고 있다.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다양한 증상으로 '반복강박'되는 과거를 끊어내어야 정상적인 의식을 유지할 수 있다. 뼈아픈 과거와 결별하려는 노력이 바로 애도작업(Trauerarbeit)인데, 이를 통해 과거는 더 이상 현재를 방해하지 않고 비로소 나의 정체성의 일부로 온전히 편입될 수 있다. 이처럼 과거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과거와 현재의 전향적인 관계를 모색하는 애도작업이야말로 모든 기억작업(Erinnerungsarbeit)의 원형이다. 그런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반복강박되는 과거의 실체를 계속 캐묻는 오석근의 기억작업은 스스로 기꺼이 증상이 되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과거의 지울 수 없는 고통과 이루어지지 못했던 꿈들을 현재의 수면 위로 끌어올리려한다. 이것들은 애도의 대상이기는커녕 여전히 씨름해야할 현재적 사안이다. 프로이트는 트라우마의 증상적 발현을 '행동화(Agieren, acting-out)'라 명명한 바 있는데, 오석근의 작품들은 무의식적인 행동화와 예술적 재현 사이를 넘나들고 있다. 물론 그것은 증상만이 아니라 증상에 대한 처방이며, 억압된 기억인 동시에 그 억압에 대한 기억이다. ● 오석근의 기억작업은 자신에 대해 직접 말하지는 않지만, 증상의 형태로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고백하고 되묻는다. 그러면서 그의 작업은 자신을 둘러싼 더 넓은 세계로 향한다. 예술적 재현이 어느덧 역사적 재현과 만나게 된다. 오석근은 시각 이미지의 잠재력을 의식하고 십분 활용하는 작가이다. 시각 이미지는 오랜 인류의 경험이 농축된 기억의 저장소이자 매체이다. 시각 이미지는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서술(historiography) – 역사이론가 헤이든 화이트(Hayden White)의 표현을 빌면 역사촬영(historiophoty) - 의 자격을 지닌다. 그것은 특정한 역사적 해석 방식을 관철시키고 역사적 주체가 사회적, 정치적 현실과 맺는 관계를 심미적으로 재구성한다. 오석근이 펼쳐내는 이른바 '시각사(visual history)'는 구체적이면서도 보편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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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성과 속의 구분을 허물려는 듯, 서양 중세교회의 제단화에 주로 사용되던 세 폭 제단화(triptych) 양식을 차용하여, 가운데는 주름과 생채기가 가득한 성매매 여성의 신체를, 양 옆에는 영세하고 퇴락한 옛 건물의 볼품없는 모습이 서로 공명을 이루도록 배치한 작품 「축(Chug)」, 일제강점기 유곽으로부터 시작되어 현재는 퇴락 일로에 들어선 대구의 성매매 집결지 '자갈마당'을 상세하게 탐사한 공동 사진집 「자갈마당」, 3 · 15 부정선거와 4 · 19혁명 직전과 직후, 5 · 16 군사쿠데타 직전과 직후, 광주 5 · 18 직전과 직후를 배경으로 국가가 기록한 한국현대사의 상징적인 장면들을 되짚어보는 「기억투쟁」, 대한민국 국군의 호전적인 몸동작을 패러디한 퍼포먼스 영상 「명령레지스터」 및 「명령펄스」, 보도연맹 사건을 배경으로 형장의 사형수들과 집행자들, 주검을 수습하며 울부짖는 어머니 등 고난의 이미지를 지하감옥처럼 연출한 공간해방에서의 개인전 『기억투쟁』, 그리고 월미도 미군민간인폭격사건, 강화도 양민학살 등 인천 지역에서 자행된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구술을 채록하고 사진자료를 탐색한 공동기획 「국가의 환영(Halluci_Nation)」 등은 모두 시각 이미지를 사실 전달의 매체로만이 아니라 역사 · 정치적인 발언이자 해석으로 자리매김한다. 이 작품들은 시간적, 공간적, 정치적 거리를 한순간에 무화시키고 타자의 아픔이 나 자신의 아픔과 그리 멀지 않음을 직감하게 만든다. 우리는 우리자신의 주검을 애처롭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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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 이미지로 서술된 역사는 문자를 통한 재현과는 달리 사실들 간의 인과관계보다는 경험의 심연을 드러내준다. 시간이 흘러 잊힌 경험이 아니라 아예 경험의 첫 순간부터 제대로 경험될 수 없어 애초에 기억되기를 마다했던 극심한 고통과 공포, 절망, 혹은 죄책감이나 수치심, 욕정과 외면의 틈새에 역사적 진실이 놓여있다. 우리 모두는 어쩌면 온전한 경험과 기억으로부터 원천적으로 배제된 존재들이라는 점에서 하나이다. ● 오석근의 기억작업은 늘 무겁지만은 않다. 「한국의 풍습」은 그의 작품집 중에서 가장 익살스럽다. 일종의 패러디로서 도큐멘테이션도 포함하고 있는 이 작품집은 소위 민족사와 민족문화라는 허상을 유쾌하게 조롱한다. 그렇지만 여기서도 작가 고유의 문제의식은 유지되고 있다. 지배적인 재현의 질서가 와해되면서 역사의 공백이 가시화되는 것이다. 작가는 그 공백의 자리에 공간과 사물을 배치한다. 그것은 재현을 벗어나기 위한 재현의 전략이다. 작가가 인천과 서울을 오가며 눈앞에 펼쳐진 공간과 사물들을 기록한 「경인 무브방」은 작가의 여느 작품들보다 따뜻한 시선으로 범속한 일상 속에서의 온전한 경험과 기억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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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석근의 기억작업은 늘 공간을 염두에 둔다. 공간이 중요한 것은 그곳에 기억이 담겨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로 기억의 부재를 일깨우기 때문이다. 어디에도 나의 과거는 남아있지 않다. 흔적은 상실 그 자체에 내재해있기에 마치 세밀한 동판처럼 오로지 재현을 통해서만 윤곽을 드러낸다. 2012년 서울시 종로구 연지동의 버려진 한옥에서 진행한 개인전 『두 개의 집』은 「해(海)에게서 소년(少年)에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마련된 청(소)년 사진들을 여기저기 설치해놓았는데, 주로 교복이나 체육복을 입은 사진 속의 청(소)년들은 악동에 가까운 철수와 영희에 비해 제법 의젓해 보이지만 어딘가 화석 같아 보이며, 더구나 텅 빈 집 안에 멈추어서있기에 적막함을 배가시킨다. 한옥 두 채가 벽을 허물고 합쳐진 이 집은 그 구조 자체가 기억이 머물기에는 너무 어정쩡하다.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은 모서리가 타버린 상태이고 교복 입은 학생의 빛바랜 초상사진은 마치 영정사진처럼 보인다. 마당에는 유리판이 비스듬히 세워져 있는데, 그 위에 정자로 써놓은 "내게는 아무것 두려움 없어"라는 문구는 최남선 시에서 빌려온 것으로, 그 표면적 결기에도 불구하고 공허한 독백내지는 반어법처럼 들린다. 이것이야말로 트라우마의 증상적 발현, 달리 말해 과거를 암시하는 흔적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방 한구석의 깨진 거울 위에 쓰인 "어차피 기억하지도 못할 거면서"라는 푸념어린 낙서는 작가의 의도를 좀 더 분명히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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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전 『두 개의 집』은 「해(海)에게서 소년(少年)에게」 프로젝트와 더불어 작가가 2011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재와 먼지」 프로젝트를 결합시켰다. 후자는 인천 중구에 산재하는 국적불명의 건축물들을 촬영하여 기억의 부재를 좀 더 실체화했다. 건물들은 제멋대로 증축되고 합체되고 쪼개어져있다. 기억이 머물지 못하고 임시적인 삶만을 허용하는 이 건축물들은 실로 죽음의 알레고리라고 할 수 있다. 제목이 암시하는 대로 재와 먼지야말로 이 공간의 본질이다. 『두 개의 집』의 주방에는 타일바닥에 사진을 태운 재가 수북이 쌓여있고 그 위에 생뚱맞게 유리 항아리가 놓여있는데, 그 옆에는 굵은 프레임의 여배우 초상사진이 보인다. 예술가가 추구하는 심미적 재현이란 이처럼 다시는 주어 담을 수 없는 인생의 잿가루를 방기한 채 생뚱맞게 반짝거리는 저 유리 항아리와 같은 것이 아닐까. ● 오석근의 사진은 결국 죽음의 흔적을 재현함으로써 재현을 넘어선다. 말끔한 재현에 의해 도착(倒錯)된 현실이 사진 속의 흔적이 유발하는 환기력에 의해 전복되는 것이다. 감출 수 없는 흔적이 재현의 거짓을 폭로한다. 그럼으로써 새로운 역사적 전망이 열린다. 오석근의 사진이 포착하는 시간은 철학자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가 "여성적 시간(le temps des femmes)"의 특징으로 거론한 이른바 미래완료(future perfect)의 시간에 가깝다. 임신과 출산으로 대변되는 반복성과 영원성의 시간은 아직도 완료되지 않은 오래 전의 미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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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석근은 아직도 인천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는 이제 그곳에서 미래를 기억하고자한다. "마계 인천"에서 발원한 회전예술, 예술가와 생활인의 경계가 사라지고 일상의 모든 것이 예술이 되는 코스모스 다방(Coda), 비인간화된 도시의 젊은 예술인들이 영상언어의 근원적인 힘을 바탕으로 자생적으로 만들어가는 인천국제비엔나소시지영화제, 한국사회의 위선적인 가치에 도전하는 불온한 전시 및 레이브 파티를 제공하는 순정랜드, 국철 1호선 인천역사 및 광장에서 지역 청년예술가들과 함께 지역성, 장소성 그리고 예술의 공공성에 대해 묻고 젊은 예술가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는 새인천 대축전 등은 인천을 진정으로 미래완료적인 기억의 터로 만들어가려는 꽤 야심적인, 어쩌면 처절하기 그지없는 시도이다. ● 고향 인천에서 오석근은 차마 기억할 수 없었던, 실은 제대로 완료되지 못했던 자신의 경험과 꿈을 매번 다시 발견한다. 이탈리아 작가 이탈로 칼비노가 『보이지 않는 도시들』 (1972)에서 말했듯, "실현되지 않는 미래들은 과거의 가지들일 뿐이다. 마른가지들." 과거의 마른가지들이 우리의 현재와 미래의 길을 가로막고 있다면, 우리가 할 일은 마른가지들을 모조리 쳐내고 희망찬 대로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나마 우리에게 주어진 소로를 되돌아보고 가꾸는 일일 것이다. Amor fati! ■ 전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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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인천(仁川)은 개항과 더불어 근대 도시화 된 인천의 근원적인 풍경을 시작으로 일제강점기, 6.25전쟁, 산업화 등을 거치면서 축적된 도시의 시간과 기억의 층위를 사진으로 담아낸다. 그것은 원도심 곳곳에 숨죽이고 있는, 시대에 따라 증축, 변형된 일본가옥의 내.외부, 거리와 골목에서 목격할 수 있는, 시간과 역사를 담은 기이한 축적물 그리고 근대화, 산업화를 위해 지어졌지만 그 기능을 다한 인천내항과 각종 산업시설 등이다. 이 풍경들은 오랜 시간 도시 인천의 정체성을 형성해 온 것들이다. 만약 도시가 하나의 신체라면 이 요소들은 신체가 살아 움직이게 하는 중요한 기관들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자본과 개발, 가치의 부재로 각각의 장소는 폐기 되었거나 폐기될 위기에 처해있다. 시간과 기억 더 넓게는 역사를 품은 장소는 사라지는 순간 거짓말처럼 영원히 소멸한다. 그러기에 이 사진들은 오랜 시간 은폐, 축적, 폐기된 또는 폐기될 도시 인천의 중요 신체기관을 끄집어내 인천 더 넓게는 한국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직시하고 증명한다. ■ 오석근

Vol.20191030h | 오석근展 / OHSUKKUHN / 吳碩根 / photography.installation